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와, 달콤하게

장주연·양경옥 — 뚝방길 홍차가게

뚝섬 한강공원 근처의 작은 가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는, 맛있는 디저트와 홍차를 함께 내어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두 모녀는 오늘도 바지런히 움직인다. 차를 공부해 온 엄마는 아래층에서 차 문화를 가르치고, 그 위층에서 딸은 디저트를 만든다. 소박한 두 모녀의 공간에 초대된 날, 이곳이 문을 닫던 날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모녀가 끝내 놓지 않았던 따뜻하고 달콤한 진심이 여전히 가게에 머물고 있었으니.

예쁜 디저트와 차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가게를 가득 채운 고소한 냄새가 정말 좋아요.

주연 (조심스럽게) 혹시 디저트는 사진 촬영 후에 드셔야 하는 거죠? 그럼 차부터 마셔 보세요. 초콜릿 스콘도 막 굽기 시작해서 조금 있다 드릴게요.

 

잘 먹겠습니다(웃음). 음, 차가 맛있어요. 어떤 차인가요?

경옥 중국의 ‘야생홍’이라고, 사람이 가꾸지 않은 야생 차나무에서 난 잎으로 만든 홍차예요.

 

준비해 주신 것처럼, 뚝방길 홍차가게는 디저트와 차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죠?

주연 맞아요. 제가 만든 디저트와 엄마가 우리는 맛있는 차를 선보이는 공간이에요. ‘뚝방길에 있는 홍차가게’라는 소박한 이름처럼, 거창한 기대 없이 온전한 제 취향의 디저트를 차와 함께 내어주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매장 한쪽에서는 제가 파티세리 클래스를 진행하고, 엄마는 아래층 홍차 교실에서 차 수업을 열고 계세요.

 

디저트와 다양한 차를 함께 내어주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요?

주연 와인이 음식과 페어링했을 때 마리아주가 좋듯이, 차도 디저트에 곁들일 때 맛이 살아나곤 하거든요. 커피도 물론 좋지만, 디저트의 맛을 살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경옥 차와 음식의 결합은 굉장히 중요해요. 전 세계를 봐도 차는 항상 다식과 함께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해요. 요즘은 일주일에 하루만 가게를 연다고 들었어요.

주연 2018년에 가게를 시작했다가, 육아로 2025년 초부터 1년 정도 휴업을 했어요. 작년 11월부터 파티세리 클래스만 다시 열었고요. SNS에 클래스 공지를 올릴 때마다 오래된 단골들이 디저트를 구매할 수 있는지 많이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토요일 하루만 예약 픽업으로 디저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요. 멀리서 찾아오신 분들이 매장에 앉아 드시고 가는 일이 생기면서, 지금은 토요일에 매장 운영과 차 판매도 다시 하고 있어요.

 

차에 관한 이야기부터 나눠볼까요? 선생님은 국제티클럽 서울 지역 회장으로 차 문화를 알리고 계시죠. 이곳 홍차 교실에서 어떤 수업을 진행하세요?

경옥 티 소믈리에 자격증 준비생을 위한 수업인데요. 홍차, 한국 다례를 가르치고, 일본 다도 수업도 열 계획이에요. 차 품평회도 진행하고요. 일주일에 하루이틀 제외하고 차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 선생님의 손이 닿은 뚝방길 홍차가게에서는 다양한 종류를 만나볼 수 있겠어요.

경옥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처럼 다양한 산지에서 온 차를 선보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홍차가 가장 많고요.

말씀하신 홍차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경옥 찻잎으로 만드는 차는 여섯 종류가 있어요. 녹차, 백차, 황차, 우롱차라고 불리는 청차, 홍차, 흑차. 차에는 ‘폴리페놀 옥시다아제’라는 산화 효소가 있는데요. 찻잎이 공기와 만나면 이 효소가 폴리페놀을 산화시키면서 색이 점점 짙어져요. 사과를 깎으면 과육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원리죠. 이렇게 산화를 충분히 진행해 만든 차가 홍차예요. 찻잎이 산화되도록 그냥 두는 건 아니고요. 먼저 ‘위조’라고 불리는 과정을 거치는데, 14-16시간 동안 찻잎을 말리면서 시들게 하는 거예요. 그래야 찻잎이 산화 과정에서 수분 때문에 부패하지 않거든요.

 

그럼 어떤 찻잎이든 오래 산화되면 홍차라고 부를 수 있나요?

경옥 그렇죠. 하지만 홍차에도 적합한 찻잎 품종이 있어요. 인도의 다즐링, 지금은 ‘스리랑카’라고 불리는 실론, 케냐에서 주로 생산돼요. 홍차를 즐겨 마시는 영국이 과거에 지배하던 나라들이죠.

