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드는 마음

오지은

익숙한 새벽3시

어느 늦은 밤. 특별히 마음 아픈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밤. 왜인지 가슴을 후려치는 이 노래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도대체 ‘새벽 3시’는 그녀에게 어떤 시간이었길래 듣는 사람까지 이렇게 잠 못들 게 하는 걸까. 그녀를 찾아가 물어보고 싶어졌다.

익숙한 새벽3시
00:04:11

거리를 걷고 또 친구를 만나고 많이 웃는 하루를 보내도
오늘도 나는 잠 못 드는 이미 익숙한 새벽 3시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향기의 로션을 천천히 바르고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 나아질까
어제 본 귀여운 남자애 얘기를 잔뜩 들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난 걔를 좋아하지 않아
전화기를 전부 뒤져봐도 딱히 보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지금 누구라도 보고 싶어
거리를 걷고 또 친구를 만나고 많이 웃는 하루를 보내도
오늘도 나는 잠 못 드는 이제 익숙한 새벽 3시
혹시 니가 돌아올지도 모른단 가망 없는 상상을 하지만
그런 일 일어난다고 해도 난 너를 좋아하지 않아

오지은

오지은은 노래를 만들고 가끔 글도 쓰는 사람이다. ‘홍대 마녀’로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했었다. 회사도 없이 혼자 노래를 만들고 CD를 제작해 판매하던 시절, ‘잘은 모르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서’ 앨범을 사준 리스너들 덕분에 지금의 오지은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2007년 정규 앨범이 나왔고, 현재 3집까지 발매했다. 최근 《익숙한 새벽 세시》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는데 초판이 절판될 정도로 작가로서의 면모도 확실히 다지고 있는 중이다.

가사가 익숙한 일상이면서도 ‘그날’만은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 노래를 쓴 날은 어떤 날이었나요?

누군가와 헤어지고 시간이 좀 지나서였어요. 헤어지고 엄청 힘든 시기는 지나서 되게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항상 새벽 3시에는 못 자고 깨어 있었어요. 샤워도 하고 로션도 천천히 바르고 음악도 틀고 전화번호부도 뒤져보고, 그런 걸 제가 매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곡을 쓰게 된 것 같아요. 그 곡을 쓴 것이 2008년이네요. 그런 어렴풋한 기억이 있어요. 제 노래들이 다 연애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죠. 안 좋은 순간에 집중하는 인간이어서요(웃음). 맨 끝에 가사가 ‘혹시 네가 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나오는데.

 

반어법이죠?

맞아요. 역시(웃음)! 근데 멍충이 남자들은 그걸 모르죠. 그냥 아니구나, 생각하잖아요.

 

이번에 창간하신 산문집 제목도 《익숙한 새벽 세시》에요. 노래와 연관이 있나요?

사실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노래를 쓴 것은 2008년이었고, 이 책을 쓴 것은 2014, 2015년이어서요. 제목 후보로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어른 적응기》라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근데 내용을 보면 제가 어른이 되어가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어른이 된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새벽 3시에 익숙하게 깨어있고…. 좀 포괄적으로 생각한 제목인 것 같아요.

 

도대체 ‘새벽 3시’가 지은 씨에게 어떤 시간인지 궁금해요.

되게 재미없게 대답하면 일하기 좋은 시간이죠. 음악 만드는 것도 일이고 글 쓰는 것도 일이잖아요. 막 흥에 겨워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남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만 좋다고 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다만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에요. 근데 이 시간 전에 자야 건강에 좋다면서요(웃음)? 그래서 낮에 작업하는 습관을 많이 들이려고 했어요. 요즘 음악을 다시 시작했는데, 결국 또 밤에 하게 되더라고요.

영감이 떠오르는 시간인가 봐요.

음, 어떤 걸까요. 남과 완전히 차단되는 시간이니까요. 엘리베이터 타고 깊은 곳으로 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1층 로비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북적북적 지내다가, 물론 그것도 너무 좋지만,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엘리베이터 타고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사람인가 봐요.

