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소리를 머금고

윤진서 — 배우

윤진서는 깊디깊은 숲속을 거닐며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고, 파도의 유려한 곡선을 단단한 두 다리로 종종종 걷는다. 제멋대로 자라는 잡초를 솎아내며 땅이라는 우주를 더듬고, 그 거친 우주에 정원이란 그림을 그린다. 그는 자연과 호흡하며 알게 되었다. 자연을 곁 하면 날씨가 들려온다는 걸. 오늘 밤의, 내일의 날씨가 귓가에 머문다는 걸. 

밤이 오면 반딧불이로 하늘이 가득해졌어요.

너무 환상적이라 언젠가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이었죠.

이 장면을 기억하고 싶어서 소리를 담아두곤 했어요.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듯, 소리를 녹음한 거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부부터 묻고 싶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크게 하는 일 없이 매일 바삐 지내고 있어요. 연습실에서 요가 수련하고 책 읽고 글 쓰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흘러가요. 7년간 제주에 살다가 얼마 전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이젠 제주가 훨씬 익숙해져서 서울 구경하는 재미로 지내고 있어요. 쉴 때마다 유명하거나 좋다는 동네를 탐방하고 있죠. 

 

어디 어디 다녀오셨어요? 

얼마 전에 경희궁 근처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궁궐을 걸었는데 그 코스가 참 좋았어요. 해방촌에서 강아지랑 산책한 것도 좋았고요. 걷다 목이 마르면 눈에 띄는 곳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강아지가 함께할 수 있는 가게가 많아서 편하더라고요. 제주는 관광객 중심이어서 반려견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배우로 활동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뭐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배우라는 직업을 이제는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연기하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거예요. 특별한 정의가 없을 수도 있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같은데, 음…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계속 상상하고 표현해 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기술을 연마한다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긴 어려워요.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제가 계속 변하니까 그 정의도 변해갈 것 같고요. 또, 정의 내리는 순간 저 역시 정체돼 버릴 것 같아서 정의 내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요. 오히려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배우는 이런 거야.’ 하고 정의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치열하게 연구할 땐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연기가 있었거든요. 자연스러워서 연기 같아 보이지 않는 연기, 누군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러운 연기…. 근데 그건 그때 생각이고, 지금은 퍼포먼스적인 연기가 좋아 보이기도 해요. 장면이나 작품마다 보여주어야 할 연기가 따로 있는 것도 같고요. 

 

언제부터 영화에 흥미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흔히 말하는 ‘시네필’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죠. 영화를 통해 인생을 공부하려 들었고 뭔가 궁금해지면 영화를 찾아봤어요. 음악을 알고 싶으면 음악 영화를 보고, 요리가 궁금하면 요리 영화를 봤죠. 감독이 궁금하면 그 사람 작품을 찾아봤고요. 이쪽 일은 특별한 계기 없이 시작하게 됐어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계속해 온 사람이 자라서 음악가가 되듯, 저 역시 꾸준히 영화를 봤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고, 주변에 영화 하는 사람이 많았고, 어릴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녔거든요.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 영화를 본 것도 같아요. 그러면서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고요.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군요. 좀 진부한 질문이지만, 윤진서의 인생 영화는 뭐예요? 

좋아하는 영화는 나이에, 시기에 맞추어 변해가고 있는 듯해요. 어릴 땐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어요. <국외자들>(1964) 같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고, 동경하기도 했어요. 아마 자유분방함을 배우고 싶던 것 같아요. 그러다 나이가 드니까 제가 이입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에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누구나 본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잖아요. 취향이나 공감대는 변할 테니 인생 영화도 바뀌겠죠. 저도 대중이자 관객이니까, 마찬가지예요. 한 작품만 꼬집어 말하긴 힘드네요(웃음).

영화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마음 쓰이는 인물을 만나게 돼요. 그 안에도 수많은 노력이 깃들었겠죠? 

