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담한 터에 초대할게요

보연 — 리빙 크리에이터

영상을 통해 보연의 집에 초대된 손님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함께 보낸다. 매일 정성스럽게 차리는 식탁과 차분히 가꾼 집을 지켜보다 보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찾아온다. 그 자연스러운 기분에 이끌려 어느새 다시 문 두드리게 되는 이곳. 보연은 그렇게 찾아온 우리를 기꺼이 맞이하며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냐고. 은은한 빛이 스미는 집에 머무는 동안,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눈치챈 기분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SNS에서 보연 씨의 이야기를 즐겁게 접해왔어요.

안녕하세요. 혼자 사는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보연입니다.

 

리빙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소개를 부탁해요.

리빙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예쁜 가구나 소품을 추천하는 사람을 많이들 떠올리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집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기록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기보다는 집 안에서의 과정이나 시간의 결이 더 많이 담기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거든요.

 

유튜브 채널명은 ‘아침보연저녁’이에요. 뜻이 궁금했어요.

그 전에는 채널명으로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같은 ʻ뽀하우스bbohouse’를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지금 이름이 문득 생각났고요. 아침, 점심, 저녁은 시간과 끼니를 의미해요. 저는 일상을 콘텐츠에 담는 사람이자 특히 요리 콘텐츠를 주로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시간 속에 담긴 나를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어서 이 이름을 선택했어요.

 

집과 잘 어울리는 산뜻한 이름이에요. 일상을 기록할 때는 어떤 마음과 태도로 임하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과 잘 지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일상을 기록하는 이유도 나랑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기록이 쌓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해지는지가 선명해져요. 요즘은 유난히 타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시대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사회적인 성공의 기준을 좇는 사람들도 많고요. 제 콘텐츠를 보며 사람들이 ‘보연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지나치기보다, ‘나는 뭘 좋아하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었으면 해요.

 

자신을 종종 ‘집순이’라고 부르던데요. 집을 좋아하나요(웃음)?

제 친구들 중에서는 제가 가장 집에 오래 있는 편인 것 같아요(웃음). 나가는 날은 일주일에 한두 번? 분리배출도 오랜만에 외출할 때 해결할 만큼 집을 좋아하죠. 일어나면 보통 요리하면서 촬영을 해요. 겨울이라 아침에 해가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 뒤로 저녁 먹을 때를 제외하면 운동을 하거나 영상 편집을 하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하루를 보내요. 틈이 나면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요.

 

집에 오래 머무는 사람으로서, 집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분이나 가치는 뭐라고 생각해요?

저는 타고나기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밖에 나가면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에서는 그런 것들이 완화되고 안정감이 들죠. 그리고 집에서는 모든 걸 제가 예측할 수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편안함을 느껴요. 그러니까 저한테 집은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고 최고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혼자 살다 보면 밥을 지어 먹기가 쉽지 않은데요. 보연 님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자주 해 먹는 것 같아요.

잼 만들기도 좋아하고, 만두도 직접 빚어 먹어봤어요. 손이 많이 가서 그 이후로 다시는 안 하지만요(웃음). 원래는 이렇게 요리에 관심이 많진 않았어요. 대학교 4년 내내 자취를 하면서 배달 음식, 라면을 자주 먹다 보니 몸이 완전히 망가졌죠. 그때 내가 오늘 먹은 것들이 내일의 내가 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어요?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는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제가 직접 요리를 할 일이 많지 않았고, 취업 후에 직장 위치 때문에 이 집에 이사를 오면서 요리를 시작했어요. 평일에는 삼시 세끼를 회사에서 먹으니까 주말이라도 스스로 밥을 해 먹자는 마음이었죠. 회사 다닐 때 바빠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기도 했고요. 퇴사 후에는 잘 먹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먹는 기쁨보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었어요. 하루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요리할 땐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게 되어서 나를 더 아껴주는 기분이죠. 그래서 나를 위한 식탁 차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꾸준히 요리하는 것도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덕분일까요?

네. 재료부터 양념까지 모두 다 제 선택이니까, 실패해도 내가 먹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요. 새로운 시도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고, 건강을 위해 더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도 있고요. 그런 과정이 제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서 요리를 재밌게 느끼게 돼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최대의 적은 귀찮음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보연 씨가 귀찮음을 다루는 방법을 들려주실래요?

나하고 약속을 정해요. 수납장에 수건이 세 장 남았을 때 빨래하기, 토요일 오후에는 꼭 대청소하기, 설거지는 자기 전에 무조건 끝내기. 이런 규칙이 몇 가지 있어요. 규칙을 안 지킨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내일의 내가 그 일을 하면 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켰을 때 작은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 다른 일에 도전할 때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저는 집에서 스스로 만든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하는데, 무척 부러워요.

제가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웃음).

 

콘텐츠에 “힐링 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우리가 누군가의 예쁜 집이나 살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편안함과 만족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그 사람의 삶이 부럽거나 동경할 만해서라기보다는, 영상을 보는 시간만큼은 내가 그 일상을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가 아닐까요? 제 콘텐츠를 봐주시는 분들도 같은 이유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고요. ‘동행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리에이터 생활의 시작이 궁금해요. 집 기록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제가 처음 SNS에 집을 공유하기 시작한 2019년만 해도 비슷한 계정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거나 이 계정으로 수익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죠. 시작은 그해 이사를 가면서 제 방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 계기였어요. 그 전까지는 제 공간이라고 할 만한 방이 없었거든요. 모든 걸 내 취향대로 꾸밀 기회가 찾아오면서 기쁜 마음에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집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올린 침구 사진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얻으면서 갑자기 계정이 성장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어떤 이유에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업로드했나요?

