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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권영미 — 공예가
언젠가부터 책에 옷을 입힌 사람들이 곧잘 보였다. 분주한 지하철 안에서, 볕 구경을 나선 산책길 벤치에서 단정한 모양새의 북커버를 끼운 그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함부로 읽히지 않을 순간 속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오롯이 책 읽을 자유”를 선물하는 ‘공예가’의 김대홍·권영미 디자이너는 일상 속의 빈칸을 채우는 이들이다. 그때 그 장면에서 마땅히 쓸 만한 게 없다면 두 사람은 손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오랫동안 쓰일 것을 만들어 내니까. 지금껏 수놓은 박음질처럼 가지런히 이어질 쓰임에 대해 들었다.
만나고 싶다는 연락에 “책과 곁의 사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응해주셨어요. 먼저 두 분의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대홍 씨와 영미 씨가 서로를 잠시 바라본다.)
영미 먼저 하실래요? 어떻게 하나 봐야지.
대홍 (웃음) 저는 김대홍이라 하고요. 브랜드 ‘공예가’에서 디자인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주에서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여기로 이사 온 지는 꽤 되었고 작업실도 4월부터 자리해서, 찬찬히 터를 잡아가는 와중입니다. 반갑습니다.
영미 안녕하세요. 저는 함께 공예가를 운영하는 권영미입니다. 공예가에서는 샘플이나 제품 등을 제작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저랑 대홍 씨는 결혼한 지 8년 정도 되었는데,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요. 이분의 삶이 제 삶이기도 한 거죠.
저희는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먼저 인사 나누었죠. 그때 작업실 채광이 좋다고 하셨는데 말씀처럼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푸른 나무들이 보여서 아름답네요.
영미 맞아요. 큰 창이 두 면에 세 개가 있는데 맑은 날은 공간 깊숙이 햇빛이 들어올 정도예요. 오전엔 흐렸는데 점심 지나니까 해가 떴네요. 분주하게 정리하고 오시길 기다렸는데 다행이에요. 꽤 넓은 공간이라 한쪽에는 작업 공간을 꾸린 다음 재고, 재료나 즐겨 읽는 책들을 정리해 두었고, 반대편에는 집기를 제작해서 공예가 제품을 쇼룸처럼 배치해 봤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이 테이블은 저희가 ‘쉼터’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틈틈이 커피도 마시고 휴식을 취해요.
원래 신촌기차역 근처 ‘파티션 WSC’를 카페이자 작업실로, 공예가의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도 쓰셨죠? 파주는 책이나 출판물을 다루는 이들에게 반가운 동네인데,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대홍 파티션 WSC는 우리와 우리의 작업물이 다양한 분들께 닿기 위한 창구였어요. 오시는 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공예가를 설명할 수 있었죠. 그런데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카페는 운영하지 못하고 작업에만 집중하게 됐어요. 이대로는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과 작업에서의 배움이 좀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죠. 공예가나 파티션 WSC 외에도 둘의 전공을 살려 매거진 《월간한옥》에서 스타일리스트로 잠시 일했고, 출판사 ‘통신사’를 만들어 책도 몇 권 펴냈어요. 경계를 짓지 않고 일에 뛰어들었는데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하기에는 뾰족하게 와닿는 게 없는 것 같았어요.
영미 둘 다 공부를 좀더 하고 싶으니까, 제가 먼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전통섬유전공에 들어갔어요. 만드는 행위를 좋아하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찾던 시기라서 선택한 전공이었죠. 그곳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대홍 씨는 공예가의 업무를 도맡으며 어떤 진로로 나아가 볼지 고민했어요.
대홍 그러다가 제가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학교 ‘파주타이포그래피배곳PaTI’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당시 살던 가양동에서 그 학교를 오가는데 첫 학기를 다니는 순간부터 파주와 잘 맞아서 근처로 이사 오고 싶었어요. 게다가 학교 주변에 ‘천천히 식당’ 아세요? 학생들은 그곳을 학식이라 부를 정도로 자주 가는데, 파주출판도시에 계신 웬만한 출판인들도 거기서 밥을 드시곤 하거든요. 만남의 장소처럼 드문드문 아는 분들과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파주가 더욱 좋아지더라고요. 집도 옮기고 작업실도 만들면서 낯설고 신기했던 동네가 이젠 정말 친숙하게 느껴져요.
