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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야 — 치유명상자
한 사람의 일상을 지켜보다 조심스레 문 두드렸다. 구태여 덧붙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바다와 산을 이웃한 채로 명상하는 지야는 나의 물음에 화색을 띠며 반가움을 전했다. 잠은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명상은 눈을 감아도 마음이 흐르는 길이 보인다. 지야는 그 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주저하는 우리를 몰입과 치유의 길로 이끈다.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뻐요.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삶을 바라보고 치유하는 지야입니다. 반가워요. 저는 여행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사랑도 하는 사람이에요. 여행하다 만난 수정으로 장신구를 만들고 차크라 치유 명상을 이끌고요. 몇 해 전부터 치유 작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그걸 통해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치유자라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치유라는 말의 의미를 자세히 듣고 싶어요.
단어가 거창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치유는 연민을 갖고 바라봐 주는 거예요. 내 안의 이야기들과 경험, 감정을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마치 어질러진 서랍장의 물건들을 꺼내어 보고 다시 제자리에 놓는 것이지요. 서른 살 후반부터 마흔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 저의 주된 활동은 이제껏 무겁게 지고 온 짐들을 덜어내는 거였어요. 남은 삶을 가볍고 경쾌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지구와 마음에 친절한 삶, 요가적인 삶을 실천한다고 알고 있어요.
맞아요.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에요. 내가 나에게, 모든 생명과 무생물에게도 친절하다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것 같아요. 친절하다는 표현은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바꿀 수 있을 거고요. 요가의 첫째 덕목은 ‘아힘사’, 즉 비폭력이라는 말로 해석되는데 끝없는 묵상의 주제예요. 단순히 폭력과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서부터 나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 건강을 해치는 음식과 습관을 피하는 것…. 이렇게 끝없이 나아가죠. 7년 전 요가 수련을 시작하면서 마음의 길이 더욱 선명해졌어요. 매일 몸 수련을 하며 변화를 알아차리고 나한테 필요한 상태를 자신에게 주는 것이 요가적인 삶이에요.
채식을 하는 것도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연관되는 걸까요?
삶에서 최소한의 것만 취하고 떠나고 싶고, 그것도 한없는 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먹을 채소를 심고 가꾸는 삶이 나에게 선물 같아요. 무엇보다도 외식보다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하는 일상이기도 하고요.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재료를 따라가면 몸이 원하는 영양소가 있어요. 좀더 직감적으로 내 몸과 소통하는 방법이죠. 물론 채식을 한다고 영적으로 우월함을 어필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몸마다 체질이 다르니까 채식을 강요하지 않고, 저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더욱 건강해졌을 뿐이죠.
지금은 제주에 머무르고 있죠. 지야 씨에게 제주는 어떤 섬인가요?
이제는 집보다도 집 같고 어느 새로운 여행지보다도 이국적인 곳이에요. 제주에 처음 온 건 10년 전이었어요. 그때 저한테는 12년을 함께한 삶의 귀한 동반자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와 마침표 혹은 쉼표를 찍었지만요. 배낭을 하나씩 메고 제주에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배낭 하나 든 채로 낯선 곳에 도착했다니, 무척 용감한 시도였네요.
삶에서 커다란 용기와 무모함은 언제나 새로운 챕터로 우리를 인도하나 봐요. 그때는 빈집을 고쳐 살던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우리도 이 집 저 집, 흐름에 따라 이사를 다니며 살았어요. 그맘때쯤 제주가 변하기 시작했죠. 조금 일하고 조금 벌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왔던 이곳이 서울만큼 벌어야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결국 파트너의 모국인 스페인에서 캠핑카로 여행하며 지냈는데 왠지 평소의 저보다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우울감은 내면을 바라보라는 우주의 신호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당시에는 이유 없는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서른일곱 살이 되는 해, 다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죠.
그렇게 당도한 곳이 인도였군요.