 

보통 곡을 집에서 쓰시나요?

저는 아무 곳에서 다써요.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있기 때문에, 침대에서 쓸 때가 많아요. 부끄럽게도(웃음).

 

노랫말들이 시 같아요. 아무래도 글쓰기도 좋아하셔서 그런 것 같은데, 가사는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쓰시나요?

1, 2, 3집 때는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적나라하게 작업하는 사람이어서요. 근데 현재는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이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물론 비공식적으로도 하고 싶지 않고요(웃음). 그래서 이 부분이 좀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이야깃거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게 음악이 되고, 글이 되고. 음악이 그렇게 1차원적인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인풋, 아웃풋이 되는 세계 도 있지만 다른 세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최근 작업은 듀엣 작업이라서 약간은 다른 지점에 가게 되요. 팀에 가사와 곡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곡 작업하고 있어요. 내용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 같아요. 가사를 생각해보니 완전히 제 것도, 그렇다고 허구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이네요. 단편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 같아요. 소설의 모든 주인공의 어느 부분은 작가의 분신이잖아요. 그렇게 쓰는 듯해요.

개인 사이트에서 항상 헤어짐과 끝, 어긋남 이런 것들만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부분이 가사에 잘 녹아있는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모든 창작자들은 꽂히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흰색 그림만 그린다든지, 또 어떤 사람은 나무만 그린다든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꽂히는 거요. 그리고 작업을 하다 보면 ‘나는 왜 여기 꽂혀있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 답을 본인도 못 찾을 수도 있고 또 답을 몰라도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희한하게 뭔가 어긋나는 때에 ‘이게 인생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 일이 잘 풀리거나 잘 맞아 돌아가면 약간 불안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곧 망하게 될 거야’라며 생각해요(웃음). 그러다가 망하게 되면 ‘역시!’ 이런 느낌이 들어요. 그때 또 무언가 창작물이 나오고. 아이러니하죠. 뭔가가 잘 맞아 떨어질 때 아름다움을 그리는 분들도 있죠. 그게 각자 창작자로서의 사명감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그게 불편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어딘가를 긁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3집에 수록된 ‘서울살이는’도 좋아해요. 서울 태생이긴 하지만 외국에서 잠시 살았을 적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서 태어나신 거 아니에요?

서울 출신이고, 그 노래는 바르셀로나에서 썼어요.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약간 배신감을 많이 느끼더라고요(웃음). ‘청주 출신인데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힘든 무언가를 쓴 노래’ 이런 걸 기대하신 것 같은데,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도 오래되었고 고시원에서 혼자 살아보기도 했어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느끼는 부분이 비슷한 것 같아요. 서울이라는 도시를 되게 좋아하는데 그 애틋함이 바르셀로나에 지내면서 극에 달한 것 같아요. 문득문득 세종문화회관 계단 같은 곳에 앉아있고 싶고.

그럼 이 노래는 바르셀로나에서 탄생한 거네요?

맞아요.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떤 곳에서 떨어져 있을 때, 그곳에 대한 특성이나 추억을 더 진하게 느낄 수도 있잖아요. 매일매일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새삼 서울에 대해서 노래를 만들 생각조차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서울살이’가 그립더라고요. 그리고 어긋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서울에서 열심히 예쁘게 살아가는 아가씨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애정이 있어요. 솔직히 서울은 너무 빠르고 퇴근 후에 대충 씻고 자게 되니 책을 읽을 시간도, 음악을 들을 시간도 없잖아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뭔가 ‘나’다운 것이 뭘까 생각하면서 새벽 2시까지 안자고 그 시간들을 쪼개어 책도 찾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의미로 예쁘게 살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한, 그들은 저를 몰라도 저는 그들에 대해서 애정이 있어요. 밥 한 끼 못 사주지만(웃음). 아가씨뿐만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요. 그분들이 가끔 제 음악이나 책을 사용해 줄 때 기뻐요.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잘 쓰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 사람들에 대한 송가인 것 같아요. 몽글 몽글 열심히 살고 있는 그런 불빛들이랄까.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뭔가를 붙잡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경의요.

