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 함께일 수 있을까

영화감독 문창용

다시 태어나도 우리,
함께일 수 있을까

영화감독 문창용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그들에게는 ‘린포체’라는 환생한 부처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다섯 살 꼬마 승려 앙뚜 역시 그들 중 하나다. 그의 곁에는 늘 의사이자 승려인 우르갼이 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노인과 소년, 스승과 제자라는 단순한 이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유구하고 담담한 동행의 기록이다.

Interview
영화감독 문창용

“직설적인 계몽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지만 사라진 것들, 그들의 밝은 미소를 보여줬을 때 번져가는 온기를 은유적으로 남기고 싶어요.”

얼마 전 인도에 다녀오셨다고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네, 괜찮아요. 오늘 이야기하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출연자들을 만나기 위해 라다크에 다녀왔어요. 마지막 촬영 후 2년만이니까, 앙뚜는 이제 14살이 됐어요. 어린 티를 많이 벗었죠. 우르갼 스님은 올해 71세로 백발이 성성해지셨고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감독님의 입봉작인가요? 그 시작이 궁금해요.
영화로 보면 그렇고요. 방송은 <다큐프라임>이라든지, <KBS스페셜>, <MBC스페셜> 같은 한 시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어요. 18년 정도 방송 생활을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때 우르갼 스님을 만나게 됐어요. 당시에 저는 티베트 의학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고, 우르갼 스님은 시골 의사이자 승려였어요. 그 옆에 동자승이던 앙뚜는 아직 린포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관심을 가진 건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관계였어요.

앙뚜가 린포체가 되기 전에는 그저 의사 수행을 받던 동자승이었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런데 린포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나요?
라다크 지역은 티베트 불교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요.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생활과 문화가 불교의 영향을 받죠. 티베트 불교에서 린포체는 ‘고귀한 존재’를 의미해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은 스님이 그 업을 다 이루지 못하고 다시 몸을 바꿔 환생하는 거죠. 깨달음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행자이자, 살아있는 부처의 존재로 여겨져요. 달라이 라마 역시 환생하신 린포체 중 한 명이고요.

모든 승려가 린포체가 되는 건 아니죠?
린포체를 증명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선 전생의 제자들이 환생한 스승을 찾아다녀요. 제자들은 어린 린포체를 보고 전생에 사용하던 물건이나 얼굴 등을 통해 정말 자신들의 스승이 맞는지 확인하죠. 또 한 가지는 린포체 본인이 자신의 전생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과거 어디에 살았고, 누구와 있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대화하면서, 그들만의 테스트를 거쳐 다른 스님과 린포체들에 의해 임명되는 거죠. 린포체로 즉위한 이후에는 혹독한 교육 과정이 기다리고 있고요.

린포체가 대단한 존재로 그려졌지만 앙뚜는 영락없는 아홉 살 꼬마처럼 보였어요.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린포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어요. 우선 지혜와 용기를 주는 성인聖人으로서 린포체예요. 린포체의 기도가 정신적 위로와 행복을 주기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고 깍듯이 모시는 거죠. 또 하나는 아직 보호해줘야 하는 어린아이로서의 린포체예요. 앙뚜 역시 평소에는 보통 아이와 다른 의젓한 모습을 보이지만 때때로 과자를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해요. 울기도 자주 울고요.

앙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가요?
앙뚜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시기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린포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요. 영화를 보면 앙뚜는 자신만의 사원과 제자를 갖지 못한 린포체잖아요. 상대적 박탈감이 큰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가 만약 린포체가 아니었다면 똑똑한 아이로 마을 사람들의 귀여움 받으며 자랐을 텐데, 하고 하소연하죠. 티베트 사원을 찾아갈 수는 있을지, 그때까지 제자들은 살아있을지, 라다크와 티베트 둘 모두에게 버림받으면 어떻게 될지 혼란스러워 하더라고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어쩌면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살도록 강요된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 무거웠어요.
아동학 측면에서 건강하지 못할 수가 있죠. 그렇잖아요. 부모의 품에서 자라며 울고 웃고, 즐겁게 놀아야 건강한 아이일 테니까요. 하지만 앙뚜는 또래 아이들보다 덜 놀면서 수행과 기도, 예법을 공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 중압감이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중학교 3학년 아이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문화의 차이를 떠나서 아동학대가 아닌지 묻더라고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앙뚜는 눈싸움도 자주 하고, 점심 때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폭죽놀이도 한다. 그런데 넌 학교 마치면 몇 시에 집에 가니, 하고 물었어요. 학교와 학원 마치고 12시쯤 간대요. 그래서 말했죠. 내가 보기에는 네가 더 힘들 거 같은데(웃음)?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지만 한 인간의 운명까지 강제하는 건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거 같아요. 그들이 린포체라는 상징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요?
글쎄요. 사람들이 린포체에게 머리를 숙이는 건 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겠죠. 아마도 정신적인 안식일 텐데, 단순히 어떤 신기를 보여서, 또는 예언을 잘해서가 아니라 린포체의 모든 행동과 가르침이 본보기가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린포체 역시 끊임없이 수행하며 성장해야 할 테고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린포체가 전생의 업을 다 수행하지 못하고 환생하는 개념이라면 결국 그 역시 미완의 존재 아닌가요?
불교적 개념에서는 다시 환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극락왕생이라는 게 있잖아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린포체도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고통을 안고 가는 거죠. 무슨 이유에선지 달라이 라마도 다시 환생하지 않겠다고 예언하셨다죠. 그런데 잠깐만요. 너무 종교적으로 깊이 들어가시면 저의 얄팍함이 고스란히 드러날 거 같아요. 제가 불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불교 영화를 찍은 게 아니라서요(웃음).

