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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작가
꽁꽁 옭아맨 규칙 안에서 완벽한 생활을 쌓아 나가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삶. 느슨한 울타리를 두르고 정해지지 않은 아낌과 돌봄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삶. 그 안에서 무해한 하루가 탄생하고 있었다.
경기도 외곽으로 오니까 도시 분위기가 확 다르네요. 모처럼 소풍 오는 기분이었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사람을 보면 엄청 짖어서요. 놀라지 마시라고 미리 나와 있었어요. 반가워서 그런 거니까 겁먹지 마세요.
네! 괜찮아요.
시몽아, 괜찮아, 쉿! (검은 강아지가 쉴 새 없이 짖으며 집 안을 왔다 갔다 한다.) 진정할 때까지 딱 3분만 앉아 계실 수 있을까요?
(자리에 앉으니 바로 다리 위에 올라앉는다.)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강아지라니, 시몽이 소개부터 들어봐야겠는걸요(웃음).
너무 부산스러웠죠(웃음). 벌써 열두 살인데 아직도 사람만 보면 이렇게 좋아해요. 시몽이는 저 대학교 졸업반 때 엄마가 데리고 온 아이예요. 본가에 강아지가 와 있대서 시험 기간에 보러 갔는데 새카맣고 작은 강아지가 뛰어놀고 있는 거예요. 그날 시몽이랑 밤새 노느라 시험을 망쳤어요(웃음). 6개월 정도 엄마랑 살다가 이웃이 불편해해서 저희 집으로 와서는 지금까지 쭉 함께 살고 있어요. 처음 봤을 땐 500그램밖에 안 됐는데 몸집도 이렇게나 커졌죠. 저랑 비슷하단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요. 성격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닮았다고(웃음).
어떤 점이 닮았는지, 이번엔 지혜 씨 소개를 들어봐야겠어요.
자기소개는 할 때마다 어려워요. 하고 있는 일로 소개하면 편할 텐데 여러 일을 하다 보니 소개가 더 어렵더라고요. 음… 저는 ‘돌보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돌보려 요가와 명상을 하고, 타인이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환경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태를 돌보는 일도 하고 있어서요. 나와 주변을 돌보는 데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사람이기도 하죠.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는 지구를 돌보는 마음으로 쓴 책이겠군요. 지혜 씨에게 무해하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말 그대로 ‘해치지 않는다.’ 인도 종교 문화의 중요한 덕목 중에 ‘아힘사Ahimsā’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생물에 대한 불살생, 비폭력, 동정, 자비를 의미하는데요. 아힘사와 가장 가까운 우리말이 무해함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한테 해함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화학 제품을 피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그게 점차 확장되다 보니까 단순히 내 몸에 바르고, 쓰고, 먹는 걸 넘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 고려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나 자신을 해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해할 수도 있어요. 의식하지 못한 사이 사회나 환경을 해칠 수도 있고요. 살아가면서 그런 해함을 덜 하는 삶이 무해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제목을 읽고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응원받는 기분이 들어서요. 어떻게 쓰게 된 책이에요?
2018년부터 ‘나투라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요가를 야외에서 즐겁게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인데요. ‘이런 좋은 날씨에 밖에서 요가를 하다니.’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해나가고 있죠. 함께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해서 요가도 하고, 함께 친환경 마켓을 열거나 클린 산행도 해요. 사회생활로 만난 게 아니어서 나이나 전공, 직업 같은 걸 공유하진 않는데, 함께하시던 분이 어느 날 출판사를 하고 있다며 책을 내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어떠셨어요?
‘이걸 내가 써도 되나….’ 싶었죠. 저는 완벽한 실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환경 운동가도 아니잖아요.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해보세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데 이 정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지구에 관한 글을 제안받으니까 막막했어요. 그러면서 자기 검열이 심해졌죠. 제가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그 당시엔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지금처럼 관심 갖지 않던 때거든요. 제안해 주신 분이 아직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경각심이 크지 않아서 환경 운동가와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이야길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기 좋은 작은 실천을 제안해 주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요. 그 말이 용기가 됐어요. 제가 환경을 위한 실천에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말에 마음먹게 됐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위해서는 자연과 어우러져 지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혜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셨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방학이면 저랑 동생은 할머니 댁에서 지내곤 했어요. 그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할머니 댁에 마땅히 가지고 놀 것도 없어서 항상 밖에 나가서 놀았죠. 겨울에 눈이 오면 이글루 만든다고 한참을 눈밭에 뒹굴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과수원을 하셔서 복숭아랑 사과밭에서 놀기도 했고요. 그 주변에 흐르던 시냇물이 1급수였던 기억도 나요. 그 물을 그대로 끌어다가 나무 키우는 데 쓰시곤 했거든요. 워낙 환경이 깨끗해서 플라나리아도 자주 보고 지냈어요. 저는 그 시절이 일생의 정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바다보다는 산이 편하고, 그런 곳엘 가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그래서인지 계속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해왔을 것 같은데, 한때는 물건 사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다고요. 특히 ‘코덕(화장품 마니아)’이었다고 들었어요.
