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와 바다표범

게임기에 대한 고찰

너구리와 바다표범

게임기에 대한 고찰

“게임기 하나 사면 어떨까?”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검색해보니 플레이스테이션4 가격이 많이 내려갔더라. 아직 장바구니에 넣진 않았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의외로 실용적이다. DVD를 볼 수 있으니 가족 모두에게 유용하다. 잘 알지 않느냐. 나는 게임 하나에 몰입하는 편이라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사겠다는 얘긴 아니다.

말끄러미 어항을 들여다보던 아내는 이런 못난 놈을 봤나 싶은 표정으로 한숨에 말을 실어 보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니 사고 싶으면 사.”
귀를 의심했다. 허락을 받은 건가? 속으로 ‘예싸!’라며 환호했지만, 겉으로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아직 사겠다고 결정하진 않았어. 나도 한번 생각해볼게.”
게임에 관한 문제는 안팎으로 갈등이다. 만약 이번에 플레이스테이션4를 산다면 지난 20년간, 플레이스테이션 기기 시리즈를 다섯 차례 구입한 열혈 오락쟁이에 등극한다. 어쩌면 소니사에서 표창장을 발급할지도 몰라. 특정 상품에 중독되어 신제품을 냉큼 사 모으는 모습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유독 게임 관련 소식은 뇌를 거치지 않고 중추신경계로 직접 흘러 들어오는 탓에 통제 불능이다.

전자오락은 나의 놀이 성향에 잘 맞는다. 홀로 고민하고 화내고 만족하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끔히 삭제하고 결별하는 그런 놀이. 어른으로 살다 보면 곳곳에 도사리는 온갖 책임과 기만, 기대와 분노의 냄새에 질려서 에라 모르겠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오락기를 켜고 감정의 악취를 멸균한 무색무취의 시간에 뇌를 푹 절이고 싶다. 밀폐된 방에 나를 가두고—눈이나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면 금상첨화—오랜 시간을 들여 캐릭터를 키우고, 도시를 건설하고, 아이템을 수집하고, 가끔 발생하는 소소한 난관을 극복한다. 이때 탄산음료와 커피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주의할 것. 매시간 차곡히 성장하는 나의 도시와 캐릭터를 지켜보는 만족감이란……. 심해를 헤엄치는 거북이가 된 기분이 이럴까. 가장 좋은 점은 그 무엇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락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그 세계 밖으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몰입할 수 있다. 저질러 놓은 세상을 저장할지, 삭제할지는 내 맘이다. 감정의 찌꺼기는 오락을 종료하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순백의 디지털 놀이방에는 어떤 구질구질한 인간관계나 개똥보다 쓸모없는 경쟁심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게임 친구와 승부를 가리고 순위를 다투는 게임은 취향에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겪다 보면 가끔, 아니, 자주 경쟁심 같은 공격적 기질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없는 밑천을 쥐어짜서 승부사인 척 연기를 해야 할 정도로 성격이 평평하다. 이렇다 보니, 내가 선택하는 오락 세상은 진행이 더디고, 시스템이 복잡하고, 갈등이 느슨하길 바란다. 묵직한 오락 하나를 붙잡고 몇 주일, 또는 몇 달을 마냥 파묻혀 지낸다. 게으른 두더지가 되어 생계 유지를 위해 사회에 헌납해야 할 최소 시간만 제외하고 오락 위주로 생활한다. 웬만한 일정은 원천 차단한다. (죄송해요. 제가 다음 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좋아하는 술도 자제한다. (오락쟁이에게 음주 오락은 금기사항.) 이러다가 자칫 현실 도피, 대인 기피에 빠져 지구에서의 삶이 무너질까 걱정이지만, 아직 괜찮다. 플레이어로 데뷔한 지 어언 25년. 불혹의 오락쟁이는 현실 세계에서 중후한 아저씨 가면을 쓰고, 짐짓 어른 행세를 하며 탈 없이 지내는 중이다.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전자오락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 아들을 굳이 단속하지 않으셨다. 다만, 공기가 나쁘고 범죄의 기운이 감도는 오락실 출입만큼은 엄하게 제한하셨는데, 그 정책 덕분인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집에서 전자오락을 할 수 있는 선진 테크놀로지 환경을 조성해주셨다. 오락기 득템. ‘그렇게 좋다면 맘껏 해봐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덕분에 원 없이 게임을 했고, 원 플러스 원으로 시력이 나빠졌다. 안경 득템.

80년대엔 나의 오락적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게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리고 부수는 플레이 일색인 8비트 오락기에 환멸을 느끼고 잠시 오락세계를 떠난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아버지는 명문대에 입학한 누나에게 애플 매킨토시라는 컴퓨터를 선물한다. 그것은 무지막지하게 비싼 컴퓨터였다. 그 컴퓨터에는 ‘디스켓이 들어가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모니터와 본체가 한 덩어리인 미끈한 모습이었다’, ‘마우스로 조작하는 최첨단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전원을 켜면 ‘췡’ 하는 멋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개뿔 중요하지 않았고—하드디스크에 ‘심시티’라는 충격적인 게임이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는 오락이라니! 저장하면 다음 날 이어서 할 수 있고, 엔딩 없이 영원히 플레이할 수도 있어. 이건 흡사 썩지도 줄지도 않는 마법의 생크림 케이크잖아.

