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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걸·이현아 — 웜그레이테일
자연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먼발치에 서서 지그시 바라보는 일. 그렇게 거리를 두고 동경하는 마음. ‘대자연을 동경하는 도시생활자’란 수식은 자연을 대하는 웜그레이테일의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자기소개 먼저 시작해 볼까요?
한걸 저는 웜그레이테일의 일러스트레이터 김한걸입니다.
현아 브랜드의 전반적인 운영과 디렉팅을 담당하는 이현아라고 해요.
최근에 리빙디자인페어 준비로 많이 바쁘셨죠?
현아 꽤 오랜만에 준비하는 페어였어요. 2017년부터 19년까지 3년 연속 참여하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저희 쇼룸을 오픈하기 시작한 뒤로 안 나갔거든요. 왜냐하면 페어 준비가 진짜 힘들어요. 제가 2019년 페어쯤에 개인 SNS에 “신청한 내 손가락 부러뜨리고 싶다.”고 적었더라고요(웃음). 그만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요. 그런데 저희가 팬데믹 기간에 몸을 많이 사렸거든요. 2년째 활동을 자제하다 보니, 이젠 좀 한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걸 씨에게 이야기를 슬쩍 꺼내보았죠. 매번 페어 준비할 때마다 한걸 씨 설득하는 게 의례 중 하나였거든요(웃음). 생각보다 흔쾌히 하자고 하더라고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기셨길래!
한걸 저희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으로 고객분들과 소통하고 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조금 정체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확실히 숏폼이 대세인 것 같은데, 그건 저희 영역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프라인으로라도 꾸준하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년 겨울에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던 지라, 저희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 봐야겠다 싶었죠.
이번에 송월타월이랑 수건을 제작하셨더라고요. 저번엔 삭스타즈랑 양말을 출시했고요.
한걸 이왕이면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가 주력으로 선보이는 액자는 지속적으로 구매하기에 어렵잖아요. 그에 비해 양말이나 수건은 쓸 때마다 닳고, 마음에 들면 몇 장씩 사기도 하니까요. 고객들이 계속 저희를 찾도록 장치를 마련하려 했죠. 무엇보다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요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서울일러스트페어만 구경하러 가도 깜짝 놀라거든요. 여기 나의 경쟁자들이 다 모였네(웃음), 싶죠. 처음 브랜드 시작할 때 가장 접근하기 좋은 것이 문구류나 컵 같은 소품이에요. 저희 브랜드가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시작하는 브랜드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제품들을 시도하면서 진입장벽을 높여야 겠다 싶었죠. 사실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적당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지금은 그 기반이 마련돼서 좋은 기회로 진행하게 되었고요.
웜그레이테일 이야기를 하려면 두 분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9-10년 동안 연애를 하다 브랜드를 차리셨다고 들었어요.
현아 한걸 씨가 제 학교 선배예요.
한걸 현아 씨 1학년 때, 저는 휴학을 하고 웹디자이너로 직장 생활 중이었어요. 3월에 학교에 놀러 왔다가 신입생인 현아 씨를 본 거죠. 한 5월쯤부터 만나기 시작해서 19년째 함께하고 있어요.
거의 인생의 반을 함께한 거나 다름없네요(웃음). 작가님이 끊임없이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설득한 끝에, 디렉터님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일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드는 게 무섭진 않으셨어요?
현아 사실 되게 가볍게 시작했어요. 물론 일을 그만두기까지 고민이 많긴 했죠. 그때가 아마 회사 생활 6년 차였을 거예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열심히 다녔거든요. 회사 다니는 내내 한걸 씨가 같이 일하자고 했어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간 나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던 시기여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회사에 다닐 때와 사업할 때 장단점을 적어두고 비교하기도 했거든요. 막상 나올 때는 마음 편하게 나왔어요. 망해도 된다, 1년 정도는 다른 일 해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겠지 싶었죠.
두 분 다 뭔가를 시도할 때 크게 겁을 먹지 않는 편인가 봐요.
한걸 저 같은 경우엔 극적으로 무언가가 바뀐 건 아니었어요. 어차피 계속 프리랜서를 하던 중이라, 브랜드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일은 하고 있었어요. 현아 씨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현아 저는 회사 나오고 나서 한걸 씨에게 못을 박아뒀어요.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브랜드 준비에 전념하겠다.’고요. 전 정말 그 시기가 꿀 같았거든요(웃음). 불안도 없고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죠. 오히려 브랜드를 더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한걸 씨는 정말 제가 아무것도 안 할 줄 몰랐나 봐요. 한걸 저는 당시에 고민이 많았거든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거죠(웃음).
