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다행이야

ARTIST’S ANIMAL

사실 인간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나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감정을 내어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위안, 위로, 사랑, 그리고 영감.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선 기대하기 힘든 무조건적인 ‘마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필요한 것은 유명 예술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예술가들이 걸작을 창작해내기 위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꽤나 알려진 사실이다. 애드거 알렌 포가 《검은 고양이》라는 명작을 쓰게 된 데에는 그의 반려묘가 큰 역할을 했고, 많은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볼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곁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앤디 워홀과
고양이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앤디 워홀Andy Warhol. 사실 앤디 워홀에 대한 나의 시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의 일생을 다룬 영화 〈팩토리 걸Factory Girl〉에서, 그는 그녀를 뮤즈로서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어지자 버린 남자로 나왔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 그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한 여자를 무너뜨린 남자로만 보였다. 하지만 그가 현대미술계에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만은 사실이다. 앤디 워홀은 대단한 동물애호가였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그는 특히 고양이를 사랑한 남자였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 덕이 크다. 워홀의 어머니가 많은 고양이를 키웠고,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가 고양이 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일례로, 워홀의 조카인 제임스 워홀라가 삼촌 집에서 함께 놀던 고양이들을 떠올리며 쓴 책 《우리 삼촌 앤디 워홀의 고양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드리 헵번과
사슴

긴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만큼 사랑스러운 여자는 보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만큼 사랑스럽고 눈에 띄는 반려동물을 키웠다. 그녀와 똑 닮은 아기사슴 피핀Pippin. 피핀은 오드리 헵번의 남편인 멜 페러가 감독했던 영화 <그린 맨션>에 헵번과 함께 출연했던 사슴이다. 당시 피핀의 조련사가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헵번에게 피핀을 집에 데려가 함께 지낼 것을 권했다. 헵번은 진심 어린 사랑으로 피핀을 돌봐주었고, 그 결과 둘은 친구가 되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 헵번이 피핀을 부르면 단숨에 달려와 안길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고 한다. 영화촬영이 끝난 후 그들은 잠시 이별을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된다. 

당시 오드리 헵번은 몇 번의 유산으로 깊이 상심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남편 페러가 그녀를 위로할 방법을 찾던 중, 피핀이 오드리 헵번을 굉장히 그리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집에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름 대신 ‘아이피IP’라는 애칭을 붙여주었을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과 피핀의 모습을 보면 이토록 반려동물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피카소와
닥스훈트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를 칭송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단어로 그를 표현한다. 예술, 자아, 작품, 여자, 그리고 개. 피카소의 주변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피카소는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개를 선물할 만큼 개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개가 없으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그는 온갖 종류의 개를 키웠는데, 대부분이 지인이나 친구에게 빌려오거나 훔친 개들이었다. 그가 키웠던 수많은 반려견 중 유독 피카소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개가 있다. 닥스훈트 럼프Lump는 그가 직접 먹이를 주고 보살펴준 유일한 개였다. 럼프를 모티브로 한 스케치도 있는데, 그 그림의 가치는 현재 한화로 약 953억 정도. 사람인 내 팔자보다 나은 삶을 산 대단한 녀석이다. 

사실 럼프도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진작가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의 개를 피카소가 빼앗은 것이다. 던컨이 촬영장에 럼프를 데려갔는데, 촬영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려고 하자 피카소가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얘는 당연히 두고 갈 거지?’. 거의 반 협박 수준이다. 어찌 되었든 그날부터 럼프는 피카소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럼프는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기 약 10일 전, 1973년 3월 29일 1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다 칼로와
거미원숭이

‘이보게 디에고, 우리는 결코 그녀처럼 그릴 수 없을 것이네’. 피카소가 그의 친구이자 유명화가, 그리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에게 한 말이다. 프리다 칼로는 천재 여성화가라 칭송받지만, 그녀의 인생은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여섯 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리고 열여덟 살, 하굣길에 올랐던 버스가 앞차와 부딪히면서 버스 손잡이의 강철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하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다. 왼쪽 다리 열한 군데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와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모든 의사들이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녀는 총 서른두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유산을 겪으며 고통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 행복했다’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그림을 사랑했고, 그림을 그리며 모든 아픔을 견뎌냈다.

칼로의 곁에는 항상 반려동물이 있었다. 그녀의 143점의 작품 중 55점이 동물과 함께 있는 자화상이다. 그중 남편이 선물한 거미원숭이 풀랑 창Fulang Chang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칼로의 대표작 중 하나로 유명하다. 작품 속에서 원숭이는 그녀 내면의 ‘야만성과 원시성’, 그리고 ‘애정과 보호’를 상징한다. 풀랑 창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에게 아이 대신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족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칼로가 남편 디에고와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의 외도 사실을 알았을 때 오로지 풀랑 창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녀에게 이 반려 원숭이가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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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혜미

일러스트 배중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