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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묘사법
단어로 만든 장면
소설가의 묘사법
‘묘사’는 인물의 행동이나 상태를 눈에 보이듯 그려내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소설 속에서 묘사의 대가들은 어떤 색깔의 그림을 그려냈을까?
우륵은 금을 무릎에 올렸다. 오른손 검지로 버팀목 너머의 줄을 뜯었다. 맨 윗줄이었다. 맑은 소리가 솟았다. 소리는 난데없었다. 둥글고 단단한 소리였다. 폭은 좁았지만 속이 꽉 차 있었다. 소리의 꼬리가 사라졌을 때, 우륵은 맨 아랫줄을 뜯었다. 넓은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성글어서 넉넉했다. 소리는 튕기지 않고 스몄다. 넓은 소리는 퍼지듯이 사라졌다. 소리가 사라지자 금은 다시 깊은 잠에 빠진 듯싶었다. / 우륵은 오른손으로 줄을 튕겼다. 솟구친 소리가 거의 사라져갈 때를 기다려, 우륵은 왼손으로 버팀목 아래쪽의 줄을 눌렀다. 천천히 누르다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지그시 눌렀다. 여린 무늬들이 낮게 퍼졌다. 우륵은 다시 줄을 튕겼다. 팔에 힘을 풀고 왼손 검지로 줄을 누르고 또 놓았고 다시 눌렀다. 소리의 무늬가 여울지면서 굽이쳤다. 다시, 우륵은 줄을 튕겼다. 소리가 솟구치자마자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 또 놓았다. 소리는 급히 꺾이면서 가파른 모퉁이를 돌아 저편으로 몰려나왔다. 힘주어 줄을 누르자 무늬는 지워졌고, 금은 고요했다.
현의 노래 | 김훈 | 문학동네
소리가 형태를 갖고 스스로 춤춘다
한때 김훈의 문장을 두고 소설의 문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있었다. 30년간 기자 생활을 한 탓에 문장이 건조하고 또 건조해서, 그 자체로 어떤 맛이나 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사나 기교를 배제한 문장, 그러니까 기본에 충실한 도구야말로 재료의 맛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안다. 위의 장면은 음音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으로, 무형의 가야금 소리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정한 뒤, 소리의 모양, 소리의 무늬, 소리의 상태, 소리의 감정을 묵묵히 묘사한다. 무색무취의 건조하고 정확한 묘사 안에서 음악은 제 나름의 춤사위를 갖고 한 편의 시극이 된다.
사막 저 너머로 퍼지는 저녁노을은 점점 더 커지면서 밝아졌다. 엘렌은 조급하게 차 소리를 기다렸고, 트럭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트럭이었다. 트럭이 그녀 옆을 천둥치듯 지나갔을 때 그녀는 벌떡 일어서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트럭 기사는 운전석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경적을 울렸고, 길고 애원하는 듯한 경적 소리는 오스틴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 그녀는 그녀 뒤를 천천히 따라온 트럭이 그녀 가까이 멈출 때까지, 오스틴 반대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트럭 운전사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백인이었다. 그는 그녀가 알아차릴 수 없는 손짓을 했다. 어쨌든 그는 그녀를 밤에 절대로 혼자 사막으로 걸어가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절대로.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몸을 돌려 마치 꿈속에서 도망칠 때처럼 아주 느릿하게 걸었다.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그녀는 뒤에서 차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그제야 신발에 든 돌을 빼냈다.
단지 유령일 뿐 | 유디트 헤르만 | 민음사
신발 속 돌멩이에는 두려움이 담겨있다
‘기쁘다. 슬프다. 초조하다. 아름답다. 좋다. 행복하다.’ 감정을 드러낼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쉬운 표현이지만 그만큼 지루하고 게을러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쁨과 슬픔, 초조함과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래 장면은 한 여인이 권태로운 관계의 연인을 뒤로하고 혼자 사막을 산책하는 부분이다. 마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으며 사막 어디에도 그녀를 돕거나 불러줄 사람은 없다. 그때 나타난 커다란 트럭과 카우보이모자를 쓴 백인 남자, 그 이미지가 대변하는 거칠고 두려운 익명의 존재. 사실은 친절함일지도 모르는 남자의 손짓이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여자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여자는 트럭을 피해 다시 자신이 걸어온 방향으로 걷는다. 겉으로는 아주 태연해 보이지만, 여자는 차가 지나간 후에야 걸음을 멈추고 신발에서 돌멩이를 꺼낸다. 내내 불편했지만 차마 멈출 수 없었던 걸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긴장됐던 마음을 돌멩이에 담아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녀는 두려웠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제야 신발에 든 돌을 빼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인물은 더욱 풍부한 감정과 생명력이 갖게 된다.