그럼요. 배우 한 명이 뭔가를 잘 표현해 내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표현만으로 영화가, 인물이 완성되긴 힘들어요. 촬영 감독, 미술 감독, 연출, 작가… 수많은 스태프가 그 안에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조금씩 담고, 구체적으로 한 신Scene을 구성해서 인물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인물이나 상황이 실재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데엔 수많은 사람과 상황이 개입해요. 그렇게 해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그게 잘 되었을 때 대중이 몰입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과정이 있기에 함께 감정을 느끼고, 웃고,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뭔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까지도요. 아무래도 저는 인물보다는 그 인물의 배경, 상황이나 대사 같은 걸 포함해 장면을 기억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진서 씨는 어떤 연기를 하고 싶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이야기를 해볼게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고, 무려 10년 동안 꾸준히 보고 있는 영화인데요. 최근 1년간 다섯 번은 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 영화를 ‘결혼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나흘 동안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로 축약할지도 몰라요. 근데 10년 동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다 보니 여자 주인공인 프란체스카 존슨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전에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두 사람의 사랑만 보였고, 너무 마음 아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자식을 향한 사랑도 느꼈어요. 영화 첫 장면이 자식들이 프란체스카의 편지를 읽으면서 시작되거든요. 또, 불륜에 대한 시선이나 그 두려움도 느끼게 됐어요. 저한테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는 걸 알았죠.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거잖아요. 연기를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인물 안에 복합적인 고민을 녹여내는 게, 겹겹이 싸인 연기를 하는 게 배우의 일이 아닐까 싶었죠. 

 

연기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연기 외의 일에도 관심 있어 보여요. <경주>(2013)에서 ‘협력 프로듀싱 윤진서’라는 크레디트를 보았어요. 

저는 계속 여러 가지를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감독이나 연출을 하겠다는 포부가 아니라 작게 작게, 계속 재미있는 걸 시도해 보고 싶은 거죠. <경주>에 참여할 땐 미국에서 1년 정도 살다 막 돌아온 때였는데, 미국 독립영화 신에서 <프란시스 하>(2012)가 굉장히 관심받던 시기였어요. <프란시스 하> 주인공을 맡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글도 쓰고 감독도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거든요. 그걸 전부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워서 저도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모든 역할에 관심을 가졌죠.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지금껏 세 권의 책을 냈는데 그것도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고, 단편영화나 장편영화를 만드는 걸로 이야기를 풀 수도 있겠죠. 독립영화 스케일일 수도 있겠고, 굳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야 하나 싶으면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꿈이라고 이야기하긴 그렇고… 시네필로 살아온 사람의 몽상이랄까요.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는 일엔 관심이 많아요.

그러고 보니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셨죠. 한동안 업로드가 없어서 궁금했어요.

그걸 보는 분이 계신 줄 몰랐어요(웃음). 제주에 살 때 집 앞에서 찍고 그날 바로 편집해서 올린 게 대부분이라 대단할 건 없어요. 대학생 땐 필름 편집도 했는데 지금은 동영상 파일로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쉬워요. 

 

하지만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이잖아요. 편집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그래서 제가 만든 건 되게 엉성하잖아요(웃음). 

 

당연히 스태프가 있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가끔 옆집 친구가 도와준 정도예요. 촬영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언니죠. “언니, 휴대폰 좀 들고 있어 봐. 나 귤나무에서 귤 딸 테니까 그거 찍어!” 그러면서(웃음). 

 

심지어 휴대폰 영상이에요? 

네. 제 휴대폰이요. 유료 애플리케이션이나 폰트도 안 썼어요. 전체 콘텐츠 중 서너 개 정도는 전문적으로 유튜브 영상 편집 하는 대학 동기가 도와주긴 했는데, 그것도 제가 가편집을 해서 보내야 했어요. 제 손을 거치지 않은 영상이 없죠. 친구들은 구독자가 왜 이렇게 없냐고 그러던데요(웃음). 

 

이제 유튜브로 서울살이도 볼 수 있나요? 

