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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리 — 표뵤뵤
담갈색 천에 새긴 촘촘한 땀에서 표뵤뵤의 선율을 읽는다. 작은 소지품을 담기 위한 ‘산책 가방’에서 출발한 이 브랜드는 강릉 바다에서 길어 올린 ‘표뵤뵤뵤뵤….’ 소리를 담아 이다지도 안온한 걸까.
표뵤뵤, 발음마저 귀여운 이름이에요.
강릉에서 바다 산책을 하던 중에 남자친구가 물었어요. “파도가 모래사장에 스며드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니 자그맣게 ‘표뵤뵤…’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나중에 브랜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문득 이 순간이 떠올랐어요. 표뵤뵤는 재봉틀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쓰임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려가고 있죠. 저는 그런 표뵤뵤를 운영하는 고우리입니다.
입을 오므리고 작고 보드랍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표뵤뵤….’ (고양이가 와서 머리를 부빈다.)어?
“안녕하세요, 고겨울입니다(웃음).” 겨울이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구조한 아이예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친구인데, 아픔을 전부 이겨내고 지금은 덩치 큰 건강한 고양이가 되었어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 수리 기사님이라도 오시면 놀아달라고 계속 머리를 부비는 고양이죠.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같이 출근했어요.
구조를 직접 하신 거예요?
네. 교보문고에서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데 그 사이에 겨울이가 있었어요. 정말 조그마한 새끼 고양이였는데 눈에서 진물이 나고 딱 봐도 굉장히 안 좋은 상태였죠.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라 더 안타까웠어요. 구조해서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이미 너무 많아서 애써 못 본 척하고 지나갔지만 데이트하는 내내 제 표정이 좋지 않으니까 남자친구가 “걱정되면 다시 보러 가볼래?” 그러더라고요. 다시 갔더니 겨울이는 그 자리에 있고, 모여 있던 사람들은 없어진 상태였어요. 지금 제가 이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여기서 계속 관심만 받다가 아픈 고양이로 남지 않을까 싶어서… 즉시 가방에 넣고 바로 24시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남자친구에게 고마워요. 용기를 준 덕분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겨울. 이번 호 주제어가 ‘산책’인데, “모든 외출이 산책이 되는 마음으로 만듭니다.”라는 문장이 퍼뜩 떠올랐어요. 첫 작업 이름도 ‘산책 가방’이었죠?
산책이란 주제에 표뵤뵤가 떠올랐다고 해서 정말 기뻤어요. 몸이 많이 아프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30분 산책이었어요. 청계천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죠. 근데 산책할 때 들고 나갈 간단한 소지품을 담을 가방이 없더라고요. 유독 큰 가방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시중에서도 작은 가방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만의 산책을 위해 작은 가방을 만든 거죠. SNS에 ‘산책을 위해 만든 가방’이라고 올리니 어떤 분이 만들어서 판매할 의향은 없는지 물으시더라고요. 책 한 권만 쏙 들어가는 가방이 너무 필요하다면서요. 사실 표뵤뵤는 그분의 한마디에서 시작됐어요.
산책 가방을 만들 정도면 산책에 애정이 클 것 같은데, 우리 씨한테 산책은 어떤 의미예요?
보통은 산책을 위해 멋있고 근사한 장소를 일부러 찾잖아요. 그런데 저는 산책은 좀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내게 줄 수 있는 작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멀리 가는 것보단 집 근처 거니는 걸 더 좋아해요. 매일 보는 길엔 무관심해지기 쉽지만 유심히 눈길을 주면 보이는 게 참 많거든요. 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면 숨어 있는 고양이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나기도 하고요. 시멘트 사이에서 핀 꽃을 보면 어찌나 대견하고 예쁜지, ‘귀엽고 대견해!’ 하면서 기뻐지죠. 잘 관찰하며 다니다 보면 어제는 없던 돌멩이가 굴러온 것도 발견할 수 있어요. 늘 곁에 머무는 것들을 좀더 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산책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귀여움을 발견했어요?
최근엔 유난히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자주 보게 돼요. 어느 날엔 길에 떨어진 스티커 사진을 주웠는데요. 예쁘게 찍힌 젊은 엄마와 아기의 사진이더라고요. 이걸 잃어버려서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하니까 자꾸 감정이 이입되는 거예요. 찾아주고 싶어도 정보를 알 길이 없으니… 눈에라도 잘 띄라고 돌멩이 위에 잘 올려뒀거든요. 근데 얼마 뒤에 당근마켓에 그 사진이 올라왔어요. 잃어버린 사진을 찾았다면서요. 돌고 돌아 주인에게 찾아갔다니,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덩달아 행복해지는 에피소드예요(웃음). 작업실이 참 따듯해요. 재봉틀이랑 천 조각이 만드는 분위기인 것도 같고요. 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근데 이 기계는 뭐예요?
