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행복하고 싶어요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2021년 문학동네에서 발행한 정지돈 작가의 산문집이다. 산책을 즐긴다는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도시를 만드는 자나 도시를 계획하는 자의 입장이 아닌 도시를 걷는 자의 시선으로 도시에 대해 썼다. 다른 나라의 거리를 걷다가 문득 한국의 거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산책과 길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와 관계된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니’라는, 줬다 뺐는 것 같아 어딘가 얄미운 느낌이 드는 제목의 이 책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우리 주변이라고 적어도 좋을 것 같다.
도시는 나를 위한 것이지만 내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욕 한마디 제대로 못 하던 내가 거친 욕을 입에 붙이고 살게 된 건 건축가로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도시가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책하며 눈여겨보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것들, 나를 뿌듯하게 만들던 것들이 마음대로 사라지거나 망가졌을 때, 나랑 친구들은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욕을 퍼부었다.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었을 때 할 수 있는 건 불평밖에 없는데, 불평은 너무 착하니까 못되게 굴고 싶어서 욕을 퍼부었다.
집 근처에 마음에 들어 하는 담벼락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검은 자동차가 도열해 기다리는 부잣집의 담벼락이었다. 담이라고 하면 콘크리트나 벽돌로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예전엔 무거운 돌을 쌓지나갈 때 그 집에 비추는 붉은 빛깔과 오돌토돌한 돌의 질감이 얼마나 예뻤는지, 가끔 담벼락 아래로 축 늘어진 이파리들이 자신보다 훨씬 큰 그림자를 담벼락에 새기기도 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검은색 승용차가 그 앞을 지키지 않았고, 그리고 그 아름다운 벽은 공사 가설 펜스로 가려졌다. 그리고 길지 않은 공사 기간이 지난 후 ‘두두등장!’ 하고 나타난 것은 오피스텔. 그 오피스텔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던 내 것이 없어졌고 삭막해졌다.
“왜 내 것을 뺏어 갔느냐고! 왜 그거 있지 않느냐고. 능소화 주황색 꽃이 하늘하늘 그림자를 만들던 검은 돌 그거 어디 갔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는데 따질 곳이 없었다. 만약 아무 일이나 따져 물을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었다면 나는 전화를 해서 따져 물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전화기를 통해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전해왔을 것이다.
“딱하군요. 그건 당신을 위한 것이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니었어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책의 제목에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당신의 것은 아니라는 차가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나는 도시에서 작은 부분 하나도 지분을 주장할 수 없다. 길거리에 나무 한 그루 심은 적이 없으니. 그러나 도시가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어쩐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따뜻하다. 누군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위해준다는 건… 가슴 뭉클하다.
어릴 때 전주를 자주 갔다. 전주는 아버지가 살던 곳이었다. 그곳엔 할머니 혼자 살고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오구오구 우리 손자 왔쪄요~?” 하면서 궁디 팡팡 쳐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꽤 쿨한 사람이었기에 나랑 잘 놀아주지 않았고, 함께 놀 만한 친척이나 친구가 그곳에는 없었다. 그래서 전주는 억지로 부모님을 따라가는 곳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던 장면들이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는데, 전주의 골목길은 혼자 다니기에도 무섭지 않을 정도로 쾌적했다. 골목길 한가운데엔 무거운 콘크리트 맨홀이 지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어 나에게는 마치 길을 안내하는 차선과 같았다. 콘크리트로 만든 두꺼운 맨홀을 밟으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슈퍼에 들러 새콤달콤 하나씩 사 먹었다. 언젠가는 할머니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해처럼 붉은색 연시를 싸게 팔았는데 겨우 단돈 백 원이었다. 백 원은 지금도 작은 돈이지만 예전에도 코 묻은 애들 주머니에 몇 개씩은 들어 있을 정도로 작은 돈이었다. 마을을 돌고 슈퍼마켓을 만날 때마다 감을 사 먹었다. 한 개 먹고 두 개 먹고, 먹다 남은 감은 담벼락에 던져 마을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매년 한두 차례 전주는 나와 놀아주는 장소가 되었다. 전주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전주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서였다. ‘전주천 버드나무 학살 사건.’ 시에서 하루아침에 전주천의 버드나무 260그루를 모두 베어 버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무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전주천에 고개를 떨구고 머리를 감던 버드나무가 떠올랐다. 시에서는 수양버들에 적의라도 품고 있는 듯 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다고 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유 따위 듣고 싶지 않다.
“이런 ( )! ( )!!”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 대신 괄호 안에 욕을 적어 주길.
마지막으로 전주를 방문했던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조금 전이었다. 오랜 시간 아빠는 차를 운전해 전주로 향했다. 길게 머리카락을 흘러내린 수양버들은 전주의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병원에 계셨고. 할머니가 살던 양옥집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동차는 어릴 때 돌아다니던 마을로 향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전주천의 버드나무를 보았다. 낮에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붉은색 햇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아는 전주의 풍경들. 콘크리트 맨홀과 할머니의 양옥집. 먹다 버린 홍시. 그것들을 다시 볼 순 없을 거라고 직감했다. 어떤 건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건 다른 사람 소유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전주천변에 붉게 물든 수양버들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군가 자신을 위한 것을 두고 자신의 것이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