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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로쿠차 구다사이'
노래를 만드는 마음
りょくちゃ ください
로쿠차 쿠다사이
오랜만에 인터넷 주소창에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를 입력했다가 잠시 멈춰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2008년, 큰맘 먹고 도토리로 구매한 ‘로쿠차 쿠다사이’라는 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누가 부른지도 몰랐던 이 노래는 내 스무 살 무렵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위로해줬다. 진정한 친구처럼 슬픔은 반이 되게 기쁨은 배가 되게 그리고 술을 게워내려고 애쓰는 내 등을 세차게 때려줬다.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이 쉽고 단순한 일이었다.
로쿠차 쿠다사이
00:02:57
요다는 녹색 얼굴 녹차를 즐겨마셔요
요번에 일본에도 갔다왔어
녹차 전문점에 가서 ‘Green tea please’
요다는 영어밖에 못하는데
녹차를 어떻게 주문하나
함께 배워 볼까요
로쿠차 로쿠차 로쿠차 녹차
구다사이 구다사이 주세요
로쿠차 구다사이 로쿠차 구다사이
너무 너무 맛이 있어요 혼또니 오이시데스네
요다는 그 맛에 반해서
일본에서 살기로 했어
오사카에 녹차 전문점에 가면
매일 매일 앉아 있어요
Green tea please 로쿠차 구다사이
너무 너무 맛이 있어요 혼또니 오이시데스네
도장 열개 모으면 한잔은 공짜로 주나요
뮤지션 이랑은 2012년 8월 [욘욘슨]이라는 첫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뮤지션 이외에도 몇 가지 수식어가 더 있다. 『이랑 네 컷 만화』라는 만화책을 집필한 만화가이기도 하며, 영화 <유도리>, <변해야 한다>를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지금은 2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오늘 초등학교에서 수업하던 중에 한 남자애가 음악을 ‘시간 낭비’라고 했다.
그래서 ‘맞아. 맞아. 낭비야. 선생님 직업은 시간 낭비하는 사람이야. 나는 낭비하는 사람이라서 좋다. 너는 커서 평생 일만 해라.’ 라고 말해줬다.
-2013년 12월 9일 이랑의 트위터에 남겨진 글
‘로쿠차 쿠다사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이 노래를 설명하려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아나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 술을 먹으며 자주 놀았어요. 옆에 친구가 기타를 치면 같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어느 날, <스타워즈>에 대한 노래를 하나씩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얼떨결에 같이 하게 되었는데, 저는 <스타워즈>를 안 봤었거든요. 그래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캐릭터인 ‘요다’에 대한 노래를 써보겠다고 했어요. 제가 칠 수 있는 가장 쉬운 코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아무렇게나 나열했어요. 요다가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니까 우선‘요다는 녹색 얼굴’이라고 해봤죠. 그리고 녹색이라고 하니까 녹차를 많이 마셨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혼자 막 뱉었어요. 말도 안 되는 연상법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었어요.
장난치듯이 만든 노래가 몇년 후에 1집 앨범에 들어간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곡은 뜻밖에도 많이 알려졌어요. 우쿨렐레 초급자에게 연습곡으로 쓰이기도 하고, 스타워즈를 다루는 사이트에서도 보이고, 어디선가 배경음악으로도 종종 쓰이고 있더라고요. 제 노래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처음으로 만든 곡이니까 애착이 가서 그런 것도 있고요. 이제는 그때처럼 즐기면서 무작정 곡을 만들기가 어려워요. 그땐 기타를 못 쳤고 지금은 덜 못 치는데, 오히려 재미는 줄어들었어요. 백지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서 만들 때가 좋았는데, 이젠 그렇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처음이라 가능했던 바보 같은 즐거움이 있었어요.
로쿠차 쿠다사이를 쓸 당시에는 일본에 안 가보셨다고 했는데, 그 후에는 가보셨어요?