이건 오버로크라고, 끝단을 처리해 주는 기계예요. 천 자락 끝부분의 올이 풀리지 않게 마무리해 주는 과정인데요. 보통 옷 안쪽으로 숨기는데, 표뵤뵤 작업 특징 중 하나가 오버로크를 밖으로 최대한 많이 꺼낸다는 거예요. 항상 안쪽에 있으니까 ‘얘네가 얼마나 밖으로 나오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꺼내주기 시작했어요. 또 다른 특징은 땀수가 무척 촘촘하다는 거예요. 땀과 땀 사이가 좁으면 작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변에서 땀수 좀 넓히라고 많이 조언해 주시는데요. 왠지 이 부분은 타협이 잘 안 돼요. 이런 특징들 덕분인지 가끔 “표뵤뵤만의 바느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말들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 가방이다 보니 주인을 찾아갈 때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어디에 가든지 무엇이든 잘 담아달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조심조심 포장해서 보내요. 힘들게 노동해서 번 돈으로 제 물건을 사주시는 게 늘 감사해요. 지금 오브젝트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전시장에 찾아온 분이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길 해주셨어요. 고등학생일 땐 용돈 한 푼, 두 푼 모아서 표뵤뵤 가방을 샀는데 이젠 자기가 번 돈으로 살 수 있어서 기쁘다고요.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더라고요. 근데 그 마음과는 달리 제 가방을 멘 분들을 보면 왠지 못 본 척하게 돼요. 한번은 길에서 표뵤뵤 가방을 멘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땐 ‘바삐 가방을 만드는데도 왜 내 가방을 멘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까.’ 의구심이 들던 때이기도 했어요. 근데 막상 제 가방을 우연히 만나니까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와서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 보니 진짜 기뻤기 때문에 표출하는 방법을 오히려 모른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지금도 제 가방 멘 사람을 봐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아요. 제가 섣부르게 누군가의 어떤 순간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가방과 주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거군요. 가방을 디자인할 때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죠. ‘만화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만화책이랑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는 아이템이나 물건을 보면서 같이 들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표뵤뵤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 음악, 모양, 색…. 만화 가방 역시 그렇죠.
어떤 만화 좋아했어요?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운데, 가장 좋아하는 건 야자와 아이의 《내 남자친구 이야기》예요. 초등학생 때 만화책을 보면서 주인공인 미카코를 동경했어요. 미카코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자기 브랜드를 갖는 게 꿈인 고등학생인데, 만화책을 보면서 ‘나도 재봉틀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꿈꾼 적도 있죠. 정말 그렇게 커버릴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이 만화책은 지금 봐도 설레요.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었을 때 이런 기쁨이었지, 하고 미카코를 통해 느끼는 게 많아서요. 음, 그리고… 애니메이션도 너무 많이 좋아해서 하나만 꼽긴 어렵지만 <카우보이 비밥>과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은 다 좋아해요. 하야오는 특히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애니메이션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찾아봤어요.
어떤 점이 특히 좋아요?
본인이 하는 일에 타협이 없는 거요. 다큐를 보다 보면 ‘되게 무서운 할아버지다….’ 싶거든요. 같이 일하는 어시스턴트들도 항상 겁을 먹고 있어요. 다큐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면 특히 더 잘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하야오는 아이들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해요. 전쟁에 반감도 커서 작품 곳곳에 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을 많이 담죠. 대표적인 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이고요. 마냥 밝고 행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보다는 본인이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들과 신념을 담아내는 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상품 소개를 곧잘 그림으로 해왔죠. 만화를 좋아하는 성향이 여기서도 엿보이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그림 속 인물이 전부 할머니라는 점이죠.
제가 할머니 손에 자라서인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커요. 사실 나도 멋진 사진을 찍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어요. 온라인 편집숍에 입점하면서였죠. 그 큰 세계관에서 표뵤뵤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멋있고 깔끔한 이미지 사이에서 표뵤뵤는 좀 이질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근데 조명 아래서 근사한 상품 사진을 찍자니 표뵤뵤가 그러는 건 너무 멋이 없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것도 뜻이 있어야 멋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다 ‘왜 꼭 멋있는 사진으로 보여줘야 할까. 그림도 귀엽지 않을까.’ 싶어서 그림으로 상세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근데 정작 제 가방을 구매하시는 분들은 힘들어했죠. 사이즈나 느낌이 가늠이 안 되니까요.
상품 소개도 그렇고 상품명도,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참 표뵤뵤스러워요.
