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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My Youngest Days
누군가 말했다. 무엇을 하고 살지 3년 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도달한 곳은 원래 있었던 자리였다고. 나쁘지 않은 결론이었다. 예전과 다름없이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그에게 나는 자꾸만 반작용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직 젊기 때문에 괜찮아”라는 조금은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나도 시작점으로 선회할 뿐이라는 걸까? 나는 그 끝이 궁금해졌다. 무엇을 향해 달려야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을까. 그해 여름,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인도에 갔다. 도착한 첫 날, 콜카타Kolcata 공항은 산란했고, 사람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공항 문을 열고 나타난 이방인을 주시하는 그들의 커다란 눈을 바라보며 나는 아주 잠시 내 선택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꼬마가 짐을 들어주려 했다. 나의 짐은 얼마나 창피하게 커다란 것인가. 선처를 바라는 아이를 뒤로 하고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차는 콜카타 시내를 유유히 빠져 나와 새카만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에는 익숙한 두 가지가 없었다. 백미러와 중앙차선.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앞으로의 여행에 기대를 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인도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최북단,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왕국 라다크Ladakh의 수도, 레Leh였다. 지금은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주의 작은 마을인 이곳은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곳 중 하나다. 국내에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오래된 미래》를 통해 알려졌다. 사실 그곳에 간 이유는 더위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5분도 되지 않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무시무시한 인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저는 전쟁이나 폭력 속에 살아본 적은 없어요. 정치적 음모라던가 헬리콥터 추락도 없었죠. 그렇지만 제 인생은 드라마로 가득 차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경험해본 것 중 가장 멋진 일이란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이루고, 바로 그런 것들이에요.”
–영화 <비포선셋> 중에서
“어디야? 차 출발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급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10분 후면 차는 먼 길을 떠날 것이다. 마르지 않은 양말과 속옷을 그대로 가방에 쑤셔 넣고는 새벽의 찬 공기 속으로 뛰쳐나갔다. 지난 4개월간 콜카타 인근의 시골 마을에서 더위와 습기에 지쳐갈 때쯤,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서적을 위로 삼아 자주 들여다 보곤 했다. 그중에서도 닳도록 보고 또 봤던 부분이 바로 지구상에서 다신 없을 풍경을 자랑한다는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레였다. 드디어 그곳에 가는 것이다. 짐이 많은 여행객들 덕분에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나의 가방은 히말라야가 아닌 동네 뒷산에 가져갈 법한 크기였다. 차 위에 짐을 동여매고 있는 아저씨에게 건네니이것이 전부인지 확인하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제 모든 출발 준비는 끝났다. 히말라야행 버스에 탑승할 승객은 모두 열한 명. 세상에서 가장 높은(그리고 가장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우리의 목숨을 책임질 기사 아저씨는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네팔인이었다. 그의 옆에는 히말라야 산중에 애인이라도 숨겨놓은 건지 잔뜩 멋을 부린 조수와 정체불명의 아주머니가 좁은 공간을 비집고 앉았다. 우리가 머물던 마날리Manali의 여행자거리를 순식간에 내려온 지프차는(아저씨의 운전솜씨는 정말이지 예사롭지 않았다!) 갑자기 시내의 사거리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감색 가죽 점퍼 차림의 사내 한 명을 태웠다. 곁눈질로 흘끔 쳐다본 그의 첫인상은 담배 광고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황야를 방황하는 고독한 사나이랄까,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이윽고 눈앞에 설산이 펼쳐졌다. 푸르른 새벽녘, 거대한 벌판 위에 움직임이라곤 오직 우리가 탄 지프차 한 대뿐이었다. 사람들은 한기를 느꼈는지 옷깃을 여몄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조금도 춥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이 이빨 사이를 히죽 비집고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하얗고 거대한 설산이 주는 희열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냉혹한 하늘도 서서히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마날리를 떠나 온 지 8시간이 지났을 무렵, 기사 아저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나타난 몽골의 초원에나 있을 법한 천막 앞에 차를 세웠다.
