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한 친구 마리오에게 / <일포스티노>

영화 <일 포스티노>(1994)를 보았다면 이 아리송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지요. 보지 않았다면 보고 싶어질 테고요.

아빠의 일기장

안녕하세요, 저는 파블리토 루오폴로입니다. 나이는 다섯 살이고 엄마랑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거든요. 아빠 이름은 마리오 루오폴로입니다. 엄마가 잊어버리지 말라며 자주 말해 주었고, 아빠 목소리가 녹음된 녹음기도 많이 틀어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아빠를 만난 적이 없지만 늘 함께 있는 기분입니다. 우리 엄마 이름은 베아트리체 루소입니다. 엄마는 칼라 디 소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제 눈에도 엄마는 아름답지만, 옆집 어부도, 그 어부의 아버지도 우리 엄마를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부릅니다. 칼라 디 소토는 작은 섬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만난 곳이고, 지금은 엄마와 내가 살고 있는 곳이지요. 이 섬에는 어부가 많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어부였다고 합니다. 아빠는 배에만 오르면 멀미를 해서 어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섬으로 수많은 우편이 갑자기 밀려오는 바람에 급하게 필요해진 우편배달부가 됩니다. 그즈음 우리 섬에 아주 유명한 시인이 망명해서 섬으로 편지가 많이 도착했다고 하거든요. 아빠는 그 시인이 연애시를 잘 쓰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 시인에게 도착한 편지는 전부 여자가 보낸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빠 일기장에 적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수많은 편지를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탑니다. 바닷길을 따라 펼쳐진 오르막을 오릅니다. 아름다운 섬의 끝에 도착하면 단정하고 아름다운 집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가 시인의 집입니다. 아빠는 문 앞에서 자전거 벨을 두어 번 울립니다. 그럼 시인이 문을 열고 나와 가벼운 인사를 보냅니다. 편지를 받고는 약간의 팁도 쥐여주는데, 그 시인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라고 합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입니다.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시인이라고 합니다. 아빠랑 만났을 때는 아직 문학상을 받지 않은 시인이었지만 그런데도 엄청 유명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도 그 사람이 쓴 시집이 있습니다. 전부 다 있습니다. 엄마는 가끔 그 시집을 읽지만, 제가 내용을 궁금해하면 책을 덮어버립니다. 시집 사이에는 오래된 신문 조각이 몇 개 들어 있습니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 읽던 신문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시인이 칼라 디 소토에 대해 무언가를 적어두었다는 걸요.

암호 같은 단어

하루는 아빠 노트에서 알 수 없는 말을 몇 개 발견했습니다. N은 네루다, M은 마리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은유”나 “심상” 같은, 어려운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시인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N: 은유는 뭐랄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하는 거야.

N: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 보게.
M: 그럼 은유가 떠오를까요?
N: 자신의 소신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남들이 원하는 좋은 말만 하는 시인이 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네.

M: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N: 바다처럼 말이지.
M: 맞아요, 바다처럼요.
N: 그걸 운율이라고 한다네.

N: 심상이란 순간적으로 탄생하는 거야.

칼라 디 소토의 모든 사람이 아빠는 우편배달부였다고 하지만, 저는 왠지 아빠도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 일기장에서 시 같은 걸 많이 발견했거든요. 시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것들을 두고 시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으니까요.

당신의 미소는 장미 / 서슬 퍼런 검 / 솟아오르는 물줄기 / 그대의 미소는 갑작스러운 은빛 파도

하루는 아빠 노트에서 알 수 없는 말을 몇 개 발견했습니다. N은 네루다, M은 마리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은유”나 “심상” 같은, 어려운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시인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바다를 걷는 시인

엊그저께 엄마 가게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멀뚱하게 쳐다보는데, 그가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니?” 저는 그때 그 사람이 흑백사진 속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남자임을 알았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제 이름은 말했다시피 파블리토 루오폴로입니다. 아마 제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 저 시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테지요. 저는 항상 왜 저 남자와 제 이름이 같은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물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시인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엄마 얼굴은 슬퍼 보였거든요. 우리 집에 찾아온 시인은 제 이름을 듣곤 얼굴 색이 변했습니다. 꼭 얼굴이… 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물빛의 얼굴을 한 시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아빠가 죽었다고요. 시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아빠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를 시인에게 주었습니다. 저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목소리입니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 녹음한 것이라고 했는데, 거기엔 제가 잘 아는 소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섬에서 들을 수 있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종소리 같은 겁니다. 이 모든 소리가 저에겐 익숙합니다. 낯선 거라곤 아빠 목소리밖에 없습니다. 녹음기가 아니면 들을 수 없었을 아빠 목소리 말입니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은 녹음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왜 나랑 이름이 같은지, 왜 얼굴이 물빛이 됐는지, 엄마가 왜 당신의 시집을 슬픈 얼굴로 쳐다보는지…. 저는 바닷가를 걷는 시인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반짝거리는 바닷가를 보면서 해가 질 때까지 서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친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왠지 그러고 싶었습니다.

Movie —마이클 래드포드 <일 포스티노>(1994)

파블로 네루다께 바치는 노래

마리오에게 녹음기를 건네며 파블로는 말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게.” 사랑에 빠진 청년 마리오가 뱉은 단어는 단 하나. “베아트리체 루소.” 작은 섬으로 망명 온 파블로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간 후, 마리오는 그의 집에 남겨진 구닥다리 녹음기에 칼라 디 소토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녹음하기 시작한다.

Track 01ㅡ칼라 디 소토의 작은 파도

Track 02ㅡ큰 파도

Track 03ㅡ절벽의 바람

Track 04ㅡ덤불에 이는 바람

Track 05ㅡ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Track 06ㅡ고통의 성모 교회 종소리와 신부님

Track 07ㅡ별빛이 반짝이는 섬의 밤하늘

Track 08ㅡ파블리토의 심장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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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