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점 하나 없을지라도

김멋지·위선임 ㅡ 야반도주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떤 가족을 만났다. 눈, 코, 입 하나 닮은 점 없지만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가족. 이 별나고 끈끈한 가족의 구성원은 작가 김멋지와 위선임이다. 대학 동기로 만나 퇴사 후 함께 718일 동안 세계를 여행한 두 친구는,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며 책 《우린 잘 살 줄 알았다》를 펴냈다. 동거인이 된 지도 어느덧 7년째. 갈등과 눈물이 난무하는 동거 생활이라도 나를 보듬고 돌보는 서로가 있기에 삶은 좀더 유쾌해진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두 분이죠. 오늘은 서로가 되어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멋지 저부터 할까요? 안녕하세요. 글 쓰고 운동하는 위선임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자기 자신이 불편한 사람이고 그래서 편해질 방법을 찾는데, 그 방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사람이에요. 방금 문장은 제가 생각하는 위선임에 대해 예전에 써놓은 거예요. 선임이가 보더니 자기를 너무 잘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아픔을 이겨낸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제 선임 작가님이 멋지 작가님이 되어볼까요?

선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김멋지입니다. 작은 것에도 여전히 감사하고 감동하는 할머니가 꿈이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위선임에 대해 써놓은 메모장 자체가 김멋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메모장을 보여준다.) 보통은 제목 폰트가 크고 본문은 작잖아요. 근데 이렇게 바꿔서 써놓고 오타도 안 고치고….

 

‘사람’도 ‘샃람’으로 적혀 있어요(웃음).

선임 네. 모든 메모가 다 이런 식이에요. 멋지는 이게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멋지는 내가 나인 게 너무 편한 사람, 누가 뭐라 하든 괜찮은 사람, ‘난 내가 좋은데?’ 이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부러울 때가 많아요. 저도 저렇게 살고 싶어서요. 근데 태생상 안 되더라고요.

 

다른 성향 때문에 자신들을 “세모와 네모 바퀴가 달린 자전거”라고 표현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두 분 성향이 정반대인가 봐요.

선임 저는 생각이 많아서 뭔가를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속에서 항상 뭔가 돌아가요. 제가 ‘안달복달종’이라면, 멋지는 자기가 자기인 게 편한 ‘그러려니종’인 거예요. 이 기본 성향이 제일 달라요.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다 보면 부딪칠 때도 있겠어요.

멋지 처음엔 둘이 잘 살 줄 알았어요. 오랫동안 친구 사이고 2년 동안 같이 세계여행을 하면서 싸운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여행할 땐 집이 없었다 뿐이지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집이 있는 건 다르더라고요. 아무리 비슷한 사람이라도 생활 방식에서 틈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두 분의 생활 방식은 무엇이 달랐는데요?

멋지 수건 사용 주기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여행 다닐 땐 수건이 스포츠 타월 하나씩밖에 없었으니까 그거 쓰고 빠는 게 끝이었는데, 집에서 살다 보니까 수건 하나를 가지고 몇 번을 사용하느냐가 문제였어요. 샤워하면 끝이냐, 세수하면 끝이냐. 세수만 하면 한 번 더 쓸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달랐어요. 선임이는 괜찮은데 저는 불편하게 느끼는 문제를 어떻게 좋게 말할지 동거 초창기 때 많이 고민했어요.

 

청결의 기준부터 차이가 있던 거네요.

멋지 이 친구는 정리가 잘된 상태를, 저는 먼지가 없는 상태를 깨끗하다고 생각해요. 먼지가 없으면 물건이 바닥에 늘어져 있어도 돼요. 선임이는 제가 맨날 책이든 뭐든 널브러뜨려 놓으니까 답답하겠죠.

선임 멋지는 제자리라는 개념이 없어서 종일 물건을 찾아요. 물건의 소용이 다한 순간 어떤 곳에 내려놓으면 그곳이 제자리라는 메커니즘이 멋지한테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에는 쓰고 다시 갖다 놓으면 찾을 일이 없는데 왜 매번 헤매는지 답답하고, 물건이 늘어져 있는 상태도 스트레스였죠. ‘내가 치워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볼 때마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안고 가야죠. 이런 게 싫으면 혼자 사는 게 맞고, 같이 살아서 얻는 것들을 취하고자 한다면 노력하고 감내해야 하는 거예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 살며 얻는 좋은 것들은 무얼까요?

멋지 집에 오면 제 생각을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해요. 밖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는데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 손을 뻗으면 있는 게 저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선임 저도 비슷해요. 저는 외향적이라 인간관계가 넓지만, 제 모습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근데 전 세계 인구 중에 제일 편한 사람이 얘예요. 가족보다 더요. 멋지한테는 제가 저일 수 있어요.

생활 습관 차이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소통하세요?

멋지 서로 성향에 맞는 대화법으로 풀어가요. 맞추느라 초반엔 조금 힘들었죠.

선임 화해하는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멋지는 감정을 삭힐 시간이 필요해요. 근데 저는 바로 풀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묵히면 묵힐수록 안 좋아지는 사람. 처음엔 멋지가 표정이 안 좋거나 말을 안 하면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계속 질문했어요. “왜 그래?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해? 나 때문이야?” 그런데 입을 꾹 닫아버리는 거예요. 처음엔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대화를 시도하는데 왜 말을 안 하나 싶어서요. 나중에 들어보니 감정에 휘몰아쳐 있을 때 뱉은 말이 과장된 채로 나가서 저를 상처 줄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멋지 제 말이 김칫국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을지도 모르잖아요.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리 있게 정리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임 이제 멋지는 입을 닫아버리기 전에 “나는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저한테 의사 표현을 해주고, 저는 답답해도 기다려요.