임시 휴게소는 1년 중 단 두세 달, 여름철에만 열렸다.고속도로를 통해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경으로 향하는 전 세계 여행자와 그곳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트럭 운전수들이 잠시 들러 눈을 붙이거나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아찔한 낭떠러지에 기적같이 존재하는 이 휴게소의 주인은 놀랍게도 조수석에 탄 그 정체불명의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내리자 볼이 빨간두 명의 소년이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긴다. 어쩐지 그녀에게선 남루한 옷과 햇볕에 그을린 피부로도 가릴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에 반해 히말라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니 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내가 진열대에서 마음에 드는 초콜릿을 꺼내 들듯 히말라야행 티켓을 산 일은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천막 저편에 홀로 오도카니 떨어져있는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뒤늦게 합류한 고독한 사나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디서 왔어?”
“인도 뭄바이에서 왔어, 넌?”
이럴 수가, 이 남자가 인도인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뭐 이민자라거나 다른 나라 태생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신의 이름은 아슈토시Ashutosh고 찬디가르Chandigarh가 고향인 토종 인도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잠시 버스 뒷바퀴가 구렁에 빠졌을 때 그는 바퀴의 상태에 대해 기사에게 몇 마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분명 힌디어였다(그때까지 나는 그가 인도를 아주 좋아하는 외국인 여행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간 인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다양한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을 만났다. 백인처럼 피부가 흰 사람부터 지금의 버스 운전사처럼 한국인들과 똑 닮은 나갈랜드 혹은 네팔계 사람까지. 그러나 아슈에게서 느껴지는 ‘고독’, 집단에서 스스로 떨어져 혼자가 되려고 하는 습성은 그 어떤 인도인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사람 사이 유대감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심지어 남자끼리도 손을 잡는다), 그것은 전통의 힘이 아직 강렬히 남아있는 시골 마을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내가 인도를 ‘홀로’ 여행하기로 한 것을 밝히면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누구랑 같이 가니?”
“나 혼자 가는데?”
“오….”
그 짧은 탄성에는 수만 가지 우려가 녹아 있었다(사실 이런 반응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자애 혼자 인도를 여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에 대한 그들의 걱정은, 내가 무사히 돌아옴으로 인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에 대한 그들의 전제는 내가 아무리 즐거웠다 한들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슈는 나처럼 ‘홀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레에 가서 뭐 할 거야?”
“글쎄… 걷고, 책 읽고, 스케치할거야.”
그의 대답을 듣고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함께할 수 있는 여행동무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아슈의 맑은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도가 높아지자 차창 밖의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죽음의 회색지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슈는 이곳에 일 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히말라야 지대는 지역별로 강수량의 편차가 극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구름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 부딪칠 때 비를 뿌리는 곳은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지며(예를 들면 방글라데시는 그 엄청난 폭우로 매년 국토의 1/3일 물에 잠긴다), 그 반대편과 구름 위의 지역은 이렇듯 가벼운 뭉게구름이 드넓은 하늘에 폴폴 떠다니는 맑은 날의 연속인 것이다. 평소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코와 입이 바짝 말라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얼마 남지 않은 수분을 모두 히말라야 공기 중에 빼앗겼는지 한껏 푸석해졌다. 그리고 곧 고산병의 증세가 시작되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다른 여행객들은 이미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고산병은 체력조건과 상관없이 사람마다 그 증세가 천차만별이다.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도 있지만, 사실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힘들다고 한다. 고산지대가 처음이라면 누구나 미약하게나마 고산병 증세를 반드시 느낀다. 보통은 무리한 움직임을 삼가고 며칠 정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서서히 사라져 적응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첫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간혹 있어, 그런 사람은 빨리 저지대로 내려가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길은 좋지 않았고, 날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낮에 본 낭떠러지 아래 트럭의 잔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러나 몸에 힘을 빼고 있으니 머리가 차체를 따라 사정 없이 흔들렸다. 고산병은 더 심해졌고 급기야 멀미기운마저 올라왔다. 때마침, 뒤에 타고 있던 서양인 커플이 다급한 목소리로 기사에게 멈추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남자쪽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구토를 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축적했다.
