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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씨·화란 ㅡ 동양화가
흑백의 세상에서 느긋이 거니는 두 사람, 무나씨와 화란. 동양화가로서 붓에 검은 먹을 흠뻑 묻혀 든 그들은 각자 앞에 놓인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검은 선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잇는 두터운 실이 되어주고, 하얀 여백은 어디서도 무너지지 않을 나만의 세계를 지탱한다. 마침내 완성한 그림을 마주 보는 무나씨와 화란은 목소리 대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의 고요하고도 선명한 사랑을 듣기 위해 후암동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오자마자 푸르른 창밖이 보이네요. 아름다워요.
화란 어서 오세요. 창밖에 있는 건 감나무예요. 곧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때인데, 한번 무르익으면 겨울까지도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새들이 와서 쪼아 먹기도 하고요. 여기는 집이자 작업실인데, 주택 1층은 시어머니가 쓰시고 2층은 우리 부부가 반려동물과 함께 머무는 곳이에요.
저쪽에 있는 강아지는 방울이죠? 저희를 약간 경계하는 것 같아요.
화란 아, 방울이는 낯을 많이 가려요. 새끼 때 농수로에 빠져 있던 걸 구조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부스럭거리는 옷, 쇠로 만든 도구들을 무서워해요. 과하게 짖거나 경계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지만, 낯선 사람은 최소 몇 달은 봐야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어서 아마 오늘은 친해지기 어려울 거예요. 저기 계단 근처에 있는 고양이는 까망이예요.
무나씨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커피 한 잔씩 드세요.
시원해 보이네요! 커피는 두 분이서 자주 드세요?
화란 매일 아침 무나씨가 드립 커피를 만들어줘요. 이것도 직접 내린 건데 아주 맛있을 거예요.
감사히 잘 마실게요. 두 분은 화가다 보니 전시회나 인터뷰에서 자기소개를 무척 자주 하셨을 것 같아요. 오늘은 서로 소개해 볼까요?
화란 예상치 못했는데(웃음), 제가 먼저 해볼게요. 저는 무나씨를 그림으로 먼저 알고 팬이 되었어요. 간단한 흑백 드로잉을 주로 그릴 땐데 그 안에 철학적인 의미나 세심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죠. 생각을 곱씹고 소화해서 꺼내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작가가 아닌 가족으로서의 무나씨도 같은 모습이더라고요.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조절할 줄 아는, 저한테 굉장히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무나씨 작가님, 조금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은데요.
무나씨 너무나 듣기 좋은 말로 소개해 줘서요(웃음). 저도 잘해야 할 텐데…. 저도 화란 작가님을 관계가 가까워지기 전부터 서예와 그림을 통해 알고 있었어요. 지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작가죠.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책임감이 뚜렷하고 리더십도 있어요. 내향적인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방울이와 까망이는 함께 지낸 지 오래되었나요?
화란 방울이는 원래 무나씨와 지냈고, 까망이는 제가 결혼 후에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아까 방울이를 농수로에서 구조했다고 했는데, 까망이도 작년 10월쯤에 아버지가 취미 삼아 가꾸는 텃밭에서 데려왔어요. 엄마랑 떨어졌는지 혼자 웅크려 있고 주변에는 까마귀가 모여들고 있었죠. 기다려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서 제가 키우기로 했고요. 이름은 아버지에게 지어달라고 했는데 터프하게 “까만색이니까 까망이!”라 하셔서 그대로 부르고 있어요(웃음). 까망이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편이라 겁이 많은 방울이를 오빠처럼 지켜줘요.
무나씨 남매지간 같은 사이죠. 저는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는데 이별한 후로는 새로운 반려견과 지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입양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의 임시 보호 웹사이트에서 어릴 적 함께 살던 친구와 닮은 방울이를 발견하게 됐죠. 마음이 힘들었을 때라 방울이를 데려오고 나서 정신적으로도 많이 의지했고,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땅에 발을 딱 붙인 채로 사는 느낌이죠.
반려동물은 말 한마디 없이도 큰 위로와 다정함을 선물해 주는 존재 같아요. 후암동은 골목이 많아서 함께 산책하기도 좋겠어요.
