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감고 그간 맺은 크고 작은 인연들을 떠올려 봤다. 매일 연락하는 친구들과 이제는 근황을 알 수 없이 멀어진 이들, 그리고 그사이에 떠오르는 수많은 얼굴. 그중 누구에게 결혼 소식을 알려야 할까. 뜻밖의 소식에 기뻐해 줄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연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의 밀도를 분별하는 지혜와 담담하게 전할 용기를 나는 가지고 있을까.
어떤 마음도 선뜻 먹기가 어려울 땐 든든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무슨 소식이든 온정을 베풀며 응해 줄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씩씩해질 수 있으니까. 예상대로 그들은 열렬한 축하와 격려를 보내왔다. 셀프웨딩 사진이 예쁘다는 말이나 신랑이 왜 이렇게 로봇 같냐는 농담이 오갔다. 카메라 앞에서 나보다 능숙할 줄 알았던 그 애가 줄곧 뻣뻣해서, 제발 자연스럽게 하자며 호소한 일이 떠올라 나도 웃음이 났다. 무리 중 하나는 사진 속 우리가 닮았다고도 했다. 그 무렵 종종 들은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정반대로 생긴 우리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친구 하나가 덧붙였다. “사랑하면 서로를 따라 하게 된다잖아. 그래서 얼굴도 닮아가나 봐.”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이 내게도 들어맞는 날이 오다니.
닮아가는 얼굴. 그 말을 곱씹으며 사진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맑은 얼굴 위로 우리가 함께한 지난한 시간이 스친다. 서로를 귀여워한 시간. 헤어지기 싫었던 밤. 뜻대로 되지 않아 전화기에 내뱉은 한숨. 가진 게 부족해도 사랑으로 넉넉하게 살자 맹세할 때 떨리던 목소리. 그때마다 그 애가 지은 표정이 있다. 그 얼굴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 애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 내 얼굴은 어떠했을지. 나는 아마 그 애의 얼굴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사랑하며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점점 닮아진 걸 테다.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결혼식에는 마음이 많이 간다고. 그 어떤 연인보다 축복한다고. 그간 결혼을 준비하며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사이로 친구들의 말이 박혀 들어가 영혼의 근력 같은 무언가를 발아시킨다. 그들의 표정이 그 애가 때때로 내게 보내는 표정과 다르지 않아서, 나는 내 안에 기꺼이 피어날 그것이 삶을 든든하게 잡아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강대교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마음을 다진다. 내게는 고난과 역경 앞에 함께 맞서 줄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다. 배짱을 가지자. 완전하지 않은 나의 어떤 것도 더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말자. 내게는 기쁜 소식에 기쁘게 화답해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곁에 머물게 만든 지혜와 용기가 있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배부른 밤이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