마날리를 떠난 지 18시간 만에 우리는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우리를 반긴 것은 레의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니라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와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짐 챙기랴, 그들을 상대하랴 정신이 혼미해지던 찰나, 아슈는 내게 걱정스런 표정으로 미리 예약해 둔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때마침 곁에 서있던 사람이 이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슈에게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 명함을 내밀었고, 아슈는 그에게 몇 가지 확인을 하는 듯 하더니 일단 밤이 늦었으니 그를 따라가라고 했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4명의 한국인을 한꺼번에 포획한 그는 신이 나서 우리를 쓸어 담듯 봉고차에 태웠다. 분명히 함께 가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차로 따라갈 것이라던 아슈는 결국 오지 않았다.
샨티 스투파Shanti Stupa 초입의 탕그라(탱화)가 빼곡히 걸린 집의 주인 ‘라마’는 흡사 비버를 닮은 귀여운 외모의 자그마한 티벳인이었다. 약간은 기름진,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머리를 머리띠로 훌쩍 넘기고, 대충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가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겨울이면 인도의 대표 휴양지인 고아Goa해변에서 장사를 하고 여름 한철에만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탱화 그리는 법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고. 나도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흔쾌히 가게 안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가 건넨 민트티를 마시다가 나는 아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곧 그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레는 좁은 마을이니까.”
“그렇지만, 난 운이 좋지 못한걸.”
“행운은 신도 만들어 주지 않아. 네가 불운하다면 그 원인도 너한테 있는 거야.”
“윤회를 말하는 거니? 다 나의 업이라는 거야?”
“응. 네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니, 그저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거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니 아슈가 보고 싶었다. ‘행운은 신도 만들어주지 않아.’ 라마의 말이 귓가에서 맴돈다. 나는 부러 시장을 지나 사원을 가로질렀다. 여행자의 구역인 창스파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해있었다.
‘우연한 만남’과 같은 기막힌 행운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 대문 앞에 서서 시선이 닿는 곳까지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렇게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슈만 없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다. 그가 길을 걷고 있다면, 그의 이름을 아주 크게 불러 볼 것이다. 그럼 아마 길거리 사람들이 다 쳐다보겠지?
“아- 슈- 우우.”
가끔 신은 우리의 담력을 시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그는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신은 정말 아슈를 내 앞에, 창스파 골목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나는 그때 이후로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이상한 기분을 몇 번 경험했는데 그 순간도 그랬다. 마치 슬로우 모션 비디오를 보듯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남이 보든 말든 그의 이름을 한껏 불러 볼 것이라는 다짐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아슈가 고개를 들었다. 눈만 빠끔히 내어 놓았던 나는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슈는 제 집에 드나들 듯 아주 자연스럽게 까만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널 정말 다시 만나고 싶었어.”
“응, 여기 이렇게 있는걸.”
난 그때까지 그림을 즐겨 그리는 인도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는지 아슈의 그림에는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게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림을 보여달라는 나의 부탁에 그는 흔쾌히 스케치북을 건네왔다. 그의 두꺼운 노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멋졌다.
“와, 이거 너무 멋진데! 어디 가면 살 수 있는 거야?”
“파는 게 아니야. 내가 자주 가는 화방에 주문해서 만들었거든.”