인도는 평생 여덟 번이나 갔지만,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유로 도착했어요. 고장난 나침반을 고치러 간다고 해야 할까요? 치유라는 큰 바다에 뛰어든 게 바로 그때였어요. 인도는 생활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요.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스리랑카에 1년 6개월간 발이 묶여버렸죠. ‘내 안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다시금 제주로 돌아와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아늑하게 저를 품어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돌아오니 물가는 전보다 훨씬 비싸졌지만(웃음), 이제는 제주를 밉게 보지 않기로 했어요.
제주에서 즐겨 찾는 장소가 있나요?
서귀포 동남쪽 한라산 가까이 사는데, 요즘은 치유의 숲과 강정천에 자주 가요.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를 배우러 가는 곳이 산방산 바로 옆이라 인적이 드문 황우치 해변에도 가고요. 그간 제주 동쪽에서만 살다가 서귀포로 이사 오니 여행자의 기분이라 매일이 설레요.
곳곳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에 제주가 사랑스러운가 봐요. 지야 씨의 일과가 궁금해져요.
아침에 6시 반쯤 깨니까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야행성이 아니라 9시쯤 잠자리에 들거든요. 잠을 자려고 눕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누군가는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고 말하지만, 저한테는 몸과 영혼이 리셋되는 시간이에요. 꿈의 세계가 우리한테 메시지를 보내면 그 지혜와 통찰을 삶에 적용하기도 하니까 잠은 정말 특별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아니라 엄청나게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잠꾸러기는 말하고 싶네요.
같은 잠꾸러기로서 무척 공감해요. 꿈도 자주 꾸세요?
그럼요. 꿈이 너무 선명한 날도 있고 흐릿한 날도 있잖아요. 어떤 꿈은 아무리 무언가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해 답답한 감정으로 깨고, 어떤 꿈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줘서 만족하며 일어나지요. 눈을 감은 상태로 꿈에서 느낀 감정과 상황을 그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을 마셔요. 그리고 옅게 내린 고수 생차를 뜨겁게 마시면서, 재미로 물고기자리의 타로점을 유튜브로 확인한답니다(웃음). 아침은 잠에 이어 에너지 충전에 중요한 시간이니까 최대한 느긋하게 보내요.
자신을 ‘초민감자Empath’라고 말하죠.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유난히 예민하고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들을 뜻해요. 낮은 주파수의 감정에 사로잡혀 그것이 평생 자기 건 줄 착각하기도 하죠. 모든 것이 다 느껴지니까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고요.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홀로 있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를 괴롭히던 모든 고통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죠. 더불어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야 하는데, 저한테는 그게 자연과 혼자 있는 집 또는 방이었어요. 그곳에서 충분히 에너지를 충전하면 바깥으로 나와 세상을 만나요. 이런 사람이 저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우리는 방전되기 전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며 일상과 회복을 나누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초민감자의 치유적인 삶의 기록들’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만드는 거군요. 간단한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대단한 가르침을 전한다기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공유하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전혀 만난 적 없는 타인에게 나를 보여주는 건 조금 어려웠지만, 의미 있고 통찰을 얻었던 순간을 기록해 두면 그것이 쌓였을 때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더라고요. 단 6분을 편집하는 데 다섯 시간씩 걸리는 ‘컴맹’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무기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전 과제를 줬다고 생각해요. 기록된 나의 삶과 기록되지 않아도 특별한 순간들 모두 저에게 소중해요.
지야 씨의 기록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했어요. 그중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가짜 생각과 무료함을 껴안아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도 머릿속으로는 자꾸만 혼란을 초대해요. 저도 그랬어요. 그럴 때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모두 느껴주세요. 활동이 많던 몸을 고요하게 만들 때 무료함과 심심함은 어찌 보면 당연해요. 부정적인 것으로 의식하며 피할수록 그 시간에 각인되어 버릴 테니, 스스로 탓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연민으로 꼭 껴안아 주세요.
