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떨림을 위하여

윤여동 — 금속공예가

‘떨림’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장면이 있다. 작은 새의 날갯짓이나, 파문에 의해 물결치는 호수 같은. 윤여동에게 떨림이란 연약한 모양새로 퍼져드는 감정보단, 단단한 표면으로부터 새어나오는 울림에 가깝다. 손끝에 머무를 묵직한 ‘떨림’을 만들어 내고자 불을 지피고, 다듬고, 결을 새긴다.

감사하게도 디저트를 준비해 주셨네요. 테이블 구성이 예뻐서 꼭 전시장에 온 것 같아요. 직접 만든 컵도 아름답고요. 우선 잘 먹겠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오, 컵이 엄청 차가워요! 

금속으로 제작한 컵이다 보니 찬 기운이 엄청나게 오래가요. 대신 전도율이 너무 높아서 뜨거운 건 못 담죠. 아, 제 명함도 드릴게요. 

 

어머, 이름을 은박으로 새겼네요. 명함을 받자마자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단박에 알 것 같아요. 그나저나 이름이 정말 특이해요. 

이름 때문인지, 다들 남자인 줄 아시더라고요. 전화 받을 때마다 다 바꿔 달라고 말씀하시고(웃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저희 집안이 ‘여’ 자 돌림을 쓰거든요. 너 여汝, 동녘 동東. 굳이 뜻으로 풀이하자면 동쪽에서 뜨는 해라고 보면 되겠네요. 중성적이라서 저는 좋아해요. 

 

뜻도 정말 멋지네요. 어딘가 비범하고요! 

어릴 땐, ‘금은동’ 같은 별명으로 불렸어요. 왜 여금이 아니라 여동이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어쨌든 ‘동’도 귀금속 중에 하나잖아요. 이름에 ‘구리 동銅’을 쓰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하고 계신 작업이랑도 너무 잘 어울려서, 처음에는 따로 브랜딩을 한 건 줄 알았어요. 그럼 여동 씨 소개를 해볼까요? 

저는 금속 공예 작업을 하는 윤여동입니다. 어디부터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프랑스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어요. 학창 시절에 프랑스 국제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아버지께서 불어 교수님이셔서 어릴 때부터 유럽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외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안식년을 지내는 동안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살기도 했죠. 그 시절에 미술관과 갤러리를 다니면서 예술을 양껏 누리곤 했는데, 문득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늦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프랑스 국제학교라니! 흔치 않은 경험을 했네요. 

그 학교에 가게 된 건, 조금 웃기다면 웃기고 슬프다면 슬퍼요.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쯤, 숙제를 한 번 안 해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구레나룻을 뽑는 거예요. 그 체벌이 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화랑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서울에 있긴 해도, 자연 친화적인 곳이었거든요. 학교 안에 연못 있고(웃음)…. 여유로운 곳에서 지내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니 무척이나 낯설더라고요.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다른 대안이 없는지 찾아보다 국제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잦은 변화를 겪은 셈인데, 혼란스럽기도 했겠어요. 적응하는 덴 어렵지 않았어요? 

국제학교의 커리큘럼은 모두 프랑스에 맞춰져 있어요. 선생님도 프랑스인이었고요. 이를 따라가기 위해 아예 모르던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려고 하니, 힘에 부쳤죠. 그래도 학교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여서 크게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미술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취미로 해야지 생각했던 지라 한국식 입시 미술을 시도조차 안 했어요. 돌이켜 보면 오히려 잘한 일 같아요. 

 

한국 입시 미술이 혹독하긴 하죠(웃음). 나름 자유로운 환경에서 지내다가 프랑스로 넘어가니 어땠나요? 

저는 외국 생활이 너무 안 맞았어요. 제가 생각하던 유학 생활하고는 차이가 있었어요. 프랑스어에 조금 능숙하니 어느 부분에선 유리할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거든요. 가도 잘 적응하겠지 싶었는데, 막상 그 환경에 닥치니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랑은 완전 달랐어요. 

 

어떤 식으로요? 

저는 제가 파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초대를 받아 놀러가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진짜 친한 친구랑만 놀고, 그 외엔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살던 동네가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기도 했고, 인종차별도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고작 스무 살이 감당하기엔 너무 외로운 환경이었죠. 내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부모님이랑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일단 살고 보자.’란 생각으로 들어왔죠. 

 

그럼에도 영향을 받은 것들이 있다면요? 

재학 중에 얕고 넓게 많이 배웠어요. ‘오브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목공이나 도자라든지 모든 재료를 조금씩 경험했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을 거치면서 마음 다잡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한국에 가려면 졸업해야 했거든요. 프랑스는 유급 제도가 있는데,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유급을 하면 1년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통과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죠.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쁘기만 했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프랑스 문화도 많이 배웠으니까요. 프랑스는 크리스마스를 무조건 가족과 함께 보내거든요. 저는 가족들 모두 한국에 있으니까 혼자 지냈어야 했는데 리옹에 사는 친구가 가족 식사에 흔쾌히 초대해 주어서 성대한 만찬을 즐겼던 기억이 나요. 그런 따스한 장면들도 제게 위안이 되어주었죠. 