자연히 마음이 향하는 곳이었네요.
대홍 특히 이 작업실이 재밌는 게 뭐냐면요, 키네틱 아티스트인 친한 친구와 근처로 작업실을 알아보려 다녔어요. 그 친구는 어릴 적부터 ‘과학상자’를 갖고 놀았는데 마침 같은 이름을 가진 건물을 발견하곤 무척 좋아하면서 계약했죠. 우리도 어디 마땅한 공간이 없을까 하던 와중에 여길 발견했는데요. 건물 이름이 ‘씨실과날실’인 거예요! 실과 재료를 엮어 물건을 만드는 우리와 딱 맞는 거죠.
영미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파주는 자연을 가까운 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어요. 집 베란다 너머로는 산이 보이고, 주말에는 차 소리 대신 동물 소리만 들려요. 낮과 밤에 다른 새소리를 듣는 경험도 황홀하고요.
저는 같이 일하는 분들을 보면 꼭 첫 만남이 궁금해요. 게다가 공예가는 처음부터 두 분이 함께 끌어왔기에, 인연의 시작을 묻지 않을 수 없죠.
대홍 같은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만난 선후배 사이예요. 영미 씨가 3학년이었고요. 저는 전역한 복학생이었는데, 야간 수업이 가능한 학교라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업 들으며 주경야독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성향은 다르지만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미래에 대한 거창한 그림은 없어도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모습이 닮았고요.
영미 대홍 씨는 외향적인 사람인데 저는 내향적이고 생각이 좀 많은 편이에요.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을 대홍 씨와 이야기하면 다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저의 모든 면을 밝은 쪽으로 맞받아쳐 주는 합이 좋은 사이였죠. 그래서… 연인이 된 거예요(웃음).
궁금증이 풀렸어요. 두 분은 졸업 후에 국내 패션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셨잖아요. 배움을 얻었지만 아쉬움도 많았던 시기라고 알고 있어요.
대홍 당시에 일했던 곳은 하우스 브랜드인데, 실장님을 포함해서 직원이 늘 다섯 명 이하라 한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많은 일을 감당했어요. 디자인이나 제품 제작 실무 외에도 외부 행사나 해외 관련 비즈니스, 매장 청소 같은 일도요. 그리고 매 시즌 좋은 원단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패턴, 봉제를 선보였지만 팔리지 않을 때도 많았고 시기가 지나면 모두 쓸 수 없는 게 되어버렸죠. 스스로 소모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이게 과연 내가 좋아했던 패션이 맞나?’라는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와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던 건 샘플실이나 공장에서 봉제하는 선생님들 만나 이야기 나누는 거였어요. 무엇이든 노련하게 구현하는 그분들은 원단과 재료의 세계에 대해 꾸밈없이 알려주시니까 곁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죠.
영미 씨는 어땠어요?
영미 저는 내셔널 브랜드 디자인팀에 속해서 디자인 업무를 주로 맡았지만 느낀 바는 비슷해요. 매일같이 일찍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속해 있는 브랜드의 매출이 좋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리고 다른 브랜드로 옮겨야 했고요. 그런 생활을 도저히 버틸 수 없다 싶을 때쯤 대홍 씨가 먼저 일본으로의 워킹 홀리데이를 제안했어요. 만약 저 혼자라면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텐데, 대홍 씨를 만나고 난 후부터는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선뜻 행동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흔쾌히 응하고 양가 부모님 뜻에 따라 결혼을 약속한 뒤에 일본에서 1년 남짓 머물렀어요. 도쿄 근교 사이타마 현에 있는 가방 공장에서 함께 봉제사로 일하면서요.