계정을 운영하던 당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수험 생활은 힘들었는데, 계정에서 얻는 재미 덕분에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기록의 즐거움을 체감하면서 꾸준히 기록을 이어갔죠.

원래 꿈은 공무원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장래 희망’의 사전적 의미를 알게 되었을 무렵부터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는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미술 선생님이나 패션 디자이너를 썼고요. 창작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는 인터넷 소설이라는 게 인기가 많았는데요(웃음). 공책에 소설 써서 친구들이랑 돌려보고, 스케치북에 만화도 그리곤 했어요.

 

그러다 어떻게 공무원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거예요?

미술과 관련된 꿈은 중학생 때 포기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미대에 가려면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장래 희망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고등학교 다음은 대학, 다음은 취업’이라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면서 살았어요. 미술 다음으로 국어를 좋아하니까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고요. 대학 생활은 즐거웠지만 진로에 대한 답은 졸업 후에도 찾지 못했어요. 공기업 준비하는 친구 따라 1년 같이 공부하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가 저도 잘할 것 같다길래 한번 해볼까 싶어서 도전했죠. 단기간에 집중해서 성과를 내는 일에는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밤마다 울었고요.

 

그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합격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요.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해서 회사를 다니는데, 저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요. 남과 나를 많이 비교하면서 저 자신을 계속 구렁텅이 안으로 집어넣었던 거죠.

 

그 후 콘텐츠 마케터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죠. 어떤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꼭 콘텐츠 마케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나마 내가 가진 경험과 맞닿은 일이고 또 좋아하는 일에 가까우니까 콘텐츠 마케터를 직업으로 삼아봐도 괜찮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들어간 첫 회사에서 SNS 관리를 맡았고, 그다음 회사에서는 콘텐츠 마케터라는 직무를 정식으로 담당하게 되었죠. 사진 촬영, 영상 편집, SNS 관리까지 콘텐츠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했어요. 이커머스 플랫폼 회사라 안 다뤄본 제품이 없었죠. 전자 제품, 식품, 뷰티…. 그때 경험이 지금 콘텐츠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어요.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보니 어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나요?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 기뻤어요. 내가 진짜 콘텐츠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았죠. 하지만 제가 관심 없는 제품을 판매해야 할 때는 회의감도 느꼈어요.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라고요. 주말에는 개인 계정을 계속 운영했지만, 쉬는 날이 없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행복하지가 않았고요. 그때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많이 고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여태까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선택한 게 없더라고요. 이번만큼은 나를 위한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퇴사에 대한 고민이 길어진 이유가 궁금해요.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도 들려주실래요?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데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삶에 도전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어요. 그런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패를 하는 게 맞겠더라고요. 그래서 1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그만두었어요. 가족들 응원도 큰 힘이 되었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은 이제 보연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용기를 내는 거예요. 남들이 정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내가 선택한 삶을 걸어가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요즘 보연 씨의 꿈은 뭔지 궁금해져요.

거창한 꿈은 아직 없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의 속도와 제가 좋아하는 리듬 안에서 이 일을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촬영하고 편집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기록하고…. 삶을 나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이 일을 오래 지속해서 할머니가 된다면, 그때는 어떤 집에 살고 있길 바라요?

예전부터 어렴풋이 떠올려본 건, 큰 창이 있고 그 밖으로 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사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집이에요. 자연을 액자로 둔 집이랄까요. 그 상상이 좀 더 선명해진 계기는 박성희 작가님의 책 《집의 일기》였어요. 작가님이 일흔 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 집을 짓고 자연에서 생활하는 일상을 담은 에세이인데요.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이 들어서 살고 싶은 삶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작가님처럼 자연 곁에서 꾸밈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집에서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사적인 공간에서의 생활을 콘텐츠에 담고, 또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부담이 있어요.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으니까요. 집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도 기록을 남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촬영하는 날과 하지 않는 날의 경계를 명확히 두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날씨가 좋아서 해가 잘 드는 날은 무조건 촬영을 하고, 흐린 날은 편집만 하기로 정해두었어요.

 

크리에이터로서 요즘 겪는 고민도 있어요?

성격상 쉬면 불안해서 자기 전까지 일을 계속해야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고치고 싶은 부분이라 쉼의 빈도를 높이려고 해요. 그리고 콘텐츠에 정답이 없다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에요. 저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많은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크리에이터로서 끝나지 않는 고민이겠지만, 보연 씨만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집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요?

집은 저를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에요. 그래서 누군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집을 보여주면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집을 고를 때도 투자 가치보다는 그 공간에 저를 드러내면서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제일 중요하게 고려해요. 그런 점에서 이 집이 만족스러워서 오래 살고 싶어요.

 

나만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려면 많은 물건을 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팁이 있을까요?

여기 있는 가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가져와 5년 넘게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이사를 앞두거나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면 뭔가를 당장 채우려고 하기보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공간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고 공간을 꾸며야 그곳이 오래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가 보는 걸 좋아해요. 오래 머물고 싶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보연 씨가 크리에이터로서 어떻게 나아가길 원하는지 묻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저를 10퍼센트도 못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서요(웃음). 인간 김보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보연이 차린, 보연만을 위한 소박한 식탁.

국수호박 비빔국수
안을 숟가락으로 파내면 속이 소면처럼 풀어지는 국수호박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배추된장국과 배추전
배추가 갑자기 많이 생긴 날의 메뉴예요.

가라아게와 오니기리
튀김용 냄비를 직접 사서 가라아게를 만들고, 어울리는 오니기리를 곁들였어요.

유자청
청 만들기를 좋아하는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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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