홀로 있음과 외로움은 다르다고도 하셨죠. 어떤 점이 그런가요?
외로움은 결핍이지만 홀로 있음은 온전해요. 외로움은 나 이외에 누군가를 갈망하지만 홀로 있음은 나 혼자로 완전하고요. 만약 지금 내가 외로운 것 같다면 어떤 마음으로도 포장하지 않고 온전히 느껴보세요. 내가 바닥까지 나약한 상태를 인정해야 그걸 극복할 힘이 생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탈이 없어요.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다 보면 마침내 강하고 우아하게, 홀로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수련하는 방식 중 명상에 초점을 맞춰 볼게요. 명상을 처음 했을 때를 기억하세요?
누구나 그렇듯 저도 불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가만히 있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태국 북부의 스님들이 수행하는 절에도 갔고 일주일간 묵언 수행하는 곳도 방문했지요.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기도하며 지내는 숙소인 아쉬람도 갔고요. 가만히 있는 게 무엇보다 고통스럽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게, 가벼운 공기의 에너지가 많은 사람에게는 좌선 수행이 힘들 수 있대요. 그때는 몸을 이용한 아사나 요가 명상이 도움이 된다고 해요. 누구에게나 잘 맞는 명상의 도구와 방식이 있는 거죠.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면 악기를 연주하든, 춤을 추거나 달리든, 요리를 하든 상관없어요. 몰입하며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모든 행위와 시간을 명상이라 부르고 싶어요.
수정을 이용한 차크라 명상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우리 몸에는 에너지 채널이 여럿 있는데 일반적으로 꼬리뼈에서 척추를 타고 정수리까지 오르는 일곱 개의 차크라가 있어요. 이 무지갯빛 에너지 채널들과 호환되는 수정들도 있고요. 수정의 도움으로 차크라를 지도 삼아 몸 안에 기록된 감정을 만나는 거예요. 수정이 에너지 채널을 자극하며 치유되어야 할 부분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면 신념들도 다시 꺼내어 제자리를 찾아줍니다. 누군가는 동물계에, 누군가는 식물계에 가깝다면 저는 광물계와 마음 깊이 연결되어 수정을 활용하는 거예요.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치유 여정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아요. 나의 밑바닥을 확인해야 하니 치열한 정화 과정에 가까워요.
‘마음장신구’를 만들어 다른 이의 치유 명상을 북돋아 주죠. 어떤 마음을 담아 만드는지 궁금해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 저의 에너지가 들어가요. 그건 착용하는 사람들도 느낄 테고요. 그래서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기분 좋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요. 수정은 지구가 수십만 년간 쌓아온 온갖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산물이에요. 트라우마의 결과물이 무지갯빛으로 빛난다는 게, 우리도 삶의 모든 역경이 지나면 맑은 결정체가 될 수 있다는 위로를 주죠. 수정은 땅에서 채취되어 기계로 가공하는데요. 가공하지 않은 수정이 본연의 에너지를 잘 간직하고 있어서 좋아해요. 남들의 기준에 반듯하게 깎여진 나보다 삐뚤빼뚤한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처럼요. 억지로 속도를 내지 않다 보니 받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도 손님들은 이해해 주고 기꺼이 기다려 주세요.
지야 씨의 마음을 보듬는 데 쓰는 장신구들도 소개해 주세요.
천연 호박이 떠올라요. 스리랑카에서 제주로 돌아오기 전에 프랑스에서 3개월간 지냈는데, 그때 인연이 된 수정이에요. 그때는 어느 하나에 마음 둘 곳이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108개의 호박 구슬로 기도용 목걸이인 말라를 만들었어요. 이 천연 호박의 기운이 얼마나 온화한지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이후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 안전하게 제주로 돌아왔고 좋은 집도 얻게 되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며 108개의 호박을 꿰어 말라를 만들어요.