뷰티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화장품을 좋아했죠. 아까 저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요. 계속 저는 일상을 돌보는 데 관심을 두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전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외모 돌봄이었다면, 지금은 외부 시선에서 벗어난 내면 돌봄이라고 할 수 있죠. ‘나한테 진짜 필요한 게 뭘까, 진짜 좋은 게 뭘까, 내가 뭔가를 취하면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뭘까….’
돌봄의 방식이 달라진 거군요. ‘나한테 필요한 게 뭐지?’라고 물었을 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뭐예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돌보는 거요. 요가와 명상을 오래 해온 덕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무래도 일이다 보니 종종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마음을 제대로 돌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서 최근엔 일부러 명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쪽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기도 해요.
행복이 방향을 바꾼 거군요. 이전에도, 지금도 행복했을 테지만 그 결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이전에 느낀 행복은 굉장히 일시적이었어요. 흔히 말하는 ‘현타’가 금방 왔죠. 소비로 시작되는 돌봄이어서 카드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물건 처리도 어려웠어요. 소비한 물건들이 제대로 쓰이지 못했거든요. 충동구매로 이루어지는 소비가 대부분이다 보니, 진짜 필요하지 않은 걸 사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의 행복은… 음, 충만하다는 느낌이 커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마음에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 쓰임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도 저는 물건 사는 걸 좋아해요. 집에 물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도 아니지요. 근데 지금은 뭘 하나 들이더라도 외부 시선을 거두어내고 진짜 나한테 필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며 신중하게 소비하고 있어요. 그렇게 산 물건은 이전보다 사용 기간이 훨씬 길더라고요. 만족감도 높고, 물건과 정이 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런 것들이 삶을 차곡차곡 잘 쌓아나가게 하고, 거기서 충만하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물건이 사는 곳인지 내가 사는 곳인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을 보고 뜨끔했어요. 제 방이 그렇거든요. 근데 막상 그런 방에서 지낼 땐 잘 모르잖아요. 쓸모없는 것도 귀여우니까 자꾸 사게 되고…. 물건이 너무 많다는 걸 인지한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경제적으로 타격이 올 때 그랬죠. 독립을 일찍 해서 주거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면서 지냈어요. 지금은 정리하고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좋아하는 물건으로 꽉꽉 채우는 게 중요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보니 집에 발 디딜 틈이 정말로 없는 거예요. 하다 하다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좀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됐는데 그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큰 집으로 이사하면서 돈을 쓰고, 그 집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더 들이면서 돈을 쓰고…. 경제 상황에 빨간불이 들어왔죠. 그즈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게 됐는데요. 그 책에 공간을 월세로 환산해 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집에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물건이 사는구나, 나는 이 공간을 창고처럼 쓰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물건을 대하는 생각에 큰 전환이 일어난 거죠.
돌봄의 방향이 내면을 향하게 된 데는 요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가는 ‘물건 부자’이던 시절에 시작한 거라고요.
네, 그래서 요가 시작하고 요가 물건도 엄청 사들였어요. 요가 매트, 요가복, 관련된 책…. 요가는 다른 운동과 다르게 ‘수련’이라는 말을 써요. 저는 그 이유가 신체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정신적인 부분도 돌보는 활동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요가를 공부하다 보니까 비폭력, 진실할 것, 청결할 것, 욕심부리지 않을 것, 그런 가치들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요. 요가 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소비를 줄이고 제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상과 생각을 계속 다듬고 있어요. ‘어떤 태도로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 맞을까.’라고 계속 곱씹는 건데요.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요가를 수련하기 전엔 어떤 일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성악을 전공하셨더라고요.
