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포츠 스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당신에게.

내가

문제를 푸는 법

같은 문제라고 모두 같은 방법으로 푸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포츠 클라이밍 남자 콤바인 결승 중 볼더링 경기에 대한 이야기다. 결승에서 주어진 문제는 네 개였는데, 모두 무척 성격이 다른 문제였다. 여덟 명의 선수가 네 문제를 돌아가면서 풀고, 각 문제에서 완등을 해내면 만점, 어느 홀더까지 도달했느냐에 따라 부분 점수를 받는 방식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경사와 중력을 이겨내야 하는 문제도 있고, 경사와 중력을 이용할 수 없어 건물 외벽을 타듯 점프를 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선수들의 극단적으로 다양한 기량과 기지를 끌어내기 위한 문제들이었다.

몇 해 전 콘텐츠와 무관한 취미를 찾다가 우연히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매일의 목표가 몸을 만들기 위한 ʻ운동’이라기보다 ʻ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푼다’는 표현도 좋았고, 끝까지 해냈을 때 ʻ완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 정답은 없고, ʻ완등을 해낼 나만의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도전한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한 타인의 루트가 내게 힌트는 될 수 있지만, 나의 몸과 기량에 맞는 나만의 루트를 찾고 그걸 해내야만 완등을 할 수 있다. 마치 매일 일터에서, 삶터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수양하는 기분이다.

결승에 참가한 선수들 여덟 명 모두 체격 조건이나 각자의 강점이 무척 달랐다. 팔다리가 길어서 점프나 발 바꿈 없이도 다음 홀더를 훌쩍 잡아내는 선수도 있고, 유연하고 날랜 몸놀림으로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다음 홀더로 넘어가는 선수도 있었다. 그날 경기의 해설을 맡았던 김자인 선수에 따르면, 체격 조건과 밸런스가 좋은 이도현 선수가 대한민국의 기대주라고 했다. 실제로 이도현 선수는 무슨 문제든 무난하게, 완등까지는 아니어도 무리 없이 중간 이상은 해내는 선수였다. 하지만 가장 내 눈길을 끈 사람은 천종원 선수였다. 무시무시한 악력이 강점이라는 그는 경사도 중력도 악력으로 이겨내곤 했다. 다만, 이를 활용할 수 없는 플랫(경사가 없는) 문제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의 일도,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밸런스가 좋은 사람도 있고, 분명한 강점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안라쿠 소라토Anraku Sorato처럼 천재적인 사람도 있다(결승전의 네 문제를 모두 풀어낸 유일한 선수다). 어릴 때는 안라쿠 소라토처럼 무슨 문제든 척척 풀어내는, 재능이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그런 사람을 동경했고,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런 건 타고나야 한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그리고 강점과 약점을 알 만큼 커리어가 쌓이고부터, 나의 한정된 자원을 강점을 더욱 키우는 데 써야 할지, 부족한 점을 메우는 데 써야 할지 늘 갈등한다.

운동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인 스물일곱에(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안라쿠 소라토 선수와는 열 살 차이다), 6년 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천종원 선수는 다음 대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할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플랫을 푸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에, 그의 압도적인 강점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지 않을까. 언젠가 그만의 방법으로 플랫 문제 역시 멋지게 풀어낼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ʻ저 문제 저렇게 푸는 거 아닐 것 같은데.’ 하는 문제도 그는 그만의 강점으로 응했고, 그러한 도전을 지켜보는 게 무척 긴장이 되었지만 결국 해내는 모습에 함께 희열을 느끼며 짜릿했다. 나도 앞으로도 그렇게, 즐거운 긴장과 희열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

김진영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콘텐츠 디렉터. 지독한 번아웃을 겪으며 일하는 마음에 대한 다큐 에세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썼고, 일과 삶의 중심을 찾기 위해 서울을 떠나는 마음에 대한 책 《out of seoul》을 썼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태도에 관심이 많다.

제라드의 축구에는

한 방이 있다

나는 ʻ니밥풀 FC’ 소속이었다. 중앙 미드필더였다. 유니폼은 맞추지 않았지만 등번호는 8번이었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경기를 뛰었다. 팀명과 포지션과 등번호를 보고 떠오르는 축구 선수가 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 리버풀 FC의 전설,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 나는 남중동 제라드였다.

운동선수는 많다. 잘하는 운동선수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진한 기억을 남기는 선수는 별로 없다. 스포츠 스타라는 이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선수만 스타라는 칭호를 얻는다. 그 강렬한 임팩트를 우리는 뭉뚱그려 ʻ스타성’이라 말한다. 조금 더 속 시원하게는 ʻ간지’라고 부른다. 실력 있는 선수는 많지만 간지까지 갖춘 선수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제라드는 둘 다 가진 선수였다.

