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품은 소나무

송월타올

세수를 끝내고 타월으로 얼굴을 감쌌을 때 폭 감기는 기분을 좋아한다. 유난히 도톰한 타월에 얼굴을 파묻는 날이면 몇 초쯤 더 비비며 괜히 한 번 더 만지고 살펴본다. 어디서 온 타월인지, 어디에서 만든 타월인지. 마음에 쏙 드는 타월의 명찰을 확인할 때마다 몇 번이나 마주한 이름이 있다. 아마 누구의 집에나 있을 그 이름, ‘송월’이다.

두메산골에서 부산으로

1949년 10월, 부산 범천동. 어느 가옥에서 송월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가내 공업 수준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일들이 벌어지는 이 공간에 ‘송월타올 공업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이름은 달빛을 머금은 고향의 소나무에서 출발한다.

“나는 소나무 중에서도 달빛을 품은 소나무를 몹시 좋아했다. 세상 안 가본 곳이 없어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휘영청 밝은 달이 싸늘한 달빛으로 소나무를 쓸어안고 들려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를 수백 년 가난의 때가 덕지덕지 낀 툇마루에 앉아 묻곤 했다. 그때마다 산골에는 침묵만 있었다.”

-박동수, 《松月 박동수, 긴 세월 짧은 이야기》 중에서

송월타올 창업주인 故 박동수 초대회장은 경북 청송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가난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다 일본에 가면 일할 수 있고, 돈 벌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항으로 향한다. 그러나 일본에 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준비금, 유창한 일본어, 혹은 취직처가 분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일본 대신 부산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고향에서 가족을 데리고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박동수 회장에게 부산은 매일매일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 별세계였다. 이 도시에서 청년 박동수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정미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밤낮없이 성실하게 일하던 훌륭한 일꾼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를 높이 사,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 지배인은 머물던 집을 박동수에게 건넨다. 그즈음, 동생인 박찬수가 제안한다. 군용 타월을 받아서 탈색해 팔아보자고.

“타월과의 인연이 맺어진 곳도 바로 이 범천동 집이다. 어느 날 찬수가 군용 타월을 가지고 왔다. ‘이 타월을 탈색해 봅시다. 하얗게 탈색하면 상품이 될 것입니다.’라며 권해서 누런 군용 타월을 탈색한 인연이 나를 평생을 바쳐 타올 만드는 사람으로 남게 했다.”

-박동수, 《松月 박동수, 긴 세월 짧은 이야기》 중에서

어떤 타월을 좋아하나요?

타월을 탈색하는 일이 쉬웠을 리 없다. 기술도, 제품도, 방법도 알 수 없던 척박한 시절, 송월은 타월의 세계를 개척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모험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자그마한 부전동 집에서 시작된 공업사에 비하자면 지금 송월은 어떤가.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고 연구와 R&D에 투자하면서 과학적인 과정과 실험을 거쳐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성실한 손길은 타월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안팎으로 깊이를 더해가는 중이다. 송월은 말한다. 타월의 본질은 물을 흡수하는 것에 있다고. 더불어 보풀이 일지 않는 방안을 연구하고 촉감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기껍게 만져보고 싶은 타월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타월은 면사 구매부터 시작해서 원단 제직, 염색 및 후가공, 봉제를 거쳐 탄생해요. 면사를 구매하는 단계부터 전문성이 필요하죠. 좋은 재료를 써야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타월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가격과 실 두께만 보고 구매하는 것과는 다르거든요. 송월에는 디자인 R&D팀과 염색 연구실이 있어요. 디자인 R&D팀은 원단 직조 방식을, 염색 연구실은 더 다양한 염색 방법을 연구하죠. 지금은 무염색 타월이 많이 판매되고 있지만, 친환경 타월 출시에 최초로 특허를 받은 건 송월이었어요. 효소를 사용해서 면화 색상 그대로 구현해 표백되지 않은 타월을 출시한 거죠. 통기성이 좋은 조직, 앞뒤 디자인이 다른 거즈 조직, 올이 잘 빠지지 않게 하는 후처리 방식 등에 특허를 받기 위해 여전히 활발히 연구해 나가고 있어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취향도 그럴 테다. 타월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부드러움이, 크기가, 모양이, 색상이 있을 터이다. 나는 타월 속으로 얼굴이 파묻히는 듯한 깊이감이 좋다. 디자이너 Y는 두껍고 포근한 타월이, 에디터 M은 빨래하고 향기 나는 타월이, 에디터 E는 보풀 없이 매끄럽고 ‘퐁신’한 타월이 좋다고 한다. 대체로 부드럽고 포근한 타월을 선호한다. 그러나 타월 여러 개를 두고 어떤 타월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 물으면 각자 다른 타월을 택할 것이다. 이처럼 ‘부드러움’이라는 데도 구체적인 느낌을 파고들면 매우 다양한 타월 취향이 드러난다. 그런 작고 미묘한 차이는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사람마다 원하는 부드러움이 다르다는 것에 공감해요. 부드러움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실 종류, 두께, 꼬임 정도, 원단 밀도 등 다양한 것들이 있어요. 송월에서는 ‘타월로지스트’라는 브랜드를 통해 굉장히 부드럽고 가벼운 타월을 만들고 있어요. 종류도 상당히 많죠. 면 30수 타월, 40수 타월부터 뱀부 타월, 뱀부 면 혼방 타월 등 부드러움을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연구하고 있어요. 색상 또한 집중해서 고민하죠. 저희 실험실에서 1년에 뽑아내는 색상만 5천 가지나 돼요. 그중 제품으로 나오는 색상은 10퍼센트도 채 안 되지요. 그만큼 색상도 민감하게 고민하며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타월로지스트

