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까맣고 하얀 동네 친구를 소개합니다

해피엔딩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하지만

나의 까맣고 하얀
동네 친구를 소개합니다

해피엔딩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하지만

나의 친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길에서 만나 가까이 사귀었고, 한집에서 함께 살며 가족이 된 친구.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마주 보고 쪼그려 앉아 얼마든지 대화를 나누던 친구. 까맣고 하얀 긴 털 사이사이 낙엽이라든가 지푸라기, 작은 나뭇가지 등을 끼운 채 넉살 좋은 걸음으로 찾아와 밥 달라고 호령하던 친구. 한쪽 눈이 안 보여도 당당하던, 숨 쉬는 게 힘들어도 티 내지 않던, 나의 정든 동네 친구.

동네
동물 친구들

한때는 같은 학년 동갑내기끼리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뒤에야 나이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두 살 많은 선배가 나를 “친구”라고 소개할 때, 세상이 훌쩍 넓어지는 것 같던 묘한 쾌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제주에 살며 본격적으로 ‘친구의 범위’가 넓어졌다. 아홉 살이 많은 친구가 생겼고 열두 살이 적은 친구도 사귀었다. 친구가 되는 데 있어 나이는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제주에 살며 알게 된, 관계에 대한 비밀 하나는 사람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고, 우연히 마주치면 반갑고, 서로 알아보고 즐겁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는 관계. 그거면 동네 친구의 조건으로 더없이 충분하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 동네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동네 친구는 점점 많아졌다. 동네 동물 친구가 많아지는 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일이다.

퉁퉁 불은 젖을 달고 나타난 강아지 백구는 주인이 있는 개다. 처음엔 꼬리를 완전히 내려 말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서점 마당에 둔 고양이 사료와 물을 훔쳐 먹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가 “애기들을 빼앗겼나 보다.”라고 말하며 개 사료를 가져다주었다. 백구가 오면 사료를 꺼내주고, 내가 먹던 고구마나 빵 같은 것도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겁 많던 백구는 어느새 내 손길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백구의 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꼬리를 흔들고 옆에 와서 앉기도 한다. 이제는 백구도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짜식.

백구 외에도 많은 동네 고양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한다. 발에 하얀 양말을 신은 아이에겐 양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리 전체 무늬가 같은 고양이는 맨발이라고 불렀다. 이마에 노란 나비 무늬가 있는 아이는 나비라고 불린다. “맨발아, 나비야.” 이름을 부르는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나누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되었다. 인사를 나누는 동물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사는 이 동네와도 점점 정이 들었다.

가장 친한
고양이 친구 붕이

붕이는 그중에서도 나와 가장 친한 고양이. 처음 붕이를 만난 건 일 년 정도 전의 일이다. 하얗고 까만 긴 털을 가진 아름다운 고양이가 길거리 넓적한 현무암 위에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는데 피하지 않고 먼저 고개를 쓱 내민다. 몇 번 조심스럽게 손길을 보내다 마음 놓고 쓰다듬으려는 순간, 붕이는 손톱을 내밀고 나를 할퀴었다. “아야! 너 성격 보통이 아니네. 깔깔.” 우리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처음 만났다. 그 후로 오가며 종종 마주쳤다. 그러면서 좀더 자세히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한쪽 눈을 다친 것 같았다. 볼 때마다 병원에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주인이 있는 고양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적극적으로 손을 쓰지는 못했다. 

