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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하진구 ㅡ 콩과하
직장 동료로 만난 혜빈과 진구는 함께 다닌 회사를 떠나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2년 동안 같이 공간 디자인 그룹 ‘콩과하’로 활동해 보자고. 느슨한 계약은 정반대 성향의 두 사람이 하나의 사무실을 쓰게 했다. 주거 공간부터 극장 ‘무비랜드’까지 가슴 뛰는 프로젝트를 하나씩 도맡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지 4년이 흘렀다. 혜빈과 진구는 그 세월 동안 서로를 위해 각자의 모서리를 둥글게 매만졌다.
콩과하 소개를 들어보고 싶어요. 전시와 홈페이지 등에 테니스라는 소재를 주로 활용하고 있죠?
혜빈 콩과하의 SNS 프로필 사진을 정할 때 별다른 의도 없이 테니스공이 그저 귀여워 보여서 골랐어요. 그러다 이곳 신촌문화관 입주사 전체가 참여하는 전시를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요. 문득 테니스를 소재로 활용해 볼까 싶어서 조사해 보니 콩과하와 관련 깊은 정보들이 나오는 거예요. 저희는 클라이언트를 ‘사랑’해야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는데, 테니스에서는 숫자 0을 ‘러브’라고 부른대요. 신기하다고 느꼈어요.
진구 복식일 때 코트를 더 넓게 쓰고, 선수가 부부나 연인이 아니어도 팀을 이룬다는 점도 좋았어요. 코트를 중앙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저희와 클라이언트가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 같기도 하고요.
테니스와 콩과하가 운명처럼 맞물린 거네요. 클라이언트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혜빈 클라이언트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깊이 이해해야, 그들이 사용하기 적합한 작업물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쓴 거예요. 제 눈에 만족스럽게 공간을 디자인해도 쓰는 사람들이 원래의 결과물을 바꿀 때가 있었어요. 처음엔 그걸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했죠. 하지만 저희의 작업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불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을 테니, 본래의 디자인 그대로가 충분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 결과 우리가 그들을 더 잘 이해해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요. 이때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해요. 그를 위해선 그 사람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죠.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진구 그들을 알아가고 싶어서 민감할 수 있는 질문도 미팅 때 서슴없이 물어봐요. 예를 들어 주거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한다면, 부부가 같이 자는지, 아침은 먹는지 같은 것들을 묻죠. 클라이언트의 의뢰 목적에 부합하게 그들이 공간에서 잘 지내도록 디자인하는 일이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혜빈 한 클라이언트 부부는 시바견 두 마리를 키웠어요. 시바견은 단모종이라 털이 많이 빠져서 청소하기 쉽도록 가구가 바닥에서 떠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죠. 그래서 저희는 가구가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떠 있도록 다리를 없애고 가구를 벽에 붙였어요.
진구 그 집에서 또 재밌었던 점은 부부가 동시에 씻어야 할 때가 많지만 욕실이 하나였던 거였어요. 그래서 방 하나를 욕실로 만들었어요. 두 사람이 각자의 공간에서 씻을 수 있도록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이 함께 발맞춘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고요.
진구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에서 동료로 만난 사이였어요. 저는 현장 감리를 주로 담당하는 디렉터, 혜빈 씨는 디자이너였는데요. 둘이 한 팀이 돼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혜빈 진구 씨가 디렉터 역할을 완벽하게 해줬어요. 현장 상황상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려울 때도 최대한 원래의 계획을 반영하려고 노력해 줬거든요. 또 진구 씨는 저랑은 다르게 성격이 외향적이라 현장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고 잘 이끄는 점이 좋았어요.
독립을 결심했을 때 서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뭐였나요?
혜빈 저는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때 지금의 나한테 제일 살벌한 도전은 이직보다 퇴사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이직은 제 이름으로 뭔가 해볼 기회가 없잖아요. 거기에 있어서 진구 씨는 보험 같은 존재였죠. 진구 씨와 함께한다면 일도 왠지 들어올 것 같았어요(웃음).
