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위한 소비

2018년 기준,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소비를 거듭한다면 지구가 3.5개는 필요하다고 한다. 몇 번의 버튼만 클릭하면 무엇이든지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지만 몸이 편리해질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이쯤 되면 우리가 하는 건 소비가 아니라 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불현듯 우리를 덮쳐온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 지구의 안위를 생각한 착한 소비를 돕는 공간을 소개한다.

©알맹상점

알맹이를 위하여

알맹상점

“본인이 필요한 양만큼 한 번에 덜어가는 걸 경험하는 일을 통해 개별 포장 없이 구매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셨으면 해요. 그 인식이 사회 전반의 기본값이 되길 바라고요. 많은 분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8년 수도권 지역에서 일어난 ‘쓰레기 대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세계 각국의 재활용 쓰레기를 책임지던 중국에서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연간 20만 톤의 쓰레기를 수출하던 우리나라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도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두 손 두 발을 들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던 이들이 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고자 상인회 건물 한 편에 세제 소분 숍을 운영하며 알맹이만 용기에 담아 가던 자들. 이른바 ‘알짜’로 활동하던 금자, 래교, 은이는 가게의 규모를 키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리필할 수 있는 국내 최초 제로 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을 차렸다. 알맹상점은 화장품, 차, 세제, 식료품 모두 개별 포장 없이 물건을 들여오고자 노력하고 있다. 벌거벗은 제품들을 보며 낯선 기분을 느낄 이들의 구매 장벽을 낮추고자 포장 뺀 가격으로 값을 매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온 손님들 또한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게 소독을 거친 용기들을 받아 구비해 두기도 했다. 가뿐함에서 오는 편리함을 모두 누릴 수 있기를, 그렇게 알맹이만 남을 순간을 고대하며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

A.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25길 47 3층
H. almang.net
O. 화-일요일 12:00-20:00, 월요일 휴무

©원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원점

“오늘의 내가 쓰레기 하나를 만들어 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내일의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궁리하면 되니까요. 원점은 그런 작은 실천을 지향합니다. 그것이 저희 공간에서 전하고자 하는 철학이기도 해요. 이곳에 방문하시는 많은 분께서 자신만의 원점을 잊지 마시고, 지속해 나갈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시길 바라요.”

제로 웨이스트에 처음 관심을 가질 즈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기 마련이다. 원점은 많은 이들이 그 순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처음의 마음을 북돋아 주고 응원해 주는 공간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정태 대표는 오래 전 제주 해변에서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했다. 물안경만 끼고 호기롭게 들어간 바다 밑에서 마주한 풍경은 우리가 막연하게 그려오던 아름다운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색찬란한 물고기들과의 눈맞춤을 기대했건만,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의 분홍색 스푼과 바닷가에서 떠내려 온 라면 봉지들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처참한 기억을 전환점 삼아, 지구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성수동에 제로 웨이스트 숍을 열었다. 원점은 여타의 제로 웨이스트 숍처럼 지구에 안전한 물건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네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이를 직접 스툴과 열쇠고리로 업사이클링할 수 있게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먼 길을 돌아온 물건들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자신의 쓰임을 다한 후, 안전히 또 다른 자원으로 순환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생애를 그려보는 일은 지구를 ‘원점’으로 되돌릴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A.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7길 42
H. instagram.com/one_zeom
O. 월-일요일 10:00-20:00, 격주 화요일 휴무

©보틀팩토리

조금 이상하고도 다정한 실험

보틀라운지

“제가 무언가 시도하거나 해보자고 제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안 될 거야.’ 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렇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해볼 만한 것들이 많지요. 저는 그 경험의 시작을 제공하고 싶어요. 보틀라운지가 많은 이들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고요.”

보틀라운지는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틀팩토리에서 운영하는 실험적인 카페다.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제도’가 시행되기 전, 쓰레기통 위로 쌓여 있는 컵들을 보며 아찔한 기분을 느꼈던 정다운 대표는 플라스틱 컵의 여정을 좇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가능할까?’라는 물음은 이윽고 거대한 상상으로 번졌고, 디자인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던 작업 공간을 쪼개어 카페를 열게 되었다. ‘음료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려면 자기 컵을 가지고 오거나 컵을 빌려야 한다.’는 작은 원칙으로 시작한 카페는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 동네 분위기를 바꾸는 중이다. 주민들은 여분의 텀블러를 내밀며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눈빛을 보낸다. 이에 용기를 얻은 정다운 대표는 주변 상점들과 함께 일회용품 없이 가게를 운영하는 ‘유어보틀위크’를 열어 발길 닿는 곳마다 배턴을 넘겨주고 있다. 동네 소규모 상인들과 힘을 합쳐 무포장으로 채소를 판매하는 채우장을 기획해 음식과 음식, 물건과 물건으로 사람을 잇는다. “함께 해보실래요?” 보틀라운지의 문틈으로 새어 나온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골목 이곳저곳으로 퍼지며 플라스틱 컵의 그림자를 지워낸다.

A.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26
H. bottlefactory.co.kr
O. 화-일요일 10:00-21: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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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