A.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1
H. towelogist.kr

안녕? 난 부드러운 것을 좋아해

SONGWOL X BALANSA

어느 날 ‘타올쿤’이라는 아이가 등장했다. 타월의 형상을 한 이 캐릭터는 “내 생일은 10월 15일, 고향은 부산이야.”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다. 타올쿤은 송월의 캐릭터로 자리 잡고 ‘투 머치 토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타올쿤의 탄생을 도운 건 부산의 대표 로컬 브랜드 ‘발란사’ 대표였다. 송월이 70여 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우리네 타월을 담당해 주었다면, 발란사는 13년 세월을 부산 로컬 브랜드로 활약하며 서브컬처를 다루는 브랜드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발란사는 문화와 예술, 에너지를 담아 뼈대를 단단하게 구성해 오면서 로컬 브랜드의 입지를 넘어 서브컬처의 주축을 담당하는 브랜드로 활약 중이다. 문화, 예술, 패션,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자연스럽게 각광받게 된 이 브랜드는 ‘부산釜山’이라는 글자가 적힌 오리지널 아이템으로 로컬 브랜드로서의 자아를 단단히 지켜 나가고 있다. 굳건히 세월을 쌓아온 송월은 이 에너지틱한 부산 브랜드 발란사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들은 또 다른 문화를 탄생시켰다.

“발란사 대표님과 같은 부산 거주민이다 보니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타올쿤은 그때 탄생했어요. 캐릭터를 그리고 어떠냐고 물어봐 주셨는데 마음에 들었거든요. 마침 송월 내부적으로도 자체 캐릭터를 고민하던 차여서, 직관적이고 귀여운 캐릭터에 이야기를 담아보자 싶었어요. 마케팅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타월을 가장 많이 제조해 왔고 품질과 기술을 앞세워 온 송월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인지도가 다소 낮다는 걸 알게 된 때였거든요. 디자인과 감도를 앞세운 새로운 타올 브랜드들이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었기에 디자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리하여 발란사와 협업해서 타올쿤을 선보이게 됐어요.”

타올쿤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첫 팝업 스토어 성수에 이어 부산, 잠실까지. 캐릭터가 담긴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월 소재로 제품군을 의류까지 확장하거나 문구류, 타월, 가방까지도 나아간다. 발란사 팀은 타올쿤의 룩북 영상 촬영을 위해 일본에도 다녀왔다. 우직한 송월의 또 다른 행보는 몹시 신선하고 흥미롭다.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주력 상품은 역시나 타월이에요. 그중에서도 타월로 만든 앞치마와 모자가 인기가 많죠. 타월로 만든 파우치와 가방도 있는데, 가방류는 가방 전문 브랜드 로우로우와 트리플 컬래버를 통해 제작했어요. 고객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제품이에요. 지금은 반팔 그래픽 티셔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메인 상품인 타월뿐 아니라 가운과 앞치마, 룸 슬리퍼도 리뉴얼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계속해서 타올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에요.”

Towelkun

“이게 송월이라고?” 하는 반응이 특히 좋았어요.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충분히 브랜딩해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었지요. 아직 론칭 초기여서 타올쿤의 존재를 알리는 게 당장의 과제이자 목표라고 생각해요. 타올쿤에 관한 스토리라인을 좀더 보강하고, 세계관을 명확하게 정립해서 선보일 계획이에요.

Design

송월 디자이너와 발란사 디자이너의 시너지가 잘 표현된 컬래버레이션이었어요. 송월 쪽은 좀더 보수적인 패턴과 색상으로 디자인해 온 반면, 발란사는 다소 과감한 디자인도 시도해 왔거든요. 폰트 작업도 발란사에서 맡아 디자인해 주셨는데요. 특히 그 폰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빨간 색상의 볼드한 폰트는 과감해 보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폰트 디자인 회사에서 무료로 추가 개발을 해주겠다고 연락해 올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지요.

Pop-up

첫 팝업 스토어는 성수였어요. 젊은 세대의 유동이 많은 동네다 보니 성수동에서 팝업을 열어 MZ 소비자의 의견을 듣고 싶었죠. 예상보다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셔서 적극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였어요. 지금은 부산 광안리 ‘밀락더마켓’에서 장기 팝업 중이에요. 로컬 성격이 짙은 공간이다 보니, 부산 태생인 송월과 발란사 그리고 타올쿤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기간 2023년 4월 1일–6월 30일
       화-일요일 11:00-21:00, 월요일 휴무
장소 밀락더마켓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로17번길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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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사진 송월타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