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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엊그제, 겨울 바다를 거닐다 한순간 오른 흥을 못 이겨 산책로를 지키는 튼실한 나뭇가지에 매달리게 되었다. 장난삼아 가볍게 팔을 두르고 한쪽 다리를 떼려는데, 내 한 몸 정도야 든든히 지탱해 줄 것 같던 그것이 바람 빠진 주유소 풍선처럼 허든거린다. 괜히 멋쩍어 “속이 비었네, 죽었나 봐. 다듬어 줄 사람이 없구나.” 하고, 나무를 나보다 더 불쌍한 위치에 가져다 둔다. 그렇게 하면 나의 장난이 덜 부끄러워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얄팍한 눈속임으로 창피함을 무마한 그날 밤, 나는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아, 무식의 소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죽은 나무를 가엾게 여긴 오늘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무는 “가엾다.” 운운하는 나를 더 가엾게 여기며 혀를 찼을 테지. 이렇듯 책은 나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던 것을 한순간 고쳐놓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한 무엇을 삽시간에 눈앞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고백을 하면 어떨까. 실제로 나는… “밀크티를 책으로 배웠다.”
밀크티란 단어를 처음 맞닥뜨린 건 중학생 시절. 한창 추리소설에 빠져 있을 때였는데, 밀크Milk라는 단어도, 티Tea라는 단어도 익숙하지만 이 둘을 조합한 단어는 몹시 해괴해 보였기에 적잖이 잘못된 단어처럼 느껴졌다. 추리소설의 화자인 형사는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나 사건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카페에 갔다. 그러고는 꼭 밀크티를 주문했다. 그 당시 내게 카페란 파르페나 과일빙수를 파는, 식빵과 크림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흔들거리는 그네 벤치에서 발을 구를 수 있는 ‘캔모아’가 전부였기에 ‘어른의 카페’란 머릿속에서만 그려온 것이었다. 형사는 어른의 카페에서 밀크티를 자주 마셨다. 사건이 풀리지 않을 때나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때면 밀크티를 주문했고, 그 덕에 나는 줄거리를 따라가다 말고 곧잘 뭉근한 미식의 세계로 입장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 밀크티는 우유처럼 뽀얀 것으로, 따듯한 김을 폴폴 풍기는 달콤한 음료였다. 경험해 본 것에 굳이 비유해 맛을 상상해 보자면 ‘따듯한 밀크셰이크’ 정도로 짐작한 것 같다.
내가 밀크티를 실제로 맛본 건 그 책을 읽고 한참 시간이 흘러서였다. 처음 카페에서 밀크티라는 글자를 인식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홀린 듯 그것을 주문했다. 머릿속에서 수십 번쯤 그려본 음료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잔뜩 상기돼 있던 것도 잠시, 웬걸. 맑고 가벼운 액체가 밀크티 이름표를 달고 내 앞에 놓이는 것이 아닌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으면서 “평소에 마시던 것과 달라.” 하는 허황된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맛도 그랬다. 다소 맹한 것이… 실망스러웠다. 이게 진짜 밀크티란 말이야? 나중에 영국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에게 들으니 ‘진짜’ 영국 밀크티는 우유를 아주 약간만 부어 홍차 풍미를 살리는 게 일반적이란다. 찾아보니 “영국식 표준 홍차 규약인 ISO 3103에 의하면 홍차 약 300ml에 우유 5ml, 60:1 비율”로 넣어야 한다고. 내가 처음 밀크티를 맛본 카페는 영국 정통 찻집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금 밀크티와 조우하게 되었다. 실망(실패)한 전적이 있으면서도 밀크티란 글자에 재간 없이 홀린 건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면서 쌓인 일종의 정 때문이었으리라. 얼마간 기대를 내려놓고 맹한 그것과 마주할 채비를 마쳤는데 내 앞에 놓인 밀크티 모습이 심상치 않다. ‘어?’ 내가 숱하게 상상한 그 모습. 셰이크를 닮은, 우유 비중이 높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 바로 책으로 배운 그것이었다. 속이 든든해질 정도로 눅진하고 보드라운 밀크티는 상상해 온 것과 꼭 닮아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누군가를 실제로 만나 손도 잡고 말도 섞고 어깨동무도 해보는 기분에 탄성이 다 터져나왔다. 나는 지금도 카페에서 ‘밀크티’ 세 글자가 보이면 하릴없이 주문하게 된다. 너무 달거나, 좀 연하거나, 지나치게 인공적이라 실패할 때도 많지만 멈출 수가 없다. 추리소설 속 형사처럼 미간에 ‘찡긋’ 힘을 넣고 뭔가 잘 안 풀린다는 듯 밀크티를 홀짝이는 것은 나와 밀크티만의 비밀스러운 교감. 조금 부끄러워도 그 표정을 짓지 않고서는 밀크티를 제대로 음미하기가 영 어렵다.