무나씨 맞아요. 후암동이 굉장히 오래된 동네잖아요. 돌아다니다 보면 피아노 학원, 문방구처럼 옛날에 흔히 보던 가게가 많아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소리나 학교 종소리도 가까이서 들리고요. 사실 조금만 내려가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서울 시내 한복판인데, 이쪽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죠. 이 집도 지어진 지 30-40년은 족히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 폭의 그림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단정하고 올곧은 공간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서요. 두 분이 흑과 백으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기에 자연스레 공간에도 분위기가 옮겨 갔을 텐데, 동양화라는 장르를 먼저 이해하고 싶어요.
무나씨 익히 알고 계시는 산수화, 사군자, 전통적인 채색화나 수묵화 등을 아울러 동양화라고 말해요. 오래전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공유하던 전통 그림인 셈이죠. 서양화를 그리는 작가에 비해 동양화 작가는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동양화를 전문으로 한다는 건 희소성이 있으면서도 까다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 하나도 쉽게 그리는 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화란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잖아요. 글자 획이라는 게 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선을 잘 써야 글도 그림도 잘할 수 있다고 여겨져요. 한자를 쓰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선이 예술의 기본이자 필수 요소인 거죠. 물론 저와 무나씨가 선을 중심으로 작품을 풀어나가고 있지만, 선이 동양화의 전부는 아니에요. 다양한 작가들 덕분에 작업의 경계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으니까요.
무나씨 저희의 그림은 먹과 한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게 전통 재료라고 해서 동양화로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소재를 특이하게 쓰더라도 의미가 동양적이라면 동양화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한편으로 동양화처럼 보여도 작가가 서양화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테고요. 스스로 작업의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각자의 작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요. 무나씨 작가님 책상엔 모래시계가 있던데, 어떤 이유가 있나요?
무나씨 아, 그거 어떻게 보셨지? 항상 쓰는 건 아닌데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곁에 두고 작업해요.
화란 무나씨가 제 남편과 시어머니의 아들, 작가를 넘나드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까, 작업 중이라는 분명한 표시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갑자기 빨래 좀 돌려달라고 불러낼지도 모르잖아요(웃음). 모래시계를 돌려두었다면 전부 흐를 때까지 작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요.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작년에 열린 아트부산에서 무나씨 작가님의 작업을 직접 봤어요. 작품이 크고 흑백이 뚜렷해서 바라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유독 마음에 대한 소재가 많더라고요.
무나씨 대학교를 졸업할 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내가 그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 봤어요. 그랬더니 내가 잘 아는 걸 그려야겠더라고요. 뜬금없이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나 이론 등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당시에 제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밖에 없었어요. 마음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뜯어볼 수 있으니까 소재로도 알맞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관계를 중심으로 작업을 선보였어요. 나와 타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중성,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의 부산물 같은 것들요. 아트부산에서의 전시를 기점으로는 그 사이에서 보이는 감정 자체에 좀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기원을 찾아본다는 의미인가요?
무나씨 말씀처럼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나 무르익는 과정이 주제가 될 수도 있고, 감정을 이루는 것의 특징과 그게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지 등 다양하게 집중해 볼 수 있겠죠. 어릴 때는 독특하거나 처음 맞닥뜨리는 감정에만 몰두했는데, 지금은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고 해요. 그때 감정은 온전히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요. 저한테는 일종의 기록 같은 거예요. 평소에 메모나 일기를 적고 다시 읽어보는 과정에서 소재를 찾아내거나, 화란 씨와 나누는 대화에서 자연스레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심상이 떠오르기도 해요.
분명 나를 살피는 작업인데, 다른 사람의 존재가 필수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무나씨 사람이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세상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결국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거잖아요. 가깝거나 먼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얻게 되죠. 감정이 비롯되고, 상념이 일어나고, 편견이 생기기도 하면서요. 오로지 혼자인 곳에서는 세계가 부딪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꼭 사람뿐일까요? 자연이나 동물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방울이가 아침마다 저를 깨워서 산책 가자고 하면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 관계 속에서도 생각할 지점이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길을 나서게 되거든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무나씨 음, 예전에는 혼자만의 자유를 굉장히 오랫동안 추구했어요. 여러 관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유를 갈망하고 극단적으로는 혼자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 환경으로 저 자신을 밀어 넣어보니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내 표현을 보고 격하게 공감한다거나 감동을 받았다거나 또는 아쉽다거나, 상호작용이 필요한 거죠.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다양한 감정이 없는 삶은 너무나 건조하고 무료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 사람이 진공 상태처럼 온전하게 혼자인 채로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나씨 네. 타인과 마주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얻게 된다고 생각해요. ‘무나씨’라는 이름도 결국 나와 관계되지 않은 건 없다는 의미로 지은 거예요.
