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행복한 이 순간,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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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행복한 이 순간,
바로 지금

아주 오래전 홍대의 빵집을 지나는데, 일정 기간 주얼리 전시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빵집에서의 전시도 이상했지만, 주얼리 전시를 한다니. 고개를 꺄우뚱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빵이 놓여야 할 자리에는 주얼리들이 소리 없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렇게 ‘지금’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전시된 주얼리는 내가 흔히 생각하던 화려함, 심플함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멀리서 봤을 때 단조로워 보이는 제품을 가까이 들여다 보니 섬세한 질감이 느껴졌다. 디자이너는 잘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만의 색을 고집해오던 ‘지금’은 안국역의 조용한 골목길에 차분하게 자리 잡았다. 그들은 예전보다 더 또박또박 정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었다.

INTERVIEW  유정은, 안경훈

‘지금’의 시작

주얼리 브랜드 ‘지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은 작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녁에 주얼리 작업을 했었어요. 벌써 7년 전 이야기네요. 어느 날 사장님께서 자신이 일본 여행을 가는 동안 가게에서 전시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제가 만든 제품에 관심을 가지며 구입을 하기도 했어요. 신기했죠. 그때의 작은 전시가 ‘지금’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만의 쇼룸을 꿈꾸게 되었어요. 

경훈 그동안 정은이가 좋아하는 느낌으로 작업하던 모습들을 쭉 지켜봤어요. 조언을 주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렇게 잘 해내리라 생각지 않았어요. 많은 또래의 친구들이 회사에 다니는데, 혼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주얼리디자이너에게 쇼룸이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지금’은 몇 년 전 계동에서 공동 쇼룸을 운영했었고, 단독 쇼룸을 오픈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네요. 사실 주얼리만으로 저희가 보여주고자 하는걸 다 보여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어요. 단독 쇼룸을 오픈하고 나서는 공간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제품이 어울리는지 착용해볼 수 있고, 제품설명도 직접 들려드릴 수 있으니 좀 더 고객과 가까워졌죠.

계동과 가까운 곳에 다시 쇼룸을 오픈했네요.
공동 쇼룸을 운영할 때부터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어요. 단독 쇼룸을 오픈하기 전 다른 장소나 공간에도 많이 가보고 생각해봤는데 ‘지금’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지만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어요. 

직접 공사까지 하셨다고 들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아요.
네,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장소였어요. 여러 문제들로 결국 신축까지 하게 되고 공사만 일 년이 걸렸거든요. ‘언제 오픈할 수 있을까.’ 매일 그런 생각만 했었죠. 땅까지 파고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많은 걱정이 앞섰어요.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완성된 만큼 쇼룸을 운영하며 작업하기에 최적으로 맞추어져 있어요. 동선부터 위치까지 모든 걸 꼼꼼하게 계획했거든요. 공사할 때는 ‘지금’의 디자이너가 혼자가 아닌 둘이 된 시점이기도 했어요. 혼자였으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평생 간직하고 싶은 물건

‘지금’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이 순간, 바로 지금’이라는 의미예요. 더 구체적으로는 ‘아주 개인적인 의미를 담는 작은 조각’이 주얼리라고 생각해요. 순간의 기억을 담고자 하는 브랜드의 지향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컬렉션의 주제에 맞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궁금해요. 그렇게 매번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저희는 컬렉션을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오픈하고 있어요. 스토리만 너무 강조되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된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해요. 스토리는 생각보다 빨리 잡히지만, 디자인을 추출하고, 그 과정을 컬렉션에 집어넣는 일, 그리고 사진으로 담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요.

주얼리 촬영을 할 때, 작은 물체의 느낌을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제품 컷이나 룩북에서도 많은 고민과 시도가 보이던데, 사진 촬영을 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촬영을 위해 포토그래퍼와 만나면 제가 제일 먼저 꺼내는 이야기가 컬렉션 주제예요. 제품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차분히 전달하려 해요. 단순한 착용 컷보다 컬렉션을 통해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은 생각보다 여러 사람의 도움과 많은 부분을 계획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주얼리 다음으로 흥미롭죠. 그런 노력들이 ‘지금’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손님들의 반응이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는 편인가요?
쇼룸을 찾는 손님을 보면서 어떤 디자인이 어울릴지 떠올려보고, 착용했을 때 느낌을 상상하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컨셉을 잡으면 또 제 개인적인 생각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 거 같아요. 지금 유행하는 것도,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 지도 알지만, 그런 방향을 따라가지 않으려 노력해요

‘지금’ 제품에 어울리는 사람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정은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나이 드신 분께서 “아, 이건 참 좋다. 가지고 싶네.”라고 말해주실 때 기뻐요.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오랜 저의 뮤즈 ‘제인버킨Jane Birkin’에게 어울리는 반지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2년 전 그녀의 마지막 월드투어에서 직접 반지를 전해주었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적인 기억이에요. 