네. 그 후론 자주 갔어요. 가끔 일본에 가서 이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웅성거려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일본어를 말하니까 신기한가 봐요. 근데 ‘로쿠차’가 틀린 표현인 것 아세요? 일본에서는 아무도 로쿠차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그때 일본어를 전혀 몰라서 막연하게 일본어는 한국어를 늘리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원래는 ‘오차おちゃ’ 혹은 ‘룍차りょくちゃ’라고 한대요. 그래서 그걸 알고 난 후에는 ‘이 일본어가 틀렸다’고 가사집에도 써 놨어요. 어떤 일본 가수가 한국에 와서 갑자기 ‘떨기케이크 주세요’라고 막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겠죠? 제가 일본에서 그랬어요.
그럼 일본에 다녀오고 나서 만들어보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지금 작업 중인 2집 앨범에 도쿄 친구들에게 쓴 노래가 있어요. 편지는 아니고, 친구들 이름과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이 담겨 있어요. 아직 앨범이 나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남았어요. 미리 알려드리면, 2집은 분위기가 달라요. 1집은 여고생도 좋아하는 앨범이었다면, 2집은 그녀들보다는 더 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아마 듣기 힘들 거예요. 1집에서‘난 발랄한 여자야’라고 했다면 2집은 ‘어우, 힘들어’ 이런 거예요. 그걸 공감하는 분들이 들어주시겠죠.
이 노래뿐만 아니라 이랑 씨가 만드는 것들에선 단순함이 느껴져요.
깊게 생각을 안 해요. 음악을 만들 때, 한 번 생각하고 그대로 하는 편이에요. 만화를 그릴 때도 그래요. 정해진 길이가 있으면, 생각이 더 깊고 길게 가더라도 끝내버려요. 상상마당에서 진행하는 ‘이랑과 영화보고서’라는 만화 칼럼이 있어요. 영화를 보며 메모를 하고 그걸로 만화를 그리는데, 적은 게 아무리 많아도 하나만 그리고 끝내요. 최근에 만든 『이랑 네 컷 만화』에서도 200개를 그려놓고 50개를 버렸어요. 아깝지 않아요. 버려야 할 것들은 늘 있으니까요.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도 다 쓰고 나면 앞과 끝을 버려요. 일단 시작을 해서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고 싶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런 건 나중에 보면 필요 없을 때가 많아요. 끝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시작과 끝을 버리고 나면 오히려 간결한 말만 들어가 있어요.
생활 속에서도 뭔가를 잘 버려요?
네. 엄마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 엄마가 제가 엄청나게 아끼는 물건들을 싹 가져다가 버렸어요. 그것 때문에 2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다니!’ 하면서요. 그런데 그걸 잃어버리고 나니까 그 후로는 욕심이 안 생기더라고요. 책이나 이런 것도 많이 모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대신 잘 버려요.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많고요. 사람들끼리 모여서 좋은 걸 발견하면 그걸 욕심내는 분위기가 미울 때가 있어요. 얘도 이걸 욕심을 내는 게 보이고 나도 갖고는 싶고. 그럴 때, 그냥 포기해버리면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아마 그걸 가진다고 해도 그렇게 좋진 않을 거예요.
많은 사람이 복잡할 때, 이랑 씨가 만든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때론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이랑 씨는 어디에서 그 단조로움을 얻나요?
일본에 미와 아키히로みわあきひろ라는 성우가 있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녀의 목소리를 맡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가 종종 금발에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요. 누군가 “왜 이렇게 입고 오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왜 안 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어이가 없고 웃기면서도 가슴이 시원해져요. ‘맞아, 왜 안 돼? 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돼요.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라는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그런 부분에 관한 도움을 받아요. 또 주변에서 발견할 때가 있어요. 춤을 정말 잘 추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요즘 춤을 안 추길래 “왜 요즘 춤 안 춰?” 물었더니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게 춤이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헐” 하고 막 웃으면서도 그 얘기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단순한 것은 보기엔 쉽지만 만들 땐 어렵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이해 받고 싶은 마음에 많은 말을 늘어놓는다. 긴 시간 그렇게 살아왔다. 잘못을 저질러도 핑계를 대고, 고마운 일이 있어도 꼭 이유를 붙인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생각해 보면 이런 단순한 말들로 해결될 일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문득 덧붙이다가 망쳐버린 일들이 떠오른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다는 바람과 다르게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종종 단조로운 걸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에디터·포토그래퍼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