유튜브는…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영상보다 낭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저작권 때문에 어려워요. 제가 쓴 글도 온전히 저한테 저작권이 있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 쓰자니 시간이 없고요. 글 쓰는 일은 계속 해오고 있어서 늘 마감이 연달아 있거든요. 신기하게 글 쓰는 데는 끝이 없더라고요. 연재 하나가 끝나면 또 들어오고, 끝나면 또 들어오고 그래요. 한동안 《한겨레》신문에서 발간하는 ‘공감’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는데요. 촬영에 들어가면서 딱 1년을 채우고 종료했는데, 지금은 또 ‘밀리의 서재’에 연재하고 있어요. 글 쓰는 건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놓지 않고 싶은 일이기도 해서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개인 책 작업도 하다 보니까 유튜브 낭독을 위한 원고는 쓸 시간이 없더라고요.

윤진서와 여행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같아요. “하고 싶은 여행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눈으로 낯선 장소를 바라보고,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집을 떠나오는 것”이라고 책에 쓰기도 했는데,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지내다 오신 걸로 알아요. 

여행 정말 좋아하죠. 여행하다가 좋으면 눌러살기도 하고…. 파리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3년 살아 보았고, 캘리포니아에서도 1년 정도 머물렀어요. 어디든 여행을 가면 ‘여기서 살면 어떨까.’ 항상 생각하는 편이에요. 궁금하면 살아볼 수 있다는 게 프리랜서의 장점이죠. 농담 반, 진담 반인데 여행 진짜 좋아하면 결혼하지 마세요(웃음). 

 

새겨들을게요(웃음). 여행할 땐 어떤 스타일이에요? 

정해 놓은 건 없어요. 그때그때 빠져 있는 걸 좇아서 여행해요. 그림이 좋을 땐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큰 미술관부터 자그마한 갤러리까지 다 돌아다녔어요. 같은 그림 여러 번 보는 것도 좋아해서 집 근처에 미술관이 있으면 매일 가서 보며 지냈어요. 서핑에 빠져 있을 땐 바닷가 근처에 집을 구하고 매일 서핑하면서 지냈죠. 같은 바다여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다르거든요. 물의 깊이감도 다르고, 색도 다르고요. 누구랑 바닷가에 있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어떤 도시든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 시간까지 모두 여행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푹 잠겼다 오는 거죠. 요새는 재즈에 관심이 많아서 다음 여행 테마는 재즈로 하고 싶어요. 재즈 페스티벌 같은 걸 알아봐야 하나, 라이브 공연장을 찾아봐야 하나, 하면서 재즈 여행을 꿈꾸고 있어요. 

 

그럼 여행 계획은 잘 안 세우는 편이에요? 

어딜 가더라도 계획한 게 베스트는 아니더라고요. 직접 보면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계획이 전부가 될 순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한 달 여행을 간다면, 숙박은 사흘 정도 잡아요. 적응 기간에 머물 곳만 정하는 거죠. 그러고는 현지인들에게 더 좋은 위치나 장소를 물어보고 이동하곤 하는데, 직접 가보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훨씬 많아져요. 

 

해외 살이가 어렵거나 두렵진 않았어요? 

어려운 부분이야 물론 있죠. 근데 묵묵히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집 컨디션이 엉망이면 ‘잘못 구했네. 내가 잘못했네.’ 하는 식으로요. 어려운 대로 여행의 맛이 있는 것도 같고요. 사실 제가 밤늦게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편은 아니어서 안전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별일이 생길 여지가 없었거든요. 어두워지면 집 안에 있고, 새벽 6시쯤 해 뜨고서야 나가는 편이어서 불안할 일이 없었어요. 모험하는 것보단 안전하게 오래 여행하는 게 좋더라고요. 

 

제주에 정착하신 것도 여행하다가 머물고 싶단 마음 때문이었나요? 

바닷가에서 사는 게 항상 궁금했어요. 해외에 있는 바다 마을에서 살아볼까도 싶었는데, 가족도 그렇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서핑할 수 있는 제주를 선택하게 됐죠.

이번 호 주제어가 ‘산책’인데 유튜브에 숲 산책하는 영상을 종종 올리셨죠. 여행 가야만 볼 수 있는 산책길이 집 앞에 있다는 게 부럽더라고요. 제주 산책은 어땠어요? 