구멍과 부상자와 주검이 가득한 미군기들이 영국의 비행장에서 거꾸로 이륙했다. 독일 전투기 몇 대가 프랑스 상공에서 그 비행기들을 향해 거꾸로 날아가며, 비행기 몇 대와 승무원으로부터 총알과 포탄 파편들을 빨아들였다. 망가진 지상의 폭격기에도 그렇게 했고, 그 비행기들은 뒤로 높이 날아올라 편대에 합류했다. / 미국 비행사들은 군복 안에서 몸이 바뀌어, 고등학생 아이들이 되었다. 이제 히틀러도 아기로 변할 거다, 빌리 필그림은 그렇게 생각했다. / 모두 아기로 변한다.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생물적으로 공모하여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의 완벽한 두 인간을 생산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모든 비극이 거꾸로 되감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포로로 잡혀있던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전쟁이 끝나가는 마지막 몇 달간 미국과 영국은 독일의 드레스덴을 폭격했고, 이로 인해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의 참상은 폭격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입장과 무관하게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비극이다. 그날의 슬픔을 어떻게 무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영리한 묘사를 통해 인류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모든 장면을 되돌린다. 땅에 떨어진 폭탄이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고, 산산조각 난 사람들의 몸은 다시 붙으며, 비는 거꾸로 올라가고, 사람들은 뒤로 걷는다. 더 나아가 군인의 몸은 작아져 고등학생이 되고, 히틀러는 아기로 변한다. 모두가 아기가 된 뒤에는 그들의 부모, 또 먼 부모, 가장 먼 부모에게로 돌아가 모든 인류는 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 속으로 사라진다. 전쟁도 죽음도 없다. 그러나 그 과정 안에서 인간의 기쁨, 그러니까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보는 어떤 순간, 소박한 식사, 열정적인 춤사위 같은 것들도 모두 사라진다. 과연 이 묘사는 희극일까 비극일까.
탁자를 보지 않는다. 탁자는 보이지 않는다. 탁자는 없다. 텔레비전은 탁자 위에 있지 않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다. 화면은 없다. 부정한 사물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감각들이 융기하지 않는다. 시선이 삼각편대로 비행하는 새떼들처럼 이동하지 않는다. 시선은 없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지 않는다. 블라인드는 없다. 마른 햇빛이 사선으로 들이치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다. 해가 나지 않는다. 구름은 없다. 구름을 보지 않는다. 블라인드는 청색이 아니다. 블라인드는 없다. 환한 방, 시린 공기가 맥없이 자맥질을 하고 있지 않다. 햇빛은 없다.
장면의 단면 | 한유주 | 문학과지성사
결국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국어는 기본적으로 주어와 서술어의 순서로 이뤄진다. 서술어가 뒤에 배치되는 탓에, 부정문만으로 이뤄진 문장은 힘겹게 쌓은 이미지를 다시 처음의 상태로 허무는 효과를 낸다. 텔레비전은 탁자 위에 있‘지 않고’, 감각은 융기하‘지 않고’, 새떼는 이동하‘지 않고’, 블라인드는 있‘지 않다’. 열심히 쓰였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소설인 셈이다. 이미지는 남아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태, 즉 형태는 있으나 실체가 없는 유령과 닮았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가령 1초에 30프레임이 필요한 영상이라면, 서른 개의 정지 장면 중 하나에만 특정 이미지를 넣으면 어떨까? 너무 빠르게 지나가 정확하게 인식할 순 없겠지만, 영상을 다 보고 난 후에 뭔지 모를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잠재의식 메시지Subliminal Message’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사람이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특정 메시지를 노출한 후, 그 후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효과가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를 금지시켰다.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개구리들은 대부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스팔트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거나 지나가던 소독차에 깔리기도 했다. 그러면 아스팔트는 붉은 꽃을 피웠다. 어두운 거리에 그들이 흘린 피와 찢어진 살갗이 불빛처럼 빛났다. 대낮인데도 도시는 불에 그슬린 듯 어두웠다. /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차들이 소독약을 뿌리고 가기도 했다. 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커먼 도시를 잠깐 감추었다. 연기가 사라질 때면 독한 성분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피었다. 아주 드물게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들은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기 때문에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쓰레기를 담은 자루 같았다.
아오이 가든 | 편혜영 | 문학과지성사
불편하게 만드는 문학이 있다
편혜영의 문장은 어렵지 않다. 문장이 짧고, 앞 문장의 묘사를 바로 뒤의 문장이 받아 이어지는 구조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반대로 편혜영의 문장은 쉽지 않다. 비린내 나고 위악적인 묘사, 환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엽기적인 이미지가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검은 개구리, 붉은 피, 흰 연기 등 색색의 묘사가 한시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디스토피아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이미지의 과잉으로 보기보다는 작품의 미학적 의미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본래 구조의 단단함을 찢고 규칙을 어긋나게 하여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라면, 작가는 이러한 소설적 사명을 직선적이며 파격적인 묘사로 드러내며 소설 읽기 자체를 불편하게 만든다. 빠르게 지나가는 이미지 앞에서 독자는 어느 순간 폭력의 방관자가 된다.
수사들의 얼굴은 서서히 초췌해져갔다. 도미니크 수사의 뚱뚱하던 배가 들어갔고 수염에 이가 끓어서 면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트린 수녀는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몸으로 갔다. 그 노인이 말했었다.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 온갖 고난에 부대꼈지만 대책이 없었다. 푸른 대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닌 곳에 살이 썩었다. 그걸 치료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에 메콩 강의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코끼리가 울었다. 생명이 가까이 있었다. 밤이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크리스토프 바타유 | 문학동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심연이 있다
어떤 글은 문장과 문장이 앞뒤로 이어달리기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어떤 글은 앞뒤 문장이 큰 고리를 갖지 않고 그저 무심히 놓여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묘사는 쉬운 단어들의 나열이며, 그 자체로 투명한 섬이다. 문장과 문장이 서로의 섬일 때, 그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멀지 않은 곳 코끼리가 울고, 그로 인해 생명이 가까이 있음을 깨닫고, 시선은 다시 밤이 머무는 곳으로 간다. 아름다운 수녀의 몸과 그 위에 머무는 시선들은 이어지는 노인의 말과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여백 속 투명한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
에디터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