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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BOM
정확한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닌데도 어떤 노래는 이상적이다. 노래가 우리에게 묻기 때문에 그렇다. 거기까지 가는 이유가 뭐냐고, 어떤 식으로 갈 예정이냐고. 한때 고민하다가 들판에 놓고 돌아선 질문들을 노래는 다시 가져다준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질문이 찾아왔다는 것은 봄처럼 기쁜 일이 아닐까. 지금 소개하는 곡을 들으면 문득 많은 사람들 사이에(혹은 숲속에) 서있는 내가 보인다.
봄 Bom
00:05:22
둥지 잃은 새의 울음소리
Silence! One day you will come and I will come
허공의 음표 되어 알리네
Silence! One day we will find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무심하게 지나쳐 온 너의 노래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어느 누군가 멀리 있는 봄
It’s between us
홀로 남은 새의 울음소리
Silence! One day we will find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무심하게 지나쳐 온 너의 노래
우리는 왜 서로에게 숲이 아닌가
어느 누군가 멀리 있는 봄
It’s between us
2010년 10월에 첫 번째 EP앨범, [36.5°]를 발매한 그녀는 1년 뒤 또 다른 EP [Morning]을, 이듬해에는 디지털 싱글 [My Christmas Is You]를 발매한다. 작년에 나온 세 번째 앨범 [Real]과 재발매한 1집까지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냈다.지금 소개하는 곡은 최근 앨범 [Real]의 1번 트랙이다.
어떻게 만들어진 노랜가요?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조금씩 살을 붙여 만든 노래에요. 많은 뮤지션 분들이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처음엔 간단한 멜로디만 가지고 있었고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갔어요. 가사를 쓰게 된 건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어요.
환경과 관련된 노래라고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우리는 왜 서로에게 숲이 아닌가’라는 가사를 듣고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관한 아쉬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것도 맞아요. 책을 읽고서 저는 인간을 유일무이한 가치로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며, 의지에 따라 세상을 조작 가능하다고 믿는 어떤 가치관에 비판적 사고가 깊어졌어요.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새삼 되짚게 됐고요. 함께 살아가는 풍경과 소통에 관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생각하고 있는 주제니까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노래에 담기지 않았을까요?
봄이라는 제목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수가 긍정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봄이 이 곡에서는 ‘어느 누군가 멀리 있는 봄’이잖아요.
한 단어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지금보다 많아지길 항상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당장 더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 제목 ‘봄’은 책 제목에 있는 그 봄이고, 가사에 나오는 새도 이제는 사라져서 울지 않는다는 자연 속의 새예요. (표지를 가리키며)책 표지에 있는 이 새요(웃음). 책을 읽고서 참 많은 생각을 하던 기억이 나요.
돌려 말하지 않아서 훨씬 좋아요. 그런데 어쨌든 두툼한 책을 읽고, 노래도 완성했잖아요. 자연과 관련된 노래를 만들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저는 특히 ‘성장통’에 관한 노래를 많이 만들었어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봄’이나 ‘Beautiful As You Are’ 같은 노래에서는 주변을 향하고 있어요. 소중하게 여겼던 장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 자연 같은 것들이요.
가사에 자주 나오는 숲은 고은 씨에게 어떤 의미에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도시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이상적인 공간과 거리가 멀었어요.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기다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개입하며 시간을 단축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자연도 인간의 조작 가능한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삶의 풍경은 예전에 비해 야위어 가요. 많은 것들의 가치가 가벼워지고, 여유를 잃은 삶의 중심도 흔들리게 되고요. 그런데 숲은 그렇지 않아요. 각자의 거리를 지키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처럼 보이죠. 서로의 영역들을 지키고 조율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낮과 밤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간이에요. 숲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룰을 따라요. 자연스럽다는 말은 단지 느리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 각자 자신의 속도와 방식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요.
이 곡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사에 대해 얘기해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지, 도대체 숲이 된다는 게 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다들 그 말을 되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쩌면 중요한 단어는 ‘왜’라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왜 서로에게 숲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대답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모두 막연하게나마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규식 작가님의 ‘송곳’이라는 웹툰이 있는데 그 만화에는 좋은 답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악순환 구조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요. 저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이런 가사를 쓰고 있는 거죠. 어쩔 수 없는 일일지라도 거기에 대해 “왜 그렇게 할 수 없는 걸까?”라고 묻는 일은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그 전에 저 자신을 검열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브레멘에서 녹음했다고 적혀 있어요.
네, 2013년 초에 독일에 있는 음악네트워크 ‘송스 앤 위스퍼스Songs & Whispers’의 초대를 받아 유럽 투어 공연을 하게 됐어요. 한 달 정도 매일 쉬지 않고 작은 공연을 했는데, 일정을 마친 뒤에 송스 앤 위스퍼스가 가지고 있는 시설을 이용해 이 곡을 녹음할 수 있었어요.
다른 곡은 대부분 영어가사로 돼 있던데, 이유가 있나요?
언어는 제게 감정을 숨기는 장치였어요.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노래 부른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내게 씌우는 가면이었고, 가면 뒤는 아무런 방해 없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영어가사 덕분에 브레멘에 초대된 일은 신기한 일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앞으로도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될까요? 고은 씨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해요.
저는 김소연 시인을 참 좋아해요. 지금은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시집을 읽고서 정말 좋아했거든요. 일상을 섬세하게 돌보는데, 그 근본에 따듯함이 있어요. 만나보니 실제 모습이 글과 아주 다르지도 않고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성격상 정확히 이해한대로 가사를 쓰지는 못하지만, 항상 의문을 가진 채로 적어가고, 그걸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스 앤 위스퍼스의 초대로 유럽투어 공연을 하던 그녀는 자신이 노래하는 동안 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정적인 표정은 자신을 긴장하게 한다고, 그때의 기록을 여러 번 말했다. 무대 위 의자를 ‘섬’ 같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기록 중에는 독일 북부의 도시 첼레Chelle에서 지금 소개한 곡, ‘봄’을 부르던 그녀 모습이 담긴 영상도 있는데, 거기서 앞서 말한 ‘얌전한 사람들’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혹시 이 영상을 최근에 다시 본 적 있을까. 어두운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은 꽤나 진지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당사자였던 그녀의 말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저 앉아있을 뿐, 무관심한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고 있을 것 같은, 옆 사람을 갑자기 껴안아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표정이었다.
에디터ㆍ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