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그리하면 먹을 것이다

오늘 운동했으니까 보상으로 한 입 더 먹어도 된다고? 내일 운동할 거니까 잘하려면 한 입 더 먹어도 된다. 탄수화물은 내가 먹을게. 단백질은 누가 먹을래?

빵 먹으러

뛰어가는 사람

해운대 바닷가를 두 바퀴 돌면 약 5.5킬로미터. 쉬는 날에 슬렁슬렁 다녀오기 딱 좋은 거리다. 어릴 적에는 걸어서 10분이면 바다에 닿는 동네에 사는 것이 크게 기쁘지 않았다. 부산에 살지만 날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고, 바다의 아름다움을 아직 잘 모르겠고, 우리는 집에 가는 것뿐인데 차가 잔뜩 막히기 일쑤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언제든 바닷가 러닝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평소에는 헬스장 러닝머신을 이용하거나 중랑천에서 인터벌 러닝을 한다. 인터벌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혼자 뛰니 페이스 조절이 잘 안돼서 숨이 깔딱 넘어가면 한 30초 걸었다가 다시 뛸 뿐이다. 전문 러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평소와 다른 풍경에서 달리다 보면 어엿한 한 명의 러너가 된 기분이 든다. 해운대여, 집 안에서 굴러다니던 10대의 나만 알고 있었지? 난 이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는 30대가 되었다! 내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넌 해운대가 아니라 오산이다!

그리고 오산이 아닌 해운대는, 내 러닝 루틴을 완성하려면 꼭 필요한 한 가지 요소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아직 달리기의 여운이 식지 않은 상태로 털레털레 걸어가면 갓 구운 바게트를 살 수 있는 시장 앞 빵집이다. 아침에 갓 구워 나와 껍질에서 타닥타닥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바게트를 뜯어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니! 도저히 참지 못해 마치 파리지앵이 된 것 같은 애티튜드로 뾰족한 끄트머리부터 뜯어 먹으며 한량처럼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아침 식사를 구입할 수 있는 맛집이야말로 내 러닝 루틴의 화룡점정이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자고 있던 가족들이 이제는 잠에서 깨어 내 손에 들린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보다도, 이제 맛있는 음식과 운동이라는 루틴은 나를 규정하는 생활상이 되었으니까.

빵 만들려고

등 운동하는 사람

나는 원래 온갖 스타일의 미식 여행을 다니던 푸드 에디터다. 길거리 맛집, 미쉐린 맛집을 가리지 않고 먹으러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요리 책 쇼핑, 시장과 마트 구경, 쿠킹 클래스에 농장 투어까지 음식에 대한 모든 여행을 즐긴다. 그에 관한 에세이도 썼을 정도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또 한 가지 생겼으니, 바로 운동이다. 여행지와 숙소가 정해지면 인근의 러닝 루트를 알아보고 호텔 피트니스 센터의 사진을 찾아본다. 그렇게 후쿠오카에서 오호리 공원을 달리고, 다낭에서 호텔 피트니스에 매일 도장을 찍고, 방콕에서 스피닝 센터를 검색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저질 체력으로 태어나서, 신체 무료 구독 기간이 끝나는 30대가 될 때까지 고의로 심박수를 올리는 일 없이 살다 보면 여기저기 고장나기 마련이다. 나도 전형적으로 그런 케이스로 운동을 시작했다. 장담하건대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운동 못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요리 과정을 배우던 시절,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제빵 코스를 열면 꼭 다닐 거예요.”였다. 그리고 요리 잡지 기자로 일하던 중에 드디어 제빵 코스를 오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취재를 위한 실습 클래스에 기자님을 초대할게요!”

세상에 이런 떡이 굴러들어 오다니, 당연히 냉큼 쫓아갔다. 그리고 좌절을 맛봤다. 중요한 반죽은 대형 반죽기로 처리하고 손맛만 살짝 보게 해주는 정도의 실습이었는데, 두어 시간 지난 후에 조리대 뒤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빵을 좋아하는 탄수화물 중독자인데 빵을 만들 수 없다니. 한동안 우울에 시달린 기억이 선하다. 그런데 아까 해운대한테 내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를 거라고 생각했냐고 일갈했던가?

나야말로 내가 알찬 운동이 맛있는 빵을 약속한다, 근 손실은 빵 손실을 부른다고 외치는 운동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기야 몰랐던 것이 한두 가지겠어. 운동이 빵 반죽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해결해 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은 파리에 가서 너무나 뻔하게 바게트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도 몰랐고, 바게트를 먹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 될 줄도 몰랐다. 파리의 바게트가 맛있는 이유는 실력이 좋은 것도 있지만, 구석구석에 베이커리가 있어서 언제든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바게트의 상미기한은 네 시간이니까. 한국에 돌아온 후 바게트 맛집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1퍼센트 부족한 것을 느꼈는데, 바로 접근성의 부재였다. 난 금방 구해온 따끈한 바게트를 집에서 편안하게 먹는 주말 아침을 원해. 아무래도 다시 파리에 가야겠어. 그러려면 2-3만 보를 걷고도 멀쩡한 체력이 필요해. 그렇게 러닝과 헬스를 시작했다. 