둘 다 고민이 많았으면 오히려 시작할 엄두조차 못 냈을 것 같아요.
현아 한걸 씨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아요. 저는 고민이 별로 없고요. 연애할 때도 한걸 씨가 홀로 잠겨 있는 순간이 되게 많았는데, 저는 그때도 ‘그런가 보다.’ 싶었어요. 예를 들면 심리 관련된 책이 곁에 쌓여 있으면, 저는 그냥 ‘요즘 감정에 관심이 많나 봐?’ 하고 넘어갔는데요. 알고 보니 한걸 씨는 침울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던 거죠. 그랬던 적이 좀 많아요.
한걸 그럴 때마다 인생은 역시 혼자구나(웃음), 하고 느껴요. 근데 또 현아 씨가 제 기분에 잘 동화되진 않아서 오히려 기분 내키는 대로 지내고 있어요. 어떤 날엔 제가 현아 씨 흥에 숟가락을 얹기도 하고요.
현아 저는 울이 없어요. (옆을 가리키며) 여긴 울이 많고요. 저는 대신 흥과 화만 있어요. 회복 탄력성이 좋아서 그마저도 오래 안 가지만.
웜그레이테일은 일상에서 작은 귀여움과 편안함을 선사해 주는 브랜드죠. 저도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나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필요할 때 웜그레이테일 양말을 꺼내 신고, 컵을 사용하거든요.
현아 예전에는 ‘귀엽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좀 놀랐어요. 저희 브랜드 제품이나 그림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걸 인정하기까지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저희도 이에 대해 인식하고 “그렇구나”하고 수긍하고 있어요. 100퍼센트 중에서 약 50퍼센트는 귀여운 느낌을 가져가려 해요.
한걸 사실 저는 자연의 동식물이 야생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려 했거든요. 제일 먼저 세운 원칙 중 하나가 ‘의인화하지 않기’였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조차 지양했고요. 설령 제가 그린 일러스트 중 하나가 빵 터져서 인기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만 계속 그리고 싶진 않았죠.
잘된 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들도 있잖아요.
한걸 반복하는 걸 금방 실증 내는 편이에요. 무엇보다도 저는 정해 둔 소재들을 어떤 의도를 담아 표현하기 보단 제가 장면을 보며 받았던 인상을 그림에 잘 담아내고 싶거든요. 동물을 그릴 때도 ‘귀엽게 그릴 거야!’가 아니라 생명체를 볼 때 느끼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으려 해요.
애정이 그림에 스며있어서 다들 귀엽게 느끼나 봐요. 웜그레이테일 그림은 단순해 보이지만 미묘한 디테일이 생명인 것 같아요.
한걸 브랜드 차원에서 다양한 제품에 제 그림을 적용하려면 어디에 들어가도 잘 어울릴 만한 그림이 필요하긴 했어요. 그런 느낌이 제 취향이기도 하고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예고를 다닐 때, 크로키 수업 성적이 가장 좋았어요. 열댓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번갈아 가면서 가운데에 서서 모델을 했고, 선생님께서 스톱워치로 30초 시간을 재면 8절 스케치북에 목탄으로 친구의 포즈를 빠르게 그려야 했지요.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는 게 핵심이었는데 그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묘사적인 그림을 그릴 일이 많았지만 오히려 빼면 뺄수록 흥미로워 하는 성향인 거 같아요.
웜그레이테일은 산과 바다, 생물을 소재로 작업을 하죠.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소재가 떨어질 일도 없겠어요. 소재는 보통 어떻게 길어오는 편이신가요?
한걸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좀 많이 보는 편이에요. 넷플릭스 같은 데 자연 다큐멘터리가 참 많잖아요. 웬만한 건 다 봐요. 동물 나오는 유튜브도 많이 보고요. <나의 문어 선생님>을 재미있게 봤는데 너무 똑똑해서 충격받았어요. 제가 문어 숙회를 좋아했는데, 그걸 보니까 이상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작가님께선 자주 동물에게 이입하시나 봐요. “늑대의 눈빛에서 육체 노동의 피로가 느껴졌다.”라는 문장을 적어두신 걸 봤는데, 오래 관찰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감정처럼 느껴졌거든요.
