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열린 문

다르게 자랐어도 괜찮아

 

그에게 영상통화를 건 날의 일이다. 하루의 끝에 얼굴을 보며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있던지 전화를 받는 그는 그날도 수화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으응” 하며 전화를 받았다. 작은 화면 안으로 편한 티셔츠 차림의 그 애가 보였다. 게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책상 위에 핸드폰을 걸치고 마우스를 달그락거렸다. 나와는 달리 그는 멀티태스킹의 귀재여서 게임을 하면서도 다정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조잘조잘 떠드는데 갑자기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불쑥 지나갔다. 깜짝 놀라서 방금 지나간 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아빠”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게임에 집중했다. 등 뒤로 지나간 아빠는 신경도 안 썼다.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남자 친구의 아빠를 처음 보게 되다니. 아니, 실루엣만 보았으니 본 건지 안 본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낯선 예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화기 너머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가족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늦은 밤 방문을 닫지 않고서 공개적으로 통화를 한 것이다.

 

그는 모든 문이 열려있는 집에서 살았다. 안방도, 화장실도, 베란다까지도.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통화나 게임을 할 때, 혹은 그 외의 시간에도 다른 구성원에게 노출된다는 뜻이다. 문이 열려있으면 아빠가 거실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 엄마가 누구와 무엇에 관해 통화하는지 온 가족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게 그 애가 살아온 집의 문화였다.

그때 그렇게 놀란 건 내가 정반대의 환경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집을 가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러 해 동안 여러 사건을 거친 나의 가족은 모이기보다 흩어지는 일에 익숙해졌고, 가족의 역사는 각자의 문을 닫으면서 새겨졌다. 서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문을 닫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경험한 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을 고수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방에서는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외부의 감각이 차단되는 건 외로우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함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남자 친구인 그에게만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연락이 되지 않는 게 내심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는 서운할 때면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기쁠 때는 눈과 입꼬리를 실룩 올린다. 태생이 숨기는 것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이다.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자라서일까? 많은 것을 숨기며 산 내게 그는 너무도 다른 세상의 사람이어서 자꾸 알아가고 싶어졌다.

 

집에 들어가면 보통 뭐해?”,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러지. 가끔 그림도 그려”, “그러면 너는 예술가네. 뭔가를 만들어내니까.”

 

집밖에서 열심히 웃고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나의 삶인데 내 것이 없다는 생각은 혼자인 방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한숨을 몰아쉬어도 해결되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 후부터는 내게 익숙한 좌절이든 가지고 싶은 희망이든 모두 종이에 새겼다. 그것들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됐다. 그게 뭐가 됐든 실체가 없는 것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물성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인생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나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마치 닫힌 방 안에서 쌓아온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인을 찍어주는 것 같아 쑥스럽고 고마웠다. 그에게 방 안의 나를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간 어지럽고 숨기고 싶던 날들을 헤아리며 쓴 글을 그에게 전송했다. 타인에게 글을 보이는 일은 부끄러움을 수반하지만, 그가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만큼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렇게 하나의 문을 열었다.

 

‘방에 있을 땐 연락이 안 돼도 이해할게. 잘 안돼도 해볼게.’

 

그가 보내온 답에 마음이 또 녹는다. 결혼은 나의 반을 버리고 상대의 반을 채우는 일. 열린 문을 닫거나 닫힌 문을 열 줄 아는 일. 우리가 살게 될 집은 어떨까. 문은 몇 개나 될까. 때로는 닫혀있을 것이고, 때로는 열려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와 함께라면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6,8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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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