 

먼 타국에서 다양한 양분을 많이 얻고 왔네요. 본격적으로 금속 공예를 배우게 된 것은 한국에 들어온 뒤부터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소재 하나를 잘 다루고 싶었어요. 당시엔 장신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금속 공부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다양한 작업을 해봐도 괜찮았을 텐데, 어째서 하나에만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제게 ‘너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전문성이 부족하다 싶었죠. 그래서 금속 공예가 더욱 재미있었던 게, 전 과정에 전부 개입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금속 공예는 디자인 이후에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잖아요. A에서 바로 Z로 향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다 밟아가면서 경험해야 해요. 그런 경험을 하며 소재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만들면서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면서 재미를 느꼈죠. 온전히 ‘내 것’을 만드는 것만 같았거든요.

처음 배울 때 톱질만 석 달을 했다고 들었어요. 

학부 때부터 시작하신 분들을 따라가려면, 부족한 기술을 연마해야 했어요. 독일에서 마이스터 과정을 밟으신 안승태 작가님 밑에서 기초부터 다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손에 조금 익은 뒤에야 대학원에 지원했고 운 좋게 붙었죠. 처음에는 작은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세공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작업 범위를 조금씩 넓히게 되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컵이나 포크 같은 공예품을 만드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지금 하는 작업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죠. 

 

심미적인 오브제와 실용적인 작품을 함께 제작하고 있죠. 일상에서 손쉽게 사용 가능한 작품을 만들 땐 어떤 점들을 조금 더 유의하나요? 

불편하지 않은지, 실용성이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되더라고요. 

 

실용성이라…. 

공예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물건들에 아름다움을 담는 작업이기도 해요. 요즘에는 오브제로도 많이 쓰이긴 하지만, 어쨌든 생활하면서 사용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죠. 지금 앞에 보이는 포크도 평상시에 별생각 없이 쓰는 도구잖아요. 저는 이런 사소한 도구들도 예쁜 걸 사용하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 눈앞에 있는 은 포크가 너무 아름다워서… 뭔가 조심스러워져요. 

제가 작업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포크랍시고 구매했는데, 그냥 두고 감상하게 되는 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하면 미적인 부분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는 공예 작가로서 계속해야 하는 고민 같아요. 

 

그러면서 기성품과의 차이도 만들어야 하고요. 

기성품은 말 그대로 ‘틀에 박힌 대로’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기계로 찍어내니까요. 어디서든 쉽게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해도,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다거나 하진 않죠. 공예품에는 사람의 손을 타면서 그 과정에서 했던 고민이 오롯하게 녹아들면서 한 작가의 세계가 담기게 되죠. 그런 점에 있어서 물건에 담긴 의미의 깊이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여동 씨 작업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정중동’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작업을 해왔어요.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는 뜻이죠. 이전부터 한국의 유물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곤 했어요. 이 단어는 신라시대 금관의 달개 장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떠올린 거예요. 제가 받은 ‘떨림’을 녹여내고 싶어서 이전에는 제 작품에도 그런 동적인 요소들을 첨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놓인 오브제를 볼 때도 그런 울림이 느껴지곤 하잖아요. 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보면 ‘어떻게 저 시대에 저런 손 기술을 사용해서 이런 걸 만들었을까?’ 하며 매번 감탄하곤 해요. 그때마다 ‘저렇게 다 해 놨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런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저만의 색을 입히기 위해서 위와 같은 철학을 담아내고 있어요. 

 

좋은 작품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최근에 본 유물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있나요? 

작년 10월에 영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을 둘러보다 보석이 박힌 박스를 보았어요. 진짜 작았는데, 너무나도 반짝거리고 아름다웠어요. 그걸 보며 저런 유물은 몇백 년 뒤의 사람이 보아도 울림을 받겠구나, 시간과 관계없는 감동을 선사하는구나 싶었죠. 

 

여행은 즐거웠어요? 

네. 2주 넘는 시간 동안 작업과는 멀어진 채로 푹 쉬었어요. 오히려 그러니까 더 자유롭게 영감이 찾아오더라고요. 사진도 많이 찍어 오고 하고 싶은 작업도 생겼어요.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유럽의 창틀이나 현관문을 보면 색도 모양도 가지각색이잖아요. 골목 구석구석 다니면서 예쁜 프레임을 마주치면 사진을 찍었어요. 여행에서 본 프레임들을 액자로 제작해서, 그 안에 여행의 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대학교 1학년 때도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일부만 모아서 과제를 냈던 적이 있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이때의 관심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작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구나.’ 싶었어요. 

 

사람마다 일관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어떤 걸 볼 때 걸음을 멈추게 되나요? 

저 시답잖은 것도 좋아해요. 등산하거나 산책할 때마다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도토리를 주워서 캐스팅 작업을 맡기기도 해요. 금속을 녹인 다음에 석고틀에 부어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라, 신기하게 그 모양 그대로 나오거든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작품을 가져온다.) 

 

어머, 진짜 도토리 모양이네요. 너무 귀여워요. 

