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로부터 배운 것

사과가 가르쳐 준 것,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LEARNING
FROM FARMERS

《사과가 가르쳐 준 것》,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농부로부터 배운 것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드디어 씨앗을 뿌릴 계절이 왔다. 내 손으로 내가 먹을 것을 기른다는 비할 데 없이 큰 기쁨과 자부심 말고도 농사가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 있다.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봄은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2년 전부터 5평 남짓한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있다. 텃밭을 갖는 것은 오래전부터의 꿈이었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히 ‘죽음의 손’이라 불릴 정도로 식물을 기르는 데는 천부적으로 재능이 없다. 화분이란 화분은 내 손에만 들어오면 다 시들고 말라죽었다. 그런 내가 농사라는 걸 지을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땅은 너그러웠다. 화분 안 손바닥만한 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씨만 뿌리면 나처럼 게으르고 재능 없는 초짜 농부의 밭에서도 싹이 트고 잎이 커지고 열매가 달린다. 거의 기적 같았다. 이제 나는 3년 차 텃밭 농부다. 그래 봤자 여전히 초짜지만 최소한 감자는 싹이 달린 씨감자를 심어야 나고, 고구마는 줄기를 심어야 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는 매일같이 밭에 들러 싹이 났나 안 났나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느라 바빴다. 꼬물꼬물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을 때는 첫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봤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고, 놀랍고, 뿌듯했다.

지금 나는 때맞춰 대충 씨만 뿌려놓고 내킬 때만 밭에 가서 들여다보는 게으른 농부다. 물은 거의 주지 않는다. 비가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을 자주 주면 식물은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다. 애써 땅속 깊숙이까지 물을 찾아 내려가지 않아도 계속해서 먹을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을 자주 주지 않을 때 식물은 알아서 깊고 튼튼한 뿌리를 내린다. 잡초도 잘 뽑아주지 않는다. 잡초를 그대로 두면 수확량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땅은 더 건강해질 것이라 믿어서다. 잡초와 채소가 공존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사실 다 핑계고 귀찮아서 그러는 거다.

맛에 대해서 말하자면, 텃밭에서 자란 채소는 정말 맛이 좋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때가 많다. 양은 말할 것도 없다. 씨앗 몇 톨만 뿌리면 한 철 내내 4인 가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놔둬봤자 썩어서 버릴 것이기에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나눠 준다. 봄에는 각종 잎채소가 나오고 여름에는 감자와 토마토가 나온다. 가을에는 고구마가 나오고 겨울에는 배추가 나온다. 5평 텃밭 덕분에 나는 부자가 된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유기농 그런 거 관심 없어.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그런 것 갖고 유난 떨기 싫어.” 그 친구가 모르는 게 있다. 나는 먹는 걸로 유난 떠느라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다. 그냥 농사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짓는 거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그냥 마트에서 사 먹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편하기도 할 거다. 그런데 마트에서 카트를 미는 것보다 허리를 굽혀 농사를 짓는 게 훨씬 즐겁다. 

도시에 살면서도 삶은 거칠었고 마음이 힘들고 지친 가운데 찾은 그 곳에서 나는 내 팔다리가 옷을 입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떻게 이런 걸 잊고 지냈지?’ 하며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사람처럼 덤볐다. 몸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느라 매일 온몸이 쑤시고 욱신거렸지만, 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지친 마음과 혼란스러운 정신이 오히려 쉬고 있는 걸 느꼈다. 생각들로 과부화되지 않게 알아서 내려가는 ‘두꺼비집의 고민차단기’라도 있는 것처럼. 그동안 생각들이 걸러지지도 않은 채 이리저리 한 콘센트에 꽂혀 위험천만한 줄 알면서도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전원이 내려가버려 어쩔 수 없이 촛불을 켰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처럼, 밭일은 참 이상하리만치 행복한 노동이었다. 

