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시간

사진가 한영수의 한강

다시 만난 시간

사진가 한영수의 한강

눈을 마주친 검은 옷의 남자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1958년에서 1963년 사이의 어느 날, 서울 노들섬이었다. 사진가 한영수가 포착한 한강에서 흐른 시간을 본다. 시간 여행을 떠난다.

서울 노들섬 Nodeulseom, Seoul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서울 노들섬 Nodeulseom, Seoul 1958~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서울 한강 Hangang River, Seoul 1959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버스에서
한영수를 떠올리다

매일 한강을 본다. 서울로 상경한 10년 전부터. 지하철 7호선에서 2호선으로, 153번 버스로, 나의 두 다리로, 수단을 바꿔가며 매일 한강을 건넜다. 강은 흐른다. 그래서 세월 같다고 했다. 세월처럼 멈추지 않고, 비극과희극의 역사를 저 아래 바닥에 쌓아둔 채 조용히 흐를 뿐이라고. 한강이 품고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기적이라든가, 둘로 나눈 어떤 욕심 같은 것들. 한강은 그대로 아름다운데 욕심 많은 내가 투영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다 한강으로 단단한 시선을 던진 한 명을 떠올린다. 한강의 바닥에서 사진가 한영수의 시간을 끌어올린다.

1953년 전쟁이 멈췄다. 사진가 한영수는 1956년부터 1963년까지 한강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찍었다. 사진에 대해 말해볼까. 한 남자가 배 위에 올랐다. 양쪽으로 뻗은 팔로 짐작하건대, 그는 곧 물로 뛰어들 참이다. 한영수는 그보다 높은 곳에서, 팔을 뻗은 매처럼 그를 보고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어디인가. 한강이다. 노들섬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명의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길을 가로지른다. 그 뒤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리 위를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걷는 길은 어디인가. 한강이다. 1959년이다.

나는 한 번도 이런 한강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한영수는 보여준다. 상상하지 못하던 한강이 실재했음을. 이곳이 평행우주 속 서울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여름이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선글라스나 양산을 쓴 여자들이 군자동을 거닐고, 부산 해운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많은 인파가 뚝섬에서 수영을 즐기고, 그래서 모래사장 위에 검은색 튜브가 판매대에 놓인 도넛들처럼 많다고. 얼어붙은 강, 쌓인 눈 위에 찍은 수많은 발자국을 보여준다. 8년 동안 기록된 한강의 사계. 1995년에 개봉한 〈스모크〉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이 담배 가게 주인이다. 담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주인공은 13년 동안 매일 자신의 가게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기록한다. 그러니까 한강이 한영수에게는 담배 가게 앞 같은, 세상 일부분인 동시에 자신만의 사진 스튜디오였을 것이다.

한영수의 사진이 단지 기록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다. 처음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와, 좋다.”라고 내뱉은 혼잣말을 기억한다. 그 좋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단순히 취향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의 시선이 나에게 던져준 여러 놀라움을.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 에밀 루비노의 말을 빌린다.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서로 다른 몇 가지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작가의 사후에 정리된 이 사진들은 매우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덕에 어떤 한 가지 지배적인 경향을 뽑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진에서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나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를 연상시키는 명확한 스냅샷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보다 안정적이며 단순하기도 하다. 그의 수직 구도와 기묘한 시점은 구성주의 사진가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와 닮아 보이며, 어린이를 담은 따뜻한 사진들은 헬렌 레빗Helen Levitt이나 휴머니즘 작가 윌리 로니스Willy Ronis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진에서 그는 벽면이나 창문, 출입구, 천막 등을 이용해 회화적인 표면을 만들어 내거나 화면 구성을 위한 장치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사울 레이터Saul Leiter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에밀 루비노가 한영수에 대해 쓴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여기다. “김흥도와 신윤복이 그린 그림은 기묘하게 높은 시점으로 인해 (중략) 수평선이 없는 회화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텅빈 공간을 담아내거나 대략적인 윤곽선을 통해 벽이나 언덕의 위치를 넌지시 보여주는 이 그림들은 한영수가 강을 찍은 사진들과 강렬하게 연관되어 있다.” 혜원 신윤복은 200년 전 서울을 살았다. 한영수의 한강을 보며 몇 겹의 한강을, 서울을 본다.

오늘도 역시 한강을 건넌다. 한강을 보며 흑백 사진 속 한영수의 한강을 덧댄다. 버스 안에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바란다. 내가 지금 던지고 있는 이 시선 끝이, 60년 전 한영수가 던진 그 시선에 한 번쯤은 맞닿았기를.

시간 속의 강 Time Flows in River
| 한스그라픽

《시간 속의 강》은 시중에 출판된 한영수의 사진집 세 권 중 가장 마지막에 묶인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진집의 주제는 한강이다. 한영수의 사진을 한강을 중심으로 모았다. 1950~1960년대의 아름답고 근사한 한강, 사소하고 일상적인 강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192페이지에 걸쳐 흑백 사진에 담겼다. 사진가 한영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이곳에 덧붙이자면, 한영수는 1933년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단체인 ‘신선회’에서 사진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 경제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 광고 및 패션 사진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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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사진 제공 한영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