아, 맞네요. 몰입하다 보니…. 그런데 좀 당황하신 거 같은데요(웃음).
제가 잘못된 사실을 말하면 안 되잖아요. 잘 아는 분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다시 정신 차리고 영화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앙뚜에게는 아주 훌륭한 조력자 우르갼 스님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앙뚜를 린포체로 모신 게 아니었다고요.
우르갼 스님은 예전부터 제자들을 많이 가르쳤어요. 앙뚜는 우르갼 스님이 가르치던 동자승 중 한 명이었고요. 앙뚜가 린포체가 된 다음부터 신분이 바뀌게 된 거죠. 달라이 라마에게도 위대한 스승이 있었듯, 앙뚜를 린포체로 가르치는 역할을 하신 거예요.

둘 사이에서 단순한 스승과 제자 이상의 헌신을 느꼈어요.
저도 처음에 그 부분이 신기했어요. 제자를 의사로 키우려던 스승과 그 눈빛을 받아들이는 다섯 살 꼬맹이의 눈빛이 애틋했거든요. 린포체로 지정받고 함께 고생하고 위기와 시련을 이겨내면서 어쩌면 부모 이상의 친분관계가 형성된 건 아닌가 싶어요. 촬영 중간에 우르갼 스님의 옛 제자가 외지에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그 스님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우르갼 스님은 옛날부터 제자들을 무섭고 혹독하게 가르치기로 유명했다고요. 하지만 앙뚜에게 하는 걸 보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그 모습을 보며 질투가 생길 때도 있다고요.

우르갼 스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느 순간 편안한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셨어요. 자신의 유일한 소망은 죽을 때까지 아픈 환자를 돌보는 거였고, 앙뚜가 자신의 대를 이어나갈 중요한 의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린포체가 되고부터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신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요.

영화 속 몇 개의 명장면이 있는데, 앙뚜가 동물 가면을 쓰고 춤을 추죠. 전생의 기억이 흐려진다고 고백하는 부분에서 뭔가 울컥했어요.
린포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생의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야 해요. 하지만 앙뚜에게는 찾아오는 제자가 없죠.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열한 살이 넘어가면 점점 전생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요. 그래서 린포체가 아이였을 때 제자를 만나야 하는 거예요. 영화를 찍으며 시간이 많이 흐르잖아요. 앙뚜의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걸 느꼈어요. 전생의 성지이던 티베트 캄Kham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가는 거죠. 

캄이 앙뚜가 전생에 살던 곳인가요?
캄은 티베트 불교가 왕성하던 지역이에요. 중국 군인들이 몰려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많은 사원이 파괴된 분쟁 지역이었어요. 제자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국경을 넘을 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앙뚜는 결국 자신이 공부하던 사원에서 쫓겨나게 돼요. 그 사원에는 앙뚜 외에 이미 또 한 명의 린포체가 있었거든요. 한 사원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으니 어리고 힘이 없는 린포체는 떠날 수밖에요. 

일종의 정치네요.
그렇죠. 사원과 신도들에게 앙뚜는 자신들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요소인 셈이에요. 더 이상 린포체 교육을 받도록 기다려줄 수 없으니, 전생의 사원으로 떠나라고 한 거죠.