여러 나라 중에서 일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대홍 저는 재봉틀이 익숙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어머니는 재봉틀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시고 아버지도 일본에서 가방 공장을 오랫동안 운영하셨죠.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에 자주 가곤 했는데. 하루는 브랜드 ‘요시다 컴퍼니’의 ‘포터Poter’ 가방을 만드는 걸 보면서 저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엄한 성정에 고집도 세신 분이라 처음엔 하던 거나 하라고 하시다가 매번 설득하니 결국 승낙해 주셨죠. 그 길로 영미 씨와 일본에 도착했는데 첫날에는 맛있는 걸 사주셔서 행복하게 먹었거든요? 근데 바로 다음 날부터 현장에 투입시키는 거예요(웃음). 패션디자인 전공자 전부가 재봉틀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잘못 박으면 곧장 불량 제품이 된다니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하고 하루를 쉬었어요.
영미 재료도 제작해야 하는 양에서 한두 개 정도만 여유 있을 정도로 주어져요. 어떤 때는 그 한두 개 오차도 없을 정도로 모든 제작과 검수 과정에서 실수가 없도록 꼼꼼히 임해야 했죠.
대홍 그런데 영미 씨는 정말 잘해서 매일 칭찬받았는데… 저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방향으로도 시도해 보다가 많이 혼났어요(웃음). 그때 만든 가방이 포터의 ‘탱커’ 시리즈인데 안에 솜이 든 원단을 사용해 재봉하거든요. 작업하다 보면 해가 질 때쯤엔 바지 위에 솜들이 눈처럼 쌓여 있어요. 그걸 보면 ‘아, 오늘도 열심히 했구나.’ 싶죠.
영미 일을 마친 밤 10시 이후에는 공장에 남아 저희끼리 재봉틀로 이리저리 패턴이나 가방도 제작해 보곤 했어요. 하루 쉬는 일요일에는 도쿄 근교로 커피 마시러 가고, 잘 모르는 일본어 쓰면서 특별한 공간을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고요.
대홍 이를테면 아사가야나 고쿠분지, 야나카처럼 여행지 우선순위로는 먼 동네로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파티션 WSC를 꾸린 거기도 해요.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이 쉽게 휘발되는 게 아쉬운 성향인가 봐요. 잘 붙잡고 다듬은 후에 손에 잡힐 수 있도록 물성화를 시키고 싶어요.
더할 나위 없이 바쁜 나날이었겠지만 그 시간이 분명히 현재의 공예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해요.
영미 우리가 만드는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명확해졌어요. 앞서 패션 업계에서의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온전한 상품도 단지 유행이 지나서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옷뿐만이 아니라 너무 급하게, 값싸게 만든 바람에 품질이 떨어져 금방 망가지는 물건도 많고요. 무엇을 산다는 건 비용뿐 아니라 마음의 소비도 있을 텐데,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물건을 매일 만족하면서 쓰는 기분은 대충 만든 물건을 자주 사는 것보다 탁월하게 좋겠죠. 일시적으로 반짝 좋은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쓰일 수 있는 걸 우선으로 삼으려 해요.
대홍 일본은 제작 업무에서의 규칙이나 규격이 명확한 편이에요. 엄격한 기준을 지켜 나온 제품이라는 걸 처음엔 소비자들이 잘 모르더라도, 물건은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잖아요. 어떤 흠이 있다면 결국엔 분명히 발견되고 말 거예요. 그 순간에 우리가 만든 제품을 다시 구매할지 혹은 별로라며 다신 손이 가지 않을지 정해지겠죠. 제작하는 사람부터 엄격한 시선을 갖는다면 한 물건을 오래 곁에 두고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건 곧 ‘공예’의 의미와도 연결된다고 봐요. 공예란 일상생활 속 물건에 기능성과 장식성을 더하는 일이니까요.