한걸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근데 그 늑대가 진정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냥 제 해석이고 느낌일 뿐이죠. 저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만 봐도 그렇거든요.
아짱이랑 야스, 맞죠? 디렉터님 SNS에서 봤어요. 고양이 육아 일기가 적혀 있더라고요.
현아 저희끼리 종종 그런 얘기 해요. “대단하다.” 저희 애들이 나이가 꽤 많아요. 열여덟 살이거든요. 사람으로 따지면 아흔 살 노인인데, 무언가 열망이 있으면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정말 경이로워요.
한걸 대신 동물들은 아픈 걸 숨겨요. 야생에서는 약점을 들키면 도태되니까요.
아짱이랑 야스도요?
현아 고양이는 개들보다 아픈 티를 잘 안 내요. 그래서 진짜 관찰을 잘해야 해요. 같이 사는 사람이 매일매일 관찰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어느 날 병원에 갔는데 갑자기 일주일 남았다는 소식을 듣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걸 어떻게 느껴요?
현아 미리 신호를 계속 보내거든요. 미묘하게 알 수 있어요. 쉽진 않아요. 뒤늦게 알게 될 때도 있죠.
언어가 다른 생물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서로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하잖아요. 아짱이랑 야스랑 함께하는 삶은 어때요?
현아 두 친구가 동갑인데 야스는 아직도 날아다녀요. 놀아주지 않음 잠을 안 자죠. 어릴 때 활동량 그대로예요. 아짱이는 많이 아파요. 아짱이가 열 살 때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거든요.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고양이별로 갔을지도 몰라요. 지금도 제가 밥에 영양제를 섞어서 먹여줘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오래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힘들어도 다 해주고 싶어요.
한걸 이 친구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로감 같은 게 없어 보여요. 될 때까지 시도하죠.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싱크대에 올라와서 그걸 뺏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을 보면 ‘선생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돼요.
두 분 작업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은데요. 매년 달력을 만들고 계시지요?
한걸 맞아요. 그랬는데요. 작년에 처음으로 달력을 안 만들었어요.
왜요?
현아 저희는 모든 소스가 한걸 씨에게서 나와요. 한걸 씨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 지치는 순간이 오면 디렉터로서 힘을 내도록 북돋아 주고 있는데요. 브랜드를 운영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한걸 씨의 피로도가 꽤 누적돼 있었나 봐요.
“삼라만상이 소재이니 그릴 것은 무한할 것 같은데 샤프펜슬을 쥐고 먼저 드는 생각은 ‘아 뭐 그리지’. 삼라만상 > 나 > 그림 세 단계 중 ‘나’ 구간에서 극심한 병목현상이 발생하니 결과물은 늘 가뭄이다.”라고 메모해 두신 걸 봤어요.
현아 한걸 씨는요, 모든 그림을 한 장 한 장 공들여서 그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달력 만드는 일은 열두 달의 여백을 채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중에서 몇 장 정도는 가벼운 스케치 하나로 채워도 될 것 같은데 한걸 씨는 그렇게 넘어가고 싶지 않은 거죠. 모든 페이지를 부끄럽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달력은 한 해가 끝나면 더이상 펼쳐 보지 않잖아요. 달마다 소비되고 끝나는 그림을 계속 그리려니, 들이는 힘에 비해 머무는 순간은 한정적이라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한걸 쉽게 말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거죠. 매년 달력에 들어갈 그림들을 완성도 있게 작업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어요. 밀린 숙제하듯 의무적으로 분량만 맞추다 보니 즐겁지가 않고 오히려 소진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은 카페에 가서도 아이패드를 펼쳐 들고 즐겁게 그리잖아요. 저는 그림 그리는 일이 즐겁다기 보단 내가 넘어야 할 한계처럼 느껴져요. 어떤 면에서는 잘하고 싶은 욕구가 정말 크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현아 저는 이걸 이해하는 데 조금 오래 걸렸어요. 어떤 작업을 할 때 ‘막연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 싶은데, 한걸 씨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디렉터님께서 “어두운 방에 갇혀 고민하던 작가님께서 그린 미모사 그림을 발견하고선 눈을 떼지 못했다.”는 소회를 적어 두셨던데요.
