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대화하는 시장

마르쉐@

농부와
대화하는 시장
마르쉐@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는 말할 일이 없다. 진열된 상품은 포장재 안으로 비치는 모습, 혹은 뒷면에 적힌 정보들로 일방적인 말을 건넨다. 눈으로 글을 훑는 동안 어떤 정보는 전달되고 또 전달되지 않는다. 재료에 담긴 이야기와 생산 과정이 생략된 채로 온 재료들이 식탁에 오른다. 그 식탁에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농부시장 마르쉐@에 가면 농부의 농작물이 가진 기억을 묻고 답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내가 지갑을 여는 일로부터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좋아하는 서울의 풍경을 한 가지 꼽으라면, 적당히 높은 건물에서 바라보는 옥상이 떠오른다. 채워진 곳보다 빈 곳이 많고 평상이 있거나 빨래가 널려 있는 곳. 화분에 꽃과 식물을 기르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 곳. 농부시장인 마르쉐@는 옥상 텃밭으로부터 시작됐다. ‘마르쉐@친구들’의 이보은 기획자에게 텃밭을 가꾸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 그녀는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 사대강 사업을 지켜보며 느꼈던 무력감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물을 ‘내가 마시는 물’이라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사람들에게 있다면, 강에 보를 설치하고 운하를 만들고 배를 띄우는 그런 상상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텃밭을 가꾸게 됐죠.”

그녀는 옥상 텃밭을 가꾸며 도시의 속도와는 다른 작물의 속도와 시간을 지켜봤다. 함께했던 사람들은 작은 옥상에서 작물을 기르며 ‘다른 방식의 삶’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중에는 귀촌해 농사를 짓거나, 농사를 가르치는 선생이 된 사람도 있다. 무언가를 길러내는 경험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녀와 친구들은 농부시장 마르쉐@를 열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아는 것, 내가 무엇을 쓰는지 아는 것, 내가 지갑을 여는 것에서부터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마르쉐@의 시작이었어요.”

반복적인 일상을 만드는
농부시장

2012년에 시작된 마르쉐@는 2014년 8월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시장’에서 ‘농부시장Farmer’s Market’으로 시장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출점자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농農’이 중심에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농부시장은 일반적으로 수공예시장이나 벼룩시장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밭에서 나온 농부의 작물은 판매되지 못하면 바로 손실로 이어진다. 재고에 대한 부담이 크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공예품보다 눈길을 끌기 쉽지 않다. 해외의 농부시장을 살펴보면 그러한 이유로 수공예가의 비율이 10~20퍼센트가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먹을 것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장보기는 일상이고, 장터는 농부들의 삶이 달린 곳이다. 그래서 농부시장인 마르쉐@에서는 무엇보다 반복적인 일상을 기획하는 일, 즉 같은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시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시장을 열고 접는 일 말이다. “마르쉐@를 진행하다 보면 ‘장보기가 일상’이라는 생각이 부족해 벌어지는 문제들이 많아요. 원래 진행하던 장소에서 다른 이벤트가 생기면 갑자기 새로운 장소를 알아봐야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시장이 멈춘다고 ‘닭아, 알을 낳지 말아라. 나무야, 열매를 맺지 말아라.’ 말할 수 없거든요.”

당신의 파스타에는
왜 시금치가 뿌리째 들어가 있나요

마르쉐@에 참가하는 농부들은 다품종 소량생산 농부들이다. 그것은 다양한 작물을 기른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유통 시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생협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하우스 몇 동에 걸쳐 한 가지 작물을 재배해야만 한다. 마르쉐@에 참여하는 농가 중에는 한 삼백 평 남짓한 텃밭에서 백 가지 이상의 농작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상품을 구매하는 것 외에 농부를 도울 방법을 묻자 이보은 기획자는 잎과 뿌리를 달고 흙이 묻은 당근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당근은 입과 뿌리가 모두 잘리고 깨끗이 비닐 포장된 모습이었다.

“한겨울에 마르쉐@를 연 적이 있었어요. 날씨가 안 좋아 모두 힘들어했는데, 참가한 한 요리사가 굉장히 즐거워하는 거예요.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했더니 자기가 오늘 처음 질문을 받았대요. 왜 당신의 파스타에는 시금치가 뿌리까지 있냐고요. 그 요리사는 건강한 시금치를 찾아 농장에 가서 직접 받아왔어요. 시금치의 영양을 자신의 접시에 다 담고 싶어서 뿌리째 넣었죠. 그래서 그 질문을 손님이 해줬을 때, 정말 기뻤대요. 마르쉐@에 와서 농부와 요리사에게 질문해주는 것. 그 자체가 서로에게 굉장히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농부와 요리사,
그리고 수공예가

마르쉐@는 연초마다 운영위원이 모여 모임을 연다. 일 년 동안 시장에서 풀어갈 전체적인 주제의 골격을 짠 후 기획의도가 담긴 편지를 출점팀에 보낸다. 그중에서 출점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씨앗’, ‘열매’, ‘알곡’, ‘밀과 보리’, ‘발효’ 등 주제에 맞는 기획을 시작한다.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와 요리사, 수공예가와 농부가 같이 만나면서 생기는 변화가 정말 많아요. 이번 달에 토종을 주제로 기획을 해보자고 제안하면 요리사들이 토종 농사를 짓는 농부를 만나 지금 이 계절에 나오는 토종 재료를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있는지 직접 묻고 공부하죠.