그의 간지는 한 방에서 나왔다. ʻ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하지만 역시 제라드 하면 중거리 슛을 빼놓을 수가 없다. EPL 역대 최고의 중거리 슈터로 회자되는 만큼 제라드는 폭발적인 킥력을 자랑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달려가서 가속도를 실어 냅다 발등 정중앙으로 후려버리는 이토록 통렬한 슈팅. 그 환상적인 중거리 슛의 진가는 승패의 기로에 선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에 빛을 발했다.

2005-2006 시즌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을 기억한다. 리버풀 FC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경기였다. 후반 46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리버풀은 3 대 2로 뒤지고 있었다. 욘 아르네 리세John Arne Riise가 올린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에 막혀 튕겨져 나왔다. 공은 페널티 박스를 벗어나 점점 멀어진다. 두 번의 바운드를 거치며 힘을 잃어가던 그때, 제라드가 나타났다. 제라드는 있는 힘껏 슈팅을 날렸다. 공이 세 번째로 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다. 모든 기운이 일순간에 맞아떨어진 듯한 완벽한 타이밍의 인스텝 킥. 눈 깜짝할 새에 공은 골대 좌측 하단에 꽂혔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골이자 연장전의 기회를 만들어낸 골이었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리버풀은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제라드는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된다. 2 대 0으로 지고 있던 팀의 멱살을 잡고 2골 1어시스트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역전극을 찍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짜릿한 드라마를 제라드는 잊을 만하면 썼다. 오죽하면 ʻ결승전의 사나이’라는 닉네임까지 있었을까. 적군에게는 좌절을, 아군에게는 환희를 안기는 든든한 해결사. 그는 팔에 완장 달고 똥폼만 잡는 꼰대 주장이 아닌 팀원 모두가 의지하는 진정한 캡틴이었다. 물론 흠이 없는 선수는 아니었다. 절묘한 한 방이 치명적인 한 방이 될 때도 적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꼭 뼈아픈 실수를 하던 우리 형. 좋든 싫든 임팩트 하나는 제대로 남기는 화끈함 역시 ʻ원 오브 뎀 플레이어’가 아닌 ʻ원 앤 온리 스타’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화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이리동남초등학교 니밥풀 FC의 8번 선수가 안필드의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던 오 캡틴, 마이 캡틴을 부르짖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제라드처럼 질주하듯 살고 싶었다. 시원시원하게, 꼭 필요한 한 방을 터뜨려 가면서. 그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한다.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고, 유튜브 채널 ʻ현정김’을 운영한다. 지금은 축구를 하지 않는다.

따뜻한

비즈니스맨

한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압박감은 외국인 선수의 어깨를 짓누른다. 비싼 몸값의 외인은 한국 선수 셋을 합친 정도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리그 개막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그렇다고 외인이 완전한 ʻ을’인 건 아니다. 뛰어난 성적을 낸 외인들은 원 구단의 잔류 요청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일본행,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외인과 구단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다. 

서른 살의 미국 출신 외인 더스틴 니퍼트Dustin Nippert 는 신기한 선수였다. 203센티미터라는 큰 키의 그는 야구 선수보다는 농구 선수에 더 가까워 보였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썩 믿음이 가진 않았다. 그의 첫 등판은 라이벌 LG와의 개막전. LG 팬인 친구와 함께 경기를 시청한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내 예상과 달리, 그는 큰 키와 긴 팔로 LG 타자들을 압도했다. 이닝을 거듭할수록 친구 얼굴은 울상이 됐고,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친구를 놀려대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니퍼트였다. 그가 선발이면 생중계를 풀로 시청했다. 그를 보기 위해 세뱃돈을 털어 부모님 몰래 잠실구장에 갔다(아쉽게도 그날은 5실점을 하며 조기 강판당했다). 그가 잘 던지면 한주 내내 기분이 좋았고, 패전 투수가 되거나 투구 내용이 좋지 못하면 한 주 내내 죽상이었다. 첫 유니폼 마킹은 당연히 ʻ니퍼트’였다. 내게는 아이돌과 유럽 축구 스타 대신 더스틴 니퍼트가 있었다.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니퍼트는 두산과 재계약 도장을 찍는다. 한국을 떠날 줄 알았던 그가 계속 함께한다는 걸 알게 된 당시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그렇게 두산의 에이스로서 구단과 동행을 이어 나간다. 2012년, 2013년…. 2014년을 앞두고는 일본 구단의 오퍼가 들어오지만, 그는 ʻ한국이 좋아서’라는 바보 같은 이유를 대며 두산에 잔류한다. 2015년, 위기가 찾아온다. 부상으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며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니퍼트와 두산은 이별 직전까지 가지만, 그는 포스트 시즌에서 완벽한 ʻ부활투’를 선보이며 14만에 찾아온 우승의 1등 공신이 된다. 그 활약으로 더 재계약한 2016년엔 리그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하며 시즌 MVP를 수상한다.