진구 오랜 기간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독립하면서 회사를 하나둘 떠났어요. 그러니까 혜빈하고 저만 남은 거예요. 그때 저는 디자이너의 일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디렉터로 일해왔기 때문에 이직은 어려울 것 같고 독립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아까 혜빈은 제가 보험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곁에 남은 사람이 혜빈밖에 없기도 했고(웃음), 회사 생활하면서도 잘 맞았어요.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디자인과 다른 방법으로 시공해야 할 때 유연하게 받아들여 주거나 대체 방안을 같이 고민해 주는 점이 좋았죠. 이 친구랑 함께라면 든든하겠다 싶었어요.
서로 신뢰가 있었던 거군요.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니 전과는 무엇이 다르던가요?
혜빈 먼저 저희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한정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편이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만남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돌아와요. 그런데 진구 씨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된대요. 또 진구 씨는 전화로 일 처리를 바로바로 하는데, 저는 전화도 무서워하는 편이고요.
진구 저는 둘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해요. 고양이와 개.
두 분과 너무 잘 어울리는 표현이에요.
혜빈 회사 동료로 일할 때는 안 맞는 부분이 보이면 굳이 말하지 않고 넘겼는데, 콩과하로 함께하게 된 뒤엔 같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혜빈 씨가 의견을 전한 방식이 궁금해지는데요.
혜빈 둘은 대화 방식이 아주 달라요. 진구 씨는 돌려 말하는 게 기본인 사람이라면, 저는 일할 때만큼은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든요. 제가 솔직하게 말해서 진구 씨가 마음이 조금 상하거나, 진구 씨가 돌려 말하는 걸 제가 잘 알아듣지 못한 적도 있어요.
진구 저희 사이가 워낙 가깝다 보니까 혜빈이 마치 스스로에게 얘기하듯이 말한다고 느낀 거죠. 자기 결과물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혼자 편안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처럼요. 저희는 팀이기 때문에 둘이지만 하나같은 애매한 경계에 놓여 있어서 솔직한 표현이 나오나 봐요.
혜빈 소통 방식을 맞춰가려고 2년 이상 노력했어요.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투영된 결과물의 평가를 듣는 게 어려운 일일 수 있잖아요. 진구가 그게 어렵다면 제 표현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정말 흔한 일이죠. 많이들 공감할 거예요. 그럼 현장에서 진구 씨는 어때요?
진구 제 단점은 현장에서 “안 돼.”라는 말을 많이 하는 거였어요. 견적이나 과정을 생각했을 때 혜빈의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싶으면 안 된다고 자주 말했어요. 저도 혜빈을 푹 찌르는 거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혜빈이 언젠가 저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안 되는 걸 얘기하기보다 할 수 있도록 힘을 합하는 게 우리가 팀인 이유라고요. 그때가 변화의 계기였지 않을까요?
서로를 위해 각자의 소통법을 바꾸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
진구 요즘에는 서로 다른 사람인 걸 계속 인지하려고 해요. 유튜브에서 뇌 과학, 심리 영상을 보면서 이런 고양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 봐요. 영상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흐릿하게라도 배경을 깔고 한 사람을 바라보는 거죠.
그런 영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조금 뻔하지만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혜빈 약간 얄미운 구석이 있어서 남동생 같은 느낌도 있어요. 근데 또 어떨 때는 되게 의젓하거든요. 그래서 형 같은 느낌도 있고.
진구 오빠지!
혜빈 오빠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아(웃음).
(웃음)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혜빈 누구보다도 함께 많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아요. 많이 의지하면서도 인간 중에 제일 가까워요. “인간 중에”라고 말한 이유는 제가 키우는 강아지 ‘옹심이’가 제일 가까운 존재라서요. 작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는데 진구 씨가 많이 도와주기도 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의연하게 많은 것들을 처리하고 해낼까 싶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동갑인 친구인데도 존경심이 드는 순간도 많고. 좋아하는 인간이에요.
그럼 진구 씨에게 혜빈 씨는요?
진구 저와 많이 다른 혜빈은 디자인, 일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방식 등에 있어서 제 시야를 트이게 해준 존재예요. 일례로 저는 관계의 선이 없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어요. 누군가가 관계에서 허용하는 정도를 알아보려고 일단 다가가 보곤 했던 거예요. 이제는 어떤 사람에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고, 신중하게 다가가야 할 필요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이든 생활이든 이 친구에게 맞추려고 심리 영상을 보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게 돼요. 좋은 관계죠.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