대홍 맞아요. 공예가의 슬로건은 “비어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예술의 조각을 채운다.”라는 문장이에요. 이름도 흔히 쓰이는 ‘장인 공工’ 대신 비어 있음을 뜻하는 ‘빌 공’을 넣은 ‘공예가空藝家’라고 지어서. 일상 속 빈자리에 용도에 알맞은 꼴을 찾아 손으로 만들어 채운다는 가치를 담은 거죠. 주로 저랑 영미 씨가 쓰고 싶은데 마땅한 걸 발견하지 못한 경험이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연결되곤 해요.
그 이름으로 가장 먼저 선보였고 또 가장 사랑받는 도구인 ‘북커버’도 그런가요?
대홍 그럼요.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머물 때는 유독 책을 읽을 때 집중이 잘됐어요. 카페에 머물면 외국어가 백색소음처럼 귓가에 들리고, 내가 읽는 책이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한국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카페에서 책을 꺼내는데 뭔가… 주변이 의식되는 거죠(웃음). 책을 덮는 커버가 있다면 더욱 온전한 집중의 시간이 되겠다는 생각에 북커버를 떠올렸어요. 물론 책을 보호하는 의미도 있고요.
잠시만요, 그런데 왜 내가 읽는 책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까요?
대홍 음… 지금 입은 이런 옷, 저는 집에서 안 입거든요. 여유 시간에 책 읽을 땐 저만의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자세를 취해요. 그런데 타인이 존재하는 바깥에서는 내가 편안한 환경을 완벽하게 구현하기가 쉽지 않죠. 어떤 사람의 서재나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처럼, 지금 읽는 책이 나를 대변할까 신경도 쓰이고요. 타인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는 몰라도 무엇 하나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면 행위가 부자연스러워질 거예요. 그래서 북커버를 소개하는 말에 “오롯이 책 읽을 자유”라고 써두었어요.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얻는 자유를 북커버가 느끼게 해줄 테니까요.
한편으로 디자인은 무척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어떤 책인지는 비밀이어도 커버를 무엇으로 고르느냐에 따라 읽은 이의 취향은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영미 그게 정말 재미있는 점이라 생각해요. 공예가의 북커버 중 색깔만 변주를 준 기본 디자인이 있는데, 그 위에 고유한 창작가나 작가, 출판사 등과 협업해서 그들의 색을 그릇처럼 담아내곤 해요. 많은 분들이 취향껏 자신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걸 고르거나, 직접 와펜 등을 붙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버로 쓰세요.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읽는 이들에게 조금 낯설었을 텐데, 이제는 어떤가요?
영미 서울국제도서전에 나갈 때마다 인식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2022년도에 처음 나갔을 땐 북커버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발한 제품 정도로만 여기셔서 구매에는 허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작년부터는 보자마자 북커버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어떻게 쓰이는지만 말씀드렸죠. 그런데 올해에는 사용법조차 설명 안 해도 되더라고요(웃음).
독서에 즐거움을 더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은 거네요. 공예가만의 북커버가 가진 특징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대홍 직접 북커버를 씌우면서 들려드릴까요? (수납장에서 진회색 북커버를 하나 가져온다.) 커버를 책처럼 펼치면 가운데 가름끈이 달려 있고 왼쪽 날개에 펜꽂이로 쓰는 단춧구멍이 보여요. 패션디자인엔 ‘트리밍Trimming’과 ‘디테일Detail’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전자는 장식적인 요소로 기능이 없는 걸 말해요. 후자는 기능이 포함된 요소를 이르는 말이고요. 얼핏 보기에 이 구멍이 단순한 장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펜꽂이라는 기능이 있기에 단춧구멍 디테일인 거예요.
영미 처음에는 구매하신 분들이 구멍이 났다며 불량이라고 놀라셨어요. 설명을 더 잘 했어야 했는데(웃음). 더불어 디테일이라고 하더라도 기능이 덕지덕지 붙는다면 오히려 손이 안 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펜꽂이나 가름끈, 고정 밴드를 제외한 기능적 요소들은 덜어냈어요.
