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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 to Zero
자동차 충돌 실험에 사용하는 인체모형을 더미Dummy라고 한다. 공부 더미, 일 더미, 걱정 더미에 묻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뒹구는 더미가 된 것 같다. 무기력이 만성이 될 때, 서른은 요란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3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났고, 견고하던 관계는 삐걱댔으며 나는 붕괴하는 현실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마치 오백 년 만에 깨어난 냉동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나이에 연연하기 싫어 스물아홉의 마지막 밤도 무심하게 보냈건만, 시련이 계속되니 결국 ‘서른의 신고식’이란 핑계 무덤을 만들 수밖에. 퇴사를 결심함과 동시에 항공권을 끊었다. 이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은신이 영원한 도피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는 기꺼이 내 삶에 또 한 번의 파업을 선언했다.
파리 리옹Lyon 역에서 브장송Besançon 비오트Viotte 역까지는 테제베TGV로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브장송은 스위스에 인접한 프랑스 동북부의 레지옹Région, 프랑슈콩테Franche-Comté의 주도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콩테치즈의 원산지이자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고향. 난 6년 전 이곳에 불어 공부를 하러 온 대학생이었다. 버릴 것 없이 빼곡하게 보낸 1년. 그 후로 단 하루도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망설임 없이 이곳에 올 수 있던 건 내가 떠난 후 매년 나를 초대한 친구 덕분이다. 이미 마음속에선 오래전부터 예정된 여정이다. 기차역이 가까워져 오자 미세하게 떨렸다. 6년 만에 밟는 땅, 그 순간 밀려올 기억들, 세월 너머의 친구 얼굴. 그 모든 벅참을 견딜 수 있을까. 재회라는 것이 이렇게 격한 환희인지 미처 몰랐다.
역으로 마중 나온 친구 폴은 수염 때문인지 훨씬 성숙해 보였지만 장난기 어린 눈웃음은 여전했다. 우린 만나자마자 거의 동시에 “6년 만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부둥켜안았다. 격한 비쥬Bisou(프랑스식 볼 입맞춤)로 프랑스식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 출발할 때까지도 우리는 이 만남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곧 익숙한 풍경이 그간의 기억을 불러냈다. 브장송에는 두Le Doubs 강이 흐른다. 낭만을 아는 이 강은 밤이 되면 근사한 가로등 빛을 입고 좀 더 리드미컬하게 넘실댔다. 강변을 따라 연인들의 그림자가 하나로 지나가곤 했다. 창밖의 풍경과 바람. 그리고 옆에서 재잘대며 한껏 신난 친구의 목소리. 스물넷의 내가 여기에 있었다. 나를 위해 기꺼이 방 하나를 내어 준 폴의 여동생 모르간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나를 끌고 친구를 소개해줄 테니 같이 가자며 차에 올랐다. 어제 본 듯한 친근함과 열여덟 소녀의 에너지가 나를 한껏 고무시켰다. 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 벌판을 달리다 보면 가끔 초원에 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까지, 밤늦도록 회포를 풀며 떠들어댔다. 친구들은 새벽 동이 틀 때야 겨우 돌아갔고, 친구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길에 나설 때도 나는 여행자의 특권을 누리며 게으름을 피웠다. 그런데 이 늦잠을 훼방 놓는 깜찍한 사건이 있었으니, 잔디가 바람결에 눕는 소리가 좋아 열어놓은 방문으로 이웃집 고양이 한 마리가 품으로 풀쩍 파고든 것. 목방울을 딸랑이며 비비적대는데 그 갸르릉 소리에 놀랄 새도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남의 집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지구 반 바퀴를 건너온 손님에게 밥 내놓으라며 냥냥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고양이가 없는 집에 사료가 있는 게 의아했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아챘다. 이웃들한테 하도 잘 얻어먹고 다녀 발랑 까뒤집은 배가 통통했다. 난생처음 보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맞이하는 아침을 어제의 난 상상이나 했을까? 또 어떤 멋진 일이 일어날까. 이 기대감만으로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했다.
폴이 출근하고 모르간이 학교에 가면 추억을 곱씹는 나만의 여행이 시작됐다. 내가 살던 기숙사에 갔다가 항상 장을 보던 슈퍼에 들르고, 이제는 문을 닫은 단골 서점의 간판을 사진에 담았다. 케밥집 사장님하고도 반가운 대화를 하고, 하굣길에 매일 우표와 바게트를 사던 작은 구멍가게 아저씨와도 인사를 나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마을이라 이제는 이곳에 없는 사람들이 더욱 그립다. 한국에서 내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전 룸메이트에게도 간간이 사진을 보내며 특파원 노릇을 하니 낮은 금방 지나갔다. 비가 종일 내리는 날이면 카페 창가에 앉아 옛 생각을 하거나 사람 구경을 했다. 짧은 이야기를 끄적이면서 낯선 곳에서 난 언제나 소설가 구보 씨가 되길 자처했다. 고독을 사랑하고, 또 두려워하며. 바쁜 군중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가며.
변덕 심한 이곳 날씨는 맑다가 난데없이 폭우를 쏟기로 유명하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마 밑에서 소나기가 멈추길 기다리다가 나처럼 발이 묶인 한 사람을 만났다. 처마 밑 적막이 어색해 시작된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우리는 비가 그친 뒤 두 강을 따라 산책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올리비에는 올해 처음 인문대학 언어학과로 부임한 젊은 교수였다.
