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김 없이 구해낸 결실

어글리어스

장을 보러 찾은 마트. 여러 채소를 비교하며 가장 흠이 적은 것을 고르던 그때, 이름 하나가 머릿속을 스친다. ‘어글리어스Uglyus’. 못난이 채소를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라고 했던가. 어글리어스를 찾아보자 그간 몰랐던 세계가 펼쳐졌다. 당근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는 거야? 완벽한 외형이 아니면 모두 버려진다고? 놀란 내게 어글리어스가 손 내밀었다. 못난이 농산물을 구출해 함께 지구를 지켜보자고!

그 많은 채소가 버려지는 이유

지금부터 오이를 떠올려 볼까? 대부분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한 모양에, 비슷한 길이의 오이를 머릿속에 그렸을 테다. 마찬가지로 오렌지는 표면이 매끈한 구 모양이, 당근은 통통한 원뿔 모양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 이유는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갖춘 채소만이 ‘정상품’으로 분류돼 유통되어 왔기 때문이다. 흠이 있거나 크기가 작은 작물은 ‘규격 외 농산물’로 분류돼 버려지거나 가공식품이 된다.

문제는 규격 외 농산물이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점이다. 맛이나 선도 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조금 작거나 모양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은 폐기된다. 특히 병충해나 기후와 맞서 싸우며 자라 투박한 유기농·친환경 작물일수록 ‘못난이’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버려지는 열매는 폐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해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고. 그렇다면 한 해 동안 농부가 정성 들여 지은 수고와 재배를 위해 사용한 물, 비료도 모두 낭비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버려질 이유가 없는 존재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어글리어스는 2020년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못난이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해 채소 박스를 꾸려, 1주 또는 2주 간격으로 정기 배송해 온 것이다.

각 야채의 사연과 활용 요리법이 적힌 종이 한 장과 함께, 어글리어스는 우리의 현관문을 두드린다. 커뮤니티에서는 각자가 시도한 요리도 공유할 수 있으니, 채소와 함께하는 날들이 더 풍요로워진다. 어글리어스와 발맞춰 걷는 이들은 말한다. 채소는 상품이기 전에, 우리 땅에서 자라나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규격화된 작물이 시장을 꽉 채운 장면을 이제는 달리 보게 되었다고. 지구를 돌보며 건강도 지키는 채소 생활은 어글리어스와 함께할 때 좀더 유쾌해진다.

채소를 구하는 원칙

상품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식재료를 훌륭한 상품으로 바꾸는 ‘푸드 리퍼브Food Refurb’ 서비스는 그간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어글리어스 서비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농작물을 유통하는 명확한 기준 덕분이다. 이들은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무농약·유기농 채소로 박스를 구성한다. 특히 화학 농약, 살충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 인증 산물을 먼저 사들인다. 이런 작물에 관심을 두는 일은 우리 땅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부심 있게 채소를 길러낸 농부들에게 건네는 응원과도 같다.

어글리어스를 살피다 보면 ‘구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사라질 뻔한 농산물을 구해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들의 지향점이 단순한 판매가 아닌 상생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 시선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어글리어스는 일시적인 문제로 판로를 잃은 농산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전해보다 소비량이 줄거나, 구조적인 문제로 작물을 시장에 유통할 수 없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농가로 빠르게 달려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문 두드릴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이 농업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유통은 어글리어스 팀원들이 현장에 찾아가 생산물을 직접 먹어본 뒤 이뤄진다. 산지와 각 채소의 사연도 투명하게 공개되니, 소비자들은 개성 있는 야채들이 어떻게 배송지까지 당도하게 되었는지 살피고 안심할 수 있다. “크기가 아담하거나 우람해요.”, “판로가 필요해요.” 박스와 함께 보내주는 종이를 읽다 보면, 멀리서 도착한 생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스는 소비 인원에 따라 스탠다드(1–2인), 점보(3–4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모든 품목은 최소한으로 포장된다. 플라스틱은 사용은 지양하고 생분해 비닐, 종이 상자, 종이백을 쓴다. 환경을 세심히 고려하는 손길에 나 또한 새롭게 다짐해 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속가능성에 한 걸음 다가가 보자고.

투박한 사과에 숨은 이야기

사과는 어글리어스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농산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과는 윤이 나고 상처가 없는데, 완벽한 열매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크기를 키우기 위해 약품을 뿌리거나, 햇볕을 골고루 받아 선명한 색을 내도록 일회용 반사필름을 나무 아래 깐다.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는 만큼 땅 속 생물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폐기물은 쌓인다.