상품명도 사람들이 힘들어한 부분 중 하나예요. ‘에크루 크로스백’ 같은 식으로 이름을 달면 그려지는 그림도 있고 이해도 쉬울 텐데 저는 굳이 한글로 풀어쓰기를 고집하거든요. ‘옆으로 메는 가방’, ‘작은 것들을 위한 주머니’, ‘‘ㅁ’미음 가방’…. 색상 이름도 ‘아이보리’라고 하면 쉬울 것을 ‘담갈색’이란 표현을 계속 사용해서 처음엔 사람들이 담갈색이 도대체 무슨 색이냐고 많이 물어보셨어요. 기쁜 건 이젠 담갈색이 무슨 색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주신다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표뵤뵤 세계를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어서예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조금 불편할지라도, 제가 좋아하는 언어들로 담고 싶었어요.
그게 표뵤뵤의 색깔을 만드는 것 같아요.말씀하신 담갈색은 표뵤뵤의 대표적인 색이죠. 그런데 요새는 색이 들어간 작업으로 반경을 좀 넓힌 것 같아요.
담갈색이 표뵤뵤 색이라는 말 정말 좋아해요. 제가 가장 추구하는 색이자 잃고 싶지 않은 색이거든요. 비교가 될지 모르겠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중에 본인이 좋아하는 것만 넣은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는데요. 그게 <붉은 돼지>(1992)예요. 이 작품은 본인이 추구하는 것들, 본인의 로망을 가득 담은 애니메이션인데 인기도 하위권이고 저평가되기도 했죠. 다큐에서 스스로 ‘실패한 애니메이션’이라고도 했고요. 어린아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했으니 실패라고 이야기하지만 하야오는 <붉은 돼지>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결국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사람들이 색이 다양하지 않아 아쉬워하고 “검은색은 안 나와요?” 같은 질문을 계속해 오지만 제가 좋아하는 담갈색만을 고집하는 거죠. 근데 어느 날부터 제가 표뵤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색 작업도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다만, 색을 활용하더라도 모든 제품의 시작은 담갈색이고 거기서부터 색이 뻗어나가도록 만들자는 원칙을 세웠어요.
색 작업도 그냥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지구 색에서 본떠 파랑과 초록을 사용하는 것처럼 서사가 보여서요.
의미 없이 예쁜 색이니까 만들자는 건 표뵤뵤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색에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만들어 보자.’가 원칙이 되었죠. ‘지구 색이니까 파랑과 초록을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파랑과 초록에 지구 색이란 이름을 줄 수 있으니까 만들자.’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색에 스토리를 부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예전에 만든 가방 중에 망사로 된 ‘사토라레’라는 가방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파란색이라고 하면 되는 걸 굳이 ‘푸른 산호초 색’이라고 표현했어요. 만약 푸른 산호초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그 가방도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가방에, 색상에 이야기를 줄 수 있는지가 저한텐 꽤 중요한 일이거든요. 저한텐 가방이 스타일보단 이야기 개념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야기가 끝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방들엔 언제나 끝이 있고, 다음 세대가 있다고 믿어요.
저 오늘 표뵤뵤 가방 메고 왔는데(웃음) 이제 이 가방도 안 나오죠?
안 그래도 ‘댄스댄스댄스ダンスダンスダンス’ 가방 메고 오신 거 보고 무척 반가웠어요. 섣불리 인사는 못 했지만(웃음). 가방을 단종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원단이 나오지 않아서, 만들기에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다 주어서…. 이 가방을 단종한 건 좀 다른 이유였는데요. 표뵤뵤 대표 글씨체로 위안부 할머니 서체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예쁘기도 하지만, 아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거기도 해요. 근데 종종 가치관이 부딪칠 일이 생겨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건 결국 일본이 너무 많아요. 좋아하는 만화도 그렇고, 좋아하는 작가도 하야오고요. 좋아하는 것들을 외면할 순 없겠지만 되도록 일본어가 적힌 제품은 그만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멈추게 되었어요. 댄스댄스댄스는 제가 정말 좋아하던 가방이어서 단종하기 정말 아쉬웠어요. 어느 옷에 들어도 잘 어울리는 가방이었고 사랑도 많이 받았거든요. 그렇지만 이젠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표뵤뵤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군요.
맞아요. 한번은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 가방도 만들었는데… 준비하는 데 1년이 걸린 가방이거든요.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로봇을 가방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딱딱한 가방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로봇의 기체 느낌을 주려고 원단 안에 엄청나게 많은 걸 넣었죠. 로봇과 동일한 색상의 원단을 찾기 위해 시장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몰라요. 1년을 준비해서 기쁜 마음으로 공개했는데, 2주 뒤에 <에반게리온> 그림 작가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불미스러운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바람에 판매를 중단하게 되었어요. 마음 같아선 못 본 척하고 팔고 싶기도 했어요. 이 만화에 대한 애정이 워낙 크고, 정말 오래,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근데 여기서 외면해 버린다면 할머니들 얼굴을 못 볼 것 같았어요. 제가 말해 온 모든 게 가벼워질 것 같았죠. 그래서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판매를 중단했어요. 수익금은 전부 기부했고요. 그 이후론 만화 가방을 만들 땐 작가 조사를 철저하게 해요. 그래서 하야오에 대해 더 많이 파고든 거고요. 이젠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한국을 대하는지가 무척 중요해졌어요.