작년 개인전에서 이런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했어요. 작품명을 ‘일상의 수확’이라고 지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친근한 데서 오는 매력이 컸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무언가를 보존한 채로 자신의 공간에 둔다는 것이 좋았나 싶기도 해요. 

 

작품 제목처럼 일상을 지나오다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거의 침대에 있었어요. 원래는 나가서 전시도 보고 돌아다니는 편이었는데, 이젠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근래 작업량이 좀 많아서 쉬고 싶기도 했고요. 

 

유달리 욕심을 내게 되는 시기가 있죠. 

가로 활동한 지 3년 차 정도 되었는데, 이전보다 조금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과 불안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이젠 작업의 득과 실 정도는 판단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올해 딱 서른이 되었거든요.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는 앞자리가 바뀌는 걸 막연하게 ‘나이가 드네.’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작업 활동을 하다 보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고 경험이 쌓이는 걸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합쳐졌을 때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기대가 돼요.

지금까지의 시간을 거쳐 오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배움은 무엇이에요? 

제가 작년 4월에 작업실을 이전했어요. 첫 개인 작업실을 얻었을 때는 좀 막막했어요. ‘지금 내가 뭐 믿고 회사 안 가고 있지?’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도 정말 감사하게 일이 들어오긴 하더라고요. 작업물이 쌓이다 보니 조금 더 확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2년 만에 작업실을 옮기게 되었죠. 이전 작업실보다 더 넓어진 셈이니 그만큼 유지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가긴 해요. 그럼에도 넓은 환경으로 오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이전엔 엄두도 못 내던 작업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기계들도 새로 들여오게 되면서 작업 속도가 빨라졌거든요. 매일 나와 공간을 가꾸면서 책임감도 생겼고요. 이런 모든 요소가 맞물리면서 저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2022년에 제일 잘한 소비 중 하나예요. ‘작업실 이사’. 

 

내면적으로 변하게 된 것도 있나요? 

사소한 디테일을 다듬어 나가고 있어요. 이전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면 이젠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생각하게 되었달까요. 기존 작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도록,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이에요. 원체 똑같은 일을 계속하는 거에 빨리 질려하는 편이에요. 기존에 있던 형태를 유지하려 하되, 변주를 주며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어요.

 

전시 기획도 하고 있죠? 

초반에는 했어요. 지금은 한다고 하기엔 좀 그렇고 안 한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그냥 제가 참여하는 전시에 의견을 첨가하는 게 전부라 숟가락 하나 정도 올려놓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라도 기획해서 전시해야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겠지 싶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런 기회를 스스로 계속 만들었어요. 

 

요즘 시대에 걸맞게 홍보를 엄청나게 잘하셨네요. 

정말 중요하죠. 조금 뜬금없는 소린데, 제가 사주에 망신살과 홍염살이 있어서 스스로 홍보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망신살이 나쁘다고들 알려져 있었는데, 요즘은 잘 사용하면 좋다고 하던데요. 최대한 저를 많이 노출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이번 인터뷰도 공개되면 인스타그램에 세 개, 네 개씩 올리려고요(웃음). 

 

최근에 여동 씨 작업이 이곳저곳에서 많이 소개되기도 했지요. 사람들이 이전보다 공예품을 많이 소장하게 되면서 흐름이 맞물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공예를 업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공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온·오프라인에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공예가 일상에 자리를 잡아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에요. 이전보다 공예품의 가치를 알아주고, 관심을 두고 찾는 분들이 많아져서 감사하죠. 저는 사람들이 제 작업물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작업의 틀을 정해놓지 않은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저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해요. 제가 만든 공예품을 사용하며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끼고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라고 해서 겁내진 않았으면 해요. 물론 일반 플라스틱 컵처럼 자주 손이 가진 않겠지만 공예품과 함께하는 삶은 분명 충만할 거예요. 

 

일상을 살아가는 데 예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때로는 우연히 듣게 된 가사 한 줄에 엄청난 위로를 받기도 하잖아요. 저는 공예 작품 또한 그와 비슷한 감동을 건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믿고요. 제가 만든 작품을 사용해 주시는 분들께서도 이에 공감하실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작업을 하면서 매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겨요. 

 

공예는 무언가 장인의 영역처럼 여겨지는데요. 여동 씨 는 궁극적으로 어떤 공예가가 되고 싶은지요? 

장인이라는 게 꼭 예술가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이란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기 전까지는 활쏘기나 승마도 예술의 일부분이었잖아요.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해 봤을 때도 그렇고, 자기 분야에 충실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을 장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분야의 장인이 되기까진 거쳐 나가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 성실하게 작업해 나가고 싶어요.

작업실 벽에 걸린 망치들을 살펴보다가 용도를 물으니,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꺼내온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옷을 갈아입고 온 여동은 곧바로 망치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는다. 힘을 주어 잡고선 씩씩하게 몇 번 두드리자 매끄럽던 표면 위에 특유의 결이 새겨진다. 깽깽깽.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리듬. 그 소음 속에서 탄생하는 단단한 울림을 상상해본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