 

인스타그램에 ‘오지은 영상봇’이 있더라고요. 짧게나마 공연 중계를 해주는 것 같아 좋은 것 같아요. 더 많은 영상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네, 올려주신 분 정말 귀여우시더라고요. 모르는 분이에요. 본인도 ‘훗, 날 모르겠지.’ 이런 느낌으로 운영하시는 거 같아요(웃음).

모르는 분이에요? 지인이나 팬 카페에서 운영하는 줄 알았어요.

전 팬 카페가 없어요. 모든 분들이 저와 1:1 관계에요. 모두가 제 홈페이지 방명록에 비밀글을 써요. 그래서 누군가가 물으면 전 팬이 없다고 해요. 그들도 저의 팬이라고 생각 안 할걸요? 당당하게 잘살고 있지만 누군가의 팬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많이 좋아해 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여배우나 아나운서나 이런 분들에게서 많이 연락와요. 가끔 제가 봐도 되게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뭐해?” 라고 연락 오면 되게 자랑하고 싶어져요. ‘나 예쁘고 멋있는 여자들한테 인기 많다.’ 이런 느낌(웃음). 본인이 힘들다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여성들이 제 음악을 많이 들어서 저는 그들을 팬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예전 회사에서 팬 카페를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근데 몇 번을 만들어도 가입을 안 해요 사람들이. 그런데 희한하게 공연을 하면 슬슬 몰려오죠.

 

그게 진짜 신기하게도 위안이 되는 거죠. 밖으로 꺼내놓지는 못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본인 이야기도 잘 못 하는 사람들에게요.

뒤에서 이렇게 제 음악이나 글로 위로를 받고 있다면 정말 뿌듯하죠.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에겐 굉장한 거리감이 있지만 그것이 또 좋아요. 만약 팬으로서 저를 우상으로 생각했다가 저의 성장하는 모습이나 다른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느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관계, ‘아 저 언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드는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섭섭한 적이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기쁨이 되게 커요. 섭섭함이 1이면 기쁨이 99. 왜냐면 결과적으로 많이 들어주는 걸 알고 있어요. 꺼내놓진 않지만요. 되게 까다로운 사람들이고 제가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바로 돌아설 것을 알아요. 좋아요. 이런 관계, 딱 적당한 거리감. 이렇게 쭉 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원래 서양어문학을 하셨고 번역도 하셨잖아요. 책도 2권이나 내시고요. 노래에 대한 갈망만큼 글에 대한 욕심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나서 ‘나는 뭘 하는 사람이고 왜 받아들여졌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저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저희 모두 다 비슷한 사람들이긴 한데, 저는 생각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남들이 시간이 없어서 고민하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대신 고민을 해서 그게 3분짜리 노래든 200페이지짜리 책이든 그렇게 남기는 것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야 할 때가 있고, 글로써 써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표현을 하기 위한 다른 방식인 거네요?

그렇죠. 그런데 글은 음악보다는 트레이닝이 덜 되어서 2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첫 책은 진짜 뭣 모르고 그냥 ‘와~~’ 하면서 날뛰면서 쓴 거죠(웃음). 천방지축의 글이에요. 그때는 무언가를 남긴다는 의무감이 없었어요. 생각도 감성도 샘솟는 시기였거든요. 냄비에서 뭔가 끓어 넘쳐서 주워담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냄비가 끓어 넘치기는커녕 이미 물이 다 증발되어서 타고 있는 상태(웃음). 냄비가 타고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샘솟는 창작자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이 시대의 많은 분들을 보면, 그들도 분명히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넘어갈 때 고민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 고민의 시기는 굉장히 부끄러운 시기라 다들 내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썼어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전혀 확신이 없었지만, 다행히 이미 많은 분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노래와 글,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은 없으세요?

