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움을 선물하는 일

윤소정 — 트루스

그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낮에는 브랜드 교육 기획 회사의 대표와 코스메틱 브랜드의 디렉터로 일하고, 밤이 되면 학습 커뮤니티의 클럽장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구독자에게 보낼 글을 쓴다. 어느 하나의 이름으로도 쉬이 설명하지 못할 때, 그는 결국 ‘Learner(배우는 사람)’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가 달아준 이름표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실로 그는 치열하고 차곡히 자신이 배워온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쓰는 사람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구독하기 위해 한 달을 기다리고 기꺼이 값을 지불한다. 우연히 블로그에 쓰기 시작한 글은 ‘윤소정의 생각구독’이라는 서비스로 이어졌다. 그는 매일 밤,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발견과 좌절, 번뇌와 환희의 날들을 기록했다. 그 글은 누군가와 나눈 대화 속에서 얻은 영감일 때도 있고, 생생한 출산과 육아의 현장일 때도 있으며, 자신이 학습한 것에 대한 성찰일 때도 있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콘텐츠를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을 매일 공유하며, 1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은 윤소정의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음료가 정말 맛있네요. 이곳 뷰클런즈는 잠시 멈춰 오롯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곳이라고요. 

맞아요. 뷰클런즈는 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카페이자 공간이에요. 20대 때 저는 ‘인큐’라고 하는 ‘나를 공부하는 학교’를 운영했어요.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인문학으로 자신을 탐구하는 교육 기관이었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약 2만 명이 그곳을 거쳐 갔고, 그만큼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어요. 8년 동안 천 개가 넘는 수업을 만들며 그간 ‘우리는 왜 나에 대해 공부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했는데, 결국 답은 간단했어요. 잠시 멈춰 자연 그대로의 나로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제가 당시 스웨덴으로 출장을 가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보면서 그걸 느꼈는데요. 거기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요. 그때 알게 된 스웨덴의 커피·차 브랜드 ‘뷰클런즈’를 한국에 들여오면서 그들과의 인연도 이어졌고, 이곳의 이름으로도 짓게 되었어요. 원두를 저희에게 보내주는 것도 로열티나 대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그런 삶을 처음 보면서, 20대에 제가 ‘나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였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주말만 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팝업에 가야 하고, 공연도 봐야 한다는 압박이 있잖아요. 그런 ‘해야만 한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그대로 머물 수 있는 공간. 그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만든 곳이 뷰클런즈예요.

 

대표님은 오롯한 휴식을 잘 즐기고 있어요?

저는 그래도 잘 쉬는 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알게 됐거든요. 제가 터득한 휴식의 조건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고, 둘째는 마음에 걸림이 없는 상태예요. 그래서 저는 평일에 정말 열심히 살아요. 그래야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그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 두 조건만 갖춰져도 삶에 여백이 생겨요. 저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타인을 품을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주로 어떨 때 마음에 걸림이 생겼나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거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뒤에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눕잖아요. 그럼 계속 그 일들이 생각나요. 저는 그 상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하고 있는 디렉팅이라는 일이 사실 나이스한 성격과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때로는 모진 말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도 이 일을 오래 해오면서 저만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았어요. 저는 침대에 올라가는 순간만큼은 무엇도 떠올리지 않는 것을 철학처럼 지키거든요.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어떻게든 제 감정을 먼저 다뤄요. 누구나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거칠고 지질할 수 있잖아요. 그걸 있는 그대로 두지 않는 거죠. 달리기를 하든, 글을 쓰든, 생각을 바꾸고 또 바꿔서 더 넓게 보고 더 성숙한 방향으로 다시 정리하는 편이에요.    

2010년에 블로그에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일주일 만에 파워블로거가 됐고요. 그땐 어떤 기록을 하셨어요?

친구를 따라 처음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어요. 술 마시며 적은 날것의 기록이었죠. 당시 제가 모태 솔로였다가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요. 문자로 쉼표 부호 하나를 보내더니 이별 통보도 없이 사라져 버렸거든요.

 

어머…. 잠수 이별을 당한 건가요?