요가도 성악에서 출발한 거예요. 성악은 체력 소모가 큰 신체 활동이에요. 힘을 쓰는 것과 이완하는 것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저는 긴장도가 워낙 높아서 이완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뭐든 과하게 하다 보니 그 중간을 찾지 못한 거죠. 연습 때마다 “힘 풀어, 지혜야.” 이야기를 듣는데도 힘 푸는 게 뭔지 잘 몰라서 발성이 마음처럼 안됐어요. 그때 사사해 주시던 교수님이 “그럼 요가라도 다녀볼래?” 하시길래 요가원에 가게 된 거고요. 성악은 무대 예술이에요. 제가 얼마나, 어떻게 연습했든 무대 위에서 ‘짠’ 하고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결과 위주의 활동이죠. 저는 평생 무대에서 잘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어요. 근데 요가 할 때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거든요. 그 말이 계속 매트 위에 올라갈 힘이 되었죠.
SNS에서 이 문장을 인상 깊게 봤어요. “나는 결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다만 물건이든 공간이든 그 양과 크기가 내가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정도가 좋다.”
어떤 삶의 태도든 지속적으로 가능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이어트만 해도 균형을 찾지 못하고 너무 참아 버리면 나중에 ‘요요’가 오잖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이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지속하려면 행복함을 느껴야 하고요. 사람들은 제로 웨이스트라는 걸 참고 인내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근데 저는 그것보단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비닐을 안 쓰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비닐을 안 써서 좋아지는 것들을 생각하는 게 지속성을 불러온다고 보는 거죠. 저는 물건이 주는 행복감, 소비에서 오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에요. 소비를 참으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는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소비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소비는 하되 지긋하게 오래 사용할 물건을 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들인 물건에 서사를 담고, 애정을 두고 오래 사용하는 게 어느덧 소비의 목적이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충동구매를 하지 않게 돼요. 고심하면서 물건을 고르고 있거든요.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나만의 원칙은 분명히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이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목적이 같은 물건을 여러 개 두지 않기. 옛날에는 좋아하는 거라면 종류별로, 브랜드별로 여러 개를 들였어요. 요가 매트도 여러 개 두고, 문구류도 좋아해서 펜도 보이는 대로 사들였죠. 근데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해요. ‘똑같은 색깔, 똑같은 굵기의 펜이 있는데 이걸 꼭 사야 할까?’ 목적과 쓰임을 한 번 더 생각하면 확실히 소비가 줄어요.
지구를 위해 ‘하지 마라.’는 금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종종 위축되곤 하는데, 지혜 씨의 제로 웨이스트는 참는 게 아니라는 점이 좋아요.
금지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일은 아니에요. 저는 제로 웨이스트를 재밌게 하고 있어요. 일단은 제 행동이 어딘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찝찝해서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고요. 제 행동이 아주 미미할지라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꼭 그 방법밖에 없는가.’를 생각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저한텐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에요. 일종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거잖아요. 새로운 방법을 찾고 나면 저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나니 돈 쓸 데가 별로 없더라고요. 한번은 제 소비 패턴을 알고 싶어서 2018년쯤 쭉 통계를 내봤어요. 가계부를 정리해서 얼마나 소비가 줄었나 계산을 해본 건데,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거의 70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정말요? 이 정도라면 단순히 소비 패턴만 바뀌는 게 아니겠어요.
아름다움의 기준도 바뀌었어요. 옛날엔 지퍼백이랑 물티슈를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뭘 하든 깔끔한 상태로 두고 분류하는 데 집착했거든요. 깨끗하게 정돈된 것이 저에겐 아름다움이었으니까요. 근데 지퍼백과 물티슈는 한 번 쓰면 그만인 것들이잖아요. 지금은 그런 게 아름다움일 수가 없죠. 요즘은… 음, 삶아서 널어둔 행주 같은 게 아름다워 보여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낸다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가 저렇게 했었는데….’ 하면서 추억에 젖기도 하고요.
완벽보다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삶이어서 때로는 길티 플레저도 있을 것 같아요.
엄청 많아요. 큰 죄책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에요. 한 사람이 단시간에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가 뭔지 아세요? 비행기를 타는 거예요. 그래서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너무너무 큰 죄책감을 느끼죠. 반신욕 할 때도 그렇고요. ‘그동안 이렇게 잘해왔는데, 반신욕을 한다고?’ 하는 생각도 들고…. 반신욕 하면서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더욱더 그렇죠. 수입 맥주를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캔 맥주를 사게 되거든요. 국산 맥주를 먹으면 병맥주를 마셔서 재사용이라도 할 텐데, 캔 맥주가 취향이니까…. 계속 이런 사고 회로가 작동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돼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유해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 피해를 덜 주기 위해 애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SNS에 이런 이야기를 쓰셨죠. “물건을 버리지도 사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면서 취향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고요.