자연이 오롯이 키운 사과는 좀더 투박하다. 해를 덜 받은 부분은 초록색으로 남아 알록달록한 열매가 된다. 병충해를 이겨내고 아문 자국이 남아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어글리어스는 이런 과실을 오히려 기특하게 여기고, 사과가 품은 상처를 ‘훈장’으로 바라본다.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견뎌냈기에 과육이 단단해져 식감도 아삭하고, 당도와 산미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주 맛있는 사과가 됩니다. 껍질을 벗기거나, 상처 난 부분만 살짝 깎아내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일부 소비자는 더 맛있다며 이런 사과만 찾기도 해요.”

내실 있는 과일이어도 외면받는 일은 부지기수. 그렇게 사과 한 알을 키워내는 데 필요한 물 125리터는 순식간에 낭비된다. 사과즙 등 가공식품으로 재탄생한다고 해도 추가적인 노동력과 포장재가 필요하다. 원물 그대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어글리어스는 전국 각지의 친환경 사과를 찾아 나서서, 산지 직송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물론 농가마다 상황이 제각각이고, 지금의 과일 선별 시스템이 자리한 배경도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장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직접 맛 보여드리면서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는 농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버려질 양파 구할 사람!

못난이 농산물을 꾸준히 유통하는 한편, ‘긴급 구출 프로젝트’를 일시적으로 진행한다. 갑작스럽게 판로를 잃은 농산물이 폐기 위기에 처하면 어글리어스가 두 손을 걷고 나서는 것. 큰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는 지난 2022년 4월에 일어난 ‘제주 햇양파 구출’이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비옥한 화산토에서 영양을 가득 머금고 자란 양파는 수확만을 앞두고 있었다. 당해 양파는 엄청난 풍년을 거뒀지만, 양파 가격이 폭락한 데다 수요가 줄어 양파를 수확하는 것이 오히려 농가에 손해인 상황이었다. 품종 특성상 저장도 불가능하니, 농부의 시름은 깊어져 갔다.

소식을 접한 어글리어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주 햇양파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구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결국 양파 17톤을 구해내는 성공을 거뒀다. 소비자들은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농민들이 웃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관심을 기울였다고. 덕분에 농부들은 땀 흘려 재배한 양파를 판매하고 농가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리면 경제적 타격이 정말 심각해요. 생산비 많이 드는 친환경은 더하고요. 이번에도 빚만 지는 친환경 농사, 접어버릴지 고민했죠. 그런데 긴급 구출 프로젝트를 만나 자식처럼 기른 양파가 폐기물로 전락하는 걸 막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고객님들이 친환경 농가 하나 살린 거예요.”

ㅡ 제주 양파 농가 A 농부

긴급 구출 프로젝트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전국 곳곳의 채소에 가닿았다. 이렇게 보니 매주 집 앞에 도착하는 채소 한 상자의 의미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농산물과 농민, 소비자의 건강까지 지키려는 소중한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을 테니.

울퉁불퉁 멋진 몸매,

자랑해 볼까?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사랑스러움 가득 안은 못난이 채소들. 어글리어스 팀원들이 채소마다 이름을 붙이고, 저마다 즐겨 먹는 채소 요리를 소개한다.

1. 스마일 오이
수수 | MD 

제철 4월—5월 
함께 먹어요 배, 사과, 미역 
따로 먹어요 당근, 무

오이는 원래 조금은 구부러진 모양으로 자라는 것이 자연스러운데요. 일교차가 크고 낮 기온이 높을 때 좀더 구부러진 꼬부랑 오이가 많이 나타나요. 쭉쭉 곧게 뻗은 오이가 흔한 요즘, 조금 구부러진 모습도 인정받아 활짝 웃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추천 요리
오이 냉면! 오이를 채 썰어 고춧가루, 간장, 식초 등 양념에 살짝 무쳐준 뒤 동치미 냉면 위에 듬뿍 얹어 먹는 게 우리 집 여름 별미예요. 수분 가득한 아삭함과 시원한 오이 맛 때문에 여름을 기다리게 된다니까요.

2. 신데렐라 레몬
오렌지 | PM·디자이너

제철 12월—4월 
함께 먹어요 굴, 생강, 시금치 
따로 먹어요 고기, 우유

친환경으로 자라며 생긴 거뭇거뭇한 얼룩들이 마치 숯검정이 묻은 것 같지만, 요리에 활용하면 유리구두를 신은 것처럼 멋진 맛을 내요. 겉모습으로 속단하는 것은 금물! 우리 땅에서 자라 더 상큼하고 맛있어요.

추천 요리
원래 레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주키니 레몬 파스타를 먹고 레몬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상큼한 감칠맛을 떠올리니 입에 침이….

3. 로켓 당근
성현 | 브랜드 마케터

제철 9월—12월
함께 먹어요 레몬, 사과, 식용유
따로 먹어요 무, 식초, 오이

추진력을 얻어 힘차게 날아갈 것 같은 당근, 밭에서 어글리어스로 직진! 특히 제철에 먹는 햇당근은 그 맛에 눈이 번쩍 뜨여요. 한번 맛있는 당근을 맛보면 모양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어글리어스의 당근을 맛본 분들도 똑같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추천 요리
생으로 먹고 싶을 땐 당근 라페, 부드럽게 익힌 단맛을 느끼고 싶다면 버터구이로 즐겨요. 올록볼록한 모양, 혹은 작은 크기에 응축된 특유의 단맛을 즐기기에 가장 좋거든요.

