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 작가
꽁꽁 옭아맨 규칙 안에서 완벽한 생활을 쌓아 나가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삶. 느슨한 울타리를 두르고 정해지지 않은 아낌과 돌봄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삶. 그 안에서 무해한 하루가 탄생하고 있었다.
경기도 외곽으로 오니까 도시 분위기가 확 다르네요. 모처럼 소풍 오는 기분이었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사람을 보면 엄청 짖어서요. 놀라지 마시라고 미리 나와 있었어요. 반가워서 그런 거니까 겁먹지 마세요.
네! 괜찮아요.
시몽아, 괜찮아, 쉿! (검은 강아지가 쉴 새 없이 짖으며 집 안을 왔다 갔다 한다.) 진정할 때까지 딱 3분만 앉아 계실 수 있을까요?
(자리에 앉으니 바로 다리 위에 올라앉는다.)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강아지라니, 시몽이 소개부터 들어봐야겠는걸요(웃음).
너무 부산스러웠죠(웃음). 벌써 열두 살인데 아직도 사람만 보면 이렇게 좋아해요. 시몽이는 저 대학교 졸업반 때 엄마가 데리고 온 아이예요. 본가에 강아지가 와 있대서 시험 기간에 보러 갔는데 새카맣고 작은 강아지가 뛰어놀고 있는 거예요. 그날 시몽이랑 밤새 노느라 시험을 망쳤어요(웃음). 6개월 정도 엄마랑 살다가 이웃이 불편해해서 저희 집으로 와서는 지금까지 쭉 함께 살고 있어요. 처음 봤을 땐 500그램밖에 안 됐는데 몸집도 이렇게나 커졌죠. 저랑 비슷하단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요. 성격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닮았다고(웃음).
어떤 점이 닮았는지, 이번엔 지혜 씨 소개를 들어봐야겠어요.
자기소개는 할 때마다 어려워요. 하고 있는 일로 소개하면 편할 텐데 여러 일을 하다 보니 소개가 더 어렵더라고요. 음… 저는 ‘돌보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돌보려 요가와 명상을 하고, 타인이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환경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태를 돌보는 일도 하고 있어서요. 나와 주변을 돌보는 데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사람이기도 하죠.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는 지구를 돌보는 마음으로 쓴 책이겠군요. 지혜 씨에게 무해하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말 그대로 ‘해치지 않는다.’ 인도 종교 문화의 중요한 덕목 중에 ‘아힘사Ahimsā’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생물에 대한 불살생, 비폭력, 동정, 자비를 의미하는데요. 아힘사와 가장 가까운 우리말이 무해함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한테 해함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화학 제품을 피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그게 점차 확장되다 보니까 단순히 내 몸에 바르고, 쓰고, 먹는 걸 넘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 고려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나 자신을 해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해할 수도 있어요. 의식하지 못한 사이 사회나 환경을 해칠 수도 있고요. 살아가면서 그런 해함을 덜 하는 삶이 무해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제목을 읽고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응원받는 기분이 들어서요. 어떻게 쓰게 된 책이에요?
2018년부터 ‘나투라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요가를 야외에서 즐겁게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인데요. ‘이런 좋은 날씨에 밖에서 요가를 하다니.’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해나가고 있죠. 함께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해서 요가도 하고, 함께 친환경 마켓을 열거나 클린 산행도 해요. 사회생활로 만난 게 아니어서 나이나 전공, 직업 같은 걸 공유하진 않는데, 함께하시던 분이 어느 날 출판사를 하고 있다며 책을 내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어떠셨어요?
‘이걸 내가 써도 되나….’ 싶었죠. 저는 완벽한 실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환경 운동가도 아니잖아요.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해보세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데 이 정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지구에 관한 글을 제안받으니까 막막했어요. 그러면서 자기 검열이 심해졌죠. 제가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그 당시엔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지금처럼 관심 갖지 않던 때거든요. 제안해 주신 분이 아직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경각심이 크지 않아서 환경 운동가와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이야길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기 좋은 작은 실천을 제안해 주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요. 그 말이 용기가 됐어요. 제가 환경을 위한 실천에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말에 마음먹게 됐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위해서는 자연과 어우러져 지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혜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셨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방학이면 저랑 동생은 할머니 댁에서 지내곤 했어요. 그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할머니 댁에 마땅히 가지고 놀 것도 없어서 항상 밖에 나가서 놀았죠. 겨울에 눈이 오면 이글루 만든다고 한참을 눈밭에 뒹굴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과수원을 하셔서 복숭아랑 사과밭에서 놀기도 했고요. 그 주변에 흐르던 시냇물이 1급수였던 기억도 나요. 그 물을 그대로 끌어다가 나무 키우는 데 쓰시곤 했거든요. 워낙 환경이 깨끗해서 플라나리아도 자주 보고 지냈어요. 저는 그 시절이 일생의 정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바다보다는 산이 편하고, 그런 곳엘 가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그래서인지 계속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해왔을 것 같은데, 한때는 물건 사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다고요. 특히 ‘코덕(화장품 마니아)’이었다고 들었어요.