11우린 걷다가 비가 오면 잠시 카페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비가 그치면 다시 두 강 뒤로 펼쳐진 공원을 산책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한국 학생을 만난 적 없다는 그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퍼부었는데 그 질문을 통해 나는 올리비에가 얼마나 한국에 대해 모르는지 알 수 있었고, 덕분에 할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쳤다. 내가 머무르는 보름 동안 우리는 종종 만나 대학교 구경을 하고,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강가를 따라 산책했다. 가장 마음에 든 곳은 브장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드쇼단Fort de Chaudanne이었다. 족히 몇백 년은 된 듯한 아름드리나무가 한낮의 강한 볕을 막았고 그 잎사귀들이 어찌나 크고 많은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울림 큰 연주를 해댔다. 쇼단에서 보면 브장송은 올망졸망 붉은 벽돌로 가득한 동화 마을 같다. 거기가 거기 같은데 올리비에는 한 곳 한 곳 짚으며 잘도 설명했다. 브장송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브장송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비종땅Bisontin이라고 하자, 쇼단 바로 아래 집 하나를 가리키며 은퇴를 하고 나서는 저 집에 살 거라며 다시 한 번 비종땅의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물공원Parc de la Gare d’Eau은 내가 브장송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는 곳이다. 브장송을 둥그렇게 감아 흐르는 두 강의 가장 아름다운 물줄기에 있는 이 공원은 아침이면 눈이 호강하는 조깅 코스로, 낮이면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로, 그리고 밤이면 영롱한 데이트 장소로 제 구실을 다 했다. 브장송의 이곳저곳을 갈 때마다 우리 대화의 주제는 점점 다양해졌고, 내가 다시 불어에 익숙해지자 ‘일과 여가’, ‘이상과 현실’, ‘결혼의 목적’ 등으로 심오해졌다.
올리비에와 이야기하며 걷다 낮을 보내고 가면 돌아온 모르간과 저녁을 준비했다. 인근에 사는 친구들이 곧잘 방문해 매일 저녁은 파티처럼 유쾌하고 즐거웠다. 브장송의 진짜 얼굴은 해가 질 때부터 나타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보랏빛이 한꺼번에 하늘로 내려앉았다. 물로 번지는 붉은 잉크 같기도, 갓 만든 칵테일 같기도, 그렇게 나른하게 흘러 금세 하늘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석양이 적신 하늘과 도란도란 저녁을 보내다 보면 금방 익숙한 밤공기가 찾아왔다. 예전에 나와 룸메이트는 이 시간만 되면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난간에 기대어,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곤 했다. 코가 얼얼할 정도로 찬바람을 들이켰다 뱉으면 마치 코끝에 투명한 이슬이 맺히는 것 같은 기분이 참 좋았다. 저 너머가 스위스니까 지금 알프스의 공기를 마시는 거라며 청명함에 취한 우리는 그럴듯한 이유로 매일 밤, 그 곁을 맴돌았다.
매일 가득 찬 하루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보다 끊는 것이 더 어려웠다. 아무 생각도 말자는 여행의 결심조차 강박이 될까 두려웠는데, 모든 것이 참 자연스럽게 평화로웠다. 딱 한 발짝만 떨어져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나는 이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지내고 나서야 겨우 깨닫는 걸까. 오랜 친구와의 식사, 새 친구와의 대화, 가끔은 낯선 풍경을 즐기며 혼자 걷다 보면, 이 느긋하고 둥근 여유에 익숙해진다. 이곳의 어느 것도 나를 깊이 메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 이곳의 시간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처럼 느껴질 때가 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내가 최선이라 여긴 선택 뒤에 어떤 무시무시한 운명이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는 것들에 관해 얘기했다. “운명론자라면 지금 네 앞에 놓인 모든 순간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즐겨봐. 일단 멋진 운명이 너를 이곳에 데려왔으니 시작이 좋잖아?” ‘운명’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올리비에는 내가 헷갈릴까 친히 노트에 또박또박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갔다. “30이라면 모든 것이 리셋된 거야. 9에서 0으로 넘어간 순간 모든 것은 새로 시작할 수 있지. 넌 세상의 모든 30대 중 가장 어리다고.” 자신은 리셋을 좀 더 기다려야 하는 늙은 20대라며 마티아스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달밤마다 집 앞을 산책하며 건넨 말 하나하나를, 그 순간의 풍경을 나는 의무적으로 강렬하게 간직하려 애썼다. 분명히 이 에너지가 절실한 시간이 있을 테니.
가끔 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내 삶을 못 견디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떠날 준비를 한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현실을 뒤로한 채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은 자정작용을 시작하고 있다. 타인의 삶 속에서 나는 특별한 조연이고, 적극적인 관찰자이며, 누군가의 추억이 될 이방인이다. 그 역할은 주인공만큼이나 빛나고 소중했다. 내 인생 이야기의 가장 멋진 번외편이 펼쳐진 브장송. 그곳에는 스물넷, 가장 빛나던 화양연화花樣年華의 내가 지금도 살고 있다.
브장송에 대하여
프랑스의 중동부에 있는 브장송은 불어가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시의 이름을 읽어내는 것부터 낯선 도시다. 두 강이 도시를 전체적으로 감싸고 돌아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소에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시내에는 오래된 집들이 많고 도시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가 있어 이방인으로 한가롭게 낯선 도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글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