중2 겨울방학에 시작한 심시티의 향연은 6개월이 지나고야 잦아들었다. 오락을 불쏘시개 삼아 시간이라는 연료를 태워 먹으며 MCC(Mind Consuming Competence, 정신 소모 능력) 지수를 높였다. 뇌를 자극하는 감각 중에 시간과 재능을 낭비해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만족감이 있다. 멧돼지가 어금니를 갈 듯, 쓰잘머리 없는 행위에 잉여 정신력을 갈아 마모시켜야만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이상 행위의 효율성에 있어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굳이 없어도 좋을 취미나, 이해하기 어려운 괴벽 하나 정도는 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플라스틱 모델 조립, 색칠공부, 개미집 관찰 같이 평범한 유희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지하철 성대모사, 배꼽 털 수집, 포크 구부려서 망가뜨리기 같은 유별난 행동이기도 하다(대부분 엄마가 질색하는 짓거리). 만약 자신에게 이렇듯 소모적 면모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주변을 점검하길 권한다. 출구를 찾지 못해 쌓인 어두운 정신력이 두개골 틈새로 스멀스멀 빠져나가 좋지 않은 방식으로 여러 사람을 괴롭히고 있을지 모른다.

대학에 입학하고 첫 1년은 깨어있는 시간의 40퍼센트를 전자오락에 탕진했다. 나머지 40퍼센트는 농구 코트를 뛰어다녔고, 20퍼센트는 먹거나 노래를 부르는 데 썼다. 죽이 맞는 친구 자취방에 틀어박혀서 밤새 오락을 하고, 간신히 음식을 섭취하고, 너구리처럼 웅크리고 잤다. 대학 3학년 때에는 무대를 바꿔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자취방을 빼고 유학을 떠났다.) 당시 살던 동네에 널찍한 PC방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5천 원 야간정액권을 끊으면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오락을 하도록 배려해주는 좋은 장소였다. 담배 연기 자욱한 그 지하 구렁텅이에서 끈적하게 오락을 하다가 새벽 4시 언저리에 설핏 잠이 든다. 화들짝 잠이 깨서 남은 오락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면 아침 해를 등진 수많은 학생과 회사원이 걸음을 재촉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모르는 새 떠오른 태양은 낯설고, 새벽의 냉기를 머금은 사람들은 스킨 에센스 입자를 흩날렸다.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생경한 감각이 좋았다.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곧장 정신을 잃고 바다표범처럼 널브러져 잠들었다.

바쁜 대학원 시절, 벼르던 어느 주말에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미리 준비한 참치 캔과 스프라이트 캔을 까먹으며 내리 이틀 동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영혼을 내던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설픈 괴물을 처치하고, 광물을 채집하고, 파이어볼을 발사하고, 게임 친구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친 염소처럼 뛰어다녔다. 그렇게 지구를 떠나 아제로스 대륙에서 여정을 수행한 지 어언 48시간, 생존 확인차 방문을 두드린 하우스메이트는 책상을 가득 메운 깡통 더미, 면도하지 않은 수염, 초점을 잃은 눈을 목격한다. 그는 겁에 질린 나머지 병원 응급실에 전화하려 들었다. 간신히 말려서 구급차 출동은 막았지만, ‘그렇게 살다간 곧 죽는다’라는 잔소리를 흘려 들으며, 그 녀석이 끓인 즉석 캔 수프를 억지로 먹었다. 좋은 친구였지만 수프 맛은 최악이었다.

간혹 극한으로 치닫는 때가 있더라도, 대개는 온건한 취미 정도에 그친다. 저녁에 한 게임, 주말에 한 게임—이런 느낌이랄까. 어제까지 레벨업에 몰두했다가 오늘부터 홀연 근처에도 안 간다. 나는 월급이 나오는 직업에, 결혼해서 자식도 둘이나 있다. 24시간 7일 전자오락에 매달렸다면 무슨 프로게이머나 인기 유튜버 같은 사람이 되어 혁명적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집적대기만 해서야 애초에 글러먹었다. 뭐든지 프로가 될 정도로 수준을 갖추기란 만만치 않다. 쉼 없이 훈련하고 공부할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어딜 대단히 오르겠나. 그래서 여흥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일이 바쁘거나 다른 취미에 꽂혔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히 내던질 수 있는 편리한 거점이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정도로 마음의 공백이 생긴다면 ‘요즘엔 뭐가 재밌나’ 하며 넌지시 새로운 오락을 도모한다. 일상의 틈에 전자오락을 주입해서 인격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바로잡을 때가 된 것이다.

나의 삶은 근본적으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매일 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박하고 화려한 사건이 ‘빵’ 하고 터지진 않나 내심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늘 외면당한다. 평범한 삶은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의 그것처럼 극적이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일찌감치 심장마비로 돌연사했으리라. 돌이켜 보면 통쾌한 경험이 가끔 있긴 했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그런 순간은 짧게 지나쳤을 뿐이고, 나머지 99퍼센트의 시간은 특별할 리 없는 일상으로 채웠다. 평범한 일상은 소중하다. 그것은 실체를 이루고 사유를 가능케 한다. 나라는 인간은 일상의 무던한 힘으로 조금씩 미끄러져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두꺼운 회색 구름처럼 막막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일상 속에 푹 담긴 중에도 마음 한구석은 마지막까지 오지 않을 어떤 극적인 순간을 동경한다. 그런 갈 곳 없는 기다림이 차곡히 쌓여 잉여 정신력이 자라나면 나는 또 부스럭대며 일어나 그것을 마모시킬 강력한 오락을 구한다.

70대 아버지가 40대 아들에게 묻는다.
“넌 나이가 마흔인데, 아직도 게임하냐?”
아들이 대답한다.
”네. 요즘도 열심히 해요.”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으니까 인제 그만 물어보세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중년 오락쟁이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몇십 년 뒤에는 나와 그들을 위해 노인 요양병원 로비에 고성능 컴퓨터와 ‘오버워치’를 설치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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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