요즘 작가님이 흥미롭게 바라보는 감정이 있다면요?
무나씨 미안함이에요. ‘미안 세계’라는 작품도 있는데, 미안하다는 건 굉장히 재미있고 또 중요한 감정 같아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후회, 고마움, 분노와 용서가 다 들어 있잖아요. 미안함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님 그림엔 마음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죠. 가는 눈은 감거나 아래를 보고 있고 표정이 없어요. 언제나 맨발에다가 귓불은 길게 늘어져 있고요. 어떻게 구상한 거예요?
무나씨 제가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인가 봐요. 어릴 때 아이들이 인형 놀이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저한테는 그 캐릭터가 나를 대변하는 인형 같은 거죠. 어떤 분들은 부처가 떠오른다고 하시던데 가벼운 낙서에서 시작된 그림이라 부처를 의식하며 만들진 않았어요.
관계나 감정, 마음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보이지 않는 걸 드러내는 일이 까다롭진 않나요?
무나씨 (잠시 고민한다.) 사실 아까부터 자꾸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는데….
화란 (웃음) 보내주신 질문지를 무나씨가 오늘 아침까지 꼼꼼히 보고 답변을 준비했거든요.
무나씨 그래도 잘 정리해서 대답해 본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게 작가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명징하게 보이는 세계에서는 과학자나 분석가의 몫이 큰 것처럼, 또렷하지 않은 감정이나 영혼을 어루만지는 문제에서는 예술가가 유일하게 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꼭 명확하게 드러낼 필요도 없어요. 그럴 수도 없고요.
이번에는 화란 작가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금박 작업, 서예, 인물화까지 동양화를 여러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죠?
화란 봐주신 것처럼 지금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시기예요. 작업 세계가 명확하게 굳어지기 전에 재료를 폭넓게 써보면서 공부하는 게 훗날의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인물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인물화를 자세히 보면 전부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뭉툭하고 뭉개져 있기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이라, 정확하게 선을 그리고 싶어서 시작한 게 서예였어요. 서예로 인물화의 기반을 닦은 지는 4년이 넘었는데 매주 한 번 있는 수업을 빠진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요.
대단해요. 수련의 마음으로 한 거네요.
화란 그런 것 같아요. 무엇 하나를 꾸준히 한다는 성실성을 증명한 것 같아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서예 이외에도 탐구하는 재료들이 궁금해요.
화란 한때는 금박이나 전통 방식인 가루형 물감을 탐구했어요. 지금 쓰는 재료는 편채라는 건데, 고체 상태인 물감 원료의 편을 썰어둔 거예요. 작은 조각을 접시에 두고 물을 넣으면 물감으로 우러나오는데 맑은 종이나 비단 위에 올라가기 알맞죠. 워낙 다양한 재료에 푹 빠졌던 터라 그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옮겨서 ‘보소Bo So’라는 작은 매거진을 만들어보려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두 분의 작업 영상을 보면 명상하는 기분이 들어요. 서두르지 않고 붓질마다 신중히 움직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하는 사람의 마음도 그런가요?
무나씨 저는 작업할 때가 마음이 가장 평화로운 상태예요. 최대한 그 시간을 오래 갖고 즐기고 싶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도 서두르지 않아요. 의미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면의 불안함도 낮아지고요.
화란 물론 일상에서 느긋하게 작업만 하는 건 아니에요. 보통 아침 먹고 뒷정리를 마친 후에 무나씨가 두 잔의 커피를 갖고 올라오면 작업을 시작하는데요. 둘 다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거나 가족들 식사를 챙겨야 해서 정해진 시간 없이 틈나는 대로 작업하곤 해요.
이쯤에서 작가님들의 인연이 궁금한데요. 처음에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어요?
