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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NOT A PHOTOGRAPHER
눈의 근육
얼마 전에 오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들과 율동을 하며 축가를 불렀다. 성인이 된 후로 좀처럼 무대에 오를 일이 없었기에 축가는 내게 나름의 열정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영상을 받았다. 열정적인 모습을 기대했는데 웬걸, 나는 멀뚱히 서 있었다. 모두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는데 나만 리듬을 방해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몸을 움직일 때
나는 딴청을 피웠지
축가를 함께 부른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 만났다. 중학생 때 무리 지어 다니길 좋아했던 우리는 특별활동으로 치어리더부를 선택해 치어리딩을 배웠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축제 무대에 오를 거라고 했다. 후보를 호명했고, 나는 울었다. 친한 친구들 중에 내 이름만 빠져 있었다. 무대에 올려달라고 사정했다. 선생님은 아직 확정한 명단이 아니라며 몇 주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연습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다음 날 교실에서, 즐거운 점심시간에도 내내 한숨만 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친구들은 주말에 나를 학교로 불러냈다. 빈 교실의 책걸상을 모두 밀더니 내게 춤을 가르쳤다. 한 친구가 손을 봐주면 다른 친구는 발을 봐주는 식이었다. 친구들은 진짜 못한다고 놀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줬다. 말을 듣지 않던 몸이 리듬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틈만 나면 치어리딩 동작을 연습했다. 복도에서도 매점에서도 신이 나 춤을 췄고 친구들은 그때마다 흐뭇하게 웃어줬다. 결국, 친구들과 나는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 일이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늘 어설펐고 순발력이 떨어졌다. 학창시절에는 잘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는데, 그 시기가 지나자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는 일에서 멀어졌다.
아이는 보낸 시간과
어울리게 자라
이십여 년 전에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나’는 악마로부터 나라를 구한 용사이고, 왕의 명령으로 여자아이를 키우게 된다. 어쩌다가 자신에게 온 ‘딸’을 10세부터 18세까지 키우면 끝나는 게임이었는데,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최고의 결말은 공주가 되는 거였다. 아이를 공주로 키우기 위해 학교에 보내고 공부를 시키고 일도 가르친다. 학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아이는 선생님이나 과학자가 되었고, 농장에 자주 보내면 농부가 되었고, 무술을 자주 가르치면 무사가 되었다. 한 번도 공주로 키워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공주로 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게임이 질려갈 무렵 알게 된 사실은, 아이는 보낸 시간과 어울리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 시간을 쌓고 싶어 발레 학원을 등록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 이름을 지나치게 많이 부르는데, 그때마다 내가 아주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웃기고 좋다. 발레 선생님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어린 시절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곧은 등과 어깨, 나선으로 접히는 발끝. 몸의 아름다운 선들이 선생님이 지나온 시간을 증명해준다. 발레리나, 피겨 스케이터, 마라토너의 몸에 자리한 근육을 보면 역시 그들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수없이 넘어지고 흔들렸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감독, 작가, 에디터, 디자이너, 미술가, 사진가 같은 사람들의 과거는 근육을 보며 떠올리기는 어렵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에는 눈에 보이는 근육이 쓰이지 않는다.
바라보는 일로
보내온 시간
얼마 전에 책을 출간했다. 책을 읽은(축가의 율동과 노래를 가장 멋지게 소화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상한 사진을 찍고 그 밑에 닭살 돋는 글을 썼다고 우리가 많이 놀렸잖아. 사과할게. 미안합니다.” 친구들이 몸을 움직일 때, 나는 딴청을 피웠다.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책을 읽었다. 방과 후에 친구들이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옆에서 《쎄씨》나 《에꼴》 같은 패션지를 봤다. 그걸 오려 붙여 스크랩북을 만들고, 잡지에서 소개해준 옷을 구경하러 혼자 백화점에 가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20장밖에 저장되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매일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다. 나와 친구들은 무리 지어 다녔지만 그 안에서 다른 시간을 보냈다. 따로 놀아도 되었을 텐데 멀리 떨어지지 않고 서로가 보이는 거리에서 놀았다. 우리는 각자 마음을 쏟은 시간을 닮은 어른으로 자랐다.
친구들은 나와는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되었고, 나는 잡지사에 들어갔다. 일을 시작한 후로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매달 한 권의 잡지를 만들지만 그 안에서 동료들이 하는 고민은 다 달랐다. 곁에 있던 동료들은 자신이 고른 A컷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잡지에 실릴 만한 컷을 찍어내지 못하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 오히려 그들이 그것 말고도 더 잘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글을 잘 쓰거나, 음악을 잘 알고 있거나, 화장을 잘한다거나, 춤을 잘 추고, 랩을 잘했다. 그건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그들이 어떤 유년을 보냈을지 그려보곤 했다. ‘보는 눈’을 걱정하는 동료들을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빠르게 눈의 근육이 붙는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근육이다. 다른 근육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당장은 답답함이 있지만, 본 것이 쌓인 만큼 어느 정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붙은 힘으로 ‘에디팅’ 혹은 ‘디렉팅’을 한다. 언젠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거나 도와주던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어딘가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만들며 지낸다. 언젠가 비슷한 것을 함께 봤다는 기억을 어렴풋이 갖고.
아름다움은
양보할 수 없는 것
나는 일을 쉬며 숨을 고르고 있다. 그간 닳도록 써온 눈의 근육을 돌아본다. 눈은 예민하다. 사람마다 다른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 순수하게 쓰지 못하면 근육통을 앓는다. 이를 악물고 욕심을 더할 때, 어김없이 아프다. 아플 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지만, 눈을 감고 조금 떨어지면 한눈에 보인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비싼 돈을 들여 화려하게 만든 화보가 순수 그 자체인 경우도 있고, 순수한 척을 하며 아름다운 시늉을 하는 순진함도 있다. 내가 만드는 것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순간 욕심이 들어차고 눈이 아파온다. 내 눈이 보는 것만을 믿고, 거기에 다른 욕심을 더하지 않겠다는 용기. 그런 근육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지 않을까. 쉽게 흉내 낼 수 없고 빼앗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숨을 고르며 발레나 필라테스,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근육을 써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다. 오늘과 내일의 근육이 다르게 변하는 기쁨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 내가 눈의 근육을 키울 때, 어딘가에서 이런 근육을 단련했을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눈의 근육을 통해 이제는 밥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일만 하며 늙고 싶진 않기에 다른 근육을 쓰는 법도 부지런히 배운다. 다른 근육을 쓰며 살아온 사람들은 언어의 운율도 다르고, 마음의 매무새도 다르지만, 그들과도 다정하게 지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와 우리의 유년이 그랬던 것처럼.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