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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숲, 달빛서림
제주 동쪽 중산간 마을 송당리에 위치한 작은 서점 달빛서림에는 에어컨이 없다(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이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다. 아직 더위가 떠나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 달빛서림의 주인 키미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종종 땀을 닦아야 했지만, ‘덥다’는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뺨에 닿을 때마다 시원했고, 그때마다 바람에게 고마웠다.
Interview
달빛서림 주인 키미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요.”
‘달빛서림’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달을 좋아하는 게 가장 큰 이유고요. 그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신화학자 엘리아드가 말한 “달빛을 받으면 신화가 된다”는 작은 글귀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달빛이 비치는 책의 숲’이란 뜻이에요. 서점보다는 서림이 좋았어요. 진짜 수풀 ‘림’ 자를 써요.
다른 서점이랑 책 종류가 많이 달라요. 이곳에서는 그냥 책 한 권을 사는 게 아니라, 어떤 정신을 함께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화를 공부했는데요, 현 시대를 배제하면 신화라는 게 ‘옛날이야기’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서점을 준비하면서 주제를 ‘시대정신’으로 잡게 되었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처음 ‘달빛서림’을 강정마을에 연 것도 있어요. 강정에 살면서 시대정신과 제주도적인 것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까 결국 환경 문제를 놓고 갈 수가 없었어요. 송당으로 옮기면서부터는 환경과 평화를 주제로 삼았어요.
지구를 위하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일이 되기도 하고, 가르치고 다그치는 일이 되기도 하잖아요. 저는 화내지 않고 웃으며 다정하게 환경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달빛서림’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돼요.
저는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라는 동화책을 닮고 싶어요. (책장에서 책을 꺼내왔다.) 환경이나 평화 문제를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려 하다 보면 미움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대기업이나 권력 같은 걸 미워하는 마음으로 과연 환경에 대한 생각을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어쨌든 사랑으로 시작된 마음일 테니까요. 가르치거나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요. 이미 사람들은 다 공감하고 있거든요.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요. 삼나무가 베어진 비자림로에 가서도 “반대한다.”, ”도지사는 각성하라.“ 그런 말 없이 그냥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라고 이야기해요.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 사랑에 힘이 있다는 걸 믿으니까요.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그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요.
삼나무가 베어진 비자림로에 제일 먼저 가셨어요.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는 비자림로 삼나무가 베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그 길에 달려가 나무 옆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왔다.)
동네에 사니까요. 비자림로 도로 확장 공사 예정 지역을 걸어봤어요. 걸으면서 이 공사가 단지 도로 몇 미터 넓히는 공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정지 안에 아주 낮은 오름인 ‘선족이 오름’이 있어서 가보려고 공부를 했거든요. 《오름 나그네》라는 책을 찾아보니까 그곳을 풀밭이 아름다운 언덕이라고 표현해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우니까 지키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름에 가보니까 온통 가시밭길이 되어 있었어요. 바로 옆 송당 목장에서 방목을 멈춰버려서 그런 거예요. 방목을 멈춘 진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큰 목장이 방목을 멈추게 되는 상황이 다가오게 된 거죠. 오름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이유는 말과 소들이 풀을 뜯어 먹기 때문이거든요.
3킬로미터에 이르는 삼나무 숲을 헤쳐내면 목장 지대가 드러나는데, 그 지대가 언제까지 존속될 수 있을까, 오름 왕국인 동쪽의 많은 오름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비자림로는 금백조로 공사의 관문이에요. 금백조로는 제주도에 몇 없는 큰 건물 없는 아름다운 도로지요. 이미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성급한 예측이라고 몰고 가는 게 참 속상해요. 이번 비자림로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잖아요. 그게 보여주는 건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과 제주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난개발에 엄청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론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비자림로 일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이제 정말 제주도에 못 오겠다.”라는 말이었어요. 자기가 사는 곳과 똑같은 풍경을 누가 보러 오겠어요. 제주도가 깨진 향수병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환경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거예요?
제가 산을 좋아하거든요. 어느 날 산에서 자고 내려오는데요, 어느 순간에 ‘나 이렇게 사랑만 받아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쓰 레기 하나라도 배낭에 챙겨 내려오던 것이 시작 같아요. 그리고 제가 신화를 사랑하는데요, 신화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성스러운 것들은 제자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연을 그대로 두자는 말과 같은 맥락이죠. 그렇게 자연스레 흘러온 거 같아요.
‘여행자의 물병을 채워드릴게요.’라는 안내 글이 인상적이에요. 에어컨이 없는 곳도 요즘은 보기 드물어요. 덥지 않으세요?
더워요. 밖이 차라리 시원해서 나가 있다가 오곤 해요. 저는 하루 종일 있어서 더 덥지만, 잠깐 오셔서 책 보는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 이 실천을 공감해주겠지.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거죠.