무나씨 대면하기 전에는 서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만 해둔 사이였어요. 화란 씨가 작업실에서의 모습을 올리곤 했는데 저한테는 되게 낯익은 풍경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창틀이라든가 콘센트라든가, 언뜻언뜻 비치는 주변 산책로까지도요. 알고 보니까 제가 옛날에 쓰던 작업실이 서촌에 위치한 건물의 5층이었는데, 화란 씨는 3층을 쓰고 있었던 거예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때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아는 척을 했죠.
화란 그 작업실이 진짜 오래된 건물이었거든요. 낡은 데다가 2-3평 정도로 조그마한 작업실이었지만 저한테는 첫 공간이라 애정이 가득했어요. 무나씨에게 연락이 왔을 땐, 서촌에서 이렇게 낡고 사람들이 별로 찾지도 않는 건물에서 작업한다는 점에서 결이 통한다고 느꼈죠.
누군가에겐 별거 없이 지나칠 작은 요소가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네요. 그 이후로는요?
화란 그때 취미로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무나씨도 같은 선생님께 수업을 듣고 있던 거예요. 작은 우연이 겹치는 게 정말 신기했죠(웃음). 선생님께서도 그 소식을 알고는 셋이 함께 만나자고 연결해 주셨고, 무나씨 전시회에 초대를 받게 됐어요.
무나씨 첫 만남에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게, 화란 씨가 저를 위한 선물로 술 한 병을 사 왔어요. 오자마자 그걸 건네더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요즘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서도 들려주는데, 그날 만난 많은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전시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한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먼저 전시를 봤는지 물어보니까 하나도 안 봤대요.
화란 작가님,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웃음)?
화란 무척 들떠 있었나 봐요(웃음). 저에게 무나씨는 작품의 주제도 묵직하고 예민하게 느껴져서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일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같은 건물에서 작업을 했고 함께 플루트를 분다는 것만으로 일말의 경계심도 사라져버린 거예요. 작품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그저 만남이 반가웠고요.
무나씨 저는 그런 모습이 새롭고 좋았어요. 또 인연이라고 느낀 게, 둘이 마음의 상황이 비슷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때가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와서 방울이도 만나고 자존감을 높이 세워보던 시기였는데, 화란 씨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이런저런 좋은 일이 생기던 때였어요. 각자 자존감이 충만한 상태였으니까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온 거죠. 만약 내가 결혼한다면 자신을 먼저 돌볼 줄 아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화란 내 모습이 나한테 만족스러우니까, 상대방에게 억지로 잘 보이려는 노력이 없었어요. 온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었죠.
여러 번의 우연이 만들어준 인연이네요! 그즈음 각자의 작업실을 하나로 합쳐서 썼다고 알고 있어요.
무나씨 혼자만의 공간을 누군가와 나눠 써야 한다는 점이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좋은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어요. 우리가 같은 분야를 전공한 작가라서, 서로의 작업을 깊이 존중해 줄 수 있었던 거죠. 각자의 작업에 대해 섣불리 칭찬을 하거나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내 작업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어요.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무관심이네요.
무나씨 네. 건강한 무관심인 거죠.
같은 장르를 다루는 동료이자 가족으로서 서로 기대하는 점도 있겠죠.
화란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나씨가 자기 작업을 중요도에서 후순위로 미뤄두지 않길 바라요. 그게 저한테 되게 중요해서, 최대한 무나씨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물론 남편이자 가장으로서 집안일이나 경조사처럼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쉽지 않지만요.
그런 점을 바라게 된 이유가 있나요?
화란 음, 이런 마음은 존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얼마 전에 무나씨와 대화하면서 깨달은 게, 제가 이 사람을 귀하게 대하면 저도 귀한 대접을 받더라고요. 내 기분이 좋길 바라고, 내 작업이 존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무나씨의 작업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귀함을 담아야 한다는 거죠. 그럼 몇 배는 더 크게 돌아오기도 해요. 우리가 부부 사이이면서 동료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무나씨 화란 씨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똑같아요. 결혼했다고 자신을 희생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너무 맞출 필요도 없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화란답게 있어주길 바라요.
각자의 세계가 따로 또 같이, 온전하게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네요.