집에 정수기를 들여본 적이 없다. 생수를 사본 적도 없다. 수돗물을 마시느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 부엌엔 늘 커다란 주전자가 있었다. 거기 물을 한가득 넣고, 보리 알갱이를 몇 줌 더한 뒤 팔팔 끓여 마시는 게 하루 일과였다. 태어나서부터 식수는 쭉 보리차였다. 이온수기니 정수기니 하는 기계를 집에 들인 적도 있지만 나는 늘 보리차만 고집했다. 어쩐지 나는 그 ‘하얀 물’(적확히는 투명한 것이지만 나는 정수된 물을 하얀 물이라 부르곤 한다.)이 어색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정수기로 물을 마시거나 생수를 사 먹기 때문에 어디서건 하얀 물을 만나게 되지만, 나는 하얀 물을 마실 때면 여전히 마셔선 안 되는 걸 마시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특히 미지근한 하얀 물일 땐 더더욱 그렇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여행을 가면 곧잘 ‘물갈이’를 했다. 여행만 가면 열나고, 토하고, 설사하고, 속이 메슥대곤 했는데 그것을 엄마 아빠는 물갈이라 불렀다. 물갈이는 타지의 석회질, 미생물 함유량이 기존에 마시던 물과 달라 신체가 거부 반응을 일으켜서 발생하는데, 깨끗한 물을 마셔도 발생한다고 한다. 기존 물에 익숙해져 있던 장내 미생물이 갑자기 새로운 미생물과 무기질 비율의 물을 받아들이고 놀라는 것이다. 한창 여기저기 여행 다닐 어린 시절이라면 1990년대일 터인데, 찾아보니 그 시절엔 국내에 정수기가 가장 널리 보급된 때란다. 정수된 물을 마시고 속앓이를 할 리가 없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부모님을 붙잡고 물갈이 얘기를 하면서 그 당시 놀러 가면 수돗물을 먹었느냐 물으니 “그랬을걸? 그랬나? 그랬을 거야.” 정도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러한 연유로 물갈이가 수돗물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하간 나는 서울·경기·인천을 벗어나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꼭 물갈이를 했다. 부산에서도, 경주에서도, 전주에서도, 대구에서도 배가 아팠고, 설사를 했고, 열이 났다. 하루는 혓바닥에 오돌토돌한 것이 징그럽게 돋아나기도 했는데 그게 다 물갈이 때문이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물을 무서울 정도로 많이 마신다. 하루에 1.5리터 이상 마시라고 권장되는 물. 1.5리터 정도야, 기상하고 두어 시간 만에 다 채울 정도로 거뜬하다. 최근엔 그 빈도와 양이 더욱 많아져 5리터들이 주전자가 하루 만에 동나기 일쑤다. 냉장고 깊숙이 물통을 넣어두고 아주 차가운 상태로 한 컵 크게 들이켜는 걸 가장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따듯한 보리차가 반갑던 시절도 있었다. 아빠가 기분 좋게 취해서 돌아오는 날에만 마시곤 하던 따듯한 갈색 물. 엄마랑 아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술자리를 파한 아빠가 귀가 연락을 해오면 냉장고에 있는 보리차를 꺼내 팔팔 끓였다. 아빠가 도착할 즈음이면 딱 알맞게 식어 있었는데, 거기 꿀을 크게 두 스푼 반을 넣어 휘휘 젓는다. 안 자고 깨어 있는 밤이면 나도 꿀 보리차를 한 컵 차지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이불 속에 돌돌 말려 후후 불어 먹는 달콤하고 구수한 갈색 물. 그걸 마시고 잠드는 날이면 꿈속에서 귀여운 파티가 열렸다. 꿀벌들이 윙윙 몰려들어 보리차 주변을 노오랗게 장식했다. 가랜드도 달고, 뽀얀 케이크도 옮기고, 버터 쿠키도 진열하면서 내 뱃속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노란 잔칫상을 뒤로하고 내가 손을 뻗는 건 쿠키도 아니오, 케이크도 아닌 갈색 물. 달콤한 보리차를 ‘꿀꺽’ 삼키면서, 나는 기분 좋게 단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가끔 우리 집이 아닌 곳에서 직접 끓인 보리차를 만날 때가 있다. 티백으로 우려낸 구수한 맛도 좋고, 슈퍼에서 사 온 진득한 블랙보리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역시 나는 보리 알갱이가 가라앉아 있는, 날것 그대로의 곡물이 푹 우러난 보리차 본연의 구수함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물과 함께 밥을 먹는 버릇이 있어, 밥 한술에 보리차를 두세 모금씩 마시다 보니 한 끼 식사에 물 1.5리터를 마시는 건 예삿일이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땐 잔뜩 우러나 퉁퉁 불은 보리 알갱이가 입에 가득 들어차곤 하는데, 제 역할을 다한 기특한 갈색 알갱이들을 입안에서 굴리는 건 어찌나 재미있는 일인지. 나는 비운 물통을 매일 부엌에 전리품처럼 세워둔다. 오늘만 해도 이미 오전에 보리차 두 통을 동냈다. 꽤 많은 물통이 줄지어 설 것 같은 날이다. 그렇게 매일을, 수십 년을 쉼 없이 들이켠 보리차는 지금도 내 어딘가를 이루기 위해 몸속 곳곳을 여행하고 있을 테다. 보리로 만들어진 갈색물은 내 손톱이 되고, 눈곱이 되고, 두피가 되고, 체모가 되고, 침이 되고, 시신경이 되고, 때로는 피가 되어 좌심실에 머물기도 하고….