대홍 여기 오른쪽 면에 붙어 있는게 조절 날개와 고정 밴드예요. 커버를 완전히 감싸서 밴드를 끼우면 책이 벌어지지 않죠. 가운데 하단에는 공예가 라벨이 붙어 있고 그걸 바깥면에서 보면 라벨이 박음질된 스티치가 보이는데요.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면 아래쪽에 도서 정보가 라벨지로 붙어 있잖아요. 그걸 은유적으로 표현해 봤어요. 박음질 선이 바깥까지 보이는 거라 공들여 작업해야 해요. 만약 선이 삐뚤빼뚤하면….
아주 곤란하겠어요(웃음). 사이즈를 구분하는 방법도 있죠?
대홍 사이즈를 정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어요. 신국판, 국판, 문고판… 판형도 두께도 제각기였거든요. 결국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다 사이즈를 재고 평균치를 냈죠. 옷을 구분하듯 북커버도 스몰, 미디엄, 라지로 분류했고요. 사이즈나 가름끈, 컬러 같은 요소들 외에도 공예가가 만드는 모든 물건은 전부 직접 써보면서 디테일을 체크해요. 어느 날은 골라둔 색깔이 무지 예쁘다가 하루이틀 지나면 별로 안 예쁘고, 날씨가 좋으면 다시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하다가 다음 날 또 마음이 변하곤 하거든요(웃음). 우리부터 오래 보고 쓸 수 있는지 가늠해 보게 돼요.
보여주신 커버 안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있네요. 작업과 삶의 중심에 놓인 책을 소개하는 ‘스파인Spine’의 과거 콘텐츠에서 영미 씨가 좋아하는 책으로 꼽은 거죠? 요즘에는 어떤 책에 빠져 있어요?
영미 꽤 오래전인데 그걸 보셨나 봐요. 그때는 시인 윤동주, 작가 생텍쥐페리와 마스다 미리의 책, 장욱진 작가의 《강가의 아틀리에》도 꼽았죠. (책장으로 향해 몇 권 품에 안고 돌아온다.) 조금 골라보면… 최근엔 섬유 공예와 예술을 다룬 책이나 북노마드의 《전집 디자인》처럼 작업물을 아카이빙한 책을 자주 봐요. 여전히 문학을 좋아하지만, 졸업 논문이 막바지 단계라 관련 자료에 쉽게 손이 가거든요. 논문 주제는 고려시대 불교의 경전을 감싼 커버예요.
어머나, 고려시대에도 커버가 있었나요?
영미 고려시대 경전의 형태가 두루마리라서 감싸는 커버도 대나무와 실크 실을 엮어 문양을 표현한 발 형태였대요. 표현한 문양도 여러가지였다고 하니, 그 시절에도 경전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커버를 썼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보다도 책이 훨씬 귀했고요.
덕분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았네요. 대홍 씨는 어때요?
대홍 특정 작가를 꼽으려면 조금 고민되니까… 최근 관심 장르로 말하자면 ‘언어’일까요? 저 역시 학교 작업과 관련되었기 때문 같은데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뒷모습》, 빌렘 플루서 《몸짓들》을 꼽고 싶어요. 저와 영미 씨 모두 쉴라 힉스Sheila Hicks의 작품을 좋아해서 그의 작품집도 즐겨 봐요.
문득 두 분의 독서 모습이 궁금해져요. 책 읽는 법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영미 음… 우선 한 번에 한 권만 읽는 편이에요. 동시에 여러 책에 신경을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최대한 책을 깔끔하게 보고 싶어서 인상 깊은 부분에는 포스트잇이나 인덱스를 붙여요. 밑줄 치는 건 다음번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영향을 받을까 봐 굳이 하지 않고요.
대홍 저는 병렬 독서 스타일이라(웃음). 서너 권 북커버에 싸서 곁에 둬요. 연필로 밑줄 긋고 작은 코멘트를 적어두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연필이 없으면 과감하게 종이 모서리를 접어버려요. (오래된 책의 첫 장을 편다.) 그리고 시작 페이지 보면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날짜를 기입해 뒀거든요. 여기 2008년에 처음 봤다고 사인 그려둔 거 보이시죠. 옛날에는 좀 멋있는 척을 하느라고… 사인 만들어서 해놨는데 요즘엔 그냥 이름 적어요.
