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웨이브 초현실주의

제네시스 벨란저 — 현대미술가

페로탕에서의 두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뉴욕 브루클린에서 파리로 도착한 제네시스 벨란저Genesis Belanger는 무척 긴장되어 보였다. 직접 전시 디자인까지 참여한 개인전의 오프닝을 하루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뉴욕에서 도착하지 않은 작품 한 점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리를 잡은 이곳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극 무대 같았달까. 검은색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첫 번째 방에서 만나는 롤빵과 핫도그, 조미료, 잘 손질된 예쁜 손은 건강한 생활과 멀어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은 ‘건강한 삶Healthy Living’. 비꼬는 듯한 제목과 아이러니한 작품들, 누구나 숨기고 있는 인간의 낡은 야망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이상하게 이 방을 떠나고 싶지 않다. 초현실적으로 어여쁜 꽃, 샴페인 병과 반지, 심지어 바람 빠진 풍선과 깨진 거울까지 소유하고 싶을 만큼 눈에 밟히니 말이다.

파리에 언제 도착했어요? 

5일 전이요. 전시 디자인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조금 여유 있게 도착했고, 도착부터 지금까지 전시장에 머물면서 설치 작업만 했어요. 머릿속에 전개되어 있는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고 나니 만족스러워요. 

 

뉴욕에서는 얼마나 지냈어요?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고요. 

18년 전부터 브루클린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작업실도 이곳에 있고요.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고, 도자기 공방 바로 옆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우연히 종종 공방에서 조각 작업을 했던 게 흥미가 붙으면서 작은 개인용 가마를 구입하게 됐고, 그러면서 꾸준히 혼자서 작업을 발전시켜 왔어요. 전문적으로 도예 과정을 배운 적은 없죠. 

 

아티스트가 되기 이전에는 패션 공부를 했다고 들었어요. 

학부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졸업 후에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광고 부서로 옮기면서 광고 촬영용 세트 디자인 어시스턴트로도 일을 했는데 그때 경험이 지금 활동의 초석이 되어 주었어요. 패션과 광고에서 보이는 특수한 미학적 특징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남달라요. 문장에 임팩트가 있기도 하지만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가진 ‘블로 아웃Blow Out’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니까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이틀로 정하게 됐어요. 과장, 불 끄기 말고도 파티를 의미하기도 하고 구멍 난 타이어를 말하기도 하죠.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오브제만 사용해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시각 언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훨씬 흥미롭죠. 보는 이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다른 해석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블로 아웃’ 전시엔 세 가지 방에 세 가지 상황을 상상해 연출했어요. 텅 빈 할인점, 파티의 잔해, 성형외과 의사의 사무실 이렇게요. 관람객은 각 방에서 벌어지는, 혹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상상하게 될 거예요. 

 

이 세 구성에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나요? 왠지 쇼핑을 하고 난 후 방탕한 파티에 갔다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같아서요. 

아니요. 스토리텔링 성격이 강하지만 전시를 위해 시나리오를 미리 짜진 않아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지요. 첫 방은 파티가 끝나고 난 뒤 모습인데 테이블 위에 놓인 요소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어요. 성공을 상징하는 값비싼 물건들 옆에 바람 빠진 풍선과 코 박고 엎어진 머리 형상은 좀 허무하지 않나요? 초자본주의가 주는 고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이 역시 관람객 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생각을 그대로 강요하고 싶지 않거든요.

일반적으로 아티스트는 자신들의 개인적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업에 사적인 이야기를 담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를 찾기 때문에 개인적 이야기는 도입하지 않아요. ‘내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남들도 똑같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늘 하는 편이고, 세계적으로 또는 일반적으로 공감되는 경험을 찾고 있어요. 사실 세계적이란 단어가 가진 표현 자체의 오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만요. 

 

다루는 주제가 가볍지는 않아요. 하지만 유머러스한 표현법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네요. 