환상적이었죠. 제가 주로 산책한 곳은 ‘곶자왈’인데 바로 집 앞에 있는 숲이었어요. 제가 살 때만 해도 관광객은 한 명도 없고 동네 사람들만 다니던 길이었죠. 그나마도 걷다 만나는 사람은 서넛 정도? 겨울이 오면 썰매 타는 동네 꼬마들만 간혹 보이는 곳이에요. 자연밖에 없는 곳이어서 어떤 날엔 혼자 걷기 두려울 정도였어요. 깊은 숲속이었으니까요. 

 

숲을 산책하며 소리를 녹음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녹음기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시더라고요. 

깊은 숲속이라 더 소리에 집중한 것 같아요. 처음엔 뭐가 달려 나올까 봐 무서웠어요. 제주에는 들개가 꽤 있어서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죠. 근데 걷다 보니까 두려움 속에서 고요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음도 편안해지고, 바람 소리도 들려왔고요. 산책은 20분 정도 하면 딱 좋잖아요. 근데 이 숲은 한 번 들어가면 한 시간 이상은 걸어야만 해요. 제가 나오고 싶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고, 산책을 끝내고 싶다고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숲을 산책할 땐 책임감 같은 게 생겼어요. 갔다가 돌아올 만큼의 노력을 해야 했으니까요. 산책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소리를 잘 들으면 날씨가 들린다는 거예요. 오늘 밤, 내일 날씨요. 

 

와! 

바람 세기, 소리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리 들려요. 제주 사람이라면 아마 어떤 이야기인지 아실 거예요. 살면서 보고 듣는 게 온통 자연이니까 자연스럽게 소통법을 알게 되거든요.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파도가 달라질 테고, 멀리서 오는 파도를 보면 내일 날씨가 어떨지 느껴지죠. 이런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저한테는 산책이었어요.

 

도시에서도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걷곤 하나요? 

도시에서 녹음기를 들고 소리를 녹음한 적은 없지만, 백색 소음은 좋더라고요. 제 연습실 바로 앞에 큰 나무가 하나 있거든요. 그 100미터 뒤에는 지하철이 다니는 길목이 있는데,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지하철이 오가는 소리… 그런 게 뒤섞여 들려오는 게 큰 위로가 돼요. 지나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살짝 섞일 때도 좋고요. 

 

도시의 소리 역시 자연의 소리에 가깝군요. 제주의 소리에 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바닷가에 모닥불 피워 놓고 듣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건 매일 해도 좋더라고요. 처음엔 객지 사람이어서 좋은 건가 싶었는데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좋아하는 소리였어요. 마음만 먹으면 바다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나무 타는 소리, 바닷소리,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작은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그런 게 어우러질 때 기분이 참 묘해요. 곶자왈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어요. 하루살이나 반딧불이 소리. 밤이 오면 반딧불이로 하늘이 가득해졌거든요. 너무 환상적이라 언젠가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장면을 기억하고 싶어서 소리를 담아두곤 했죠.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듯, 소리를 녹음한 거예요. 

 

와, 저는 반딧불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정말요? 여름이면 반딧불이 축제를 하는데, 축제 땐 리더를 따라 반딧불이를 구경하면서 숲을 걸어요. 근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니까 최근엔 반딧불이가 자꾸 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개체 수에 따라 축제를 하다, 안 하다 했는데 올해는 열릴지 모르겠네요. 한번 보러 오세요(웃음).

진서 씨 제주 생활에서 가장 부럽던 게 정원을 가꾸는 거였어요. 정원이라고 하면 잘 가꿔진 화단 같은 게 떠오르는데 사실 되게 수고스러운 일이라고 했죠. 새벽에 일어나 매일 잡초도 뽑아야 하고…. 

정원 일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시작한 거였어요. 하면서 배웠죠. 정원은 처음 구축할 때 어디에 어떤 나무를 심고, 어디에 어떤 꽃을 심을지 먼저 디자인한 상태에서 구역을 나누고 진행하거든요. 잔디가 침범하면 안 되는 영역도 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잔디인지, 꽃나무인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구역이 나뉜 정원에서 시작하면 좀더 수월했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시작한 거라 굉장히 어려웠어요. 《가이아의 정원》 같은 책을 보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강의도 들었어요. 

 

온라인에 가드너 수업도 있어요?