예전에는 ‘나 저거 사고 싶어, 어떡하지?’ 계속 떠올라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거의 없어요. 처음 이런 상태로 진입할 때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오히려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확신이 들어요. 이제는 어떤 물건을 살 때면 이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폐기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물건을 함부로 들일 수 없게 되죠.
신중한 소비를 하는 거네요.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돼요. 요즘은 어떤 게 재미있냐면요. (눈앞의 컵을 든다.) 이건 엄마가 선물로 받은 컵인데, 전혀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근데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이젠 이 컵의 쓸모를 헤아려 보게 돼요. 이 컵에 커피를 담으면 너무 적게 담겨서 마시다 만 느낌이 들거든요. 어떻게 쓰는 게 가장 알맞을까 생각하며 제 습관을 돌아봤는데 이 컵엔 보리차를 마시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딱 제가 한 번 마시는 용량이 담겨서요. 이처럼 제 물건엔 저마다 원칙이 있어요. 이 식기는 어떨 때 쓰고, 이 텀블러는 어떨 때 가지고 나가고…. 그런 쓰임을 찾는 데서 행복을 느껴요. 자신을 돌본다는 기분에서 출발하는 거니까요. 가진 것에서 쓸모를 찾다 보면 뭔가를 사지 않아도 되니까 더 이상 욕망하지 않게 돼요. 삶이 이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지금 생활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죠. 특히, 마지막까지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향을 이야기하셨어요.
향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지금도 인센스나 아로마 램프는 즐겨 사용해요. 다만 재료를 고를 때 천연 오일을 택하거나 효능 위주로 보게 되었죠. 이전에는 단순히 ‘좋은 향’을 좇았다면 지금은 약을 처방하듯 내 몸이 원하는 향을 골라 사용하는 거예요. 저를 잘 돌봐야 제대로 쓸 수 있는 아이템이 된 거죠. 많이 긴장하고 힘든 날이면 이완에 좋은 라벤더를, 온몸이 처지는 날이면 시트러스 계열을 사용하는 식으로요. 요즘은 사람들에게 무색무취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향도 과하면 불편하거든요. 가장 자연스러운 나만의 향을 풍기면서 그것이 무색무취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고 있어요.
친환경적인 삶을 위해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지혜 씨의 태도가 참 좋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계속하고 싶어요. 그런데 책을 낸 후에는 그런 고민도 있었어요. 환경 관련 단체나 행사에 초대받는 일이 여럿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완전무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지더라고요. 자기 검열이 너무 심해져서 자꾸 탈이 났어요. 갖고 싶은 게 더 많아지고 먹고 싶은 게 자꾸 생기고. 그런 걸 보면서 이 방향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완전무결보다는 저를 돌보고, 필요한 걸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됐죠. 그러고 나니 비로소 편해졌어요. 지금도 종종 그런 질문을 받아요. “그거 탄소 배출되는 거 아니야?” 어떤 식으로든 탄소 배출은 하게 되어 있어요. 저는 아예 탄소 배출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불가능하니까요. 다만, 제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줄이고 더 좋은 쪽을 보자는 거죠.
요새는 브랜드나 기업 차원에서도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거나 자연 친화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저는 요즘 풀무원 ‘지구식단’에 빠졌어요. 정말 맛있던데요!
지구식단은 대기업에서 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예시라고 생각해요. 대기업에서 이런 행보를 보이면 신뢰를 얻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기업이 늘어날 테니까요. 채식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샐러드나 밋밋한 맛을 떠올리곤 해요. 그런데 지구식단 맛있잖아요. ‘채식이 이런 맛이라면 나도 하겠는데?’ 이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게 대기업이 줄 수 있는 강력하고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해요. 지금 떠오르는 곳으로는 파타고니아, 아로마티카, 톤28, 파아프PaAP 같은 브랜드가 있는데요. 이젠 중소기업이나 로컬 브랜드 중에서도 이런 분야에서 잘하는 곳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그런 기업들이 상생해 나가길 바라고요.
요즘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안팎으로 참 많아졌어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경우도 잦고요. 그러면서 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측면도 분명히 생긴 것 같아요.