– 강은경,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중에서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는 영국으로 유학을 간 한 여학생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농장 생활을 하면서 쓴 산문집이다. 그녀의 말대로 흙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호미를 들고 쪼그려 앉아 흙을 파헤치다 보면 몸은 안 쑤시는 데가 없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제의 억울했던 일들, 오늘의 괴로웠던 일들, 내일의 걱정거리들로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하지만 농사가 요리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은 이게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동안 나는 흙과 햇살과 비와 바람과 씨앗과 한 팀이 된다. 어느 하나 빠져서는 안 되는 환상의 팀이다. 우리는 서로를 도와줘야 하고, 북돋아줘야 하며, 기다려줘야 한다. 나는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가 아니다. 

인간이 괴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렇게나 노력하는 이유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이 세상에서 어쨌거나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자연과 가까운 일을 하고 하나의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달리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그냥 그게 이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의미 같은 건 찾지 않아도 좋을 기분이기도 하다. TV를 보면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쇼핑을 하면서 시름과 외로움과 공허함을 잊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다. 사실 가격 대비 효용은 최고에 가깝다. 

휴대전화도 쓰지 않고 현금인출기도 평생 써본 적 없는 투스가 쓰는 이 쪽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편리하고 정확하며, 자연스럽고도 다정하다. ‘안녕, 제비’로 시작해서 ‘고마워, 투스로부터’로 끝나는 이 쪽지에는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도 전해야 할 것들이 있고 일상의 아름다움조차 묻어난다. 나는 투스의 쪽지에서 어떤 우아함을 느낀다. 마치 닮고 싶은 멋진 멘토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인턴의 기분이랄까. 시간이 흘러 이 멋진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사람처럼 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벌써부터 드는 것이다. 

– 강은경,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중에서

강은경이 일했던 농장의 주인은 투스라는 아주머니다. 농사를 너무나 사랑하는 투스는 언젠가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자신의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경으로서의 자연만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도 충실하게 자라온’ 사람인 것만 같다. ‘부자연스럽거나 가짜의 범주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날카롭게 포착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자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자연이, 농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른다. 무척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아,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구나, 싶던 시절이었다. 그때 읽었던 책이 기무라 아키노리가 쓴 <사과가 가르쳐준 것>이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책이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일본 아오모리 현의 사과 농부다. 그는 세계 최초로 비료도 퇴비도 주지 않은 자연재배 농법으로 썩지 않는 사과를 재배한 사람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과는 농약 없이는 절대 키울 수 없는 작물이었다고 한다. 그가 농약 안 친 사과를 재배하기에 성공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의 과수원에서는 단 한 알의 사과도 나지 않았다. 그는 10년 동안 동네 사람들에게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세 딸아이가 지우개 하나를 셋으로 나눠 써야 할 정도로 가세는 형편없이 기울어 굶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했다. 결국 농사를 짓지 않을 때는 생계를 위해 화장실 청소, 파친코 점원, 홋카이도의 벌목공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무슨 짓을 해도 사과가 달리지 않자 그는 결국 죽기 위해 밧줄을 들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나무에 목을 매려다 밧줄을 놓친 순간 바로 옆 비료도 퇴비도 없이 멋지게 자란 참나무를 발견했다. 그는 깨달았다. 이거다. 흙이 문제다. 과수원의 흙을 산의 흙처럼 기름지게 만들면 사과나무가 혼자서 자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가족이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농약으로 이마를 찡그리는 일 없이, 날마다 논밭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여기까지 왔다. 기적은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하나씩 벽을 넘고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다시 새로운 벽이 나타난다. 어떻게 하면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혜를 짜내는 데 인생의 의미가 있다. 밑바닥을 헤매는 가난 속에도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파란만장한 인생이 됐습니다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기무라 아키노리, 《사과가 가르쳐준 것》 중에서

그는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매일매일 벌레와의 전쟁을 치렀다. 하루 종일 과수원에 앉아 흙만 들여다보던 나날들도 있었다고 했다. 책이란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복사할 돈이 없어 이면지 뒤편에 글을 베껴 쓰기도 했다. 그는 어둠 속을 더듬어가는 맹인처럼 그 시절을 헤쳐 나왔다. 그리고 10년 만에 그의 사과나무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났다. 도대체 10년 동안 결실도 없는 일을 계속하려면 얼마나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 어머니는 달랐다.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믿는 길을 가라. 그러면 된다”고 말했다. 구시대 사람으로, 학교도 변변히 다닌 적 없는 분이 금과옥조 같은 말을 했다. 

