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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음식이 더 맛있는 이유
닷새를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장터 음식
오일장 음식이 더 맛있는 이유
제주에는 모두 열 곳의 오일장이 5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열린다. 대부분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서는 오일장은 제주 생활의 일부다. 아침에 일어나 날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오늘은 20일, 세화 오일장 서는 날이구나.’ 하루를 헤아리는데, 장날 여부가 들어가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세화 민속 오일장에
가는 이유
0과 5로 끝나는 날 열리는 세화 오일장은 나의 단골 시장. 차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어 동네 시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근처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편이라 장날과 주말이 겹칠 때면 꼭 들르려고 하는 편이다. 제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오일장인데, 정말 세화 바다 바로 앞에 시장이 있다. 갈치를 고르다가도 앞을 보면 바다가 있고, 칼국수를 먹다가도 고개를 들면 바다가 보인다. 그럴 때면 생활과 여행이 한순간에 뒤섞이는 기분이 들곤 한다.
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자주 가는 반찬 가게에서 양념게장이나 김치 같은 걸 사고, 야채 가게에서 무나 파, 마늘 등 식재료를 구입한다. 우리는 양말도 꼭 세화 오일장에서 사는데, 다섯 개 만 원으로 싼데다가 디자인도 다양하고 질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은 ‘맛나식당’. 사실은 세화 오일장에 가는 이유의 절반은 이 집 칼국수와 고추튀김을 먹기 위해서다. “밀가루랑 물만으로 만들었는데 밀가루 냄시가 안 나. 먹어봐요.” 칼국수를 주문하는 우리에게 사장님이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에이, 사장님 저희 삼 년째 여기 칼국수 먹는데요.” 웃으며 맞받아친다. 멸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일어나는 옆 테이블 손님이 “얼마예요?” 묻자, 사장님은 또, “김치 값은 빼고 사천 원.” 호쾌하게 목소리 높여 외치신다. 그 모습이 유쾌해 깔깔 웃었더니, “뭐가 그리 재밌어요. 그런데 핑계 낌에 한 번 더 웃으면 좋지. 그죠?” 하신다. 나는 여기 칼국수를 좋아해서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셔버리지만, 즐겁게 말을 건네시는 사장님이 없었다면 이만큼 자주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장이 서지 않는 날 뭐하시냐 물었더니 ‘서귀포 오일시장’에도 나가신다고 한다. “장사한 지 벌써 삼십 년이에요. 늘 즐겁게 최선을 다해요. 그러니까 손님들이 다시 오고 그러는 거지.” 눈을 보며 힘주어 말씀하시는데, 나는 오랜만에 진심을 본 것 같아 약간 감동해버렸다.칼국수를 먹고 나오는 길에는 꼭 도넛을 산다. 사실 ‘도넛’이라고 안 하고, “도나스”라고 말하긴 하지만, 여하간 그것을 사야 한다. “팥 도나스 여섯 개 주세요.”, “설탕은요?”, “괜찮아요.” 처음 도넛을 산 날, 고민하는 우리에게 “안에 들은 팥이 이미 충분히 다니까 설탕은 묻히지 말아요.” 하시던 도넛 사장님의 조언을 기억하고 있다.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바로 옆집에서 파는 옛날 핫도그도 정말 맛있다는데 칼국수에 도넛까지 먹으면 배 속에 핫도그 들어갈 공간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지만 늘 먹지 못한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함덕 오일시장
“거기 볼 거 없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함덕 오일장 작아. 볼 거 없어.”라는 친구의 말에 근처에 산 지 반년이 넘도록 한 번도 걸음 하지 않았다. 외국이든 국내든 여행하는 동안 볼 거 없는 도시는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 볼 거 없는 시장이 있을 리가 있나. 1과 6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함덕 오일장은 미리 짐작한 것만큼 아주 작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뻥튀기 가게에 줄을 섰다. 평생 튀긴 곡식과 말린 과일만 먹으면서도 살 수 있다고 종종 생각하는 나는 그 앞에서 한참 서성이며 고민하다 현미 튀밥과 뻥튀기를 샀다. 쌀이나 보리를 가져오면 튀겨주기도 하는지 보리 한 봉지 들고 줄 서있는 사람도 보인다. 다음 장날에는 집에 있는 묵은쌀을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시장 안을 둘러보았다.