그게 살아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우리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곡선을 그리며 평생 벌어지고,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도 동시에 짧은 기쁨이 공존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둠과 밝음, 슬픔과 기쁨이 작품에 함께 있어요. 

 

2015년 이전 작품에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소재와 표현법이 보여요. 훨씬 추상적이고 소재 또한 거칠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부드럽고 섬세한 소재와 표현법으로 전향한 이유가 궁금해요. 

초기에 과학에 접근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모르는 사람이 눈을 표현한다면 어떨까.’라는 가정 아래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를 사용해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지금 작업과는 접근법이나 소재 사용에서도 큰 차이가 있죠. 당시 묘사도 서툴렀고 원하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결국 그보다 나의 경험과 사회적 이슈를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고 마침 작업실에 작은 가마를 하나 들이게 된 것이 세라믹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파스텔 톤 컬러만 사용하는 이유도요. 

햇빛에 바랜 것처럼 채도가 낮은 컬러를 좋아해요. 색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나만의 컬러 레서피북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보고 늘 같은 방식으로 색을 꾸준히 만들어 왔고 그 색만 작품에 사용해요. 도자기 작업을 완성한 후 색을 위에 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고 염료를 바로 흙과 반죽해 사용해요. 그렇기 때문에 매트한 질감 표현이 나올 수 있었어요.

자세한 작업 과정에 대해 들을 수 있나요? 

모든 작업은 드로잉에서부터 시작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드로잉을 하죠. 그 그림들을 작업실 한 공간에 모아놓고 각 아이템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는지 구성해요. 그다음 패션 디자인 수업에서 배운 옷 패턴 제작 방식으로 드로잉을 패턴화하는 작업을 거쳐요. 전시장에서 보이는 꽃들의 형태가 다 일정한 이유는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다음은 핸드믹서로 안료와 점토를 섞는 과정을 거치고, 점토를 평평하게 시트로 만든 다음 패턴대로 잘라내 조립하듯 만들어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죠. 종종 기존 가구들 혹은 다른 물체와 결합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전부 제 손에서 탄생해요. 원하는 작품을 위해 세라믹 외의 소재를 쓸 때도 있는데 현재는 나무, 메탈, 섬유 이렇게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메탈을 다루는 어시스턴트와 바느질 어시스턴트 두 명이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고, 나머지는 혼자서 다 하는 편이에요. 후가공을 통해 세라믹 작품과 이질적이지 않고 어울릴 수 있다면 소재에 대해선 열려 있는 편이에요. 

 

그럼 이 전시를 위해 들인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꼬박 1년이요. 

 

오브제들이 종이접기 장난감처럼 초현실적인 동시에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형태가 친근해요. 만화를 자주 보는 편인가요? 

어릴 적 굉장히 많이 봤어요. 지금은 보지 않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화면으로 보지 않아요. 책을 읽고 오디오북을 듣는 일이 전부예요. 

 

그렇다면 작업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어떻게 얻나요? 

일상생활의 이미지들이요. 1950년에서 90년대 사이의 광고들을 특히 좋아해요. 요즘 광고엔 그다지 관심이 안 가는데, 왜 현재보다 과거에 더 관심이 있나 생각해 보니 지금이 존재하게 된 이전의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AROUND》는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발견하다’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잡지예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또한 잡지 콘셉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전시장에 보이는 일상생활 속 오브제들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까요.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발견한다는 표현이 정말 좋은데요! 내가 의도하는 바를 잘 설명해 주는 문장이에요. 예를 들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전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이런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해석은 서로에게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해주니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전혀 상관없어요. 오히려 이런 생각의 전환의 기회가 발생하는 것이 좋아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신체를 표현한 작품들이 매우 관능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에요.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나요? 