현아 저는 한걸 씨 그림이 정말 좋거든요. 이렇게 잘 그리는데, 왜 이걸 이렇게 묵혀 뒀을까 싶어서 되게 아까울 때도 많아요. 이 재능이 제 눈에는 너무나도 반짝반짝 빛나 보여요. 그래서 아낌없이 보여주고 싶고 지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한걸 씨의 리듬을 존중해야겠단 생각을 점점 하고 있죠. 그래서 요즘 저희 목표는 한걸 씨가 충분히 쉬면서 그림 그리는 시간을 확보하는 거예요.
그럼 이제 달력은 더 이상 안 만드시는 건가요?
한걸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언젠가는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약속하긴 어렵지만요.
현아 저희가 처음에 달력을 냈을 때,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한 해의 끝자락마다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저희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제품이 되었지요. 어떤 분께선 달마다 어떤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지 모르고선 구매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새 계절이 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본다고요. 그렇게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한걸 작년 한 해 동안 브랜드 차원에서 고민이 정말 많았거든요. 이런저런 변화를 주기 위해 시도를 많이 해보았는데, 기존에 하던 일들과 병행하려다 보니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현아 지금까지 지속해오고 있던 것들을 조금 놓아야 사람들에게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을것 같았어요. 그 중 하나가 달력이었고요.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내려놓고 나니 이번 페어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낸 것 같아요. 저희는 수건이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거든요. 희망을 본 기분이에요. 조금 더 사람들 곁에서 오래 함께할 만한 물건들을 만들고 싶어요.
작가님께서 포셋 한편에 남겨 두고 오신 브랜드 소개 글을 보았는데요. “대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저희 역시 대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대자연을 동경하는 도시 생활자이지요.” 그 문장에 많은 분이 공감하실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두 분께서는 자연을 어떤 방식으로 누리고 있나요?
현아 망원 한강공원에 진짜 자주 가요. 망원동 사시는 분 중에서 한강 자주 안 가시는 분들도 정말 많더라고요. 해운대 사는 사람들이 바다 구경 잘 안 가듯이요. 그런데 저희는 이사 온 뒤부터 한강을 걷는 게 일상이 됐어요. 매일 같은 풍경을 봐도 매번 아름답다고 느껴요.
주로 산책 코스가 어떻게 돼요?
현아 저희가 망원동에서 이사를 서너 번 정도 했어요. 이사한 집 위치에 따라 코스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결국 진입로만 다를 뿐이지 걷는 구간은 같아요. 망원동에 처음 온 게 2012년이었는데요. 결혼을 앞두고 어떤 지역에 사는 게 가장 좋을까 고민했는데, 그때 한걸 씨가 한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걸어봤어요.
세상에, 진짜요?
한걸 한 서른쯤부터 앞으로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20대 때는 학생이니까 그냥 학교 근처에서 지냈거든요. 거기서 살고 싶진 않았지만, 생활 반경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거죠. 그러다 서른이 되었으니 내가 살 곳을 잘 찾아보고 싶었어요. 기왕이면 한강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동네면 좋겠더라고요. 아시겠지만, 한강 근처는 대부분 대단지 아파트가 장악하고 있잖아요. 그런 구간을 제외하면 망원이나 합정 혹은 한남동밖에 없었죠. 한남동은 빌라나 주택이 대부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경사진 곳은 또 싫다는 생각에 뺐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망원동이 남더라고요.
도시 근처에 여러 자연이 존재하는데, 왜 하필 강이었어요?
현아 일단 산책로가 잘되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요, 엄청난 대자연과 함께 지냈죠. 근데 드라마를 보면 서울 사람들은 매번 한강에 가는 거예요. 그것만 보고 다들 한강에 자주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가끔 가족들 보러 오거나 미술 대회에 참가하려고 서울 올 일이 있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양화대교 부근을 지날 때면 햇빛이 내린 한강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걸 보면서 처음으로 ‘나는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서 살아야지.’ 싶었어요.
기대가 컸으면 실망할 법도 한데, 한강은 그렇진 않았나 봐요.
현아 한강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환경을 좋게 조성해 두기도 했지만, 나무들이 자라면서 점점 우거져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10년 전에 미국에 갔던 제 친구도 작년 여름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강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한강이 이렇게 예뻤냐며 해마다 오고 싶다고 했어요. 저희는 둘 다 걷는 걸 좋아해서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해요.
한걸 주로 일 이야기 해요(웃음).
현아 사실 최근엔 페어 이야기만 계속했어요.