〈드래곤볼〉에 ‘선두’라는 알약이 나온다. 일명 ‘만능 회복 아이템’으로, 한 알만 먹어도 체력 회복과 포만감을 주는 알약이다. 어릴 적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엄마가 원하던 게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먹는 데 관심이 없던 엄마에게 어릴 때부터 심심치 않게 들은 말 중 하나가 “먹으면 배불러지는 캡슐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게 나올 법하지 않나?”였다. 어릴 때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엄마가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데!), 미식의 세계를 어렴풋이 알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는데!). 그런 엄마도 임신했을 때 입에 당기던 음식이 하나 있었다는데, 그것이 바로 ‘생무’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무가 먹고 싶었다고 한다. 매일 시장으로 달려가 두 통씩 사서는 찬물에 씻고 겉만 살짝 깎아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게 그렇게나 시원하고, 달콤하고, 아무튼 좋았다고. 보리차가 내 생장에 막대한 지분을 두고 있다면 엄마 뱃속에서 고작 세포에 불과하던 나에게 내장과 혈액을 준 건 다름 아닌 생무였던 것이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집집을 다니다 보면 음료를 대접받는 일이 많다. 독특한 풍미의 커피, 마트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이국의 주스를 내어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없어 마땅한 걸 준비 못 했다며 찬장에 잠들어 있던 티백을 꺼내거나 날씨에 맞는 온도로 물을 정성스레 대접해 주시는 분도 있다. 여러 음료를 양껏 맛보면서 음료란 마셨을 때 원재료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망고주스라면 응당 망고 맛이 날 테고, 알로에주스라면 초록빛을 띨 터. 맛과 색이 명징하여 정체를 알기가 제법 쉬운데, 하루는 참으로 미스터리한 음료를 마주하게 되었다.
종류는 분명한 차. 서양 차보다는 보리차나 보이차 같은 동양 차인데, 결명자차, 자스민차, 둥글레차, 작두콩차, 메밀차… 마셔본 차를 다 떠올려봐도 비슷한 분위기만 감돌 뿐 ‘딱 그 맛!’이라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기엔 어딘가 익숙한 맛. 나는 그 기묘함에 한참을 골몰하다 슬그머니 입을 뗐다. “이거… 무슨 차예요?” 둥그런 미소와 함께 돌아온 대답은 ‘무차’란다. 부엌에서 엄마와 나란히 서서 수도 없이 잘라 먹던 무. 뭉근히 끓여 먹고, 생선이랑 삶아 먹고, 간장에 조려 먹고, 샐러드로 무쳐 먹던 무. 그런 무가 ‘차’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다니, 어쩐지 배신감이 드는 것이었다. 인터뷰이는 무를 직접 덖어 내린 차라고 했다. 무를, 덖어서, 그걸로, 차를? 무나 차에 관해 전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그거 일반적인 건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당시 내겐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금도 종종 덖은 무로 우린 차가 떠오른다. 맛은 흐릿해지고 그저 ‘좋았다’는 감상만 남아 있지만 무차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연례행사처럼 찾아온다. 어느 가을엔가 직접 덖어보겠다고 무 한 통을 사 온 적이 있는데,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맛이 아주 잘 들어 순식간에 절반을 생으로 먹고, 나머지 절반은 샐러드로 먹고, 남은 것은 몽땅 조려 먹어버렸다. 무 한 통이 금세 끝나 덖을 무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깨끗하게 한 통을 비운 후에야 ‘아차, 무차!’ 하고 떠올리게 되니 아직 무차를 향한 진심이 모자란가 싶기도 한데, 머쓱함에 레시피를 검색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무차는 생무를 덖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무를 썰어서 말린 후 덖으라니, 공정이 꽤 복잡하다. 긴 시간을 머금은 차였기에 단번에 ‘맛있다. 무슨 차지?’ 하고 궁금해진 걸 테지. 한편, 과연 내가 이 정도의 정성을 들여 무차를 만들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난다. 공산품(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은 사 먹지 않겠다 호기롭게 다짐했건만 무를 말리는 것부터 하기엔 복잡하고… 내 인내심으론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슬쩍 요령을 부려 무말랭이를 사다 덖어보면 어떨까? 머리를 굴려 가며 장 볼 목록에 ‘무말랭이’를 적어 넣는다. 기껏 사 온 무말랭이를 홀랑 무쳐버리고 ‘아차, 무차!’ 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래의 나를 믿어볼까. 무차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생무로 나를 키워낸 엄마에게 가장 먼저 대접해 드릴 것이다. 이런 말도 덧붙여야지.
수십 년 전 무 먹고 자란 애가 이렇게나 커서 무를 덖어 차도 만든다고, 뱃속에서부터 알던 이 맛을 나도 참 좋아한다고.
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