네, 잠수를 타버렸어요. 저는 헤어진 이유를 모르니까 자책이 끝도 없이 이어지더라고요. ‘내가 뭘 잘못했지?’에서 시작해 ‘내 다리가 두꺼워서 싫었나?’, ‘나와의 스킨십이 싫었나?’ 같은 자책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나 자신을 공격하게 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괴롭던 시기에 친구를 통해 싸이월드 블로그를 알게 됐어요. 어느 날 엉엉 울면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을 그곳에 올렸는데,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어요. ‘나도 이별했다’는 반응들이요. 그게 제 인생 첫 번째 글의 경험이었어요. 신기한 게 제가 울면서 쓰면 사람들이 같이 울고, 꾸며 쓰면 꾸며 썼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더라고요. 그때 SNS의 본질을 확실히 깨달았죠. 사람들과의 에너지가 그대로 오가는 곳이라는 걸요. 너무 외로웠던 저에게 건네준 그 댓글들이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저는 나를 숨기지 않는 글, 말하자면 나를 벗겨내는 글을 계속 쓰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도 여전히 글을 쓰고 계시죠. 오랜 시간 글을 써오다 보면 기록의 양상이 변하는 시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날것 그대로의 글을 쓰다가, 제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믿고 싶은 나’의 모습을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타인을 의식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인 척 글을 쓰는 거죠. 생각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는 처음엔 사람들 눈을 피해서 순순한 내 글을 쓰고 싶은 의지 때문이었어요.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엄마 친구들, 시어머니 지인들까지 보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8년 동안 쓰던 블로그 일기장을 덮고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어서요. 차라리 돈을 내고 구독하는 분들에게만 글을 보여주자고 마음먹은 거죠. 정말 원해서 찾아오는 사람들하고만 깊이 있는 글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생각구독을 시작하면서 ‘척’했던 내가 아니라 원래 내가 쓰던 날것의 글들을 쓸 수 있었어요. 나의 창피한 모습, 구린 모습, 부끄러운 모습, 한 번쯤은 괜찮은 모습들을 울며불며 솔직하게 써 내려가게 됐죠. 신기하게도 글은 계속 수정하다 보면 마음이 달라지거든요. 저는 글을 한 번에 쓰지 않고 최소 열 번은 넘게 고쳐요. 수정 횟수만큼 내 마음을 고치게 되고요. 글을 다듬으며 결국 내가 나의 선생이 되고, 나 자신의 친구가 되고,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 그 글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나와 대화를 하다 보니 비로소 ‘나를 속이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생각 공유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내 생각이 어떻게 크는지 공유하기 위해서야. 깨어난 사람은 매달 새로운 단어와 문장을 가질 수 있어. 그만큼 고민하고, 자신 안을 깊게 볼 수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매달 새로운 글을 쓰는 것에 자신 있었고,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누구보다 솔직하게 내 고민들을 적어둬. 그래야 내가 해결하는 과정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ㅡ 〈윤소정의 생각구독〉 중에서

글을 쓰면서 썩 괜찮지 않은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거네요.

맞아요. 나를 속이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비로소 회고가 가능해져요. 회고가 가능해지면 그다음 단계가 열리죠. 여정 하나가 끝날 때마다 내가 얻은 인사이트를 분명히 확인하게 되고, 그 경험들이 쌓이면 글이 점점 심플해져요. 보통은 감정이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는데, 그게 아니라 가지치기를 하면서 핵심 인사이트를 정확히 붙잡고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이 가능해지는 거죠. 좋은 선생님은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다 쏟아내는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정확하게 골라서 전달하는 사람이거든요.