 

선생님이 차를 처음 만나셨을 때 이야기도 궁금해요.

경옥 가정주부로 살아오다 5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이대로 나이 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동양 자수를 할까 싶어서 안국동도 찾아가고 그랬죠. 그러다 절에서 다례를 배우면서 차에 관해 궁금한 점이 많이 생겼고,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때 차에 푹 빠졌죠. 지금 돌아봐도 차를 배운 건 잘한 선택이었어요. 차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업이거든요.

 

그때 차의 어떤 점이 좋아 보이셨어요?

경옥 처음 배운 한국 전통차의 단아함이 매력적이었어요. 또 차를 통해 만나는 분들의 인품이 좋았고요. 어지러웠던 마음도 편안해졌죠.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고, 차를 마시면 물은 올라가고 화는 내려가요. 처음엔 차 공부가 어려워서 차의 세계에 한 발만 넣었다가, 이젠 두 발 다 들였어요(웃음).

 

주연 씨는 이런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어땠어요?

주연 엄마가 무언가에 몰두해서 즐겁게 하는 모습이 그저 좋아 보였어요. 고등학생 시절 엄마가 차를 배우러 다닐 때 “주연아, 이거 좀 먹어봐.” 하면서 계속 차를 권유하셨어요(웃음). 그때 저는 ‘이게 맛있는 건가?’라고 생각할 뿐 차를 전혀 즐길 줄 몰랐는데요. ‘이 차 진짜 맛있다!’ 하고 처음 느낀 적이 있어요. 인도 다즐링에서 나온 ‘트레저 골드’라는 차예요. 설탕 넣은 것처럼 달더라고요. 그때부터 차를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좋아하게 되었고, 차를 꾸준히 배우는 중이에요.

 

그렇게 이곳 뚝방길 홍차가게만의 홍차도 탄생했죠.

주연 다양한 차를 마셔보면서 제가 먹고 싶은 차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마침 경북 하동의 ‘연우제다’라는 다원과 연이 닿았고,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된 블렌드 티를 협력해서 만들게 되었죠. 유기농 원물을 사용해서 유럽 홍차처럼 향이 강하지 않아요. ‘해질녘’은 카카오닙스의 은은한 카카오 향과 돼지감자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같이 느껴지는 홍차예요. 저희 가게에 초콜릿 디저트가 많아서, 잘 어울리는 차를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아침녘’은 단호박, 메리골드를 블렌딩한 녹차예요. 부드러운 맛에 꽃 향이 더해졌어요.

주연 씨가 생각하는 차의 매력도 들려주세요.

주연 느린 매력이 있어요. 차는 우러나길 차분히 기다려야 하고, 직관적인 맛을 지닌 음료들과 달리 맛을 천천히 음미해야 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도 달라지니까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죠. 물론 저는 콜라 같은 음료도 좋아하긴 해요(웃음).

 

이제 디저트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어떻게 디저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주연 뉴질랜드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어요. 친구 엄마가 유명 호텔에서 일하던 셰프였는데요.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베이킹을 알려 주셨고, 제가 너무 재밌어하니까 그 이후로도 계속 가르쳐 주셨어요. 그때부터 베이킹에 푹 빠져서 집에서 쿠키도 만들어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홈베이킹을 계속했어요. 그땐 취미라고만 생각했는데, 조각을 시작하면서 제가 손으로 하는 작업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미술 대학에 진학했지만 조각에 큰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좋아하는 베이킹을 더 배워보고 싶어서 SPC 파티세리 클래스에 다녔어요. 그리고 프랑스 요리 학교 ‘에꼴 르노뜨르Ecole Lenôtre’ 한국 분교를 졸업했고요.

경옥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할 때, 주연이 아빠가 엄청 말렸어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전문적으로 공부한 학생도 많고, 제과가 힘든 일이니까요.

 

그때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했어요?

주연 일주일 정도 집을 나갔어요. 미대 친구들 작업실에서 지내면서 아빠 연락을 기다렸죠. 나중엔 아빠가 울면서 돌아오라고 전화하셨고, 제과 학교를 등록해 주셨어요.

 

미술을 그만두고 제과를 배워보니 어땠어요?

주연 너무 재밌었어요. 제과는 조각만큼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지만 저한테 훨씬 잘 맞았어요. 전에는 위험한 재료를 다루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작업 환경에 있었으니까, 그땐 제과가 별로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또 석고 포대보다는 밀가루 포대가 더 가볍거든요(웃음). 마냥 즐겁고 맛있었죠.

 

에꼴 르노뜨르도 2등으로 졸업했다고 들었어요.