(웃음) 골라 온 책에서 각자의 습관이 보이는 게 재미있어요. 인덱스가 붙은 건 누가 봐도 영미 씨, 밑줄과 필기가 남은 건 대홍 씨 책이네요. 앞서 잠시 언급했는데, 두 분은 ‘통신사’라는 이름 아래 《신촌통신 》 , 《연희통신 》 을 펴내셨죠. 책과 곁하는 도구뿐 아니라 책을 만드는 경험도 하셨어요.
대홍 서대문구 지원 사업을 통해 먼저 《신촌통신 》 을 제작했어요. 1980년대생이라면 신촌의 문화적 가치를 모를 수 없다는 것 아세요? 서브 컬처의 발상지이자 살롱 문화를 주도했고, 당시 유명했던 아티스트들이 모여 술 한잔하며 예술을 논하던 곳이래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 속 한 장면처럼요. 그런데 그때의 기록을 찾기는 정말 힘들어요. 자리를 지키던 공간들도 힘없이 밀려나 버려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첫 사례로 꼽기도 하죠. 그 시절을 말해줄 수 있는 분들을 컨택해 이경근 객원 에디터와 함께 인터뷰를 나눴어요. 이후에 《연희통신 》 은 앞선 사례의 반대, 도시 재생의 예시로 연희동을 꼽아 취재한 시리즈였고요. 두 권 모두 영미 씨, 친한 친구인 경근 에디터 외에도 동네 분들이 힘을 모아주셔서 나올 수 있었어요.
책이라는 물성의 가치를 느끼는 계기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홍 결국 공예적인 태도나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으로 바라보곤 하는데요. 책의 어디를 살펴봐도 저자나 제작자, 출판사의 마음이 서리지 않은 부분이 없어요. 한 권의 책이 잘 나왔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흐뭇해요.
한때는 세상에서 출판물이 사라질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두 분처럼 그 가치를 아는 이들이 있다면 다를 것 같아요.
(영미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홍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1. 도구집
두 손에 사뿐히 올라갈 만한 크기의 도구집. “여러 도구가 손쉽게 오가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펜이나 가위, 자 등 일상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해 작업자에게 유용한 사물을 한데 모아 두고 쓰도록 기획했다. 중심 주머니 주변으로 여러 구획으로 나뉜 외부 주머니가 달려 있어 쓰는 이의 마음대로, 내 손에 딱 맞는 도구집을 구성할 수 있다.
2. 런드리 백
여름의 시원함을 담은 메시 소재의 런드리 백은 어느 곳이든 사용 목적에 맞게 쓰임을 부여하는 제품이다. 여행 시에는 가벼운 가방으로, 세탁이 필요할 땐 요긴한 세탁망으로 활약하며 과일이나 채소 등을 보관하는 보관망으로의 역할도 가능하다고.
3. 앞치마와 토시
염색가, 도예가, 공예가나 화가, 디자이너, 요리사 혹은 무엇이든 너끈히 해내야 하는 모든 이를 위해 만들었다. 앞치마는 170그램의 가벼운 무게로 장시간 착용해도 부담 없고 여밈 스냅이 달려 있어 입고 벗을 때 편리하다. 토시는 방수 소재이며, 끝부분의 스트링을 활용하여 조절해 작업 도중과 휴식 사이를 유연히 오갈 수 있다.
4. 공예가 MADO 티-백
금방이라도 찻잔에서 건져 올린 듯한 ‘티백’ 모양의 가방. 도쿄 디자인 프로젝트 팀 ‘MADO’와 함께 ‘차의 확장’을 주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제작했다. 사물을 인식할 때 주목하는 여러 부분 중 이들은 크기에 집중했다고. 흔히 보던 삼각 티백의 모양새가 우리 어깨에 가벼이 걸쳐지면, 어느새 쉽게 손이 가는 가방이 된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