이 질문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동시에는 절대 못 하는 것 같아요. 완전히 쓰는 뇌 근육이 달라요. 음악은 되게 무책임한 마음 같은 것이잖아요. 마음이 되게 흔들려야 하고, 비이성적이고. 인생의 흔들리는 순간이 3~4분에 응축되어 탄생하는 것이 음악이면, 글은 굉장히 이성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밤에 글을 썼는데 다음날 낮에 읽어보면 오글거릴 정도로 감성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막판에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3시간 동안 글을 썼어요. 절에도 들어가고 그랬어요. 108배도 하고(웃음). 모래가 들어있는 병을 막 흔들어서 탁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탁함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면, 글은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서 그것을 정제되게 표현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만약에 음악처럼 비이성적인 것이 200 몇 페이지나 있다고 생각해봐요. 피곤하죠. 같은 것을 전달해도 그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가 발간 하루 만에 매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너무 조금 찍어내서요(웃음). 농담이고요. 저도 놀랐어요. 희망이 없는 책이거든요. 희망이 없는 책이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저의 작은 희망이 있었는데, 정말 감사해요.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말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노력해도 별거 아니니까 힘들면 몸을 아끼고 사려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공감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성숙해야 하지만 사실은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른이 될 때, ‘짠’ 하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라서 쓴 책에 가까워요. 이미 저는 어른이지만, 이렇게 한심한 채인 거죠.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나는 새벽 3시가 익숙하고, 새벽 3시 전에 잘 자는 그런 훌륭한 어른이지 못하지만, 이미 사실은 어른이구나’라는 느낌이랄까요.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는 그저 위장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는 규칙을 알잖아요. 세상 살면서 필요한 규칙. 사람을 만나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날씨 얘기를 한다든가. 이러한 사회적인 룰을 알 뿐이지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과자 먹고 싶고(웃음). 자기 전, 양치를 했는데 군것질하고 싶고 그냥 방학이었으면 좋겠고 누구한테 응석도 부리고 싶고. 이런 마음은 어린아이와 똑같거든요. 어른이라는 게 마치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약간 기술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른들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렇게 안 했을 경우를 너무나 잘아니까. 회사를 안 가고 싶은데 안 가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회사 가기 싫다고 느끼는 그 첫 번째 마음은 별다를 게 없지 않나 생각을 했어요.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통상적으로 나이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직 어려운 그런 사람들이요?

맞아요. 어른이 쉬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아마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나이는 어른이지만 어마어마하게 어린아이 같을 때가 있어요. 토라지기도 하고. 결국은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살면 추한지에 대해서 조금 아니까. 절충하는 것이랄까. 그런데 어른에 대해서 200 몇 페이지나 이야기해 놓고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후배들에게 밥을 사줘야 하는 나이가 어른인가 싶기도 해요(웃음).


책 속에 언급하신 ‘회색의 세계’.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다 회색 속 젖어드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제 서른인데, 얼마 전 회색의 세계 속의 나를 본 것 같기도 해요.

지도 없이 세상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주변에 보이는 모습은 있어요. 서른 즈음에서부터 약간 이상한 징후 같은 것은 있었는데, 일이 바쁘니까 모르고 있다가 3집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끝까지 가보자.’ 했던 것 같아요. 남들은 출근도 해야 하고, 바쁘고, 내일을 위해 잠도 자야 하고. 생각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 맞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글이나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고민을 끝까지 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서야 저는 회색의 세계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조금은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가끔은 선명한 선인장 같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굉장히 선명한 색깔로. 제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회색의 세계에 대해서 꽤나 애정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총천연색의 세계가 아니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에 대해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보여주겠어요. 회색, 30대에게. 공감 못 하실 수도 있어요(웃음).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와서, ‘원펀치’의 서영호 씨와 ‘오지은 서영호’란 듀엣을 시작하셨다고요. 앨범 발매도 하시고요.