주연 네. 수료 과정 동안 과제와 태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중간 평가와 최종 평가를 봐요. 중간 평가는 퐁사주라고, 구멍 없는 타르트 틀에 반죽을 예쁘게 밀어 넣는 시험이었는데요. 예전엔 제과사의 기본 실력으로 평가되었어요. 그 시험을 잘 봤죠. 최종 평가는 프랑스에 가서 2주 동안 교육을 받고, 제품 여러 가지를 만들어서 한 상에 차리는 시험이었어요.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좋게 봐주셔서 수료할 수 있었죠.

뚝방길 홍차가게는 스콘이 유명해요.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주연 수백 번 레시피를 연구하면서 만들었지만, 많은 재료가 들어가진 않아요. 저희 아기도 많이 먹는 스콘이라 최대한 건강한 재료를 쓰려고 해요. 직접 만든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이는 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에요. 한번 드셔 보실래요?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 건넨다.)

 

와, 맛있어요! 이런 크림은 처음 먹어봐요. 스콘도요.

경옥 맛있죠? 제가 차 공부하러 클로티드 크림 본고장인 영국에 종종 가는데, 이 맛이 안 나요.

주연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클로티드 크림을 따라잡으려고 정말로 천 번 정도 테스트해서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가장 맛있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경옥 이걸 개발하다가 가게를 다 태울 뻔한 적도 있어요.

주연 밤새 오븐을 가동하니까 과열로 불이 난 거예요(웃음).

 

자부심을 가지실 만해요. 이제 휴무 기간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 시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주연 그때 제가 조금 과부하가 걸렸어요. 출산 2주 전까지 가게에서 서서 일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가게까지 운영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바쁜 날을 앞두고 보육을 부탁한 도우미 이모님이 갑자기 못 오시는 일도 있고, 저희 엄마도 바쁘셨으니까요.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고 아이가 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게를 쉬게 되었죠. 그 시간 동안 아이랑 여행도 가고, 해외에서 맛있는 디저트도 경험했어요.

 

완전히 가게를 정리하지 않은 건 복귀를 원했기 때문인가요?

주연 디저트 만드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싶진 않았고, 언젠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새로운 맛을 만들고 디저트를 개발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가게를 운영할 땐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운영을 종료한 뒤 1년 정도 흘렀을 무렵, 매장은 운영하지 않고 클래스만 열게 된 거예요.

 

운영 종료 소식을 알린 게시물에 손님들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추억과 위로를 선물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많던데요.

주연 기존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후련하던 중이었는데, 막상 그런 댓글을 보니까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하는 메시지가 수백 통이 왔고, 매장에 찾아와 선물 주시는 손님도 있었거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면 내가 조금 더 버텨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결정을 무를 수 없던 상황이라 클래스로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예전 단골손님들이 찾아오시기도 하고, 수업 열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제가 감사할 처지인데 말이에요. 감사하고 또 감동이었어요.

베이킹을 처음 배울 때와 지금, 디저트를 대하는 마음에 변화가 있나요?

주연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죠. 그런데 가게를 운영하면서 디저트에 대한 애증이 생겼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1-2년 정도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TV에 디저트만 나와도 못 보겠더라고요. 가게 생각이 나서. 과도기를 지나 이제는 대중의 입맛도 생각하고 내 취향도 반영한 현실적인 제품을 만드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냉정하고 이성적인 눈으로 디저트를 바라보게 됐죠.

 

다시 가게를 시작한 지금의 생활은 어때요? 힘들진 않으세요?

주연 이제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서요(웃음). 그 시간 동안 디저트 개발하고, 운동도 해요.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디저트를 멈추지 않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주연 먹을 때 재미, 그리고 손님들이 제가 만든 디저트를 먹고 행복해하실 때의 뿌듯함이요. 그게 맛있는 디저트를 계속 만들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지금까지 만난 손님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분도 있어요?

주연 기념일마다 오시던 연인 손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한 분만 오시더라고요. 그 기념일 부근에만. 저희 가게가 그분에게 추억이 된 것 같아 감사했지만 마음이 시큰거리기도 했어요. 또 연인으로 처음 오셨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가게를 오는 분들도 많아요. 음, 생각나는 분들이 너무 많네요.

 

손님들을 대하는 주연 씨 마음이 느껴지는 대화였어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주연 (잠시 떠올려 본다.) 손님들에게 꼭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까 물어봐 주신 질문으로 말할 수 있었어요. 그거면 충분해요(웃음).

A. 서울 광진구 자양강변길 277 1층
O. 토요일 11:00-17:00

홍차 맛있게 우리는 법

3, 3, 3을 기억하세요.

1. 티팟에 찻잎 3그램을 덜어주세요.

2. 90-95도 정도의 따뜻한 물 300밀리리터를 넣습니다.

3. 3분 30초 우리세요. 찻잎 크기가 작다면 2분 40초 우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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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