경훈 저도 그때가 생각나네요. 제인버킨이 무대에서 반지를 보이며 저희를 언급해주었어요. 옆에 정은이를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요. 마음이 찡했어요. 공연할 때 주머니에 넣고 공연을 한 거 같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시나 소설의 텍스트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단어가 있다면 계속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걸 이미지로 확장시켜요.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상상력을 자극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에요. ‘시’나 ‘소설’은 하나의 작은 세계 같아서 주얼리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여행을 많이 다녀오셨던데요. 여행도 영감을 얻기 위함인가요?
영감이라기보다는 작업만 하느라 여유가 없을 때는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그냥 나 자신과 ‘지금’에 대해 집중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자기 일에서 벗어나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여행지에 가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어요. 저 사람이 어떤 의상과 매치했을 때 주얼리가 더 아름다운지, 어떤 동작을 취할 때 반지가 잘 보이는지 보게 되더라고요. 최근 여행지 뮌헨에서 갤러리 한 곳을 삼일 내내 갔었어요. 정적이 흐르고 그림과 내가 마주 보고 있으니 좀 더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이 흐릿해져 갈 무렵이었거든요. 멀리서 그림을 보고 있는데, 그 앞에는 팔짱을 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어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할머니 손에 낀 낡은 반지를 만지고 있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노부부에게 반지가 특별해 보였어요. 반지에는 어떤 기억이 담겨 있었겠죠. 내가 그런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물건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개인적이고 조용한
아름다운 피스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정은 원래 작은 것에 집중하는 성격이었어요. 내향적인 편이었거든요.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함축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시와 차분하게 담아낸 정물화를 특히 좋아했어요. 작고 조그마한 것들에 끌리는 저 자신을 보면서 자연스레 주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주얼리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매력을 느꼈어요. 단순하게 ‘나도 엄마에게 저런 예쁜 걸 만들어 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얼리 관련 자료들을 스크랩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보니 다 쓸데없는 자료들이었지만요.

주얼리 디자이너 두분이 함께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힘든 점은 없나요?
경훈 처음에는 서로가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주로 금속작업을 베이스로 공간디자인과 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거든요. 주얼리보다는 현실적으로 실용성 있는 작업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주얼리가 사치품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어요. 정은이와 ‘지금’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주얼리에는 가치로 매길 수 없는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 작업이 이제는 저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들로 변해버렸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최근 선보인 프로젝트 ‘사랑이 단단해지는 순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골드커플링을 주문하시는 분들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사진’을 함께 선물하고 싶어 기획했어요.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 커플을 만나고, 그들의 추억이 사진으로 쌓이는 모습들을 보며, 문득 그들의 진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몇몇 커플의 인터뷰를 저희 블로그를 통해 보여드리고 있어요. 

이번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골드를 선보였는데요. 작업자로서 골드와 실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실버 위주로 컬렉션 작업들을 했었어요. 실버 특유의 느낌을 좋아했고, 착색됐을 때의 엔틱한 느낌이 너무 매력적이었거든요. 골드와 실버는 요소만 보면 작업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점이 있어요. 열전도율과 녹는점 등의 각각의 매력이 있는데, 그건 작업자만이 알 수 있죠. 사람들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무게감과 밀도감, 그리고 색상의 유무가 있어요. 실버는 섬세한 흑백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라면 골드는 섬세한 컬러 조각을 하는 느낌이에요.

실버는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변질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요령이 있을까요?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마른 부드러운 천에 치약으로 닦거나, 베이킹소다로 세척하는 거예요. 그런데 잘못 관리해서 상처가 나게 되면 더 빠른 주기로 변색이 오니 실버 세척액으로 관리하는 게 좀 더 나아요. 실버 세척액도 어느 순간부터는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신발 밑창이 닳으면 수선하는 것처럼 변색되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매장에 오셔서 관리를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지금’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요?
미묘한 매력이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주얼리브랜드, 섬세한 미의식으로 새로운 것과 클래식의 경계를 잘 아우르는 디자인이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싶어요. 전 주얼리가 패션과 공예의 경계선에 있다고 생각해요. 몸에 걸쳐졌을 때는 ‘패션,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지만, 착용하지 않고 놓여 있을 때는 작은 조각품 같기도 하거든요. 단순히 크기만으로 볼 때는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디테일이 조금만 변해도 착용했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매력이 있어요. 주얼리는 사람이 착용했을 때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고민들이 디자인에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올해는 고객들이 제품을 실제로 착용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단독 쇼룸을 오픈, 운영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제 작업을 하게 될 스튜디오를 잘 정비하려고 해요. 해외 주얼러들과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고요. 어느 때 보다도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개인적이고 조용한 아름다운 피스’라는 한가지는 또렷하게 전달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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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이경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