“벌써 10년째야. 이렇게 삶을 곱씹었던 건. 지난달에는 출산을 하고 온몸의 뼈가 벌어진 상태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부어오를 때까지 글을 썼어. 너에게 그 글을 발송하고 난 뒤 난 한참을 울었어. 너무 아팠거든. (중략)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쓰지 않았다면 난 출산에 대해서, 엄마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을 거야. 한 템포 미뤄둘까도 생각했지만, 또 이번 달은 이번 달의 사건들이 닥쳐오는걸. 이번 달도 해석해야 할 일이 수두룩 쌓여있는걸. 매일 적는 삶을 살다 보면 닥쳐온 운명 조각 하나하나가 Next step으로 가는 놓치면 아쉬운 힌트라는 걸 느끼거든. 물론 내가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순간 바로 삶이 주는 메시지를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난 써야 해석할 수 있는 느린 사람이라 써야 했어.”

ㅡ 〈윤소정의 생각구독〉 중에서

함께 배우는 삶을 선물하는 것

윤소정이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배움이 있었다. 그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9)의 마리아 같은 선생님을 꿈꾸며, 20대에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 인큐를 운영했다. 

‘좋은 학습 환경에 있으면 우리는 모두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브랜드 교육 기획 회사 트루스, 커피와 쉼을 파는 카페 뷰클런즈, 세상에 없던 어린이 교육 기관 뛰어노는 논술까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배우며, 개인에서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윤소정이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다양한 수식어가 붙게 되죠. 영어와 인문학을 가르친 강사이기도 했고, 자신의 성장 노하우를 나누는 교육 기획자이기도 해요. 현재는 ‘러쉬LUS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일도 하고 있고요. 대표님께서 일을 통해 꾸준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제 모습은 선생님일 거예요.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은 기획일 테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남는 건 ‘배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역할은 상황에 따라 변하죠. 오늘 일정 중에 가야 하는 콘퍼런스에서 저는 디렉터로 소개될 거예요. 매체에서는 유튜버, 작가 다양하게 적히기도 하고요. 대중은 러쉬라는 브랜드에 더 익숙하다 보니, 러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불릴 때가 훨씬 많아요. 하지만 제가 정말 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딱 하나예요. 배우는 건 정말 즐겁다는 것. 학습은 너무 재미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순간에 배움의 즐거움을 실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그냥 배울 수 없어요. 사람을 바꾸는 건 강의나 책, 유튜브, 심지어 제가 쓴 글도 아닌 배우는 환경이에요. 돌아보면 제가 했던 일은 모두 그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글을 쓰고, 공간을 만들고, 러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할 때도 공통점은 단 하나, 사람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저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워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고,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도, 함께 공부할 친구도 있었어요. 혼자 책만 읽어서는 절대 보지 못했을 세계를 누군가가 보여줬어요. 그 경험들이 저를 키웠고, 저는 그걸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 ‘학습의 힘’을 안 믿어요. “바빠 죽겠는데 무슨 학습이야.” 하고요. 하지만 학습이 시작되는 순간, 조직은 반드시 커요. 아이가 크는 방식, 어른이 크는 방식, 조직이 크는 방식은 모두 똑같아요. 좋은 경쟁자를 두고, 모방할 수 있게 하고,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쥐여주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사람은 무조건 성장해요. 저는 그 네 가지 환경을 어떤 영역에 있든 동일하게 만들어온 사람인 거죠.

 

그 일들의 시초에는 인문학이 있었죠. 10년 전, 인문학 관련 도서 《인문학 습관》을 집필하셨어요. 대표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소개 글은 ‘일상을 가꾸는 인문학 습관’이고요. 인문학이 대표님에게 중요한 키워드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스물한 살 때 영어 강사로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프로젝트 형식의 영어 수업을 진행하며 많은 수강생을 가르쳤는데, 이상하게 그 누구도 영어 강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 명씩 인터뷰를 해보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려 했죠. 대부분은 영어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스펙을 위해, 취업을 위해, 혹은 남들이 다 하니까 시작한 경우가 많았어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처음엔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꿈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었어요. 그걸 알려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인문학을 발견했고요.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으면, 우리는 ‘악’을 단순히 처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아요. 그 안에 있는 본능을 들여다보게 되죠. 그 본능은 사실 우리 안에도 존재하니까요. 살인자의 서사를 읽으면서도 묘하게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잖아요. 그걸 이해해야 인간이 보이고, 나 자신도 보이기 시작해요. 그래서 스물네다섯 살 때부터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인문학을 기반으로 자신을 공부하는 학교 인큐를 운영하며 서른두 살까지 업으로 삼았어요.