‘자광도쌀’, ‘조동지쌀’처럼 이름도 낯선 쌀로 커리, 샐러드, 그래놀라를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만든 음식은 마르쉐@에서 판매된다. 요리사는 자신이 내놓은 접시를 설명할 때 어느 농부가 키운 작물인지 함께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농부의 작물을 구매하기도 한다. 농부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소비의 모습이다.

관계를 디자인하는
마르쉐@의 몇 가지 규칙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효율성과 가치들을 따지게 되지만, 그런 물질적 욕망을 살짝 뒤로 미룰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미의식이 아닐까요? 마르쉐@는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시장은 아니에요. 다만 삶을 잘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죠. 농작물을 빡빡 씻어서 잎과 뿌리를 자른 채 포장하지 않고 온전히 그대로 펼쳐놓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거든요. 시장에서 일회용 그릇을 쓰지 않는 것도 다른 그릇이 더 아름다워서 아니라, 시장에서 나누는 대화가 즐겁기 위해 옆에서 쓰레기가 넘쳐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런 게 저희가 생각하는 미의식인 것 같아요.”

일회용기 대신
자신의 컵과 그릇, 바구니를

마르쉐@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한다. 자신의 컵과 그릇, 바구니를 가져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준비를 못 했다면 보증금을 내고 그릇을 빌릴 수 있다. 그릇을 돌려주면서 판매자를 한 번 더 만나 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는 일은 꽤 즐거운 경험이다.

일 년에 한 번,
출점자가 자원봉사자로

출점자들의 참여 조건에는 일 년에 한 번 자원봉사자로 시장에 참여한다는 약속이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출점자들은 마르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참여와 수고로 이루어지는지 경험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긴 대화 끝에
만나는 출점자

마르쉐@에 출점자로 참여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우선 마르쉐@에 참여 메일을 보내면 기획자들이 검토 후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좋은 기획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르쉐@에서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낸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생산자가 얼마나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지’이다.

마르쉐@에서 장보기

01 꽃비원 | 주키니 1개 2천원

‘내가 먹은 것이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부부가 천천히 작물을 가꿔 나가는 농장이다. 2주에 한 번 받는 꽃비원 꾸러미, 직접 키운 작물로 운영하는 꽃비원 키친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02 준혁이네 | 적양파 6개 4천원

첫 번째 마르쉐@부터 함께 해온 농부로 남양주에서 130종류의 작물을 재배한다. 유기 종자를 직접 받고 순환 유기재배를 지향하는 농장이다.

03 그래도팜 | 유기농 대추방울토마토(그래도, 기토) 8천원

유기농 재배를 30년간 이어온 농장으로 맛, 식감, 고유의 향과 저장성을 갖춘 대추방울토마토가 대표 상품이다.

04 텃골팜 | 구운 유정란 5알 3천원

텃골팜은 동물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에서 재배된 신선한 채소와 들풀을 먹여서 기른 자연양계 유정란을 생산한다.

05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 농부의 호밀다발 2천원, 마늘쫑 한 다발 2천원

고양시 도심과 인근 지역에서 유기순환 농법을 실천하는 농부들의 시민단체다. 무농약, 무화학비료, 무비닐 등 자연순환형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06 Casa d’assisi | 피노키오 살라미 2줄 1만9천원

구례에서 이탈리아 정통 살라미를 만든다. 

07 마을에빵 | 오디농가밀 천연발효빵 100g 2천원, 하나meal된장딥 1만원 

마을에빵은 모인 사람들이 직접 가르치고 배우는 우리밀빵 작업실이다. 교실이자 놀이터, 쉼터이자 연구실이 되길 바라며 홈베이커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다.

08 정선에서 | 7년생 명이나물 장아찌 1만6천원

정선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저염 간장으로 담근 장아찌를 판매한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다. 고등학교를 나온 후로 죽 농부로 살며 평생 주변 마을의 논과 밭을 가꿨다. 해마다 뿌린 볍씨와, 그 쌀로 밥상을 차린 수많은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아득한 기분마저 든다. 밥을 지으면서 나는 나의 농부가 보내온 네 번의 계절을 생각한다. 봄이면 들에 초록을, 가을이면 금빛을 길러내는 그의 손을 떠올린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 속에서 이런 과정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농부가 길러내는 계절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마주 앉아 조금 더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 바람, 들, 모판, 저수지, 씨앗, 볕과 그늘, 흙, 열매…. 땅에서 농부로, 농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식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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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