바라던 바로 이끌어주었네요. 마음을 한데 모아 집중하는 명상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명상은 내 안의 고요함을 꺼내는 시간이에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고요함이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 세상 모든 것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하고, 음과 양을 넘나들며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하니까요. 불안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행복이든, 명상은 그냥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느새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을 테고 특히 나의 기분 따위는 상관없는 중립적인 상태에 이르러요. 그게 바로 명상이 시작되는 지점이에요.
인간이 불안에 가장 무방비할 때는 잠들기 전이 아닐까 싶은데, 지야 씨도 그런가요?
저는 불안에 매우 취약한 종이라서 가능한 한 불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예요. 그래서 사회에서 열심히 활약하는 현대인들이 참 대단해 보여요. 잘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 더 많이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 불안함과 불면이 비롯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고 싶어요. 어쩌면 저는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감사해하는지도 모르죠. 잠을 잘 자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좀 웃긴가요(웃음)? 그만큼 잠이 중요해서, 하루라도 설친 날은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최대한 쉬어 주려고 해요.
자리에 누웠는데도 눈이 말똥말똥 떠지는 밤은 어떻게 보내나요?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맨발로 걸은 날은 잠을 잘 자는 것 같아요. 발로 흙이나 모래를 밟는 걸 ‘어싱Earthing’이라고 하는데 피곤함도 옅어지고 땅의 에너지가 전해지거든요. 여름에는 바닷물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히말라야 소금을 넣고 몸을 담가요. 흙과 물이라는 원소들로 모든 것이 정화되는 걸 상상하면서요. 우리의 뇌는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상상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재생되고 있을 때 최대한 그 비디오를 끌 수 있는 편안함을 주어야 해요.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무엇이든 거스르는 마음 없이 자연스럽게 삶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더위나 추위도, 감정과 상황도 전부 자연스레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올여름은 무더웠던 터라 작정하고 바다에 자주 갔어요. 바다에는 언제나 친구들도 있거든요. 가끔 더운데 뭘 그렇게 아끼느라 에어컨도 안 트냐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몸을 계절에 맞추는 것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거예요. 더운 것도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거라는 걸 알기에 이 계절이 오히려 특권처럼 느껴졌어요. 삶에 주어진 것들을 좋다 나쁘다 판단 없이 느껴보는 것, 그것이 저한테 요가예요. 보세요,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죠?
그러게요. 여름도 슬슬 막을 내려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올여름날의 추억을 들려주실래요?
올여름은 참 재미있었어요. 장거리 연애 중인 남자 친구가 프랑스에서 와서 함께 보냈거든요. 알뜰한 연인은 냉장고 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을 준비해 주었어요. 텐트 하나를 사서 동쪽 바다, 서쪽 바다로 캠핑을 갔던 것도 좋은 추억이에요.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난히 더 까매졌는데, 거울을 잘 보지 않아서 제 얼굴에 얼마나 많은 잡티가 있는지 몰라요. 서귀포로 이사 오고 나니 함덕, 김녕 바다 같은 동쪽의 매력이 보여서 한 시간씩 운전해서 가보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이렇게 동쪽에 자주 올 거면 왜 서귀포로 이사 갔냐고 놀리지만요(웃음).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추억이네요. 차근차근 맞이하게 될 가을과 겨울은 어떻게 보내실 예정인가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에메랄드 빛 바다도, 일출도 일몰도 안 보이지만 대신 한라산이 엄청 크게 보여요. 한라산이 얼마나 장엄한지 항상 감탄해요. 선선한 계절이 오면 한라산에 오르고 함양으로 이사 간 친구네도 갔다가, 온갖 나물이 모인 사찰 음식도 먹고 싶어요. 사실 추위에 민감해서 추워지면 외출 대신 뜨끈한 방 안에만 있어요. 그러다 완벽한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라로 피신할 지도 몰라요. 아직 행선지는 없지만 그 전까지 모든 세포에 태양을 가득 충전해 둘 거예요
에디터 이명주
사진 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