인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공부했어요?

그곳에서는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 책을 가지고 대화도 하고, 수업으로도 풀어보고 때로는 게임으로도 만들어보면서 계속 다뤄야 했죠. 하나의 텍스트를 여러 방식으로 써보면 이해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읽은 책의 수는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 권을 백 번 넘게 읽은 책들도 있어요. 그렇게 하면 그 책이 몸에 체화되고, 체화된 것을 활용할 일이 훨씬 많아지죠. 많이 읽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외울 수 있어야 하고, 외움을 넘어서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더 나아가 듣는 사람이 그 말의 매력을 느끼게 해야 하고요. 그래야 내가 그걸 실천할 수 있고, 실천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될 때 사람들이 믿고 따라오기 시작해요. 사람들이 가장 반감을 느낄 때가 ‘말하는 것과 행동이 다를 때’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까지 해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그때가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죠. 그 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그걸 넘어서 평가할 수도 있는 거예요.

 

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인문학이라는 건 결국 인간의 무늬를 공부하는 학문이잖아요. ‘문文’ 자가 문신의 문자이기도 한데, 그게 인간에게 새겨진 결 같은 거예요. 나무마다 고유한 결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저마다 결이 있죠. 그걸 모르고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요. 같은 기획을 하더라도,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만드는 기획은 훨씬 더 본능적이에요. 제가 자주 하는 피드백도 그거예요.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게 인간적인 흐름이거든요. ‘자연스럽다’의 ‘연然’ 자가 ‘그러할 연’이라는 의미인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모습이 아니라, 각자 어떤 역할을 맡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자기 에너지를 태우고 있는 상태를 말해요. 사람도 식물도 그렇게 자기 에너지를 쓰고 있을 때 자연스러운 거예요. 인문학을 공부하면 그런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힘이 생겨요. 기획은 결국 리더가 큰 그림을 가장 선명하게 가지고 있고, 팀원들은 그 그림을 계속 따라가도록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게 어렵죠. ‘사람을 쓴다’는 표현을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누군가의 재능을 써준다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에요. 그 재능을 잘 쓰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해요.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결국 인문학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남겨진 무늬를 읽는 일’이에요. 나와 네가 공유하는 게 뭔지, 공통된 상식을 발견하는 일인 거죠.

대표님 기록을 보면 시기별로 곁에 가까이 두고 살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9)의 마리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고요.

실제로 그래서 영화의 배경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도 가볼 정도였으니까요. 왜 내가 마리아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해하는 데 15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아마도 마리아 선생님은 가르치지 않아서 좋았나 봐요.

 

가르치지 않아서요?

네. 마리아 선생님은 선생님이긴 하지만,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노래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는 경험을 주는 사람이었거든요. 저는 마리아 선생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동경했던 이로부터 왜 독립하려 했어요?

제 연차가 쌓이고 역할이 확장되면서, 10년 차 이하의 후배들에게는 단순히 옆에서 같이 달릴 수 있는 선생이 되지 못하는 걸 깨달았거든요. 돈 모으는 걸 예로 들면, 자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옆에 5천만 원을 가진 사람이 알려주는 방법은 와닿지만 500억, 5천억 가진 사람이 말해주는 건 피부에 안 와닿아요. 그걸 깨닫고 나 자신과 선생님 역할을 분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아, 선생님의 역할을 계속하고 싶었나 봐요.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 배경이 된 잘츠부르크에 갔을 때도, 마리아 선생님을 존경하며 혼자 갔는데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노래를 부를 때 옆에서 함께 따라 불러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남편 같은 동반자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저는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 동년배 친구들을 가르쳤는데, 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나는 늘 혼자 고독하게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인 거예요. 제 성정이 그렇게 독하지 못한 게, 디렉터로서는 큰 치명타였어요. 디렉터라는 역할은 때로 ‘미친 사람’처럼 단호하고 강하게 나아가야 하는데, 저는 늘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고, 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함께 놀고, 찜질방에도 가고, 술도 마시며 곁에 있고 싶은 사람. 늘 외로움이 많은 제 성정이, 디렉터로서의 저에게는 어떤 한계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라 더 외로울 수밖에 없었겠네요.

