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드는 마음

신해경

신해경

담다디

이상의 모든 글 중에서 〈권태〉를 가장 사랑한다. 수필 〈권태〉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의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종종 신해경의 음악을 들으며 우주를 떠올렸다. 방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그의 노래를 틀었다. 이상의 말마따나 그때마다 나의 방은 우주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상한 밤’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담다디
00:03:32

이상한 밤 그대가 다가오네요
병든 내 모습을 봐
가슴이 아파오길 바래요 바래요

외로운 밤 그대의 소식 들어요
매일 깊어진 밤은
그대가 전부인 걸 아나요 아나요

언젠가 그댄 홀로 찾아와
날 반겨주고 날 안아주고
서로를 느껴요

담다디 담 담다디 담
담다디 담 담다디 담

언제든 그대 돌아와요
시간이 우릴 지울 때까지
언제든 그대 돌아와요
시간이 우릴 지울 때까지

지울 수 없어 잊을 수 없어
끝날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잊을 수 없어
끝낼 수 없어

아늑한 밤 언제나 그리워져요
그대가 떠나간 다음
앙상한 추억들만 남아요 남아요

신해경은 2014년 노래 ‘언젠가’로 데뷔했다. 당시 이름은 ‘더 미러The Mirror’였다. 2016년까지 더 미러로 활동하며 다섯 곡의 싱글을 발표했고, 이후 2017년 2월 22일 ‘신해경’이라는 이름으로 첫 EP [나의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신해경이라는 이름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의 본명 ‘해경’에서 왔다. ‘담다디’는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레코딩, 믹스, 프로듀스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내는 신해경이 2018년 4월 4일에 발표한 싱글로, 후에 발매할 정규 앨범의 선공개 곡이다.

‘담다디’라는 제목이 익숙한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이상은 선배님을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이 이상은, 서태지 선배님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담다디’ 가사를 보는데 엄청 슬프더라고요. “그대는 나를 떠나려나요, 내마음 이렇게 슬프게 하고, 그대는 나를 사랑할 수 없나요.” 이런 가사인데요. 그걸 보고 곡에 투영시키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이 정서를 잇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이 노래를 만들기 전부터 이상은 씨의 어떤 걸 가져와 내 곡에 넣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네. 그런 생각을 항상 했는데, ‘담다디’ 가사가 지금 작업 중인 정규 앨범의 스토리라인에 좋은 정서, 힌트를 많이 줬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좀 애매한 게, ‘담다디’가 이상은 선배님이 작사·작곡한 곡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곡이니까요. 어쨌든 그런 순애보를 제 식대로 해석한 게 저의 ‘담다디’예요.

가사에 ‘그’, ‘그녀’가 아닌 ‘그대’가 자주 등장해요.
화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대’라는 표현을 썼어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음악을 듣고 상상하게 되잖아요. ‘아, 어떤 여자가 그렇게 생각했구나.’ 혹은 ‘어떤 남자가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고요. 상상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담다디’ 가사 속 ‘그대’도 특정 인물이 아닌 거죠?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일 수도 있어요. 그냥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겨둔 거예요. ‘담다디’ 가사에 많이 담으려고 한 건 ‘애증’인데요. “이상한 밤 그대가 다가오네요, 병든 내 모습을 봐” 쓰면서도 ‘진짜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되거든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더 티를 내는 거예요. 나 이렇게 힘들다고. 투덜대는 것보다는 밉다고 느낄 정도의, 애증의 느낌까지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진심을 얘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지울 수 없어 잊을 수 없어, 끝날 수 없어”, 이 부분도 이 정도로 직설적으로 가사를 쓰지 않는데, 엄청 솔직해야 하는 구간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고요.

이 구간에서는 이런 감정을 담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하는 거예요?
아, 저도 그게(웃음), 이런 걸 넣어야지,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이러고 곡을 한 20개 버렸어요. 안 되니까요. 그런데 저는,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좀 구겨 맞추려고 꽤 노력을 해요.

솔직한 감정이 담겨서인지 가사가 이전보다 조금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제 개인적인 게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나의 가역반응]을 만들 때도 내 개인적인 성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에 ‘나’는 없고 이 음악은 내가 만들어낸 세계다,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애증이라고 말씀드린 것에 솔직하게 얘기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솔직하게 다 얘기하는 편이거든요.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만 노래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소재를 음악으로 많이 가져오는 것 같아요. 특히 지난 EP에서의 ‘나의 가역반응’이나 ‘화학평형’ 같은 거요. 평소에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런 건 없어요. 대신 누군가를 좋아하면 푹 빠져서 좋아해요. 예를 들어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온종일 그 사람만 찾아봐요. 그러면서 ‘어, 이런 것도 있네.’ 하며 발견하게 되는 거죠.

요즘 새롭게 좋아진 사람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계속 찾아보는 일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케빈 쉴즈의 근황, 서태지, 이상은 선배님의 근황. 그리고 제가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 앨범을 진짜 좋아해요. 그래서 브라이언 윌슨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찾아봐요.

해경 씨의 10대 시절이 궁금해요. 지금의 신해경은 그때 완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맞아요(웃음).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었어요. 자고, CDP로 음악 듣고, 수업 중에 혼자 멍 때리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였어요, 저도.