2. 88한 감자
경민 | 프론트엔드 개발자

제철 6월—10월
함께 먹어요 달걀, 버터, 양파, 우유, 치즈

자기에게 맞는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란 모습이 귀엽고 기특하지 않나요? 그 모습 자체로 팔팔한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하고, 숫자 8과 비슷하게 생겨 중의적인 이름을 지어줬어요. 채소를 고를 땐 생김새보다 신선함 그리고 맛에 주목해 주세요!

추천 요리
감자는 뭐니 뭐니 해도 쪄 먹는 게 제일이죠. 설탕 파? 소금 파? 신선하게 잘 자란 감자는 그냥 찌기만 해도 은은한 단맛이 나더라고요.

오피스 런치는

글리어스를 좋아해

이번 호 《AROUND》에서는 체조스튜디오Chejo Studio와 SHDW가 사무실에서 점심을 요리해 먹는 ‘오피스 런치’를 소개했다. 오피스 런치 팀은 장보기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어글리어스 채소 박스를 받아보기 시작했고, 어느덧 구독 120회 차가 넘기에 이르렀다고. 네 친구들은 채소 꾸러미를 살핀 뒤 그에 맞는 조리법을 생각해 요리하고, 남은 채소로는 독창적인 조합을 고안해 재미난 식사를 만든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레시피북 《Office Lunch》에 수록된 요리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체조스튜디오, SHDW

금귤 당근 라페
당근을 색다르게 먹고 싶은 날

“당근 라페를 제철 금귤과 섞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시도해 봤어요. 색이 비슷해서 같이 넣으면 잘 어울리겠더라고요(웃음).”

— 체조스튜디오 강아름 디자이너

재료

당근 2개, 금귤 5개, 호두 5알, 로즈메리 2줄기, 리코타 치즈 적당량, 올리브 오일 3큰술, 화이트와인 비니거 2큰술, 레몬즙 1큰술, 꿀 1작은술, 소금과 후추 적당량

“당근은 채 썰고, 금귤은 얇게 자른다. 당근과 금귤을 볼에 옮겨 담고 호두, 올리브 오일, 화이트와인 비니거, 레몬즙, 꿀, 소금, 후추를 넣고 잘 섞는다. 그릇에 옮겨 담고 리코타 치즈, 로즈메리를 올리면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샐러드가 완성된다. 리코타 치즈와 로즈메리는 생략해도 된다.”

©체조스튜디오, SHDW

여름 카레·겨울 카레
감자와 토마토가 많이 온 날 

“감자나 토마토가 많이 오면 카레를 해요. 특히 여름엔 오이와 토마토로 만든 살사를 올려 먹어요. 김치 대신 곁들일 새콤한 무언가를 찾다가 발견한 레시피예요.”

 — 체조스튜디오 이정은 디자이너

재료

고형 카레 115그램, 물 700밀리리터, 완숙 토마토 2개, 양파 1개, 감자 500그램, 치킨스톡 1알, 버터 50그램

“우선 재료를 손질한다. 양파는 얇게 저미고 토마토는 다진다. 감자는 한입 크기로 깍둑썰기 한다. 팬에 버터를 넣고 약불로 녹인다. 버터가 녹으면 양파를 넣고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양파가 갈색을 띠면 감자를 넣고 한 번 더 볶아준다. 다진 토마토, 물, 치킨스톡을 넣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중불로 끓인다. 그동안 카레와 곁들여 먹을 토핑을 준비하고, 완성되면 카레 냄비를 확인한다. 감자가 잘 익었다면 고형 카레를 넣고 잘 풀어준다. 강불에 넣으면 용암처럼 뿜어져 나올 수 있으니, 꼭 약불로 줄인 뒤 넣어야 한다. 카레가 잘 풀어졌다면 불을 끈다. 접시에 밥을 담고 카레를 부은 뒤, 만들어 둔 토핑을 올리면 완성이다.”

여름 카레 토핑
여름 카레의 토핑은 잘게 썬 오이와 토마토에 올리브 오일, 레몬즙, 화이트와인 비니거, 소금, 후추를 넣고 버무리면 끝이다.

겨울 카레 토핑
겨울 카레의 토핑도 간단하다. 대파는 4센티미터 정도로 자르고, 단호박과 연근은 얇게 저민다. 팬에 오일을 살짝 두르고 채소를 노릇하게 굽는다.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것도 잊지 말자.

Book — 《Office Lunch》 체조스튜디오·SHDW | 체조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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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어글리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