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정밀아
밀아.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은밀함이나 농밀함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런 음악을 하나, 어림짐작하고 들었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비밀스럽지도 은밀하지도 않게, 다만 그걸 다 아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노래와 시, 혐오와 허무,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방황과 방랑에 대해.
방랑
00:04:00
밤의 방랑자 작별을 고하네
정든 벽돌집 성당을 지나
저기 경계를 넘는 가파른
산길 위로 바람이 분다
산 넘어 남쪽 그곳에 첫 마을
짧은 휴식과 붉은 포도주
황금빛 햇살과 함께 다가온
여인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네
다리를 건너 폭포를 지나도
찬란한 세계가 있지는 않을 거야
싸늘한 밤들이 불안하여도
나무는 내게 그저 견디라 하네
노래를 하리 시를 말하리
멈추지 않는 내 경건한 기도는
혐오와 허무를 삼키는 노래
그리움과 향수의 입김이 분다
길은 끝없고 나는 멀어지지만
결국 이곳으로 길은 다시 이어지고
사랑스러운 동경의 별들이 빛나면
나 또다시 방랑자 되려하겠나
사랑스러운 동경의 별들이 빛나면
나 또다시 방랑자 되려하겠나.
책장을 넘기는
방랑의 노래
산너머 남쪽의 첫 마을.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참다운 방랑 생활이 처음으로 시작된다. 목적지 없는 방랑, 햇볕 속의 휴식, 해방된 떠돌이의 생활이.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몇 가지 물건과 너덜너덜한 바지만으로 살아가는 게 나는 좋다.
이름이 예뻐요. 그런데 본명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미술가들이 예명을 더러 쓰잖아요. 그걸 보고 친구랑 장난삼아 지은 이름인데 2008년에 페이스북 가입하면서 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음악 시작하고 그 계정으로 친구가 많아져서 얼떨결에 계속 쓰게 되었습니다. 빨리 발음하면 본명이랑 거의 비슷해요. 정밀아, 정미라.
‘방랑’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지 궁금하네요.
작년 봄 기획공연 ‘책장을 넘기는 노래’를 위해 만든 곡이에요. 홍대에 있는 클럽 ‘살롱바다비’와 ‘셀린셀리셀리느’라는 음악가가 진행한 공연이죠. 매달 셀린과 음악가 한 명이 책을 한 권 골라서 그 책에 관한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해요. 저는 헤르만 헤세의 《방랑》을 골라서 작업했죠. 1년을 목표로 진행한다 들었었는데 아마 끝났을 거고요.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마지막 공연 등을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헤르만 헤세의 《방랑》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어느 작가를 선정할까 하고 책장을 훑어보다가 골랐어요. 작업 시간이 길지 않으니 좀 분량이 적은 책이라야 하겠다 싶었는데, 이 책이 작고 얇아요(웃음).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20대 중후반에 즐겨 읽었었기에 작업으로 옮기기도 비교적 수월했고요.
구해서 읽어보려고 하니 절판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전자책을 사봤어요(웃음). 밀아 씨는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됐나요?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헌책방에서 천 원인가를 주고 샀던 거로 기억해요. 그러다 함께 공연할 친구랑 읽기 위해 같은 책을 구하러 다녔어요. 홍대와 신촌의 헌책방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발간한 출판사에 바로 전화를 해봤지요. 딱 2권이 남아있고, 재판 계획은 없다고 하길래 얼른 남은 2권을 구매했어요. 처음 샀던 책 이후에 나온 버전이더라고요. 아마 종이책으로는 이제 구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책장에 포스트잇이 여러 개 붙어있네요. 좋아하는 부분을 표시한 건가요?
공연 때 낭독하고자 했던 부분이고요. 노랫말로 쓰인 부분은 연필로 옅게 표시해 두었지요. 지워야 하는데 아직 그냥 두었네요.
이 책은 ‘방랑’이라는 주제 아래 쓰여진 여러 편의 수필로 묶여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의 수필이 끝날 때마다 뒤에 운문이 들어가는 게 특이하더라고요. ‘방랑’의 가사가 뒤에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운문이 들어가 있는 점이 크게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는데요. 아무래도 산문보다 운문이 조금 더 집약되고 강조되는 느낌이 있겠지요. ‘헤세가 기록하고자 한 것들을 명료하게 정리하고자 했었나?’ 정도로 이해했어요. 저는 운문을 접할 때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보는 편이에요. 글의 가지를 쳐내고 또 은유나 상징이 더 들어있는 듯해서, 몇 번을 읽어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책에서 노랫말을 따왔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단어나 구절이 있나요?