네. 관능적 표현은 시각적 효과가 강하잖아요. 관객을 유혹하고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여기 절단된 여성의 신체가 눕혀져 있는 병원 침대를 보세요. 전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바비의 여행Barbie Journey’라고 불러요. 실제 제목은 ‘병원으로의 여행Hospital Journey’이지만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면 획일화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이상적인 여성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착각을 심어주는 버젓하고 그럴싸한 몸매의 여성들. 저는 그들을 작품 소재로 사용했는데 여기 수술용 침대에 누워 있는 잘려진 신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프랑켄슈타인이 성형 수술을 통해 바비 인형으로 탈바꿈하는 과정 같은 스토리가 떠오를 수도 있고요. 그리고 침대 건너편 커튼 뒤에 서 있는 발만 보이는 여성 네 명은 자신들의 수술 차례를 기다리는 거죠. 아니면 수술 결과를 궁금해하는 중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다리는 여성들은 멋진 신발을 신고 있어요.

오, 그럼요. 어떤 차림의 여성일지를 알려주는 힌트가 여기에 있거든요. 옷차림이 상상이 되죠? 

 

요즘은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많으니 인스타그래머블이 전시 디자인의 키워드가 되기도 했어요. 이번 전시는 특히 SNS 속 흥행이 이미 예상되고요. 전시 디자인을 구상할 때 포토제닉한 면도 고려하나요? 

사진 각도에 원하는 오브제들이 한꺼번에 다 나오는 걸 고려해서 공간을 구성해요. 제가 공간을 볼 때 사진 프레임을 떠올리면서 보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한 편의 광고, 연극 무대의 한 장면 같다는 착각도 들어요. 미술, 공예, 디자인의 경계를 옮겨 다니는 작품은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소망은 없지만 디자인이 가진 접근성을 좋아해요. 그리고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사이에 두고 아주 가는 선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의 오브제를 보면 항상 흥미롭다고 느껴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램프의 경우 조명이라는 명확한 기능을 가진 덕분에 예술 작품이 가진 목적성을 잊게 만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삶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것들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품을 통해서 힐링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마시멜로 촉감의 예쁜 컬러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불편하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이거든요. 그런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래서 지금 이 피드백은 환상적이네요. 치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내 작품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앞으로 그 부분도 생각해 보고 싶어요. 

 

뉴욕에서 성공한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아티스트로서 뉴욕만이 가진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뉴욕은 매우 재미있고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예요. 아티스트로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예술가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생활이 즐거워요. 그리고 훌륭한 전시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중요하죠. 아무 때나 미술관을 가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일을 사랑하고 어떤 분야든지 열정을 불태우는 뉴요커의 에너지가 아티스트들을 불러 모으고 있어요. 여기서는 작품을 통한 수입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활하는 아티스트가 너무 많은 곳이니까요. 

 

뉴욕 외의 도시에 두 번째 작업실을 오픈한다면 어느 도시로 정하고 싶어요? 

사실 다른 도시들을 많이 가보지 않아서 비교 상대가 별로 없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파리요. 파리는 어메이징하니까요. 파리를 걷다가 가끔 화가 나는데 그 이유를 말해줄까요? 왜 뉴욕은 이만큼 아름답지 않을까 싶어서요. 

 

파리에서 작업한다면 어떤 영감을 받을 것 같아요? 

건축물이 가진 디테일이 매우 아름다워요. 외관도 아름답지만 커튼이 드리운 창문과 문을 닫은 매장들을 보고 내부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이야기가 저 뒤에 존재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영감이 돼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드림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건축물의 파사드 작업이요. 마치 건물의 앞면을 뜯어낸 것처럼 내부가 보이는 인형의 집 같은 구조를 만들고 방마다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만약 뮤지엄의 아트리움을 이런 식으로 만든다면 매우 쿨할 것 같아요.

젊은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작품들은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풋풋한 대답과 아트리움 작업을 꿈꾼다는 구체적인 희망까지 솔직하게 내비친 제네시스의 말투가 딱 그랬다. ‘세상은 심각해도 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라고 귀엽게 받아치는 듯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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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