그럼 소소한 자연 말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연은 본 적이 없나요?
한걸 저는 대자연을 동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야생성이 있는 활동을 좋아하진 않아요. 완전히 자연과 나만 존재하는 곳은 살짝 무섭거든요.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다큐멘터리나 트래킹하는 유튜버들을 보면 동물들한테 물려 죽는 건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안전한 집에서 화면을 통해 감상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죠.
현아 저희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에요.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어디 멀리 나가기도 어렵고요. ‘어딜 가야겠다!’ 싶으면 보통 도시로 떠나곤 해요. 휴양지 가서 쉬는 것보다 뭐라도 좀 배워 오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자연을 동경하지만 가까이할 수는 없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네요. 요즘 여러 브랜드가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죠. 웜그레이테일 또한 책임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한걸 맞아요. 저희도 고민이 많은 부분이에요. 우선 패키지 개발에 힘쓰고 있어요. 사실 내용물이 훨씬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 저희가 자체적으로 제품 소재를 개발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싶었죠. 그러다 보니 플라스틱 패키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투명 플라스틱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이 내부가 보이는 거잖아요. 그 편리함 덕분에 많은 브랜드에서 플라스틱 패키지를 사용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플라스틱 소재가 지구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다 보니 최대한 교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단일 소재이면서 재활용하기에 적당한 건 종이밖에 없더라고요. 종이로 상자를 제작할 경우엔 개봉 전까진 내용물을 확인 할 수 없으니, 브랜드 내에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딜레마를 겪었군요.
현아 유통과 판매에 있어서 불편함이 생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직은 친환경 패키지 제작이 상용화되지 않았다 보니 비용이 더 많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희가 감수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은 노력이라도 알아봐 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홈페이지 리뉴얼을 하면서 ‘지구를 위한 노력’이란 페이지를 따로 만들었어요.
‘지구를 위한 노력’이요?
현아 이제부턴 웜그레이테일이 지구를 생각하며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이전에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택도 없을 것 같아서 섣불리 이야기를 못 꺼냈어요. 역효과가 날 것 같았거든요.
용기가 생긴 거네요.
현아 최근에 처음으로 무접착 액자 패키지를 도입했어요. 저희가 액자용 박스랑 택배 박스를 제일 많이 사용을 하는데요. 액자 하나 나갈 때 상당히 많은 포장 자재가 쓰이거든요. 뽁뽁이랑 비닐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종이로만 고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완해달라고 박스 제작 업체에 부탁을 드렸어요. 이런 시도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으니, 이젠 이야기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결심이 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흰 이제 첫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에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지만, 제품과 패키지 제작 과정에서 차츰 바꿔 나가보려고 해요. 앞으로 지속적으로 웜그레이테일만의 목소리를 내봐야죠.
1. June, 2020, Fjord
송네 피오르는 총 길이 약 200킬로미터. 최고 수심은 약 1킬로미터로 피오르 중에 가장 크다. 피오르는 빙하에 의해 기반 암석이 침식되고 빙하가 사라진 자리에 바닷물이 들어온 지형을 뜻한다. 강처럼 보이는데 바다라고 하니 신기하다. 사전에서는 친절하게도 몇 장의 그림까지 준비하여 피오르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작용의 규모나 기간 등의 단위가 어마어마해서 짧은 시간을 사는 나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2. May, 2020, Tree & Bears
곰 남매 세 마리가 나무에 올랐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오를 수 있으니 오른 것이겠지. 하지만 목적 없이 시도한 일에서도 때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앞선 두 마리보다 조금 뒤처진 꼴찌 녀석을 포함하여 셋 모두가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3. February, 2022, Whales
지구 나이는 46억 년. 멸종한 공룡을 포함하여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은 흰긴수염고래다. 지구 역사에서 가장 큰 동물이 바로 지금 살아있고 작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라도 잠시 엿볼 수 있다니 신기하다. 좋은 기분이 든다. 커다란 존재에게 느끼는 경외감.
4. November, 2022, Your Eyes
암체어 팔걸이에 오르니 눈높이가 비슷하다. 항상 보고 싶은 너의 예쁜 눈. 특정 품종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 현실의 고양이에게 없는 색을 입혀보았는데 마지막에는 노란색을 골랐다. 둘만의 유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동거인의 옷은 인접한 색으로 조금 밝게 칠했다.
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