“가난해도 좋으니 길가의 돌과 같이 살아라.” 

-기무라 아키노리, 《사과가 가르쳐준 것》 중에서

길가의 돌과 같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이 얘기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광활한 하늘에 점 하나를 찍고 거기서 스스로를 묵묵히 울리며 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저마다 전혀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살다가 어느 접점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면 파장을 일으키며 반응하지만 애초에 같은 선 위에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아름답게 스치고 부빌 뿐 서로를 소모하지 않는다. 

– 강은경,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중에서

그가 돌본 사과나무들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사과를 낳았다. 당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았고, 혼자 서는 힘을 터득한 나무들은 주위 과수원들이 태풍에 초토화돼도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 그는 겨우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뼈를 깎는 고통 끝에 얻은 노하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남들은 자신만큼 힘든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대단한 것은, 단지 그가 10년의 노력 끝에 성공을 이뤄냈기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그가 아름답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밤 세계의 술장사를 천하게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뛰어들어 직접 겪어보니, 일에는 좋고 나쁜 일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일에는 귀천이 없단다. 열심히 해라.”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깨쳐갔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좋지 않으냐라고. 그러자면 허영심을 버려야 했다. 허영심만 버리면, 사람들이 저놈은 파산자라느니 밥벌레라느니 온갖 욕을 하더라도 더 떨어질 곳이 없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  

-기무라 아키노리, 《사과가 가르쳐준 것》 중에서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낼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내는 데도 엄청나게 굳은 결심과 끝없는 다독임이 필요하다. 남들에게 부탁하는 건 부끄러우니까, 그럴 때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묵묵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고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고민들을 이 세상의 누군가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외로움이 덜해진다. 용기가 난다.

내가 생각하던 농장의 목가적 삶이란 자연을 가까이 두고 기본에 충실하게 살면서 덜 소비하면서도 더 누리고, 느리지만 분명한 목적으로 사는, 자연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었다. 그랬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케이크를 싸고 있는 다디단 생크림 같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손가락으로 몇 번 찍어 먹어보고 반해버린 케이크의 그 부드러운 생크림 안에는 케이크를 케이크가 되게 하는 ‘빵’이 있었음에 놀랐다. 그걸 깨닫게 되기까지 거의 네 번의 계절을 보냈다. 투스도 그때의 나를 보며 ‘어떻게 빵 없이 케이크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생크림 없는 케이크는 그래도 케이크지만 생크림만 가지고는 케이크를 만들 수 없다. 

– 강은경,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중에서

사실 내가 짓는 농사는 허리가 휘도록 밭을 일구는 진짜 농부들의 일에 비한다면 애들 소꿉장난 수준이다. 농사에 환상을 품고 있는 이유는 농촌에 살아본 적도, 농사를 짓는 가족도 없기 때문일 거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프로 농부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가진 농부들을 동경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을 동경한다. 세상이 굴러가는 데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물건을 억지로 만들고 파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장 가까운 일을 하는 농부들을 동경한다. 순진한 착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발아래만 보면서 살았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후로 나 자신이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자 조바심이 덜어졌다. 씨를 뿌리면 무조건 기다려야 싹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원하기도 전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잎과 열매는 실할지 몰라도 뿌리는 약해진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들에게도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은 욕심을 참고 참는다. 어디 가서도 밭 한 뙈기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 식으로 어른은 튼튼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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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사진 김이경, 구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