인도가 정말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아직까지 기성품이 모든 생활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로(거의 모든 여성은) 천을 사서 치수에 맞게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심지어 기성복조차 모두 분해해서 각자의 사이즈에 맞춰 주었다. 인도에서 산 청바지는 그래서 내게 퍽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스케치북까지 주문해서 만들 수 있다니, 카키색 표지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다가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아슈의 그림은 그가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감수성과 생각을 온전히 담고 있었고, 또 그의 직업(아슈는 뭄바이에서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만일 내가 길에서 같은 노트를 주웠더라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대상을 동경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그날 우리는 함께 샨티 스투파에 올랐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그 일이 내게 엄청난 무리임을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나는 창피해서 숨을 크게 쉬지도 못했다. 같이 걷고 있는 그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눈치챈 아슈는 쉬어 갈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제야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 아슈는 한국인들은 약골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저 고산지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며,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어린 아이 타이르듯 이제부터 천천히 올라가자고 말하며 내 등을 몇 번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가까스로 정상에 오르자 중앙에 불상을 모신 거대한 돔형의 스투파가 우리를 맞이했다. 스투파를 중심으로 바둑판 모양의 타일이 깔린 광장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단체로 요가를 하고, 연인들은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고, 누군가는 홀로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광장의 가장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아름다운 레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시내를 둘러싼 바위산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어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걷히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온통 초록에 파묻혀 있었다. 그 푸르른 녹음은 주변의 황폐함과 맞물려 오직 ‘레’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부드러운 색감을 보여줬다. 밝은 황갈색과 초록, 암벽과 녹음, 그 조화가 이뤄내는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우리는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것은 식상한 일이란 것에 동의했고, 반대편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저기 보이는 난간 있지? 나 거기서 오전에 그림 그렸어.”
“너, 여기 이미 왔었어? 말을 하지, 다른 곳에 갈걸 그랬나?”
“오! 아니야. 여기처럼 멋진 곳은 다섯 번도 더 올 수 있지.”
그곳에서 보는 샨티 스투파는 좀 전에 본 그의 그림과 겹쳐 보였다. 우리는 시장으로 내려와 함께 저녁을 먹은 것 같다. 그때부터 그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내가 쑥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웃음에 관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의 특이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게 되었는데 아슈는 자신의 웃음이 디즈니만화에 등장하는 ‘구피’를 따라 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만화영화를 자주 봤는데 그곳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웃음소리를 죄다 연습해서 그 중에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미키마우스의 웃음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며 보여주었다. 날이 완전히 저물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숙소 앞까지 세 번이나 서로를 데려다 주었다. 그래도 헤어짐의 아쉬움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Hug….”
아쉬운 마음을 덜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우물쭈물 말한 그 단어에 그는 아주 오랫동안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쑥스러운 용기를 낸 나에게 한없는 안도감과 애정을 나눠준 포옹, 그건 《위대한 개츠비》를 인용하자면 ‘내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고, 믿어주기를 바라는 만큼 나를 믿어주는’ 그런 감동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오늘 하루는 레를 떠나있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 아슈가 마날리로 떠난 것이다. 그와 함께 걷던 곳을 다시 걸으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올 때 같은 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하루, 이틀 간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제 정말 홀로 남는 것이다. 물론 그들과 같이 간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남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직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밖에는….
버스 정류소에 나가보기로 했다. 때 마침 이곳에서 20분가량 떨어진 틱세 곰파Thiksay Gompa로 가는 버스가 곧 출발한다고 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 아담한 버스에 올랐다. 먼지로 뒤덮인 버스는 아주 낡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아늑했다. 낡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과 머리에 천을 두른 무슬림 여성 그리고 교복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나는 그들과 다 함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정겨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곰파(불교 사원)가 그렇듯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틱세 곰파는 주변의 평평한 대지와 맞물려 드라마틱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온통 모래와 돌뿐인 오르막을 올랐다. 그러나 레의 날씨는 언제나 쾌적했으므로 전혀 힘들거나 고되진 않았다. 다만 한 발자국씩 오를 때마다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의 전경을 감상하기 위해 자주 멈춰서야 했다. 사원의 입구에는 커다란 종과 꽃화분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이었고, 사람의 손이 덜 닿았을 공간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사원 위로 오르고 또 올랐다. 히말라야의 엄청난 추위를 대비해야 하는 티베트의 건축은 요새와 같아서 아주 작은 창문들을 제외한다면 그저 언덕을 이루는 거대한 암석덩어리의 일부로 보인다. 그 안으로는 좁고 긴 복도들이 미로처럼 형성되어 있고, 그것을 따라 예상치도 못한 공간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드나들기를 반복할 때쯤 사다리 하나를 발견했다.
