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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ROUND : 누군가를 위한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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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한
독백
어라운드 식구들에게 영화소개를 부탁했다. 그들은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적었다. 대부분 모르는 영화였고, 그 대사들은 특정한 대상이 없었음에도 어느 흔한 유행가가 그랬듯 내게 전하는 말 같았다.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1988
이혜인
요정이라고 믿을 수 없는 퉁퉁하고 둔한 몸으로 잠만 자던, 처음 보는 꼬마 메이를 아픈 엄마대신 안아준 토토로는 그런 것들이 생의 전부인 듯 늘 숲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숲의 정령으로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다. 말을 하지 못하고 으아아- 같은 소리밖에 못 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아닌 토토로에게 의지한다.
‘엄마,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신기한 일들로 즐거운 하루였어요. 토토로가 준 선물도 멋졌답니다. 대나무 잎으로 싸서 용수염으로 묶은 꾸러미였죠. 집에 돌아와 풀어봤더니 나무열매가 나왔죠.’
비오는 날 자신에게 우산을 빌려준 사츠키가 고마웠던 건지, 토토로는 선물을 건낸다. 하룻밤 사이에 커다랗게 숲을 만들어버린 씨앗이었다. 숲을 지키는 토토로에게도 소중한 씨앗이었을 것이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잊고 있었던 것, 느끼지 못했던 것,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건 지금도 존재한다고 마음속 깊이 믿으며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토토로의 존재를 믿는다. 그 푹신한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때가 있으니깐. 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 남을 경계하고, 소중한 걸 함께 나누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린아이들이 믿을 법한 세계로 도망치는 것 같아 가끔 겁이 난다. 겁쟁이 어른들에게 보이지 않는 토토로를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메이가 부러울 뿐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2003
박소언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21살 즈음이었고, 그 후로 두세 번 더 보았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슬픈 마음은 처음과 꼭 같았다. 기사를 이유로 다시 한 번 조제를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담담했다. 여러번 본 탓에 지루해 진 것은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가, 물고기 호텔에서 조제가 츠네오에게 했던 말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할까.
“그곳이 옛날에 내가 있었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너무도 고요해. 하지만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그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둘은 이별한다. 그리고 조제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하지만 츠네오를 만나기 전, 유모차 안에 숨어 있던 조제는 이제 없다. 그녀의 말처럼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기 위해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쳐 올라왔고, 츠네오가 사라졌다고 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끝나버린 일이더라도 그 자리에는 남겨진 것들이 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차를 마셔도 그 이전의 내가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은 헤엄치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고, 두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지 않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싶은 것
권효, 2012
전진우
얼마 전 보게 된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위안부 생존자인 심달연 할머니가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그림책 『꽃 할머니』의 제작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의 내용 중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한국과 중국의 작가에게 그림책을 제작하자고 먼저 제안했던 쪽이 일본의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국의 과거사를 부끄럽게 여기며 직접 한국에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림책이 세 국가에서 출판될 수 있게 돕는다. 그 중 한 여성 작가 하마다 게이코 씨는 심달연 할머니 댁에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서로 대화하고, 웃고, 바라보던 중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할머니 앞에서 게이코 씨는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 그녀를 감싸 안아주는 여자(사진의 가운데)는 『꽃 할머니』를 그리고 쓴 권윤덕 씨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먹이는 게이코 씨를 말없이 안아 준다. 그리고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달연 할머니는 게이코 씨에게 말한다.
“딸 같다 그래. 아이고 딸이 있으면 이래 울겠네.”
일본군에게 수차례 성폭행 당한, 그녀의 1차적인 아픔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나는 그녀가 꺼낸 ‘내 딸’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먹먹해 졌다. 그녀가 전쟁 중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고 슬퍼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 삶은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결코 끝나지 않던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 말이다. 고국에 겨우 돌아와서 고지식한 당대의 사람들에게 ‘더러운 여자’ 취급을 받으며 평생 살아 온 그녀는, 지금은 나 같은 젊은 사람에게조차 속 깊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와 그림책은 일본에게만 죄를 묻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그녀의 딸이었음을, 그리고 그녀도 누군가의 아름다운 꽃이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빨간 가을, 내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들꽃들을 그녀에게 바치고 싶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얀 사뮤엘, 2003
황지현
10월이 시작 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저런 공휴일들도 지나고 어느덧 10월 중순이다. 열두 장의 달력 중 이제 남은 건 딱 두 장뿐인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모든 일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에 나온 대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와닿는 날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기판은 210까지 있지만 60으로 밖에 달릴 수 없는 것.”
책임이라는 단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나는 프랑스 영화 특유의 엉뚱함과 감성 코드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장난과 내기로 전개되는데 그 안에 사랑, 질투, 집착, 위로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 모든 장난도 결국 서로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아직 나는 60킬로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달려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한 해 남들보다 부지런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 탄 소년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2011
전하나
“시릴이에요. 아빠를 찾아요.“
감독인 다르덴 형제의 일본방문 중, 아빠가 자신을 찾으러 오길 기다리는 어느 고아원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만들어진 영화이다.
“아빠는 완전히 떠났어. 받아들여.”
11살짜리 소년에게 처해진 현실이 가엾고 또 화가 나고, 그 아이의 담담한 태도를 지켜보고 있자니 밀려오는 그 먹먹함을 겨우 참아내며 봐야만 했다. 실은 어떠한 끔찍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유쾌한 영화가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구태여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당신도 자전거 탄 소년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언젠가 당신이 또 다른 시릴을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만다 아줌마가 되어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마이클베이, 2009
오진영
어렸을 때 본 유치한 만화에도 클리셰가 존재한다. 남자아이들이 열광했던 만화를 보면 로봇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예를 들면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세라가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되었던 과정처럼 말이다. 그렇게 난 나이를 웬만큼 먹고도 얌전하고 다소곳한 것을 싫어하는 털털한 여성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 트랜스포머2를 보게 되었고, 차가 변신할 때마다 기계처럼 입을 벌려 감탄사를 뱉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렇다고 폭탄만 팡팡 터지는 액션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래 전에 잊혀졌던 역사로 인해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우리의 과거가 언제나 기억되게끔, 이 메세지를 보내는 바이다. 그 기억 속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므로.”
영화 마지막에 옵티머스 프라임의 독백은 진한 여운을 주었다. 상영관에서 나오자마자 친구의 어깨를 흔들며 대. 단. 한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나치게 몰입했던 걸까? 본가에 있는 내 차가 변신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됐다. 뭐, 그래 봤자 내 거는 경차라 아주 귀엽고 힘 없는 로봇이겠지만, 한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왜 이렇게 밥을 많이 먹냐고, 너의 밥값이 인간의 밥값보다 더한 것을 진정 아느냐고.
에디터 이혜인
글·사진 이혜인·박소언·전진우·황지현·전하나·오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