물론 이유가 있어서지만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가방에 이야기가 있고, 거기엔 끝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혹시 미련이 없는 편이에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미련이 너무 많아서 끝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보더라도 여운이 있는 작품이 좋아요. 저 너머 이야기를 상상하고 싶어서요. 영화는 작가와 감독이 스토리를 만들어 준 거라면, 그 뒤 서사는 제가 만들 수 있잖아요. 가방도 마찬가지예요. 가방의 이야기는 끝났어도 그 가방을 멘 사람이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가방의 이야기는 계속될 테니까요.
최근에 ‘점, 선, 면―옆으로 메는 가방;을 구입했는데, 무척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책을 꽂을 수 있는 주머니, 제목이 보이는 크기….
읽는 책이 한 사람의 취향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해서 가방 주머니에 책을 꽂았을 때 제목이 보이게 만들고 싶었어요. 가방의 생김새나 쓰임은 보통 제 생활 습관에서 비롯돼요. 저는 예전에 경기도에 살아서 지하철을 오래 탈 일이 많았고, 대중교통에선 주로 책을 읽었는데요. 뒤로 메는 가방일 땐 책을 꺼내는 과정이 불편하고 번거롭더라고요. 다시 앞으로 메고, 주머니를 열고, 책을 꺼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책을 빨리 꺼낼 수 있는 위치가 어딜까, 크기는 얼만하면 좋을까, 연구하면서 가방을 만들었어요. 제가 책을 쉽게 꺼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안전하게 책을 꽂고 꺼낼 수 있는 구조를 떠올리며 작업한 거죠.
표뵤뵤 계정에 종종 ‘오늘의 음악’이 올라와요. 가방을 만들 때 음악에서 단어를 뽑아서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취미가 음악 듣기라고 하면 되게 고리타분한데… 그게 저예요(웃음). 어릴 땐 일본 음악 가사가 한국 음원 사이트에 제대로 들어와 있지 않아서 매일 밤 12시에 Mtv를 챙겨봤어요. 제이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수첩을 들고 티브이 앞에 앉아 일본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을 다 적고 소리바다에서 다운받곤 했는데, 제 일상의 큰 기쁨이었죠. 그게 아직 습관으로 남아서 지금도 음악은 제목을 제일 먼저 보게 돼요. 그다음엔 가사를 보는데, 문장보다도 단어를 집중해서 보는 편이에요. 귀에 꽂히는 단어가 있으면 ‘단어 수첩’에 옮겨 적기도 하고요. 음악뿐만 아니라 길에서 우연히 들은 단어, 책에서 본 단어 등등 기억에 남는 단어는 뭐든 적어요. 수첩에 적힌 말들은 집에 오면 꼭 검색을 해보고요. 작은 단어도 하나씩 파고들면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러다 확 다가온 단어는 가방이 되기도 하죠. 최근에 귀엽다고 느낀 단어는 ‘시간’이에요. 의미를 찾아보니 “시각과 시각 사이”라는 뜻이더라고요. 시간은 흘러가는 건데 시각과 시각 사이라고 표현한 게 귀엽고 예뻐서 피식 웃었어요. 가방 이름을 한글로 하는 이유도 단어 뜻을 찾아보면서 애정이 붙어서인 것 같아요. 한글에 유독 재미있는 표현이 많거든요.
손잡이 가방, 옆으로 메는 가방… 표뵤뵤의 그런 방식이 오래 지켜지면 좋겠어요. 옛날엔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30-40년 이상 운영해 온 세탁소 주인이 더 멋있어 보인단 이야기한 적이 있죠. 30년 뒤 표뵤뵤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실제로 세탁소를 차리려고 한 적도 있어요.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세탁소’ 되게 괜찮지 않나요? 근데 동네 세탁소 어머님이 엄청 반대하셨어요. 젊은 나이에 세탁소에 있지 말고 더 많은 걸 보라고요. 그러고도 세탁소가 하고 싶으면 더 나중에 자신을 찾아오라고요. 그 얘길 들으니까 어른인데도 감히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웃음).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취향이 변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진달래색과 꽃무늬를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요. 30년 후에도 표뵤뵤를 경험해 주신 분들과 함께 나이 먹으면서 변해가는 취향을 공유하고 싶어요. 나중엔 저도 진달래색 가방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고… 가방이 아니라 이불을 만들 수도 있겠죠? 아마 그때그때 저한테 필요한 제품군을 재봉틀을 돌리며 만들고 있을 것 같아요. 표뵤뵤란 이름의 세탁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