그때부터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가 되잖아요. 자신의 전생을 찾아서 떠나는 린포체와 그의 스승.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라다크에서 시킴 지역까지 두 달 반 정도가 걸렸어요. 4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거든요. 비행기도 타고, 기차도 타고, 히치하이킹도 하면서요. 중간중간 성지에 들러 예불도 드리고, 도시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죠. 스님은 그 모든 과정이 린포체를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여행을 하며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어요. 그리고 결국 티베트 캄이 보이는 설산에 올랐지만 기대와는 달리 앙뚜는 캄을 보지 못했어요.
정치적인 이유로 티베트로는 넘어갈 수 없었고, 시킴 지역 라충에 올라 캄을 보자고 했어요. 하지만 눈보라가 심하게 쳐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실제로 위험했고, 스태프도 많지 않아서 여정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앙뚜 못지않게 저 역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었어요. 감독으로서 마지막 장면을 유토피아를 바라보며 끝내면 어떨까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막막하더라고요. 둘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데 눈보라는 더 심해지고, 식량도 다 떨어진 상태였고요. 보이지 않는 제자들을 향해 뿔피리를 부는 모습이 허탈하게 보여 걱정이 됐어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더 어두워지면 내려가기가 정말 힘들어진다고 얘기했어요. 설득 끝에 아주 어렵게 내려오게 됐죠. 촬영 당시에는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편집할 때 다시 돌려보니 어쩌면 안개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가 꿈꾸는 캄이 있어서 더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결말이었어요. 아름답게, 앙뚜와 감독님 모두가 원하는 모습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그건 가짜 희망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앙뚜는 아직 더 성장할 일이 남아있었고요.
하지만 앙뚜는 분명 보고 싶어 했어요(웃음). 눈도 안개도 싫고 짜증난다고, 무척 답답해했어요.

아이는 아이네요.
그렇죠.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스님과 앙뚜가 눈이 없는 빈 터에서 마지막으로 눈싸움을 하잖아요. 당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를 봤는데,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안 나가는 거예요. 보니까 다 울고 있고…. 저도 울다가 제일 늦게 나가긴 했어요(웃음).
영화를 찍으며 스님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울어봤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스님이 말하길 자기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이 안 났대요. 운 기억이 별로 없다고. 그 얘길 듣고 일찌감치 그림을 그렸죠. 영화 안에서 스님이 우는 신을 기대하지 말자 하고요. 하지만 공터에서 눈싸움을 하다가 돌발적으로 스님이 바닥에 주저앉아 우셨을 때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무 소리가 안 들려서 저는 오디오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같이 찍던 전진 감독과 현지 코디네이터가 같이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현장이 다 눈물바다였어요.

그때 노인과 아이의 역할이 점점 바뀌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등이 둥글어질수록 아이처럼 변하는구나.
저는 개인적으로 우르갼 스님이 앙뚜를 챙기는 모습을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여행 말미에 설산을 오르며 앙뚜가 스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끌어갈 때, 둘 사이도 점점 닮아가는구나 느꼈죠. 말씀하신 것처럼 단단하던 스승은 점점 더 늙어가고 아이는 단단해지는 거겠죠. 사실 우르갼 스님은 라다크 안에서 이미 시니어 라마로 명성을 가지고 계시던 분이었어요. 하지만 자신을 버리고 린포체를 모실 때, 단순히 어린아이를 지킨다는 사명 이상으로 앙뚜에게 기댄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앙뚜는 특유의 해맑은 웃음과 장난으로 스승의 빈 마음을 채워줬을 거고요.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해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8년간 촬영하고 1년 동안 편집 작업을 했으니까 총 9년 만에 영화가 나온 거네요.

보통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제 주변 다큐멘터리 감독들을 보면 보통 2년에서 3년 정도를 찍는 것 같아요.

10년에 걸쳐 한 작품을 찍었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아요.
건강하고 모든 것이 왕성하던 30대에 처음 라다크를 밟았어요. 그때만 해도 9년 만에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죠(웃음). 당시 제가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너무 짧게 지켜보고 영상을 완성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일종의 후회가 있었어요. 깊이 있게 바라보지 못한 제 수준을 탓하기도 했고요. 좀 더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 영화를 시작하긴 했지만, 1년이 되고 2년, 3년이 돼도 끝나지 않는 거예요. 절대로 제 계획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았거든요. 한 5년 정도 영화를 찍으니까 주변에서 압력이 들어오더라고요.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많으니까요. 아내가 이해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을 아예 쓰지 않은 건 아니었겠죠. 주변에서도 제가 하는 일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펀딩을 받으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비행기 값과 체류비, 통역을 위한 현지 코디네이터 비용도 만만치 않거든요. 거기에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번역해놓은 문서가 제 키만큼 쌓여요. 정해진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마이크를 채우고 계속 녹음해서 번역하니,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사실 금전적인 문제보다 이상한 소문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앙뚜에게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자, 일부 사람들은 그를 가짜 린포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다가 우르갼 스님은 마을 환자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앙뚜만 챙기죠. 거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촬영만 하고 있으니, 틀림없이 저 어린 가짜 린포체를 포장해서 뒷돈을 챙기고 있는 모양이다 하고요. 우르갼 스님을 향한 비난을 통역사에게 전해 듣자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어요. 과연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는 있을지,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을지, 모든 게 불안해졌죠. 