몇 달 전부터 붕이는 내가 일하는 서점에도 종종 들러 마당의 사료를 먹고 가곤 했다. “많이 먹고 가. 차 조심하고.” 만날 때마다 그렇게 외쳤고 그때마다 붕이는 “걱정 마쇼.”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밥을 먹더니 바로 가지 않고 서점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다른 손님들이 있거나 말거나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붕이는 어슬렁거리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들어온 손님을 내쫓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낮 동안이라도 편한 곳에서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때부터 점점 자주 얼굴을 비추더니 두어 달 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마당의 빈 밥그릇 앞에 앉아 있다가, 내가 오면 기지개를 켜고 다가와서는, 문 입구에 일등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나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하도 밥 내놓으라고 쩌렁쩌렁 외치는 통에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허둥지둥 사료 그릇을 닦고 아침을 차려 주었다. 그때부터 나의 출근은 조금 빨라졌다. 이웃이었다가 단골손님이 되었고, 이제는 친구가 된 붕이를 만날 생각을 하면 출근길이 설렜다. 붕이의 기운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하는 하루는 언제나 활기찼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길에서 살며 곱던 털은 많이 거칠어졌고, 통통하던 배는 홀쭉해졌다. 그루밍을 잘 안 하는지 커다란 발은 꼬질꼬질하고 긴 털 사이사이에는 낙엽이며 지푸라기 같은 게 늘 매달려 있다. 행색이 꼭 노숙자 같았지만, 붕이는 당당했다. 다친 것처럼 보이던 왼쪽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숨을 쉴 때마다 크게 가슴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밥 내놓으라고, 나를 예뻐하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당당한 태도 덕에 나는 붕이가 아프다는 걸 자주 잊었다. 병원에서 타온 눈약을 넣어주고, 빗질을 하고, 털을 골라주며 나는 어쩌면 그 시기, 다른 어떤 누구보다 붕이와 더 많은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한 것 같다. 

어떤 저녁이면 이 아이를 길에 두고 혼자서 집에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몹시 쓸쓸해졌다. 밤사이 비라도 온 다음 날이면 부리나케 출근했다. 하루라도 안 오면 불안해서 종일 밖을 내다보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 아이 손을 잡고 같이 집으로 갈까 고민했다. 주인 대신 병원에라도 데려가 치료를 해줄까 싶다가도 그건 결국 입양을 전제로 해야 하는 무거운 일인 것 같아서 망설였다

이제 우리
가족입니다

“정을 줬으면 책임을 져야지.” 남편이 던지듯 말했고,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우리는 이 아이를 책임지기로 했다. 이만큼 정을 줬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의리가 있지. 그렇게 데려간 병원에서 ‘횡격막 헤르니아’라는 진단을 받았다. 횡격막이 찢어져서 배에 있어야 할 장기 대부분이 가슴으로 가 있고, 그 장기들이 폐를 눌러서 숨을 잘 못 쉬는 거라고 했다. 후천적 횡격막 헤르니아는 교통사고, 낙상, 그리고 발로 차임 등으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길에 사는 붕이에게 그런 사고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수술하면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병원비가 수백만 원이 들고, 게다가 제주도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도 했다. 나는 고칠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 돈이 얼마가 들던, 고칠 수 있다면 괜찮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내가 책임질 수 있다.

붕이 손을 잡고 함께 집에 온 순간 이 아이는 우리 가족이 된 거니까. 비행기 타는 것도 위험하다는 이야기, 치료 중 고비가 많을 거란 이야기도 애써 듣지 않았다. 이제 좋은 일만 남았으니까. 건강하게 사랑받으며 지낼 날만 남았으니까. 붕이는 씩씩하고 나는 낙천적이니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해피엔딩일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병원에 가기 전전날. 우리 가족이 된 지 닷새 되는 날, 나와 함께 있던 붕이는 토하려고 하다가 털썩 쓰러졌고 순식간에 숨이 꺼졌다. 가슴이 헐떡거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붕이가 떠났다는 걸 알았다. 품에 끌어안으니 따뜻했다. 이제야 편안하구나. 편안하게 쉬는 붕이의 모습을 나는 처음 보는구나. 아무리 쓰다듬어도 할퀴지 않는 붕이를 안고 실컷 쓰다듬으며, 나는 친구가 된 지 일 년, 가족이 된 지 닷새 만에 나의 고양이를 떠나보냈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사실 이 글은 붕이가 떠나기 전에 시작된 글이다. 붕이가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점점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밥을 얼마나 잘 먹는지, 까맣고 하얀 긴 털이 얼마나 비단결이 되었는지, 눈은 또 얼마나 나았는지, 얼마나 예뻐졌는지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희망이 가득한 흐뭇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붕이는 떠났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데려와 병원에 갔다면 살았을까, 떠나던 날 컨디션이 나빠 보일 때 얼른 병원에 데려갔으면 살아 있을까, 길에 뒀다면 혹시 조금 더 살 수 있었을까, 후회와 자책을 하느라 한동안 글을 이어 쓰기가 어려웠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은 붕이를 내 품에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거리가 아닌 따뜻한 집, 내 품에서 내 가족으로 떠나보내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다음 생에는 꼭 처음부터 내 고양이로 태어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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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