가사에 ‘찬란한 세계’라는 말이 나오는데, 찬란하다는 표현이 그저 좋아요. 기운찬 광명의 이미지인데, 저는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이상하게 어떤 애잔함과 서글픔 같은 게 느껴져요. ‘여인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네.’도 좋아하고요. 책 속의 묘사대로 따뜻한 계절, 시골마을에, 저녁무렵 식당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식당주인 아주머니의 보드라운 미소와 마주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경계심이 녹아 내리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마지막 구절을 좋아해요. ‘사랑스러운 동경이 별들이 빛나면/나 또다시 방랑자 되려하겠나.’ 여기서 ‘되려하겠나’라는 말이 모호하면서도 자꾸 되뇌게 되더라고요.
돌아오는 질문으로 노랫말이 끝나죠. 인간이 참 미련해서인지, 어딘가로 가면 더 좋고 나은 것이 있을 거라 막연히 고대하곤 해요. 맑은 하늘에 사랑스러운 동경의 별이 반짝반짝 유혹하듯 빛나면, 그 무엇인가를 찾았다 생각했다가도, 또다시 무엇인가를 찾아 발길을 옮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여정의 반복을 살다가 죽는 것 아닌가 하는 단상이 담긴 노랫말이에요.
《방랑》 외에도 좋아하는 헤세의 책이 있나요?
《삶을 견뎌내기》라는 책이 있어요. 제목이 살짝 인생지침서 또는 자기 계발서 느낌이 나긴 하는데(웃음), 스물 일곱 살 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뭐랄까, 곱고 부드럽게 에둘러 위로하는 말 대신 삶에 대해 지독한 염증, 진절머리가 난 이들의 글, 그런 게 필요했어요.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뭐 이런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마음에 부대낌이나 망설임이 많았던 때였나 봐요. 아, 이 책을 2007년 여름쯤 몬트리올을 여행할 때 잃어버렸어요. 공중전화 부스에 놔두고 와버렸죠. 한국 돌아와서 다시 샀어요. 똑같은 거로.
보통 어떻게 곡을 쓰는지 궁금해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 한 뭉치, 그로부터 나온 짧은 글이나 메모 한 뭉치, 아무 때나 떠오르는 선율들을 녹음해둔 것 한 뭉치, 이 세 가지가 잘 조합되는 때가 있어요. 그럼 노래 하나가 만들어지지요. 뭐든 기록을 해두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기억력이 좋지 못해요. 유별나지는 않은 방식이지요.
부르기, 쓰기, 그리기
눅눅한 산바람이 나를 스쳐 불어오고 저 너머의 푸른 하늘은 여기와 다른 땅 위를 굽어본다. 저 한 하늘 아래에서 나는 때로 행복하기도, 때로는 향수병을 앓기도 하리라. 완전한 인간, 순수한 방랑객이라면 향수 때문에 앓는 일이 없어야 마땅 하련만. 그러나 나는 이미 향수라는 것을 안다. 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닐뿐더러 또 그렇게 되려고 애쓰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기쁨을 즐기듯 향수병을 즐기리라.
밀아 씨의 블로그 제목이 ‘부르기쓰기그리기’인데, 이걸 관심사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오랜 관심사이고, 현재 집중하는 행위들이고, 앞으로 더 밀도 있게 해보고 싶은 일들이고요. 창작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굳어질 때 즈음,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지난 것들, 현재 진행 중인 것들, 앞으로의 구상들을 기록하고 정리도 해볼 겸 만들게 되었지요.
부르기, 쓰기, 그리기를 하나씩 나눠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각각의 방식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궁금하고요.
예술의 여러 갈래 중에 세 가지이죠. 부르기는 음악, 그리기는 미술, 쓰기는 문학계열을 말하는데요. 제가 오랫동안 해온 일들이 거의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이더라고요. 그런데 음악, 미술, 문학이라고 하면 너무 진지하잖아요. 작고 사소한 시작을 떠올렸어요. 그저 노래를 부르고, 무엇인가 그려보고, 써보는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행위들부터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죠. 그런 원형적인 것들의 실천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매우 풍성해질 것 같아요.
헤세의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선생님처럼 견뎌내라 강요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밀아 씨는 타인에게 어떻게 위로를 전하나요?
제가 무슨 위로나 그런 걸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음, 그저 ‘너무 지나친 자기연민은 육신과 정신건강에 해롭다’ 정도(웃음)? 지나친 자기연민은 어쩌면 정말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물론 ‘나도 엄청나게 힘들었으니 닥치고 너만 너무 힘들다 징징대지 마라’는 고생을 선행한 사람들의 우월감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그런 방식이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나요?
