신비로운 역사의 현장, 피라미드Pyramid와 미라 그리고 람세스. 어린 내게 이집트는 흥미로운 고대 문명의 근원지였다. 멀고도 막연하던 이집트가 내게 가까이 다가온 건 2011년 겨울 요르단에서였다. 짧은 휴가 동안 이집트를 여행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 대안으로 선택한 나라,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Petra의 어느 여행자 숙소 로비에서 이집트 민주화 혁명을 만났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찰나의 뉴스 화면 혹은 신문 기사로 접했을 그 사건을 나는 요르단에서 피부로 접했다. 이집트로 가지 못하는 여행자들과 이집트에서 겨우 넘어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이집트에 꼭 가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민주화 혁명 3주년인 날, 카이로Cairo에 도착했다.
테러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유적에 대한 갈망이 들끓었던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알 수 없는 갈망과 무지만이 있었을 뿐이다. 발권하고 나서야 이집트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의 지인과 연락이 닿았고, 나의 도착 날짜에 대해 유난히도 염려하는 그의 모습에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짜보며 카이로 시내에 도착했는데, 짐 검사를 하겠다며 다가온 무장 군인 두 명을 만나며 그 두려움은 점차 무게를 더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오전 카이로 시내에서는 폭탄 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겁먹고서는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나 싶은데, 다행히도 나는 첫날부터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감동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카이로에 가면 피라미드를 봐야 한다고 하지만, 피라미드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며 조언해주고 피라미드 전용 사진 포즈도 가르쳐주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 아이들, 어두운 골목길 앞에서 주저하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준 커플, 칸 엘 칼릴리 시장Khan el-Khalili Market에 있는 수피댄스 공연장에서 자신은 여러 번 본 공연이라며 자리를 양보해주신 아저씨, 길을 여쭤봤는데 걸어가기엔 먼 거리라며 차를 태워주신 운전사 아저씨, 여자 혼자 여행한다며 걱정해주고 보호해준 여러 여행자 친구들이다.
아스완Aswan을 떠올릴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람이다. 룩소르Luxor에서 아스완까지 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피곤해하는 내게 자리를 양보해준 이집트인 가족이 있었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고, 공항에서 만난 중국인 커플을 투어버스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그들의 환영에 행복감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펠루카의 노를 저어주던 누비아인의 노랫가락은 지금도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Abu Simbel Temple의 웅장함에도 감탄했지만,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건 필레Philae 섬에서 만난 젊은 가족이다. 함께 사진을 찍자던 많은 사람과 다르게 그들은 함께 음식을 먹자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 줄 몰랐던 나는 아침과 점심을 거른 상태였는데, 먹을 게 없다는 나의 말에 우리에게 있으니 괜찮다며 함께 하자던 그들. 그날의 필레 섬은 날씨도 참 따스했다. 생각할 때마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햇살이 내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룩소르도 마찬가지다.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이나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같은 곳은 명칭조차 잊어버려 인터넷을 검색해야 하지만, 두렵고 외로운 시간에 힘이 되어준 사람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후르가다Hurghada에서도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 돌고래보다 보고 싶고 그리운 건, 조난할 뻔한 나를 구해준 선생님과 마사지를 해주며 나를 안정시켜준 러시아에서 온 여행자 그리고 함께 다이빙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왜 여행을 떠나느냐고. 나 자신에게도 늘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누군가의 따스한 마음을 마주한 기억들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 도움의 손길은 늘 내 여행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두려움과 걱정이 많았던 여행이었지만, 늘 그렇듯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했기에 나는 이집트만 떠올려도 마음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