뷰티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화장품을 좋아했죠. 아까 저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요. 계속 저는 일상을 돌보는 데 관심을 두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전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외모 돌봄이었다면, 지금은 외부 시선에서 벗어난 내면 돌봄이라고 할 수 있죠. ‘나한테 진짜 필요한 게 뭘까, 진짜 좋은 게 뭘까, 내가 뭔가를 취하면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뭘까….’
돌봄의 방식이 달라진 거군요. ‘나한테 필요한 게 뭐지?’라고 물었을 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뭐예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돌보는 거요. 요가와 명상을 오래 해온 덕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무래도 일이다 보니 종종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마음을 제대로 돌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서 최근엔 일부러 명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쪽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기도 해요.
행복이 방향을 바꾼 거군요. 이전에도, 지금도 행복했을 테지만 그 결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이전에 느낀 행복은 굉장히 일시적이었어요. 흔히 말하는 ‘현타’가 금방 왔죠. 소비로 시작되는 돌봄이어서 카드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물건 처리도 어려웠어요. 소비한 물건들이 제대로 쓰이지 못했거든요. 충동구매로 이루어지는 소비가 대부분이다 보니, 진짜 필요하지 않은 걸 사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의 행복은… 음, 충만하다는 느낌이 커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마음에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 쓰임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도 저는 물건 사는 걸 좋아해요. 집에 물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도 아니지요. 근데 지금은 뭘 하나 들이더라도 외부 시선을 거두어내고 진짜 나한테 필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며 신중하게 소비하고 있어요. 그렇게 산 물건은 이전보다 사용 기간이 훨씬 길더라고요. 만족감도 높고, 물건과 정이 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런 것들이 삶을 차곡차곡 잘 쌓아나가게 하고, 거기서 충만하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물건이 사는 곳인지 내가 사는 곳인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을 보고 뜨끔했어요. 제 방이 그렇거든요. 근데 막상 그런 방에서 지낼 땐 잘 모르잖아요. 쓸모없는 것도 귀여우니까 자꾸 사게 되고…. 물건이 너무 많다는 걸 인지한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경제적으로 타격이 올 때 그랬죠. 독립을 일찍 해서 주거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면서 지냈어요. 지금은 정리하고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좋아하는 물건으로 꽉꽉 채우는 게 중요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보니 집에 발 디딜 틈이 정말로 없는 거예요. 하다 하다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좀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됐는데 그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큰 집으로 이사하면서 돈을 쓰고, 그 집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더 들이면서 돈을 쓰고…. 경제 상황에 빨간불이 들어왔죠. 그즈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게 됐는데요. 그 책에 공간을 월세로 환산해 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집에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물건이 사는구나, 나는 이 공간을 창고처럼 쓰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물건을 대하는 생각에 큰 전환이 일어난 거죠.
돌봄의 방향이 내면을 향하게 된 데는 요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가는 ‘물건 부자’이던 시절에 시작한 거라고요.
네, 그래서 요가 시작하고 요가 물건도 엄청 사들였어요. 요가 매트, 요가복, 관련된 책…. 요가는 다른 운동과 다르게 ‘수련’이라는 말을 써요. 저는 그 이유가 신체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정신적인 부분도 돌보는 활동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요가를 공부하다 보니까 비폭력, 진실할 것, 청결할 것, 욕심부리지 않을 것, 그런 가치들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요. 요가 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소비를 줄이고 제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상과 생각을 계속 다듬고 있어요. ‘어떤 태도로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 맞을까.’라고 계속 곱씹는 건데요.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요가를 수련하기 전엔 어떤 일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성악을 전공하셨더라고요.
요가도 성악에서 출발한 거예요. 성악은 체력 소모가 큰 신체 활동이에요. 힘을 쓰는 것과 이완하는 것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저는 긴장도가 워낙 높아서 이완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뭐든 과하게 하다 보니 그 중간을 찾지 못한 거죠. 연습 때마다 “힘 풀어, 지혜야.” 이야기를 듣는데도 힘 푸는 게 뭔지 잘 몰라서 발성이 마음처럼 안됐어요. 그때 사사해 주시던 교수님이 “그럼 요가라도 다녀볼래?” 하시길래 요가원에 가게 된 거고요. 성악은 무대 예술이에요. 제가 얼마나, 어떻게 연습했든 무대 위에서 ‘짠’ 하고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결과 위주의 활동이죠. 저는 평생 무대에서 잘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어요. 근데 요가 할 때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거든요. 그 말이 계속 매트 위에 올라갈 힘이 되었죠.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