음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홍대의 어깨라 불리는 영호 형님과요(웃음). 앨범은 3~4월 중에 보여드리고 싶어요. 추울 때 내고 싶은데, 박차를 가하고는 있지만 음악이라는 것이 잘 나올 때까지 하는 것이라서요. 날짜를 약속하면 거짓말쟁이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추울 때 들으셨으면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집중하고 있습니다.


앨범에 관해 살짝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음악이랑 글을 완전히 분리해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부에서 보면 그렇지가 않나 봐요. 사실 책의 원고를 편집부에 보낸 그날 새벽에 새로운 음악이 나왔거든요. 한 3년정도 곡을 안 쓰다가 희한하게 원고를 보내니까 그 날 곡이 나온 거죠, 웃기게도. 저는 결과물을 보고 스스로를 판단하거든요. ‘내가 요즘 이렇구나.’ 하고요. 마치 오늘 짬뽕이 먹고 싶은 것을 보니, 어제 내가 술을 많이 마셨구나.’ 하는(웃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음악을 봤더니, 노랫말이 ‘꺼내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서 말을 한 거예요. 꺼내지 못했던 마음이라고 작다고 할 순 없잖아요. ‘그 확인도 안 된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회색의 세계인 거죠. ‘회색의 세계가 과연 가치가 없느냐’란 생각이 들면서 거기에 대해서 되게 노래하고 싶어졌나 봐요. 그래서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은 마음’이라는 말을 SNS 메인에 해놨는데 출판사 편집장님이 나중에 그 문구를 보고 책을 잘 설명하는 문구라고 하시더라고요. 놀랐어요. 그래서 결국은 같은 소스에서 음악적으로는 이런 것을, 글로는 이런 것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을 기반으로 작업하신 거군요.

그거를 테마로 서영호 씨에게 제안한 거예요. 당신이 건반을 잘 칠 것 같고 당신의 건반과 이 곡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왜냐면 그가 건반을 되게 사이코패스처럼 쳐요(웃음). 진짜예요. 건반 치는 것을 보면 흘리는 감정이 없어요. 정갈하고 절제된 느낌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그에게 제안을 했죠. 눈에 띄지 않는, 극적이지 않은 회색의 세계에서 낼 수 있는 울림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계획은요?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솔로 앨범을 내실 거죠?

개인 앨범은 언제쯤 낼 수 있을까요? 인생을 3개월 단위로만 생각을 해서요. 가을에는 책을 내는 것만 생각했고 지금은 3~4월에 앨범을 낼 듀엣 프로젝트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 싫어하실 수도 있지만 음악을 하는 것도, 책을 내는 것도, 되게 고생이거든요. 약간 삽질이랑 비슷해요. 여기 있는 것을 저기로 옮기는, 그런 것을 될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 그리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돼요. ‘이게 너 최선이야? 이게 세상에 가치가 있을 것 같아? 자뻑에 하는 거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야단치는 것이 많아서 지쳐요. 

저 같은 경우는 그것을 감안해서라도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고생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이 언제일지 모르겠어요. 만약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정말 마지막인 거죠. 스스로 비정규직 같은 삶이에요. 이러다 무언가 말이 하고 싶어지면 세상에 말을 하겠죠. 그것이 안 받아들여지면 또 타의적인 비정규직 삶이 되겠네요(웃음). 자본주의 시대의 창작자였습니다.

《익숙한 새벽 세시》

 

‘한줌도 되지 않아 꺼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고 하찮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 35살의 오지은의 어른 적응기를 담아냈다. 2년 동안 혼자 헤매다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던 인생의 ‘회색의 세계’에 대해서 당당하게 표현했다. 그녀는 희망이 없는 책이라 말하지만, 30대 여성 혹은 좀 더 일찍 ‘회색의 세계’를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긁어주며 위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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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