힘든 일이 한꺼번에 왔네요.
그날 밤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취해버렸어요.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에 스님께 찾아갔다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암자 뒤 바위에 드러누웠죠. 하늘을 보는데 그날따라 별이 더 많은 거예요. 별 좀 보고 눈물 흘리다가 그만 주접떨고 정신 차리자 하고 일어났어요. 스님과 앙뚜가 오랜 시간 제게 할애해준 시간이 있는데, 저 혼자 대충 접어버리면 그동안의 우정에 미안해지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았죠.

애초에 시나리오가 있는 작품이었다면 결말을 정해서 찍으면 되겠지만, 예측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영화를 어떻게 갈무리하게 됐나요?
사실 저도 한참 몰입해있을 때는 이야기의 끝점을 몰랐어요. 그런데 우르갼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아이는 떠날 거다. 어떤 경우든 린포체는 떠나야 한다고요.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마을에서 린포체 교육이 안 될 무렵, 캄과 국경선이 맞닿은 시킴으로의 여정이 결정됐어요. 그래서 아마도 거기에서 이야기가 일단락되지 않을까 짐작했죠.

관계의 이야기니까 둘이 헤어졌을 때가 끝이 되는 거네요.
네, 그렇죠.

현장에서 인원은 어떻게 구성했나요?
비용과 휴먼 다큐의 특징상 친밀감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인원을 꾸렸어요. 스태프가 중간에 바뀌게 되면 출연자들이 관계를 맺기에도 신경 쓰일 테니까요. 영화 초반에는 저 혼자 촬영을 했고, 2013년부터는 전진 감독과 함께 촬영했어요. 거기에 현지 통역을 도와줄 코디네이터까지 모두 세 명의 스태프가 있었죠.

생각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에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거죠(웃음).

영상의 완성도가 높아서 더 많은 스태프가 있는 줄 알았어요.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핸드헬드Handheld 없이 고정된 영상으로만 찍은 것도 신기했고요.
이전 작업에서는 고정 없이 들고 찍거나 클로즈업 샷도 많이 시도했는데, 이 영화의 경우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느낌으로 갔어요. 두 인물의 에너지도 좋지만, 라다크의 자연이 주는 시너지가 무척 컸거든요. 기쁠 때나 슬플 때 또는 외로울 때, 항상 그곳의 건조한 바람과 흙먼지가 함께 느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 특성상 미리 콘티를 짤 수 없잖아요. 인물이 어떤 구도로 들어올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조금 무식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아주 많은 분량을 찍는 거예요.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끊임없이 기다려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 800시간이 넘는 영상이 모였더라고요. 그걸 다시 95분 정도로 편집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인물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그게 사실 무척 힘든 일이죠. 누군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마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같이 장난치고, 놀고, 말이 깊이 통하지 않으니까 몸으로 친해지는 거예요.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를 이방인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원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는 귀찮아서 저를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더라고요.

