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선생님께

《수필문학입문》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유명한 수필가다. 사실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제 이름도 얼굴도 모르시겠지요.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제자라고 나서니 당황스러우실 법도 합니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겠다고 마음대로 선언한 건 취업준비반 시절 대학교 도서관을 배회할 때였습니다. 좋아하는 건 문장을 쓰는 일뿐 이외의 분야는 흥미도 관심도 없었기에, 나는 무얼 하며 살지 고민만 안고 책 속으로 도망갔던 날입니다. 그날은 유독 오래된 문학가들의 문장을 읽고 싶었습니다. 글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어른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들 사이에서 우연히 선생님 책을 뽑아 들었습니다. 제목은 《수필문학입문》이었지요. 수필 쓰는 법을 알려준다니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방망이 깎던 노인〉, 〈곶감과 수필〉을 쓴 치옹痴翁 운오영 선생님 글이라니요.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니 선생님은 제가 꼭 듣고 싶던 말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필에 대한 많은 선배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중략) 통찰과 달관과 예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든가, 붓 가는 대로 누에가 실을 뽑듯 써 나가라고 한다. 그러나 붓은 가기는커녕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차라리 누에라면 뽕이라도 잔뜩 먹어본다지만, 그도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해야 실을 뽑을 것인가. (중략) 잘 되면 문학이요, 못되면 잡문이라면 어떻게 해야 잡문이 아니 되고 문학이 되는 것인가. 더욱이 박학이어야 하고 인생 체험의 축적이 풍부해야 한다니, 젊은 청년으로서는 애당초 단념하고 인생의 낙조를 바라보는 노경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ㅡP12, 〈서설〉 중에서

저는 제 글과 훌륭한 수필가들의 문장을 비교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문장에는 관록이 깃들었고 어쩜 삶을 이렇게 운치 있게 살아낼까 싶은데, 제가 쓴 문장은 개인적인 중얼거림에 불과해 보였으니까요. 무언가를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야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수필은 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체득하는 기술인지 궁금했습니다. 저 같은 젊은이들이 수필 쓰는 법을 알려달라며 이미 선생님을 찾아오곤 했기에, 선생님은 해답을 책에 적어두셨습니다.

희세의 대작은 타고난 천재라야 한다. 그러나 천재란 백년에 하나 억만 인에 하나다. 그 밖에는 어느 정도의 소질만 있으면 노력의 여하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소질을 어떻게 아나. 수필을 사랑하고 수필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그 소질은 이미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방법이란 무엇인가. 독서와 습작이다.

ㅡP13, 〈서설〉 중에서

선생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저는 이미 수필가가 되기 위한 소질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도 알려주셨습니다. 수필은 자유로운 산문이지만, “어디까지나 문학작품으로서의 자유로운 산문”이라고요.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설파해도 비문학적인 문장으로 가득하면 수필이 아닙니다. 붓 나가는 대로 휘갈긴 잡문도 수필이 아닙니다. 수필이 되려면 문학적 표현 형식과 정서를 갖춰야 합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왜 선생님 시대의 작가들이 남긴 글이 오래 사랑받는지를요. 제가 사는 오늘날은 수필이 많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괜찮다며 위로만 늘어놓거나, 일단 다 그만두고 어디든 떠나면 된다는 이야기가 많은 까닭입니다. 저는 수필이 그런 평을 듣는 것을 지켜보기가 무척 속상합니다. 수필은 작품 속 이미지를 읽는 이의 마음에 선연히 띄우고, 작가마다 다른 문세와 문정에 취해보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이 수필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가 좋습니다. 특히 수필을 곶감에 비유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푸른 열매가. 그러나 그 푸른 열매는 풋감이 아니다. 늦은 가을 풍상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질 때, 푸른하늘 찬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문장이다. (중략) 그러나 감이 곧 곶감은 아니다. (중략) 그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ㅡP176, 〈수필의 성격〉 중에서

선생님은 수필이 고치고 또 고치는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글감이 내 안에서 충분히 익고 여러 번 다듬어져 곶감이 될 때 비로소 읽을 만한 아우라를 낸다고 이야기하셨지요. 시류에 훌쩍 올라타 뚝딱 만들어낸 책은 풋감과 같을 것입니다.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중략) 이른바 정서적·신비적 이미지가 아닐까. 이 이미지를 나타내는 신비가 수필을 둘러싸고 있는 놀과 같은 무드다. 수필의 묘는 문제를 제기하되 소설적 테마가 아니요, 감정을 나타내되 시적 이미지가 아니요, 놀과도 같이 아련한 무드에 싸인 신비로운 정서에 있는 것이다.

ㅡP176, 〈수필의 성격〉 중에서

저는 수필의 시설을 맛보기 좋아합니다. 피천득 시인의 〈시골 한약방〉과 〈장미〉는 포근하면서도 쓸쓸한 정취가 느껴져 쌉싸름한 맛이 납니다. 이병기 선생의 《가람문선》 서문은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향기가 가득 번질 것만 같습니다.

무얼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할까요?

소재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며 일상 속 빛나는 작은 보석을 건져내는 일이 수필 쓰기라셨지요. 제 삶은 글로 옮기기에는 특별할 것 없고 고요하다 여겼습니다. 선생님의 시선을 알고 난 후에는 잠시 멈춰보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렇게 제 주머니에는 작은 돌이 하나둘 늘어갑니다. 돌을 굴리면서 나는 이야기해 줄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행복해집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 묻혀 있으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참신한 수필이 될 수 있다. 소설이나 시에서 거두지 못한 것, 이것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면서도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중략) 내가 발견하고 내가 거두어 두지 아니하면 건져 줄 이 없는 가치, 버릴 수 없는 인생의 향기, 수필의 소재는 여기 있다. 될 수 있으면 이런 소재를 발견하고, 이런 소재를 찾으면 이미 반은 성공이다.

ㅡP24, 〈소재의 선택〉 중에서

글 쓰는 생활은 부지런합니다.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내며 이야기할 거리를 자주 모아둡니다. 평범한 하루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재료를 수집하면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열심히 씁니다. 더 잘 쓰기 위해서 여러 수필가의 글을 읽고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이 모든 일의 동력은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수필에는 버려야 할 평범이 없다. 평범이 그대로 수필인 까닭이다. 그러자면 수필가는 그 자신이 수필이어야 하며 생활 그 자체가 글이어야 한다. 글을 떠나서 생활이 없고 생활을 떠나서 글이 따로 있지 않다. 필자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수필가요, 또 문사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ㅡP24, 〈소재의 선택〉 중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평생 글을 쓰셨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곧 수필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책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글을 게을리합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며 묻습니다. 운오영 선생님, 저라는 사람은 얼마큼 수필이 되었나요? 지금은 없는 당신께 평생 묻게 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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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의진

자료 제공 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