아쉽게도 영원한 건 없는 법이다. 2017년, 정규 시즌에서의 애매한 활약,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으로 재계약에 실패한다. 외인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팀에 애정을 갖고 헌신했지만, 그렇다고 시장경제 논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최근 조롱당하는 모 사이비 경제 유튜버가 지껄인 것처럼 자본주의는 차갑고, 부진한 선수에게 자본주의는 더더욱 차갑다. 그는 2018년 KT와 계약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왜 그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뛰어난 실력 때문이라는 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차가운 비즈니스 관계 속에서도 바보처럼 따뜻하고, 계산적이지 않던 그런 모습들이, 그를 아직까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않나 싶다. 공수 교대 때마다 야수들을 기다려 주고 마지막이 돼서야 더그아웃에 들어가던 그의 모습, 특별한 이유 없이 한국을 좋아해 주던 그의 모습, 서투른 영어로 사인을 요청해도 항상 웃으며 받아주던 그의 그런 모습들 말이다.

최금수
대학 마지막 학기 재학 중, 백수(진) 취업준비준비생, 4년 동안 법을 전공했지만 뇌 속에 법적 지식은 전무하다. 현재 웹진 ʻruff’를 운영하며 글을 쓴다.

걱정 없는

당부를 전하며

여자라면 누구나 동경하던 언니가 있다. 뭐든지 따라 하고 싶고, 닮고 싶은 그런 언니. 남자 형제 사이에서 커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줄곧 그런 언니를 찾았고, 열렬히 좋아했다. 그중 한 명이 김연아 선수였다. 소녀라면 동경하지 않을 수 없고, 여왕이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김연아 선수는 엘사 그 자체였다. 나의 ʻ연느’는 반짝이는 옷을 입고 은반 위를 너풀거렸고,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밴쿠버에서 경기를 치르던 날을 기억한다. 가족 행사가 있었는지 평소와 달리 수학 과외 선생님 집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공부방 문 너머로는 티브이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의 어머니가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이것 좀 보고 해.” 텔레비전에서는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연아의 경기는 과외를 잠시 쉬어가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당시 작품은 2010 밴쿠버 올림픽의 ʻ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연기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여자 피겨 역사상 최고점을 얻은 경기였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넘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기술을 시도하기 위해 가속을 붙이는 것 같으면, 몸은 바짝 움츠러들었다. 그가 공중에 날아오를 때는 숨을 잠시 참았고, 다시 사뿐히 내려앉으면 그제야 다시 숨을 쉬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 선생님의 집에 있는 모두에게 느껴졌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김연아 선수는 한 번의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그런데 집에 있는 모두가 덤덤했다. 당연히 1등을 할 줄 알았던 것처럼. 티브이 채널은 예능으로 넘어갔고, 자연스럽게 공부방 문은 닫혔다.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수업을 시작하던 그때, 그 집에서의 묘한 기분을 난 여전히 잊지 못한다. 

김연아 선수는 늘 당연한 기대를 짊어지고 살았을 것을 떠올려 본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 그가 겨우 스물 한 살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다. 어릴 때는 단순한 동경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20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그때의 그를 생각하면 아린 마음이 앞선다.

김 선수를 향한 나의 걱정 어린 마음과는 다르게, 사실 그는 사람들의 기대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요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기대를 건강히 이겨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얼마 전 출연한 모 방송에서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줄곧 덤덤한 모습을 보여준 그다. 직장인들이 매일 회사에 가는 것처럼 선수 생활은 시즌을 준비하고 끝내는 일의 연속이었고, 은퇴 때는 해방감만 남았다면서.

김연아 선수에 관한 유명한 ʻ짤’도 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던 장면. 그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선수 인생을 살아냈다. 세세한 걱정은 뒤로하고, 본인의 선수 생활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고 회상할 정도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를 보면서 나라는 원에서 이리저리 튀어나온 생각의 돌기들을 다듬어, 삶이라는 길을 매끄럽게 나아가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가 앞으로의 인생도 씩씩하고 무던하게 걸어가리라 생각해 본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와 틀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런 삶도 잘 해낼 것을 믿는다. 내 생애 가장 목소리가 커진 이 자리를 빌려 전한다. 언니,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

차의진

《AROUND》 에디터. 글 써서 밥 먹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참, 아직 어른 되기는 멀었다.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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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글 김정현, 김진영, 차의진, 최금수 일러스트 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