영화 중간에 암자에 불이 났잖아요. 앙뚜 혼자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아무 역할 안 했어요. 암자가 반 정도 탈 때까지 놔둘 생각이었어요. 농담이고요(웃음). 앙뚜가 원래 겁이 많아요. 동네의 또래 아이들은 혼자서 난롯불도 잘 켜고 밥도 지어 먹고 하는데, 앙뚜는 스님이 다 해주니까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어차피 홀로서기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 상황이 일어났을 때 유심히 지켜봤죠. 아니나 다를까 난로 안에 기름을 너무 많이 붓는 거예요. 처음에는 저희도 조금 놀랐는데, 솔직히 나중에는 웃었어요. 부엌에 가서 물 들고 오고, 불이 났는데 입으로 호호 불고 아주 난리법석을 떠는데, 그 리액션이나 표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다큐멘터리는 보통 그들의 일상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나요?
저 역시 늘 경계 속에 있었어요. 단순히 관찰자를 넘어서 이제 그들과 친구가 됐잖아요. 카메라를 껐을 때 앙뚜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저도 제 고민을 함께 말하고, 너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하곤 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는 안전한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늘 있었고요. 특히 시킴으로 향하는 여정 동안 신경이 아주 곤두서있었어요. 앙뚜뿐만 아니라 우르갼 스님 역시 인도의 풍경을 낯설어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는 동행의 처지가 된 거네요. 우르갼 스님과 린포체의 관계, 그리고 카메라 바깥의 두 감독님까지. 먼 길을 동행한 사람들이 95분짜리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주제에 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린포체라는 신비한 존재를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리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저는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 보살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우르갼에게는 앙뚜가, 앙뚜에게는 우르갼이 있는 것처럼 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음을 깨닫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런닝타임 안에 미처 담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요.
앙뚜가 눈싸움을 진짜 좋아해요. 저는 같이 놀아주며 최선을 다해서 져야 해요. 그래야 그날 촬영이 편해지니까요(웃음). 언젠가 한국에서 계속 촬영본을 리플레이해서 보다가 발견한 부분이 있었어요. 우르갼 스님과 앙뚜가 눈싸움을 하는 장면인데요. 가만히 보면 스님은 앙뚜에게 눈을 던질 때 눈뭉치가 깨지지 않도록 던져요. 앙뚜의 발 앞에 놓아주는 정도죠. 그럼 앙뚜는 그걸 그대로 집어서 스승을 맞추는 거예요. 장갑 없이 눈을 뭉치면 손이 시리니 스승이 아이를 배려해주는 거예요. 아마 아직도 앙뚜는 잘 모를 거예요.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랑을 계속해서 받아왔다는 것을요.

아, 그건 정말 감동인데요.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2년이 지났어요. 얼마 전 라다크에 다녀오셨다고 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지내던가요?
우르갼 스님과는 지난 촬영에서 충분히 나누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요. 앙뚜는 부쩍 자라서 이제 스승의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스무 살쯤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스승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부탁했죠. 전보다 성숙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앙뚜를 향한 우르갼 스님의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고요. 저는 아주 오랜 시간 이 영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나니 공허함이 조금은 덜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지난 일주일의 시간 동안 그 공백을 다 채울 수는 없었겠지만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차기작으로 계획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인도네시아에 아주 커다란 쓰레기 매립장이 있어요. 아파트 20층 높이, 축구장 5~6개 정도 크기의 쓰레기 산이죠. 그곳에 ‘나디아’라는 13살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3년째 촬영 중이에요. 언뜻 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절망적이고 슬픈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밝은 구석도 많고 쓰레기 산 너머의 세상을 향해 희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보통 이런 문제를 다룰 때면 아동 노동과 인권의 시선으로 접근하는데, 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열악한 환경, 마치 꿈이 모두 사라졌을 것 같은 곳에서도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오는 걸 봤거든요. 

똑같은 쓰레기 산의 나디아를 보고도 담아내는 풍경이 다를 텐데, 감독님의 접근이 궁금해요.
사회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룰 때 NGO 단체 등을 통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아요. 조금씩 작은 것에서 따뜻함을 발견하게 만든다면, 개개인의 선택의 순간에 분명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설적인 계몽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지만 사라진 것들, 그들의 밝은 미소를 보여줬을 때 번져가는 온기를 은유적으로 남기고 싶어요. 잔잔한 파장으로 남는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주세요.
좋은 다큐멘터리도 많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떠오르는데요.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자식에게 마지막 미소를 보여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장난 같은 미소, 그건 일종의 유산 같아요. 전쟁이라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남아있는 자식에게만큼은 따뜻함과 행복함을 주겠다는 선물 말이에요. 훗날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아이는 자신이 받은 행복의 유산을 대물림해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운명을, 그러니까 린포체의 존재를 믿나요?”
“저도 한때 그런 의문을 품었어요. 그가 어떤 착오에 의해 린포체로 오해받은 건 아닐까? 맞아요. 그가 린포체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앙뚜가 린포체든 아니든 저에게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미 자기 자신이 그걸 받아들였고 린포체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혹여라도 나중에 아닌 것이 목격되었다 한들 그 역시 그 아이의 인생이었을 테니까요. 우르갼 스승이 과연 이 아이가 린포체였기 때문에 무한한 사랑을 줬을까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앙뚜는 린포체가 되지 못한다 해도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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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