혹시 처음 산 CD 기억해요?
서태지 선배님의 [울트라맨이야]요.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서태지 선배님의 음악을 들었어요. ‘하여가’ 같은 곡들이 계속 귀에 맴도는 거예요. 앨범을 사야겠다 싶어서 부모님과 레코드 가게에 갔죠. 서태지와 아이들 CD 있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없고 서태지 CD가 있다는 거예요. 처음 [울트라맨이야] 듣고 ‘왜 이렇게 좋지?’ 그러면서 음반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어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중학생 때는 그냥 기타 멋있게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 단점이 흥미를 빨리 잃는다는 거예요. 반년 정도 기타를 배웠는데 바로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좀 창피한 얘기지만, 전 기타를 못 쳐요(웃음). 아무튼 그러다 고등학생 때는 음반을 사서 듣는 일이 너무 좋아졌어요. 수업 시간에도 음악 듣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친구와 버스 요금 아껴서 음반 산 다음에 집까지 걸어오면서 듣고. 음반 사고 듣는 거에 미쳐 있었죠.

음악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요?
고3 때 레코드 가게인가 어딘가에서 음악을 혼자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 밴드를 했었어요. 제 자작곡으로 연주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이견 조율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랑 밴드는 안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때에 그 얘기를 들은 거죠. 밤새 미디 가지고 놀고 학교에서 자고, 이런 식이었어요. 그때 아예 변해버린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음악을 만드는 데 관심이 조금 있었지만, 그때 이후에 마음이 엄청나게 커져 버렸어요.

어떤 점이 흥미로웠어요?
잘 안 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니까요. ‘왜 이게 구현이 안 되지?’ 고민을 하면서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만든 음악이 군대를 전역하고 음악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상에 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요. ‘해경’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이상과 떼려야 뗄 수 없잖아요.
제가 문학 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을 항상 재미있게 봤어요. 선생님이 수업할 때 그것만 계속 찾아 읽는 거죠. 아마 〈날개〉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심이 좀 있었는데, 음악 관련 책을 사려고 한참 서점에 다닐 때였어요. 책을 사면 음악을 잘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웃음). 아무튼 그러다 이상 전집이 있어서 사게 됐어요. 그래서 그냥 읽은 것뿐이에요. 이상에 대해 많이 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전집을 다 읽었을 뿐이고 그중 좋아하는 걸 계속 보는 거고요.

작품들을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엄청 어두웠어요. 나이를 먹고 보니 ‘이 사람 두려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계속 찾아 읽게 되는 작품은 뭐예요?
〈봉별기〉나 〈날개〉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에요.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군대 가기 전에 써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걸 잘 알아요. 재능이 없는 것은 확실하게 알아요. 소설을 좋아하니까 한번 써봤는데, 이건 아니에요.

해경 씨 음악의 공간감이 참 좋아요. 혹시 내 음악은 언제 어디에서 들으면 더 좋다, 생각해본 적 있는지 궁금해요.
대부분 아실 거예요. 저도 이 답을 알아요. 자기 전에 들으면 좋대요(웃음). 그런데 전 그런 시간과 장소를 생각하고 음악을 만들진 않아요. 그보다는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를 알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무대에 서는 건 어때요? 혼자 만든 노래를 여러 사람과 연주할 때는 조금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요.
되게 재미있어요. 공연 도와주시는 분들, ‘코가손’의 이기원, ‘공중그늘’의 이해인, ‘교정’의 이기학, 이 세 명이 힘이 많이 돼요. 너희 얘기 다 했어(웃음). 그런데 진짜 만약에 이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저한테 좋지 않았으면 일을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처음에는 저랑 기원이 형 둘이 무대에 올라갔거든요? 당시에는 베이스와 드럼이 없었어요. 거의 반실성 상태였죠. 저한테 세 명이 에너지를 많이 줘요. “잘해. 잘한다고, 바보야.” 이런 얘기도 큰 힘이 되고요. 저번에 공연할 때는 긴장을 전혀 안 했어요. 진짜 힘이 되는 걸 느꼈죠.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고 무대 위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나요?
처음 음악할 때는 이거밖에 없었어요. ‘나 혼자 한번 다 해볼까?’ 그 과욕이 여기까지 온 그런(웃음)….

아니, 왜 과욕이라고.
사실 한계에 너무 많이 부딪혔어요. 음…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이 나이에는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해, 하는 게 있었는데요. 스물다섯 때까지는 20대 후반에 대한 환상이 조금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반도 못 간 기분이에요. 그래서 조금 답답해요. 일이야,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건 정말 기대 100배 이상이에요. 감사하게도 제 생각보다 더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어요. 하지만 제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반의반도 못 간 것 같아요.

앞으로 해경 씨의 목표가 궁금해요. 고루한 표현이지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래 듣고 싶은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김현철 선배님 1집, 이상은 선배님 [공무도하가] 같은 앨범이요. 그리고 제 음악의 완성도가 어디까지 발전할까 궁금해요. 좋은 뮤지션들은 모두 자신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까? 큰 과제예요.

지금 첫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요. 세부적인 계획이 궁금해요.
사실은 ‘올해 낸다.’ 이건데, 다시 봐야 해요. 저는 일단 무조건 제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요. ‘내가 이 정도까지는 해야 한다.’ 이런 게 있어요. 그래서 언제든 그 정도 시기가 오면 내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음, 뭐가 있을까요. 제가 걱정이 많아요. 걱정을 달고 살아요. 그래서 아까 그 세 분께 죄송하다는 말을 여기에서라도 전하고 싶어요. 힘들다는 얘기만 하는 저를 챙겨주는 주위의 모든 분께도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항상 제 음악 기다려주시고 들어주시는 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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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