그럼요. 플로어링 수업도 있고, 가든 디자이닝도 있고…. 수업마다 과제도 있어요. 다들 어찌나 열심인지, 가드닝에 진심인 수강생이 모여 있어서 배울 게 많았어요. 하나하나 배우며 정원 일을 해나가다 보니까 제주에도 아는 사람들이 생겼죠. 모종 숍을 하시는 분이나 가든 디자이너들인데, 조언도 많이 받았어요. 벌써 정원 가꾼 지 6년째여서 이젠 자리를 제법 잡았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도 정원 가꾸기는 정말 수고스러운 일이에요. 굳이 표현하자면… 노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 같아요. 지금 그린 그림을 한 계절이 지나야 볼 수 있는 신기한 그림이죠. 

 

화분을 가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아주 달라요. 땅에는 공생 관계가 있어요. 옥수수와 콩 같은…? 반면 경쟁 관계도 있고요. 잘못 심어 놓으면 식물끼리 서로 죽이는 일도 벌어져요. 땅속에 어떤 것들이 숨 쉬고 있는지 계산하고, 생각하고, 미리 구획해 두어야 해요. 가드너는 땅이라는 우주를 관장하고 관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에요. 갑자기 태풍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유능한 가드너라고 해도 별수 있나요(웃음). 그런 점이 화분과는 아주 다르죠. 공생 관계는 제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땅속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정원은 자연이 구축하는 또 다른 사회라고도 생각해요. 아침에 벌이 왔다 가면 그다음 시간대에 오는 곤충이 따로 있다는 걸 아시나요? 서로 자기만의 질서를 만들어 정원에 깊이를 더하는 거죠. 꽃이 뭔가를 뿜어내고, 그것이 나비를 불러오고… 자연이 계속 순환해야만 정원이란 사회가 깊어지게 돼요. 그럼 저는 거기 또 다른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으면서 사회가 구성되는 데 도움을 줘요. 정원을 가꾸는 일은 자연과 깊숙이 상호작용하는 일이에요. 

 

잡초 뽑는 건 조금 귀찮은 상호작용인 거죠(웃음)?

처음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6년 넘게 하다 보니 중독성이 있어서 할 때마다 마음에 있는 잡념이 사라지는 게 느껴져요. 잡초를 뽑는 데 집중하니까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요. 일본에는 명상 정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돌 정원이라고, 돌로 원을 그리고 그 원이 흐트러지면 다시 원을 그리고… 그러면서 안정을 찾는 거예요. 자연과의 교감은 사람을 한결 안정되게 만들어 줘요.

이번에는 조금 역동적인 이야기를 해볼게요. 서핑! 원래 바다를 좋아하신 줄 알았는데, 《너에게 여름을 보낸다》에 “바다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곳에 불과”했고, “수영이라도 하려고 하면 발이 닿지 않는 곳이 무서워 얼른 땅을 밟아야 안심”됐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서핑이 아니었다면 그 오랜 시간 바다에서 버틸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5년 동안, 주 3일 이상, 하루에 여덟 시간씩 있었으니까요. 잠잘 때 빼고 2년 반 정도 바다에 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요. 서핑을 하는 건 바다의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에요. 바다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떠 있으려면 계속 같은 자리에서 움직여 줘야 해요. 조류를 온몸으로 읽을 수밖에 없고, 물길이 빠져나가는 길을 알아야 하거든요. 바다의 움직임, 그 리듬에 맞춰서 파도를 타야 하는 게 꼭 하나의 언어 같았어요. 

 

서핑하며 “몸 안을 통과한 것이 있었다.”고 했어요. “그것은 분명 정신적인 것이었고 동시에 물컹했는데, ‘쇼크’나 ‘충격’ 따위의 단어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쓰셨는데,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뭐라고 썼다고요? 보여주실래요(웃음)? 제가 쓴 글인데도 매번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지금 읽어보니… 음, 그런 생각이 나네요. 몸 안을 통과한 건 두려움과 동시에 자유로움이었어요. 큰 파도를 뚫고 지나갔을 때, 분명히 정신적인 어떤 것을 경험했어요. 근데 파도를 뚫고 나간 건 육체잖아요. 그러니까, 정신이 육체를 데리고 간 기분이었어요. 제가 뭔가를 준비하고 체력을 단련해서 해낸 일이 아니었죠. 그냥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자유로움이라는 기분에 휩싸인 거예요. 제가 그토록 원하던 ‘진짜 서퍼’가 된 기분이었어요. 서핑을 하다 보면 1-2초씩 이 기분을 만나게 돼요. 파도 위를 걷는 그 순간에요. 