잔인한 영상도 참 많죠. 가끔은 저도 이게 옳은 방향일까 의문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추천할 때 그런 영상은 자연스럽게 배제하게 되죠. 저는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해요. 그런데 이 이슈를 말하려면 잔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쪽에 초점을 두면 안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요. 그간 살아온 인생에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육식이 그렇게 잘못된 거야?’ 하는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저 어릴 때부터 관습적으로 육식을 해오는 문화가 있었을 뿐인데 개인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진실을 알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부정적인 얘기보다는 채식했을 때 좋아지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짐을 지우는 대신 탄소 발생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 친화적으로 살았을 때 좋아지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혹은 과학적인 통계로 설득하는 것도 좋고요.
과학적인 통계라 함은….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1급 발암 물질로 분류됐어요. 담배나 청산가리랑 같은 급이에요.
아…!
어떠세요? 이런 정보를 알고 나면 내 몸을 좀더 위하게 되지 않나요? 정보는 많이 알수록 좋아요.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낫죠. 그러니까 꼭 잔인한 영상이 아니더라도, 과학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좋아요. 작은 예지만, 비건을 하면서 누군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면 그것 역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요.
“몸이 힘들기보다 정신이 피로할 때가 가끔 있다.”고 하셨어요. 그럴 때 “생활 패턴에 맞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고도 하셨는데요. 생활 패턴을 살피기 위해서는 삶의 어떤 부분을 돌아보면 좋을까요?
먼저, 소비 패턴을 살펴보세요. 그다음은 어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지를 보는 거예요. 이 둘이 가장 강력한 것 같아요. 내가 어디에 돈 제일 많이 쓰는지, 내가 뭘 제일 많이 버리는지를 보는 거죠. 그럼 자기가 하고 있는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 과소비를 파악할 수 있어요. 소비가 결국은 탄소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면 조금이라도 다듬을 수 있거든요. 2020년 제 목표가 ‘1년간 옷 안 사기’였어요. 그 이전에는 플라스틱 안 쓰기, 화장품 안 사기를 목표로 삼고 하나씩 해나갔는데, 그렇게 소비를 줄여도 이상하게 돈은 계속 나가는 거예요. 정리를 해봤더니 그게 다 옷 소비더라고요. 기성복도 그렇지만 요가복 소비가 많았어요. 그래서 2020년, 새해를 맞이해서 1년 동안 옷을 사지 말자고 마음먹은 거죠. 3개월까지가 진짜 힘들었어요. 사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인터넷 알고리즘이 자꾸 예쁜 옷들을 보여주더라고요. 3개월쯤 지나면서 옷 정리를 해봤는데요. 그때 제가 비슷한 옷을 계속 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는 옷도 비슷하고, 실패하는 옷 디자인도 늘 비슷한 거예요. 그러면서 소비가 습관이라는 걸 알았어요. 마음의 습관인 거죠. 그때 옷을 한 차례 다 정리하고 제가 잘 입는 옷을 알게 됐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처럼 빨래가 잘되고, 잘 마르고, 입었을 때 착용감이 좋은 옷을 오래 입더라고요. 그때부터 오래 입는 옷 위주로 소비를 하게 됐죠. 그즈음 미싱도 배웠어요. 오래 입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리폼해서 입으려는 생각이었죠. 처음 옷을 안 사기로 마음먹었을 땐 1년 채우면 무조건 백화점부터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세어보니 16개월 동안 옷을 한 번도 안 샀어요. 욕구가 안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한 번 내 소비 패턴을 정리하니까 기준이 생겼어요. 나는 이런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지금은 옷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느끼고 있어요.
소비를 정리하면서 진짜 취향도 알게 된 거네요.
맞아요. 버리는 것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요. 버리는 것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마 먹는 걸 거예요. 마지막까지 줄이려야 줄일 수 없는 게 먹거리더라고요. 옷은 안 사도 살 수 있지만, 안 먹으면 우리는 죽잖아요. 생계가 연결되는 일인 거예요. 쓰레기를 보면서 내가 뭘 먹었는지, 뭘 버렸는지, 먹거나 먹지 않은 걸 뭘로 대체할 수 있는지 생각해요.
뭘 샀는지, 뭘 버렸는지를 면밀하게 보다 보면 반성과 회의감이 엄청날 것 같아요.
물론 그렇죠. 근데 한차례 정리되고 나면 되게 좋아요.
마음먹고 한번 도전해 볼게요. 이런 이야기를 하셨지요. “재사용하는 것만큼 지구를 위하는 방법은 없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가장 기본적인 게 텀블러죠. 저는 외출할 때 텀블러를 두세 개씩 들고 다녀요. 하나는 물, 하나는 커피…. 그리고 손수건.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것 중 하나가 휴지거든요. 손수건만 적극적으로 써도 미세 플라스틱을 정말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요즘은 기기 도움을 받는 것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치실 대신 아쿠아픽을 쓰거나 화장 솜 대신 롤러를 이용하거나, 화장실에서 비데를 쓰는 식으로요. 스테이플러도 심 없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고요.