네. 적어도 저에게는요. 내 인생만 유별나게 서럽거나 나에게만 가혹한 세상이 아니다 생각하게 되니 많은 것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저, 때로는 좀 아픈 걸 감수하고라도 나를 객관화시켜보기도 하고 적나라하게 비판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는 것은 엄마, 아빠도 아닌 나 자신이긴 하지만, 자기연민을 좀 덜어내고 대신 측은지심 같은 걸 채워 주변에 마음을 좀 나눠주기도 하고, 받은 거 있으면 고마워하기도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쉽지 않은 것이고, 저도 그리 능숙하지는 못해요.
그냥 좀 ‘살기’
생선을 구워 노스트라 주酒를 두꺼운 유리잔으로 마시며 기다란 여송연을 피우리라. 벽난로의 불 속에도 침을 뱉으며 어머니를 생각해 보고 공포와 슬픔으로부터 한 방울의 달콤함을 짜내어 보리라. 그리고 얄팍한 벽가에 놓인 딱딱한 침대에 누워 비바람 소리를 듣고 심장의 고동과 싸우면서 죽음을 바라다가 때로는 죽음이 두려워 신을 불러 보리라, 그것이 지나가고 절망이란 것이 지치고 잠과 위안 같은 것이 내게 눈짓을 보내올 때까지. 20대에도 나는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될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생활을 위해서는 이런 날들로써 그 대가를 치를 작정이다. 이런 밤과 낮은 항상 그러한 것이며 공포와 구토와 절망도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살아갈 작정이며 결국은 이 생을 사랑하게 되리라.
밀아 씨에게도 방랑의 시절이 있었나요? 그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방랑은 평생의 여정이죠. 그 자체가 목적지인 듯 하고요. 저는 방황을 했죠. ‘방황’.
방황을 해봤더니 어떤가요?
여전히 어리바리하고, 아직 수많은 방황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고요. 기왕에 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고 엉망진창일 거라면 아주 혼이 쏙 나가도록 방황해 보는 게 좋겠다는 것만 배웠어요. 어떤 눈에 보이는 결과가 탁 튀어나오거나 그렇진 않더라고요. 어렴풋이 어느 방향 정도만 보게 되어도 가치는 충분하다, 그 정도.
20대 초에 밴드 활동을 하다가,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고요.
대학에서 음악동아리를 하다가 홍대에서 공연하고 그랬었죠. 집중해서 밴드를 했던 건 아니었고요. 그런데 음악이든 미술이든, 뭐라도 ‘표현’해보려 하니, 나에게서 꺼낼 것이 한참 모자랐기에 일단은 그냥 좀 ‘살기’를 했어요. 이것저것 하며 지내다 보니 얘깃거리도 쌓이고, 그걸 꺼내 보여줄 용기도 좀 나고, 어떤 절실함도 밀려오고. 그때쯤 다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다시 나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창작이라고 한다면, 한 가지 매체만으로도 그 정점을 찾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좀 답답하고 고립된 느낌이었어요. 어떤 확장이나 변화 같은 것이 필요했고요. 음악을 늘 가까이 두고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공백기는 어떻게 보냈어요?
회사도 다니고, 이일 저일 했죠. 여행도 다니고. 그냥 열심히 살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살면서 쌓여가는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었고 그런 것들을 드로잉이나 짧은 글쓰기로 느리지만 계속 기록했어요. 언젠가 이것들로 무엇인가를 하게 될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취향에 관해 듣고 싶어요.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몇 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나열해 볼게요. 모르면 모른다 하는 것, 마음을 비틀지 않는 것, 한길 오래간 사람, 듣기를 잘 하는 사람,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정성껏 밥을 짓는 것, 균형을 잘 맞추는 것, 계절과 날씨가 바뀌는 것. 그런 것들이요.
정밀아를 만난 다음 날,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그림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쉬는 날이었고 늦은 오후에 전시를 보러 갔다. 《데미안》이라는 소설 한 권으로, 그녀 덕분에 《방랑》이라는 수필집으로만 그를 알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던 헤세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자신의 정원을 가꿨다. 마음속에 불안과 슬픔을 지니고 정처 없이 떠돌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전시장을 나왔을 땐 대문호로 불리는 위대한 소설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방랑자가 마음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노래를 틀었다. 고요함과 단단함으로 출렁이던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게 사진으로 본 헤세의 눈동자였는지 어제 만난 정밀아의 눈동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도 그런 눈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고, 모든 게 방랑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