 

‘파도 위를 걷는다’는 말 참 좋네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파도 위를 걸어요. 초보자들은 파도가 깨지면 하얀 거품을 타면서 앞으로 나가거든요. 근데 초보 단계를 벗어난 서퍼들은 (볼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곡선에 보드를 걸치고 파도를 타요. 파도가 깨지면, 이걸 ‘사이드 라이딩’이라고 하는데, 파도에 보드를 걸치고 속도를 맞춰 걸어요. 

 

그림으로 그려 주시니까 조금 상상이 되긴 하는데…. 

파도의 경사가 고정된 각도로, 굴곡을 지키며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변하는 곡선에 맞춰서 보드와 나도 움직여 줘야 해요. 수평을 맞추기 위해 보드 앞으로 걸어가거나 뒤로 걸어갈 필요가 있죠. 그러니까 정말 보드를 걷는 거예요. 거기에 클래식 서핑을 하는 친구들은… 아니,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직접 봐야 해요. 유튜브에 ‘싱글 핀 롱보드’라고 검색해 보세요. 

 

싱글 핀… 핀이 Fin인가요? 

제가 검색해 볼게요. 여성들이 타는 걸 봐야 해요. 분명하게 걷거든요. “Single Fin Longboard California Rides Women” (유튜브를 재생한다.) 보세요. …걷죠? 이렇게, 또 이렇게. 

 

어? 정말이네요. 

서핑은 이렇게 바다와 잘 맞춰 걷는 일이에요. 

 

자연은 사람을 참 많이 바꾸어 놓는 것 같아요. 대자연도 그렇지만 집 앞에 핀 작은 꽃도 마음에 변화를 주는 것 같아서요.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받은 상처가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약한 면이 있었고, 상처받는 일도 있었어요. 그걸 다 ‘탁’ 놓고 자연에 들어가서 살다 나온 건데요.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휴대폰을 없애 버린 건 물론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는 동안 여러 변화가 찾아왔어요. 일단, 기본적인 체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좋은 공기를 마셨고, 먹거리도 직접 농사짓고 수확해서 먹었으니 당연하죠. 콜라비, 토마토, 무화과…. 체력이 좋아지니까 하루에 5킬로, 10킬로 걷는 게 그리 큰일이 아니더라고요. 사실 사람도 전부 자연의 일부잖아요. 근데 말을 하는 자연과 그렇지 않은 자연은 달라요. 내 이야기를 들어만 주는 자연과 만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자연은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않거든요. 뭐랄까… 피곤함이 사라지고, 10킬로를 걸어도 가뿐한 거예요. 에너지가 계속 유지되니까요. 저는 살면서 스스로 체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서핑을 하고, 제주를 수 킬로 걸어 다니면서 ‘아니네? 나 체력 진짜 좋은 사람이네?’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체력이 좋아진 게 아니라 체력이 원래 좋았다는 뜻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열여덟 살 때부터 배우 생활을 하면서 여리여리한 사람으로 인식되곤 했어요. 그런 배역 위주로 맡기도 했고요. 근데 서핑을 하면서 몸이 커지고, 단단해지고, 피부색도 짙어지니까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절 건강한 사람으로 인식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일찍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이 보는 저를 틀에 맞춰 인식했을 수도 있고, 그게 맞다고 스스로 믿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자연이 저를 원래대로 돌아가게 해준 거죠.