서점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어봤어요?
네, 거의 다 읽어봤어요. 새로 주문하는 책도 제가 읽고 싶은 책으로 고르니까요. 새로 들어오는 책 중에 아직 30퍼센트 정도는 못 읽었지만 거의 다 읽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무너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계속 들여놓고 바로 팔리고 하면서 책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못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최근 한 달쯤 책을 안 시키고 있다가, 이제 주문했어요.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사람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지금 떠오르는 세 가지 단어’를 묻는다고 했죠.
그렇게 말하면 마음을 숨기시는 분도 있고, 있는 그대로 아픈 단어까지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책을 권해드리곤 해요. 그 과정이 치유와 공감의 아주 짧은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시는 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필요로 하는 게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을 표현해주는 거 같기도 하고요. 엄청 정성스럽게 골라 드려요. 마법 수프 만드는 것 같잖아요. 정성을 다하게 된 건 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해요. 저는 책을 좋아해서 책방 분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 대체 어떤 마음이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해요. 울고 간 사람도 있고. 그래서 저에게 소중한 시간이에요. 마음을 나누면 배우는 게 있어요. 편지를 써주신 분도 있고, 다시 와서 그때 책 다 읽었다고 또 한 권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하고요. 여행자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오래 서점을 하시면 좋겠어요.
네, 할 수 있는 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너무 여럿이라 다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지금 생각나는 분들이 있어요. 비자림로에 갔다가 못 돌아온 날이 있었어요. 그날이 제가 나간 첫날이었는데, 그 나무들을 두고 오면 “제가 환경과 평화를 말하는 책을 팝니다.”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손님들이 보성에서 여행을 오셨는데, 제가 서점에 없으니까 비자림로에 와서 노래하고 놀다 갔어요 그런 손님들이 오는 서점이에요. 잊을 수가 없어요, 멋진 손님들이에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장래희망 같은 거.
저는 늘 “고래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죠. 하하.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오래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경제적인 이유로 서점은 오래 유지하기 힘들어요. 판화나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연습하는 이유도 부가적인 수입을 얻기 위한 거예요. 사랑을 할 때 사랑 때문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이 일으키는 것들 때문에 사랑이 끝나는데, 서점은 좋은데 경영이 힘들어서 그만두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나중에 바이칼이나 알래스카에 가서 큰 나무 아래 조그만 서점을 열면 어떨까 하는 꿈도 있어요.
왜 바이칼이나 알래스카예요?
‘극북’에 대한 저도 모르는 그리움이 있어요. 바이칼 호수라고 하는 근원적이고 신화적인 곳에 닿고 싶은 이유도 있고요. 알래스카인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여행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람이 알래스카에서 사진 찍고 살다가 곰한테 물려 죽었어요. 죽으면서도 곰이 텐트를 찢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책에서 친구인가 가족이 하는 말이 “아 그 사람은 그렇게 죽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이 죽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삶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분이 책에 엄청 약 오르는 말을 써놨어요 “너네 젊은이들 따위는 이 풍경을 이해할 수 없다. 나이 오십은 되어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약이 바싹 오르는 거예요. 난 제주도, 지리산, 어디든 깊이 사랑할 줄 아는데 나도 모르겠어? 그러면서 점점 가보고 싶은 대상이 되었어요.
지구에 대한 책 세 권만 추천해주세요.
제일 먼저 《마지막 거인》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떤 학자가 마지막 거인을 찾아 떠나고 발견을 해요.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자 마지막 거인은 멸망해버리죠. 거인은 그 학자에게 사랑을 줬어요. 그 책의 제일 앞머리에, 거인족이 한 말인지 학자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이 나와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제가 이 책을 추천 드리는 이유는, 제주도의 비경을 SNS에 올려서 망가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잖아요. 어째서 이렇게 되는 걸까 생각해봤어요. 그건 제주도를 사랑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존중하지 않아서인 것 같았어요. 불턱이나 신단 같은 곳에 마음대로 드나들고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가기도 하고요. 지금 사람들이 여행하는 곳이 대체 어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그리고 앞서 말한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도 추천하고 싶어요. 미움이 아니라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자. 미워하면 더 큰 미움으로 돌려받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황사의 근원지인 사막에 숲을 만든 여인의 이야기예요. 그는 환경운동가가 아니었어요.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살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길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그 사막이 불과 한 세대 전에 초원이었다는 엄중한 현실을 깨닫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그곳에 숲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제주를 찾는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제주도가 망가지면 버릴 건가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제주가 보존되길 바란다고 말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달빛서림
A.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동로 2262
H. instagram.com/moonlightbook_forest
O. 목~월 12:00~19:00, 화~수 휴무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