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버섯야채죽

6월 29일, 치과에 다녀온 날에는

평소에는 안 보이던 것이 갑자기 눈에 거슬리기 시작할 때가 있다. 이번에 나의 레이더에 걸린 것은 다름 아닌 오른편 아래쪽에 자라난 사랑니다. 일명 48번 치아. 어제까지 없던 사랑니가 오늘 뿅 하고 튀어나왔을 리 만무하고, 벌써 한참을 나의 입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너무 거슬리고 불편했다. 자꾸만 혀끝으로 사랑니를 만지작거리다가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혹시 오늘 진료받을 수 있나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불편한 곳은 없어요. 그런데 사랑니가 난 것 같아요.”

“당일 예약은 어렵고, 오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나는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평소 심각한 치과포비아가 있는 나인데, 나조차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했다. 치과에 가는 일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나중으로 미루던 나였다. 그러다 간단한 치료로 끝났을 일을 대공사로 키우던 사람이 나란 말이다.

옷을 입으면서 주변에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랑니가 난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했는지. 대부분 사랑니는 뽑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의사도 웬만하면 뽑는 것을 권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뽑고 나면 지옥이 펼쳐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 지옥. 그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치아가 잘 뽑히지 않아 조각조각 깨뜨려 뽑았다는 사람, 뽑다가 치아가 튕겨 목구멍에 박혔다는 사람, 별의별 경우가 다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일주일 내내 죽만 먹었다는 둥, 2주가 다 되도록 아침마다 피가 났다는 둥,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치과로 향하고 있었다.

 

치과는 역시나 대기하는 곳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초조하고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벽면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시청’이 아니라 정말 화면을 보고 있었다.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고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되고도 한참 후에야 나는 그 무서운 의자에 누울 수 있었다.

 

“사랑니는 발치하면 되고요. 그것보다 왼쪽 어금니가 조금 썩었네요. 사랑니는 따로 날짜 예약하고 오셔야 하니까, 충치 치료도 그날 같이 하면 되겠어요. 약속 잡고 다시 오세요. 아, 그리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사랑니를 뽑다가 간혹 신경을 건드려 안면 마비가 생기기도 합니다. 아주아주 만약입니다.”

 

한 시간 삼십 분을 대기하고, 삼십 초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일단은. 안면 마비? 분명 마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리둥절한 채로 접수대에 섰다. 일단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았다. 가만 보자. 사랑니를 뽑으러 갔다가 충치 치료를 얹어서 오다니. 나의 고통은 원 플러스 원이 되어 일주일 유예된 것일 뿐 해결된 것이 없었다. 거기에다 혹시 모를 안면 마비의 불안과도 싸워야 했다.

집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세상이 무너진 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랑니를 뽑다가 안면 마비가 온 사람이 있는지를.

의사의 말처럼 대부분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짧게 일주일 정도 마비가 왔다가 서서히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사랑니를 뽑겠다고 안면 마비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사랑니 때문에 통증이 있거나 삐뚤게 자라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추후 유사시에 어금니를 대체하여 수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두라고 하는 의사의 말도 있었다. 마침 아까 찍은 엑스레이에서 뿌리가 곧게 자라 있다는 말도 들었겠다. 오호! 됐다, 됐어!

 

일주일 후, 나는 왼쪽의 충치만 치료했다. 사랑니는 제가 조금 더 데리고 있어보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 어느 때보다 긴 일주일이었다. 사랑니를 뽑지는 않았지만 사랑니를 뽑은 기분이 되었다. 곧장 나는 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들이 먹는 그런 유동식 흰죽 말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죽을. 이럴 때의 나는 지체하지 않는다. 그곳은 바로 ‘동인동’. 정식 상호는 ‘옛 향기 가득한 동인동 옛 추억’이라는 것은 지금에서야 알았다.

지금 내가 시켜야 하는 것의 이름도 ‘죽’이 아니라 ‘버섯매운탕’이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각종 버섯과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 매콤하고 칼칼한 버섯매운탕이 보글보글 끓는다. 살짝 숨이 죽은 야채들을 먼저 건져서 먹고 나면 칼국수 사리를 투하. 작은 냄비가 다시 가득 채워진다. 약하게 줄였던 화력을 다시 최대치로 올린다. 감칠맛 도는 버섯 육수에 면이 잘 익었다 싶으면 호로록 호로록. 이제 드디어 죽을 먹을 차례다. 분명 한 가지 메뉴를 주문했는데, 세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단돈 8,000원에. 각종 야채가 뿜어내는 좋은 기운과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먹고 싶은 얼큰한 맛의 절묘한 중독성. 뜨끈하게 마음과 몸을 데워주고, 영혼까지 달래주는 천상의 맛이다. 숟가락을 야무지게 들고 마지막까지 박박 긁어 한 톨의 밥알도 놓칠 수 없다. 마치 보양식을 먹은 것 같은 든든함마저 채워진다.

채식을 실천하는 친구와 함께 오기에도, 사랑니를 뽑지 않고도 뽑은 기분이 드는 나를 데리고 오기도 이만한 곳이 없다.

옛 향기 가득한 동인동 옛 추억

A.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6길 14

T. 02 512 5765

 

We Around Project

내가 오늘 분명히 먹은 것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저녁 식탁을 치우면서 내일 점심을 고민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마음에 선명히 남는 한끼의 식사가 있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의 대화를 적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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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지향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