저는 기술 발전이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기기가 친환경적으로 지낼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생각도 드네요.
오래 잘 쓰는 게 중요하죠. 신제품에 현혹되지 않고 꾸준히요. 휴대전화만 해도 신제품이 나오면 더 이상 성능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거든요. 근데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못 쓸 정도로 고장 나지 않는 이상 쉽게 바꾸지 말자고 자주 마음먹어요. 미싱을 배운 것도, 업사이클링을 하는 것도 자원을 계속 쓰려고 하는 거니까요. 아,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킨츠키를 배워 왔어요. 깨진 유리도 다시 쓰려고요.
본고장에서 배운 거네요?
네. 재사용 기술을 배우는 데 관심이 무척 많아요. 비록 아직은 초보지만요. 저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뭐든 저한테 오는 거리가 짧은 걸 선호해서 로컬 브랜드에 관심이 많거든요. 일본에 여행 갔을 때도 동네 브랜드를 둘러보게 됐는데 킨츠키 하는 분이 계셨어요. 킨츠키 작업이 상상 초월이더라고요.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여 등이나 스탠드를 만드는 분도 있고, 모든 결과물이 예술 작품 같았어요. 킨츠키를 접한 게 출국 전날이었는데 너무 배워보고 싶어서 곧장 선생님을 찾아 연락했어요. 배우고 나니 점점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됐죠. 킨츠키가 금가루를 입혀서 마감하는 기술이거든요. 근데 하는 사람마다 금가루 레시피가 다르다는 거예요. 다들 킨츠키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죠. 그게 참 재미있었어요. 단순히 깨진 걸 붙이고 수리하는 기술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장인 정신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요. 저는 이런 게 삶의 풍요로움이라 생각해요. 나만의 방식을 구체화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면서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 그래서 저는 제로 웨이스트가 재미있어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에서 좀더 나아가 창의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자원 순환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속가능성에 나만의 방식을 담는 거네요.
잘사는 일이라고 하면 사회적 성공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저도 돈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돈을 버는 과정에서 외주화가 일어나는 게 불편해요. 수리는 물론이고 집안일도, 식사도 다 맡겨버리잖아요. 저는 누구나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고르고, 재료를 사고, 요리하면서 느끼는 성취와 좋은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스스로 삶을 돌보며 느낄 수 있는 풍요로움이라 여기고요. 풍요롭다는 건, 경제적인 풍요가 아닌 나를 돌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요?
처음에 이야기하신 충만함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환경 감수성을 나서서 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예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더 예민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연 속에서 재밌게 놀아보세요. 지금 우리는 자연과 너무 단절돼 있잖아요. 굳이 시골로 가지 않더라도 산책하면서 날씨를 감각하거나 새소리를 듣는 일들이 도움이 될 거예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무뎌지거든요. 야외 활동이야말로 환경 감수성을 높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에요. 저는 나투라 프로젝트를 통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거고요. 얼마 전엔 나투라 프로젝트로 연을 맺은 사람들과 제로 웨이스트 여행도 가고, 작년에는 클린 백패킹도 다녀왔어요. 음식, 물건… 모든 걸 고려해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동선을 꾸린 거죠. 쓰레기 없는 백패킹을 마치고 쓰레기를 주워 오는 것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 좋다, 지키고 싶다.’를 넘어서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만일 동료가 없었다면 저 혼자 새카만 자연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을까요? 그런 걸 느낄 때마다 조금씩 겸손해져요.
이렇게 연결된 우리가 느슨하게나마 무해한 하루를 이어간다면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저도 노력해 볼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여기,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있어요. 지혜 씨가 말하는 걸 전 세계 사람들이 실천하게 될 거예요. 어떤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무해한 세상이 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채식이에요.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탄소 배출량이 한 번에 많이 줄겠지만 비행기 탑승은 모든 사람이 빈번하게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지금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잦은 빈도로 하는 게 육식이거든요. 전 세계 사람들이 채식의 비중을 아주 약간이라도 늘린다면, 확실히 탄소 배출량이 줄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완강한 채식주의자 한 명보다 채식지향자가 여러 명 늘어나면 좋겠어요. 하루 한 끼 채식이더라도요. 저는 제로 웨이스트라고 얘기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저탄소 생활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나를 돌보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고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