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흰 벽 사이, 그곳

무서록

스스로 “서촌 백송터 옆 작은 공간”이라 말하는 전시장이 있다. 여기서 무얼 보여줄지 거창하게 늘어놓기보다 그 터를 오랫동안 지키던 나무 한 그루의 이름을 말한다. 그 얼마나 수더분한 소개말인가. ‘무서록’은 운영자 이규형, 매니저 변주현의 두 손이 성실하게 움직여 모양새를 갖춘 갤러리다. 본래 ‘문화사’라는 표구사 운영자의 작업실이자 낡은 집이었는데, 오래된 나무 창문과 벽은 그대로 둔 채 나무문은 넓은 테이블이 되었고, 창문틀은 집기가 되어 유용하게 쓰인다. 그들의 발이 닫기도 전부터 존재하던 이야기를 쉬이 망가뜨리지 않은 덕분에 공간은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무서록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하나씩 꼽아본다. 어렵지 않고 편안한 것, 삶과 가까이 닿아 있는 것, 꾸준히 좋은 것, 이야기가 담긴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것. 나무와 흰 벽에 기대어 마음을 전하는 전시장에게 귀 기울인다.

긴 방명록이 쓰이는 그곳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을 겸손히 담아낸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집에서 이름을 빌린 무서록에 들어선다. 이곳에 머무르던 이들의 흔적이 다정한 빛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까, 가까운 이의 집에 초대받은 듯 아늑하다. ‘환대의 공간’으로 쓰이는 거실을 중심으로 30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백송의 터를 바라보는 큰방과 작은방은 ‘기록을 나누는 공간’과 ‘사유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안고 찾아오는 창작자들에게 빌려준다. 작업실 전체를 옮겨 온 대나무 작업자 ‘구름’의 〈만드는 마음〉과 압화를 주제로 사유와 기록을 선보인 작가 ‘문예진’의 〈개화의 방〉 등 그간 아름다운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행보와 작업 과정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고. 삶을 대하는 저마다의 가치와 그것이 스민 작품들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기에, 무서록의 전시에서는 유독 긴 방명록이 적힌다. 삶 가까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공간에서 한 나무의 그루터기를 기억하는 살가움을 떠올린다. 그 사이 오늘도 무서록의 이야기가 쓰인다.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직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맛, 그런 벽면 아래에서 생각을 소화하며 어정거리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 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 이태준, 〈벽〉, 《무서록》 중에서

무서록에서 이어지는 전시

〈핸드메이드 의자: The beauty through imperfection〉
2025. 6. 3.ᅳ6. 22.

생목의 고유한 특징을 활용하는 ‘그린우드워킹’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견고한 의자를 만드는 체어메이커 이경찬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그의 손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와 다정한 마음을 바탕으로 매번 새로운 얼굴의 의자를 빚는다.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에 대해, 체어 메이커의 도구와 과정 나아가 사유가 담긴 노력까지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2-16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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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자료 제공 무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