맞아요. 마리아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처럼 제가 시기별로 좋아하던 대상도 달랐는데, 어릴 때는 특히 ‘빨강 머리 앤’을 무척 좋아했어요. 지금도 저희 엄마와 남편은 빨강 머리 앤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해요. 제 성격과 너무 똑같거든요. 슬프게 울다가도 금세 다시 해보겠다며 달려가는 모습, 아마 당시의 저는 앤처럼 행동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앤과 비슷한 제 모습을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앤에게는 친구 다이애나가 있는데, 저는 그런 다이애나 같은 단짝 친구를 너무 갖고 싶었어요. 그런 소울메이트가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서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완전히 통하는 사람은 없었죠.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도 잘 살게 된 게 최근 6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건 아니에요. 싸움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서로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초기에 남편조차 제 마음을 완전히 알아주지 못할 때,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라도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저는 스스로 영혼의 친구가 되어줘서 글을 쓴 거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글 쓰고 일해오면서 발견한 자신의 강점도 있어요?

생각이 현실로 되게 만드는 힘이요. 제가 2012년에 인큐를 세울 때, 2020년쯤이면 교육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죠. 그때 좌절감은 엄청났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르네.’ 하며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어요. 결국, 처음 심었던 씨앗을 오래오래 가꾸는 일을 잘해왔던 것 같아요.

 

끈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끈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흔히 끈기라고 하면 그냥 오래 하는 걸 떠올리는데, 저는 그렇게 똑같은 방식으로 지속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방법을 찾아가며 이어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나무 하나를 키워도 때로는 가지치기를 하고, 때로는 병충해를 잡고, 때로는 그대로 두어야 할 때도 있어요. 솔루션은 시기에 따라 모두 다르죠. 저는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며 학습하고 적용해 왔어요. 오히려 이건 학습력에 가까워요. 이 방법도 써보고, 저 방법도 써보면서요.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요. 난독증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글을 익혀야 하는지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죠. 그 씨앗을 정말 집요하고 오래 가꿔오는 걸 잘했던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주변 동료들이 ‘선물 전문가’라고 부른다면서요?

저는 직업을 선생님으로 시작했잖아요. 선생님은 유일하게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에요. 내가 가진 것을 공유하고, 상대방을 성장시켜야 하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받고 싶은 걸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항상 상대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는 것이 저한텐 일의 본질이었어요. 아마 그래서 주변에서 ‘전문가’라고 부른 게 아닐까 싶네요(웃음). 아, 저희 엄마한테서 배운 가장 좋은 선물의 법칙도 있는데요. 남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내가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장 아끼는 것을 주라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좋은 선물의 정의예요. 마음을 다해 고마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소 제가 아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거요. 

 

대표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무엇이에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일이요. 제가 가진 것보다 제 주변에는 훨씬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도록 소개해 주기도 하고, 일로도 연결해 주고, 심지어 결혼까지 이어주기도 했어요. 저는 훌륭한 인간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대단하지 않은 저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한 수많은 기록을 꼼꼼히 공부하고 긴 대화를 나눈 뒤에도, 한 사람을 지면으로 채우는 일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려워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단편적으로 탐색한 어떤 이에 대한 기록은 편협하기 마련이라, 편집자의 시선으로 옮긴 활자들은 늘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오래 떠올랐던 그의 모습을 적어본다. 처음 보는 이에게 눈을 맞추고 흔쾌히 악수를 청하는 사람, 인터뷰 중 내가 마신 차를 기억해 헤어질 때 티백 상자를 선물로 건네는 사람, 어색한 촬영 제안에도 호쾌하게 웃으며 새로운 포즈까지 제안하는 사람, 그래서 그는 부유하던 나의 걱정을 한 줌 가뿐하게 덜어주는 사람이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