생선 가게도 야채 가게도 반찬 가게도 있다. 다양하지는 않지만,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하지만 없을 건 대부분 없어서 풍경이 조금 썰렁하다. 띄엄띄엄 문을 연 가게와 가게 사이 시장 골목을 걷는데, 몇 년 전 들른 쿠바 아바나의 어느 시장이 떠올랐다. 필요한 것들을 소박하게 구비해둔 아바나 시내의 작은 시장에서 상점 사람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호객했고, 딱히 무언가를 살 생각이 없던 우리는 시선을 피하며 허둥지둥 시장을 나섰더랬다. 아바나와 함덕이 겹쳐 보여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함덕 오일장은 나에겐 ‘볼 게 없는’ 시장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시장은 늘 기대 이상의 것을 준다.
돌아나서는 길,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희끄무레한 것이 옆 차 아래로 지나갔다. 얼른 차를 세우고 살펴보니 털이 길고 하얀 고양이가 보인다. 가방에서 급히 사료를 꺼냈는데, 어느 틈엔가 도망갔다. 나무판자를 주워 평평하게 놓고 사료를 부어주자, 하얀 고양이를 포함한 고양이 세 마리가 숨어있다 쪼르르 달려와 사료를 먹는다. 고양이 셋과 사람 둘이 허둥거리는 모습을 시장 사람들이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었다. 닷새 중에 나흘은 열리지 않는 장인데, 장이 서지 않는 날 오일장 고양이들은 어디서 뭐 좀 얻어먹고 사는지. 지날 때마다 들러야지, 장이 아닌 날에도 지나가야지, 마음을 먹어보았다.
제주시 민속 오일장에선
삼천 원짜리 짜장면
2와 7로 끝나는 날 열리는 제주시 민속 오일장은 제주 시내 공항 근처에 있는 시장이라, 현지인도 여행객도 찾아가기 좋다. 규모도 크고 방문객도 많아 장날이면 넓은 주차장이 꽉꽉 찬다.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찌감치 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짜장면과 우동을 파는 가게. 우리가 첫 손님인 것 같다. 커다란 냄비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쭉하고 검은 것을 보고 “팥죽이에요?” 했더니 사장님이 온 얼굴로 웃으신다. 아앗, 짜장면 간판을 보고 들어오고도 순간 헷갈렸다. “오해하는 사람들 많아요. 면 반죽 보고 치즈냐고 한 사람도 있다니까요. 지금 면 나와요. 이리 와서 봐요.” 옆에서 보니 반죽이 정말 치즈 같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히히 웃었다.
“전국 장터마다 우리 ‘옛날 시거리 짜장’이 있어요. 체인이거든요. 예전에는 줄 서서 먹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시장 안이고 밖이고 먹을 데가 많아져서 손님이 예전만 못해요.”, “장날 아닌 날은 뭘 하세요?”, “원래는 밭일 나갔어요.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힘들어서 이것만 해요.” 닷새에 한 번 한결같이 끓여냈을 짜장 소스를 갓 뽑은 면 위에 부어 건네주신다. 달지 않고 부드러운 맛의 짜장면이 돌아서면 생각날 맛이다. 한 그릇에 삼천 원. 짜장면에 우동까지 먹어도 웬만한 한 끼 식사보다 저렴하다.
장에 왔으니 장터국밥이 생각난다면 손님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순대국’과 ‘몸국’을 사 먹으면 된다. 떡볶이나 튀김을 파는 분식집에도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막걸리 잔과 냄비 받침을 사서 까만 봉지에 넣고 시장을 나서며 다음에 오면 작은 화분을 사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못 먹은 튀김도 꼭 먹어야지.
더 맛있는 식당은 시장 바깥에도 많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식당을 일부러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을수록, 음식은 맛만으로 먹는 게 아닌 것 같다. 닷새를 기다려 열린 시장의 들뜬 공기는 긴장을 풀게 하고 마음을 열게 만들어, 다른 식당에선 조용히 밥만 먹고 나왔을 나도 괜스레 말 한마디 건네게 된다. 그럴 때 돌아오는 맛나식당 사장님의 밝고 우렁찬 대답은 칼국수를 더 맛있게 만들고, 시거리 식당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는 삼천 원짜리 짜장면은 이미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다음 장날에 다시 찾아가면 사장님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만드는 사람을 아는 음식은 언제나 조금 더 맛있다.
제주도 내 오일장 일정
1, 6일 함덕 오일시장, 성산 오일시장, 대정 오일시장
2, 7일 제주시 민속 오일시장, 표선 민속오일시장
3, 8일 중문 향토 오일시장
4, 9일 서귀포 향토 오일시장, 한림 민속 오일시장, 고성 오일시장
5, 10일 세화 민속 오일시장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