 

동거 생활기를 담은 책 《우린 잘 살 줄 알았다》에서 멋지 작가님은 선임 작가님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간다고도 했어요.

멋지 네.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예요. 저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원인을 굳이 따지지 않고 그냥 그런 채로 있어요. 그때 이 친구는 왜 그런지 자꾸 질문을 해요. 그럼 제가 부끄러워서 외면하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감정을 알게 되더라고요. 이젠 감정적인 소용돌이를 겪을 때 생각해요. 이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선임이 덕분에 많이 바뀌었죠. 근데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사람이 보통 없어요. (선임을 바라보며) 이 친구밖에!

선임 ‘결자해지’라고나 할까요(웃음)?

 

(웃음) 선임 작가님이 멋지 작가님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 점도 있겠죠.

선임 많아요.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제가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해결책을 찾아주면서 좋지 않은 마음이 계속되는 걸 끊어주는 거예요. 얘는 이렇게 말해요. “너 지금 그런 감정 상태인 거 오늘만이 아니야. 이 이야기 전에도 똑같이 했어. 해결책을 찾고 시도해 보자.”라고요. 예전엔 정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오히려 큰 위로가 됐어요. 저도 이젠 알겠는 거예요. 나한텐 감정을 다독여주는 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그냥 해 나가야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요. 멋지 덕분에 이런 성향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아요. ‘이 사람은 문제 해결이라는 방법으로 지금 내게 최고의 감정을 쏟아주고 있는 거구나.’ 하고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멋지 엄청나게 생각해 주는 거라고요(웃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신경 안 쓰면 그냥 격려 정도만 합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도 두 분은 함께였죠. 선임 작가님이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멋지 작가님이 큰 힘이 되었다고요.

선임 그때 멋지는 늪에 빠진 저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자, 긴 터널 끝에 빛이 있을 거라는 믿음과 같은 존재였어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 하고 나는 끝났다고만 여겼죠. 제가 거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그냥 묵묵히 옆에 있어 준 이 친구 덕분이에요. 제가 어떤 상태든 묻지 않고 같이 밥 먹고 시간을 보내준 게 큰 힘이 되었어요.

 

이런 존재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멋지 작가님은 어떤가요?

멋지 (눈시울을 붉히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해요. 눈에 힘이 하나도 없는 이 친구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얼마나 에너지가 있었던 친구인지 아니까….

선임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태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놓지 않고 묵묵히 곁에 있어 준다면 언젠가 어려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한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도 같이 눈물이 나네요. 두 분은 가족으로 정의하기엔 애매하면서도 그걸 넘어선 관계 같아요. 가족이라는 단어, 어떻게 바라보나요?

선임 가족은 계속 변하는 개념이자 앞으로 더 변해갈 거라고 봐요.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는 결혼 제도로 이뤄지잖아요. 그걸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희도 지금은 이렇게 같이 살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과 모여서 살 수도 있고, 제가 다시 엄마랑 살 수도 있겠죠. 그 형태가 변할 때 가족이 개인에게 큰 부담이 되는 개념이 아니길 바라요. 계속해서 다르게 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멋지 법적 가족으로 묶이지 않아도 선임이와 저는 가족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오빠보다 더 자주 만나고 저도 이 친구 앞에서 가장 저다울 수 있거든요.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라고 해서 “우리는 언제든 따로 살 수 있으니까.”와 같은 무책임한 느낌은 아니에요. 같이 있는 동안 서로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늘 노력하는 관계죠.

 

서로에 대한 노력이나 책임을 회피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선임 있긴 있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가정을 거부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형태도 가족이니까요.

멋지 서로의 어깨에 기대서 이렇게 가깝게 잘 살고 있으면 가족이 아닐까요?

 

《우린 잘 살 줄 알았다》에서 나온 ‘선택한 친척’이라는 단어는 두 분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선임 ‘선택한 친척’은 멋지가 떠올린 단어예요. 저희가 친한 지인들과 1년에 한두 번씩 지방에 내려가 놀 때가 있었거든요. 각지에서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명절 같고 너무 웃긴 거예요. 그러다 이렇게 기존의 친척보다 더 친척 같지만, 피는 나누지 않은 관계를 ‘선택한 친척’이라고 부르면 좋겠더라고요. 늘 안부가 궁금해서 꾸준히 연락하고, 가끔 모여 맛있는 밥을 먹는 사이요.

멋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맺어진 친척들은 제가 태어나자마자 물려받은 거잖아요. 그런 친척들보다 지금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더 엉겨 있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교류할 거라는 든든함,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연결돼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갈 때 중요한 점은 무얼까요?

멋지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요. 같이 오래 즐겁게 살려면 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함께 사는 건 싸우고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으니까요.

선임 사람은 다 일인칭으로 살아가기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쟤는 쟤로 살아가기에 내가 틀렸다고 생각할 거야. 각자가 다른 거지 맞고 틀린 건 없고, 맞춰가며 살아가는 거지.’라고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잘 안 돼요. 제가 항상 맞는 것 같거든요(웃음). 끊임없이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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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