‘옥상이구나!’ 그곳은 풍화작용에 그대로 내맡겨진 무위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여느 곳과는 다르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하고도 명진한 선율이 공간과 퍽 잘 어울렸다. 발 아래로 잘게 부서지는 자갈 소리와 함께 틈틈이 들려오는 그 선율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 한 켠엔 작은 예배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창문의 틈새 사이로 줄지어 앉은 스님들이 무언가를 하고 계신 것을 몰래 지켜보았다. ‘이 음악이 여기서 나오는 걸까?’ 청아한 선율은 종교음악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때 갑작스레 선율은 돌변하여 엄청난 속도로 휘몰아 쳤다. 나는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고, 거기에는 맨발의 한 남자가 발바닥 장단에 맞춰 기타를 치고 있었다. 마치 공간 속의 바람, 빛, 냄새, 온기 등 자신의 피부로 와 닿는 모든 느낌을 곧바로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제미Jemi, 캐나다 퀘벡Quebec 출신의 음악가로, 늘 이렇게 여행을 하며 작곡을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Musical Explore, 즉 여행하는음악가였다. 지금은 ‘June in the Fields’라는 듀오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있는 그였지만, 그것은 오직 ‘음악’을 향한 것이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다른 히피 여행자들처럼 거만하게 풀어져 있는 모습을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외출도 않고 기타를 끌어안은 채 작곡에 몰두하곤 했다. 친구가 된 나와 제미는 레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스피툭 곰파Spituk Gompa를 찾았다. 주변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그는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한 곡 연주할게.”
“응!”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를 향해 불어오던 바람은 빛과 함께 잘게 부서져 기타현에 알알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매 순간 속에 내가 존재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감은 눈을 떴을 때 우리 곁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잠시 지켜보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그들 중 대부분이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 갈 길로 돌아가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혹시 그가 그런 일에 마음이 상하지나 않을까 궁금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너의 노래를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지?”
“그들을 바쁘거든. 오늘만 해도 대여섯 군데를 구경하러 다닐 거야.”
그들은 정말 그래 보였다. 다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은 꼭 달에 착륙해서 깃발을 꽂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세상에 널리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나는 한동안 머물렀던 레의 사진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그곳에 도착한 이후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기에도 하루가 모자라 카메라를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순간의 감정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의 찬란한 빛과 암석의 냄새. 그것들은 도시의 햇빛 한 조각, 서늘한 바람 한결 속에서도 숨어있어 표정 없는 도시에 뒤섞여 있던 나를 문득 발견해주곤 한다.
‘레’에서는 오직 마음을 열 것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 중에서 팔할이 그곳 사람들과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라다크 사람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길을 물어보면 정말이지 ‘동구 밖’까지 동행해서 알려주며, 별별 사람들 다 겪으며 외지인에게 싫증이 났을 법한 게 스트하우스 주인들조차 투숙객들의 작은 불편함 하나까지 진심으로 대하며 최선을 다해 해결해주려고 한다. 심지어는 빈 방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돌아가는 객들에게도 차를 대접하고 다른 곳에 머물 수 없는지 직접 나서서 이웃에게 물어봐 주기도 한다. 잠시나마 그들 곁에 머물렀던 사람으로서 추측해보건대, 그들의 온화한 마음의 비결은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는 불교에 대한 믿음과 마음 속까지 정화되는 히말라야의 풍경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레 여행자라면,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 “Julley!(쥴레이)”, 우리나라 말로 ‘안녕’이란 뜻이다.
레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닐라 또는 스리나가르를 거치는 육로를 이용하거나 델리에서 직항으로 운행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방법. 육로로 갈 경우 22시간 이상 걸리는 이동시간과 해발 3천8백미터 고산지대에서 적응할 체력이 관건이다. 또한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를 피해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현지 방식을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다면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히말라야 경관이 주는 엄청난 감동과 낯선 동행자들과 친구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반드시 버스를 타자.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이 고속도로는 1년에 딱 세 달, 6월부터 8월까지만 열리므로, 오직 인도 열도가 한껏 달아 오르는 여름 여행객들에게만 허락된 호사임을 기억해 두자!
글 사진 장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