흔히 운동한 만큼 한 입 더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위장도 근육이니 소화력이 좋아지고, 체력이 늘고 활력이 생기니 입맛도 좋아진다. 그것뿐인가, 코어와 팔 근육이 생기면 비행기 선반에 캐리어도 번쩍 올릴 수 있고, 등과 어깨 근육이 생기면 빵 반죽도 할 수 있다. 빵 반죽을 ʻ할 수 있다’는 건 여러 가지를 뜻한다. 물리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ʻ어깨가 빠질 것 같은데, 언제 끝나지?’ 하고 생각하는 대신 ʻ아직 탄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더 반죽해야겠지?’, ʻ어제보다 작업대에 많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습도가 높은 듯하니 밀가루를 추가해야겠지?’라고 반죽을 관찰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반죽을 ʻ해낼 수 있는’ 단계다.

그렇다! 3년간 꾸준히 데드리프트와 풀업을 해온 나는 이제 제대로 갖춘 등과 어깨 근육으로 지치지 않고 바게트를 반죽해서 구워 먹는 사람이 되었다. 르 꼬르동 블루의 제빵 코스, 딱 기다려.

그게 바로

나예요

아까 나도 나를 몰랐다고 했지? 바게트 에세이를 쓰고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ʻ이렇게까지’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탄수화물만 계속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바게트를 수프에 찍어 먹고 잼을 발라 먹고, 옥수수와 버터 혹은 고구마와 김치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고, 멸치 육수에 달랑 소면만 말아서 양념장을 두른 잔치국수는 행복의 상징이다. 그러니 근육이 생길 리가 없지. 본능대로 먹으면 근 손실을 피할 수 없는 체질이다. 어떤 운동 전문가는 근육을 위해서 단백질을 추가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일반 식사로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 내 식사 구성을 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단백질이 진짜로 중요한지 궁금하다면 내가 보증한다. 필요한 만큼 챙겨 먹으면 진짜 몸이 달라진다. 

운동을 하면 당연히 몸이 달라진다. 인바디에서 비슷한 수치가 나와도,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후의 내 체형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운동의 종류가 바뀌면 또 전체적인 근육과 지방의 분포와 몸의 날렵함이 달라진다. 클라이밍에 한참 빠져 있을 때는 손목에서 자주 뚝뚝 소리가 났고, 손바닥의 굳은살이 손가락 구석구석까지 확장되었으며, 어깨와 전완이 확연히 굵어졌다. ʻ천국의 계단’을 열심히 타던 시절에는 둔근이 발달해서 청바지 핏이 아주 예뻤고, 스피닝에 정신이 팔린 지금은 인생 처음으로 코어가 발달해서 출산 후 포기했던 허리 라인이 다시 생겼다. 

식단의 효과도 이렇게 ʻ눈바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같은 운동 루틴을 유지하면서 식단만 딱 단백질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노력했더니 놀랍게도 근육통이 줄고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노력한 기간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 달간 꾸준히 달걀과 닭가슴살, 보충제를 추가로 먹었더니 스쿼트를 10킬로그램 더 할 수 있게 됐다. 내 식단의 문제는 정말로 단백질 결핍이었던 것이다! 원판을 추가한 바벨을 들고 스쿼트에 성공한 그때가 바로 실험한 보람이 제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현재 몸의 형태는 내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겹도록 들은 말이지만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이 그랬던가, 내가 먹는 것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고. 내가 움직이는 방식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빵을 필두로 한 탄수화물을 사랑하고, 단것 중에서도 특히 초콜릿과 캐러멜을 좋아하고, 땅콩버터를 먹기 위해 사과와 바나나를 썰어서 담아 오는 사람이다. 혼자 하는 실내 볼더링 클라이밍은 사랑하지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인공 암벽 리드 클라이밍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극내향형 인간이다. 바벨 스쿼트 무게는 정말이지 잘 늘지 않지만 맨몸으로 하는 풀업은 도전한 지 1년 반 만에 성공했고, 각종 운동을 ʻ찍먹’해 보다가 스피닝이라는 인생 운동을 찾은 사람이다.

한때는 영혼이 나 자신이고 몸은 그 영혼을 담은 그릇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한다. 내가 움직이고 먹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현재를 이루는 몸 또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나 자신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큼이나 내가 사랑하는 운동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정연주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법을 아는 사람. 갓 구워낸 빵을 사러 가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질척한 빵 반죽을 알맞은 정도까지 치대기 위해 근육을 키운다. 요리 잡지 기자 출신으로 프리랜서 푸드 에디터와 요리 전문 번역가로 활약하는 그는 일상에서 목격한 ʻ먹음직스러운’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최근 《바게트 :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를 출간하여 바게트를 향한 따끈한 사랑을 고백했다.

《바게트 :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 정연주 |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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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연주

일러스트 렐리시 자료 제공 세미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