책을 읽다 이 문장에 밑줄을 여러 번 그었어요. “하얗고 청순한 여자보다 까맣고 건강한 여자가 혹은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보다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작고 여린 것보단 풍만하고 강한 것이 좋아졌다.” 방금 하신 이야기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여태 사람들이 예쁘다는 게 예쁜 줄 알고 살아왔어요. 옷도 그렇게 골라 입었던 것 같아요. 진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기보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걸 찾아 입은 거죠. 사실 패션에 관심 있던 적도 없는데, 20대 중후반엔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굴기도 했거든요(웃음). 근데 그게 가식이나 거짓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라고 믿어서 정말 그런 줄 알고 살아온 거예요. 돌이켜보면 그건 제가 자연스럽게 좋아한 게 아니라 주변 시선 때문에 좋아하게 된 일, 혹은 좋아하는 일처럼 느낀 일이었어요. 그렇게 관심이 집중될 정도로 좋아한 영역이 아닌데 그런 척하고 산 부분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전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고요한 숲을 걸으며 아름다움에 관해 자주 생각했어요. 아무 기준 없이 자연 속에 사니까 오히려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기준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시골에 살았기에 건강한 사람이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모르고요. 시골에 있으면 연약한 상태론 못 살거든요. 밭매고, 서핑하고, 걸어다니고, 귤 따고 그래야 하는데 약한 상태로 어떻게 살겠어요. 

 

건강하다는 게 꼭 체력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보기에 단단하고 튼튼한 걸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에요. 자기만의 호흡으로 그 리듬을 찾아서 사는 사람이 진짜 건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외모랑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죠. 프랑스에 여행 가면 프랑스 여자가 예뻐 보이고, 스페인에 가면 스페인 여자가 예뻐 보이거든요. 여기서 예쁘다는 건 미모가 뛰어나다는 의미보다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아름답다는, 그래서 건강해 보인다는 의미예요. 마른 여자여도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산다면 아름다운 거고, 살집이 있는 사람이어도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산다면 아름답다는 거죠. 국적이나 나이와도 상관이 없고요. 그런 걸 보면 외모나 옷차림은 제 기준의 아름다움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만의 믿음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근데, 건강한 마음은 겉으로 다 드러나게 돼 있어요. 눈을 깜빡이는 속도, 선택한 단어, 말의 빠르기, 목소리, 선택하는 음료…. 그 모든 조화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게 그 사람 자체니까요. 하지만 제 눈에 아름답다고 해서 모든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 또 아닐 거예요.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겠죠. 바라보는 사람과의 조화도 필요한 일일 테니까요. 

 

이제 자연과 한 발짝 떨어져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왠지 또 어디론가 떠나실 것만 같은데(웃음),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요?

(손사래를 치며)아니에요, 요즘은 정착할 동네를 찾아다니고 있는걸요(웃음). 어디에 집을 구하면 좋을지 서울 이곳저곳 부지런히 동네 탐방 중이에요. 지금은 어머니가 사시던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좀더 제 패턴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정서가 남아 있는 동네로 가고 싶어서 구석구석 둘러보고 있어요. 시간을 내서 서울 산책을 많이 해봐야 알 텐데 쉬는 날이 많지 않아서 아직 관찰을 많이 못 한 상태죠. 2주일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가고 있는데 자연과 도시에 두루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정착하고 싶다고 했지만 가끔 멀리 놀러 갔다 올 것 같긴 해요. 한 2-3년 살다 올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저는 평생 연기하면서 한국 관객들과 오래 호흡하고 싶으니까… 좋은 동네 있으면 추천해 주실래요(웃음)??

낡고 부서진 채로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빈집들의 마을.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디좁은 집 사이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그가 선다. 춤곡을 켜면 손끝을 뾰족하게 세워 리듬을 타고, 클래식을 켜면 돌계단에 앉아 동네를 굽어보며 시선의 흐름을 정돈한다. 음악과 함께 자유로이 유영하는 모습에 어찌 눈길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동네에 남아 있는 할머니 몇 분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쥔 채 모여드는 모습이 몹시 귀엽다 생각했을 때, 그가 말한다. “너무 귀여우시다(웃음). 이 동네도 재미있고, 필름이라 제 모습을 바로 확인 못 하는 것도 즐거워요.” 배우라는 장벽이 무너지는 걸 느끼며 아름다운 자연이 곁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스크린 너머의 더 아름다운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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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