화란 요즘 그런 생각으로 하는 작업이 있어요. (벽에 걸어둔 자신의 그림으로 안내한다.) 여기 보면 네 개의 네모가 서로 지탱하고 있는데요. 서로 배려한답시고 네모를 둥글게 깎아버리면 본질을 잃어버려요. 하지만 각과 면이 온전하게 존재하면서 뾰족함과 부드러움의 사이를 깨닫는다면 조각끼리 부딪치더라도 모양을 유지할 수 있죠. 네모 조각들의 어떤 면에는 은박을 붙여 반짝임을 표현했는데,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 의미를 뜻한 거예요. 또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자신의 모양을 잃지 않으면 접점을 통해 에너지가 채워질 테니, 서로 무너지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걸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있어요.
혼자보다 함께일 때 내가 알던 세계가 넓어질 텐데요. 함께 지내면서 일상의 의미가 이전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는지 궁금해요.
무나씨 혼자 있을 때는 하루가 비슷하니까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데, 화란 씨와 같이 산 2-3년은 엄청 길게 느껴져요. 일상의 밀도가 높아진 거죠. 그리고 혼자일 때는 1년 중 기억에 남는 날이 별로 없는데 지금은 사소한 것도 의미를 부여하곤 해요. 뭐랄까, 수명이 늘어나는 기분이에요.
애틋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짓궂은 질문도 하나 할게요. 두 분… 다투기도 하세요?
화란 물론이죠. 별것 아닌 일로 다투지만 그래도 화해는 꼭 싸운 당일에 하려고 해요. 만약 하루가 넘어가 버리면 그날 새벽에 감정이 심하게 요동치더라고요. 이미 제 머릿속에선 서운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여러 권 써서 결말까지 내버리고 끝내는 거죠. 무나씨는 오해한 상태로 잠들면 악몽도 꾼대요(웃음). 그래서 싸운 날, 밤새 이야기하더라도 꼭 풀어요.
무나씨 저도 속상하지만, 상대방도 저 때문에 속상할 테니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편이기도 해요. ‘내가 먼저 사과하나 봐라!’ 이렇게 하면 서로 괴로우니까요. 내심 듣고 싶어 할 말을 생각해 보는 거죠.
최근 전시 <미묘>의 소개 글을 인상 깊게 봤어요. 나에게 커다란 공포와 동시에 자유를 주고, 한계로부터 해방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었어요.
무나씨 사랑이라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아요. 지금까지 여러 감정을 다뤄왔는데 사실 사랑을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전에는 갈등, 모순, 외로움, 고독처럼 부정적으로 닿는 감정이 많았죠. 그런데 화란 씨를 만나면서 느끼는 행복을 말하고 싶은데,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은 거예요. 시간이 더해갈수록 깨닫는 감정의 작은 요소들을 꺼내보고 싶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써봤어요.
사랑하는 존재 곁에서는 왜 나를 잃어도 불안하지 않을까요?
무나씨 또 다른 나를 알게 되기 때문 아닐까요? 화란 씨를 만나기 전에는 나의 자유가 절대 침범받아서는 안 되고 경계를 넘는 순간 방해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제는 오히려 다른 종류의 자유가 있다고 깨닫게 됐죠. 좀 뻔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서로를 완전하게 믿음으로써 꼭 맞물리며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 느껴지는 자유도 있더라고요. 따로 또 함께가 가능해진 지금이 더 온전한 자유를 즐긴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감정의 중간 지대가 있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그 중간에 있는 미묘한 것들도 찬란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된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도 재미있고요.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이야기예요. 마지막으로, 함께 늙어갈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무나씨 지금이랑 똑같이, 가족이자 동료로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로 나이 들고 싶어요. 아, 그리고 둘 다 하얀 머리가 되면 좋겠네요. 할아버지가 된 제가 전시를 열면, 화란 씨가 찍어준 저의 모습을 전시장에 걸어두고 싶어요. 캡션에는 ‘작업 도중 아내 화란이 찍어준 사진’이라 쓰고요.
기분 좋은 상상을 엿봤네요. 화란 작가님은요?
화란 저는 닮고 싶은 부부가 있어요. 예전에 <인간극장>에서 작곡가 할아버지와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나온 적이 있어요. 책이 잔뜩 쌓인 집에서 소박하게 식사를 차려 먹고, 서로 나긋한 목소리로 대화하세요. 할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할머니께 드립 커피도 내려주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사실 그래서 무나씨에게 매일 커피를 부탁하기도 해요(웃음). 그걸 대접받는 게 제 행복이라서.
무나씨 그래서였구나. 그럼 평생 해줘야겠네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