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원천

받아들여지는 시간

 

인생은 때로 살얼음판과 같다. 그 위로 먼저 간 사람들이 휘청거리는 걸 봐왔다. 누군가는 미끄러져 넘어진 채로 나아가길 포기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겁이 났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 해도 결국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다.

오후 한 시, 일산의 화덕 피자집. 날이 좋은데도 자꾸만 긴장되었다. 그는 태연한 척 나를 다독였지만 하나도 안심되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그와 꼭 닮은 세 사람이 들어왔다. 오늘은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 결혼을 승낙받는 날이다.

초면인데도 그의 아버지 눈에 담긴 장난기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도 그런 눈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동생은 엄마를 조금 더 닮았는데, 두 형제는 목소리가 매우 흡사했다. 언젠가 그가 어린 시절의 자기 목소리를 흉내 낸 적이 있다. 중학생 때까지는 헬륨가스를 마셔도 목소리가 그대로였을 정도로 얆고 높았다면서. 아기 새처럼 짹짹대던 그를 떠올리니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가족에게서 그를 발견하니 반가웠다.

피자 두 개와 파스타 두 개를 주문하고 정적이 흘렀을 때, 그의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아들에게 들어 알고 있지만, 직접 내게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지난 연인들과 만나는 동안에도 결혼을 상상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이랑 살면 어떨까?’, ‘이 사람은 화가 나면 어떻게 할까?’, ‘바닥을 긁어도 동전 한 푼 나오지 않는 상황이 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구체적으로 상상할 땐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까지 그려봤다. 부모는 한 사람의 뿌리이니 매우 중요한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부분부터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거나 반대하기 이전에 내 입으로 나의 어린 시절과 우리 가족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상으로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럼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괜찮은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데 민감해. 결혼만큼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우리는 지금 만나는 데에만 충실하자.” 지금 생각하면 비겁한 말이지만, 당시엔 그 말이 너무 큰 장벽처럼 느껴져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끝이 보이는 사이였으니까. 부모님의 이혼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었지만, 어떨 땐 그게 나의 잘못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혼가정 꼬리표를 단 나는 자꾸 작아졌다.

“부모님은 제가 스무 살 때 이혼하셨어요. 그전에도 사이가 좋지 않으셨고요. 어렸을 땐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집안 분위기가 힘들어서 방황을 했어요. 그러다 고3 때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저희가 만난 것도 교회 고등부에서 봉사할 때였어요. 지금은 엄마랑 여동생이랑 같이 살고, 아빠도 같은 동네에 계시긴 해요.”

가게 안이 어찌나 조용하던지 온 세상이 내게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어떤 발표 보다 떨렸다. 부단히 감추려 노력한 이야기를 처음 보는 어른들 앞에서 꺼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아주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어도 이 고백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 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느낌만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피자와 파스타가 차례대로 나왔고, 두 형제가 빠르게 음식을 해치웠고, 그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몇 번이나 장난을 쳤고, 그의 어머니는 그도 기억 못 하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때 테이블 위에 그들과 같은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둘이 있을 때만큼 따뜻하고 편안했다.

가족이 탄 차가 떠난 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데도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느껴졌다. 온갖 생각과 감각이 돌았다. 문득 그의 얼굴을 봤을 때, 그 역시 같은 큰 산을 넘어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뭐라고 하셨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또?”

“네 조건은 하나도 보지 않는다고. 우리 둘이 잘살기만 하면 된대.”

“그리고?”

“준비는 하나하나 해나가자고. 널 봐서 좋다고 하셨어.”

 

나는 내가 해낸 것이 믿기지 않아서 자꾸 물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몇 번이나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그가 있다. 그제야 날이 좋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애의 가족, 곧 내게도 가족이 될 그들처럼 따뜻한 날이었다.

살얼음판 위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비틀대며 걷는 나에게 그는 손을 내밀고, 나는 튼튼한 뿌리로부터 자라난 그의 손을 잡았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6,8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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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